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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가계빚·고령화…내수산업 ‘닫혀버린 성장판’

등록 2016-01-05 19:21수정 2016-01-06 10:44

위기의 한국경제, 돌파구 찾아라
② 인구·소비절벽에 선 내수
삼성그룹 계열사에 다니는 남편과 맞벌이를 하는 대기업의 이아무개 부장은 초등학생 아들을 둔 40대 여성이다. 자신도 20대 그룹 안에 드는 대기업 계열사에서 간부급으로 일하고 있으니 수입 면에서 안정적인 맞벌이 부부이지만, 지난해 연말 여느 때보다 마음이 복잡한 나날을 보냈다. 남편이 다니는 회사에서 ‘희망퇴직’이라는 이름 아래 인력 구조조정이 진행됐기 때문이다. 그는 “남편이 딱 밀려나기 좋은 나이대이다 보니 정말 불안했다. 12월에 11월 카드값이 나왔는데, 카드 청구금액이 딱 절반으로 줄어들더라”고 말했다. 맞벌이 부부로 바쁘게 살며 거리낌없이 그어대던 카드였는데, 감원 공포가 코앞에 닥치니 돈이 써지지 않더라는 게 그의 씁쓸한 설명이었다.

씀씀이 큰 40대 감소 추세
소비지표는 이미 내리막길

우리 경제를 이끌던 수출 기업들이 구조조정 한파에 휩싸이면서 내수 기업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가계 부채 증가와 소득 정체로 씀씀이가 줄면서 최근 몇년간 내수 제조업의 성장세는 마이너스로 돌아서는 등 눈에 띄게 둔화했다. 서비스업은 낮은 수준에서나마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으나, 부가가치 생산 수준이 낮은 도소매업이나 음식점·숙박업의 비중이 지나치게 큰 구조여서 한계가 뚜렷하다.

고령화와 생산·소비 주력 연령대의 감소라는 돌이키기 어려운 인구구조의 변화가 코앞에 닥쳐온 것도 내수 경기 전망을 어둡게 한다. 실제 15~64살 생산가능인구는 올해 3704만명을 정점으로 감소 추세로 돌아선다. <2018 인구절벽이 온다>의 저자인 해리 덴트의 개념을 빌려 소비를 가장 많이 하는 소비 정점 연령대를 45~49살로 잡고 한국의 인구 추이를 살펴보면, 이 연령대 또한 2018년 436만명을 정점으로 내리막길을 걷는다. 이른바 ‘인구절벽’은 눈앞에 닥친 현실인 셈이다.

또 연말을 즈음해 쏟아진 각종 소비 지표들은 새해 벽두에 ‘소비절벽’ 우려를 짙게 하고 있다. 지난해 가을 정부의 인위적인 내수 촉진 정책 쏟아붓기로 소비는 반짝 회복세를 보였지만, 이미 11월 지표부터 완연한 하락 추세를 보이는 상황이다.

내수 제조업 2012년 이후 사실상 뒷걸음…‘역성장’ 굳어지나

신년 세일에 들어간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백화점에서 지난 3일 방한용품들을 50% 할인된 가격에 판매한다는 안내판 옆을 소비자들이 지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신년 세일에 들어간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백화점에서 지난 3일 방한용품들을 50% 할인된 가격에 판매한다는 안내판 옆을 소비자들이 지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수출 경기가 기술력을 높인 중국의 추격과 엔화 약세로 가격경쟁력을 강화한 일본의 공략에 갇혀 있다면, 내수 경기는 ‘인구절벽’과 ‘소비절벽’ 사이 깊은 골짜기로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게다가 희망퇴직 등 감원 한파는 소득기반과 소비심리를 더 악화시켜 이런 내리막길 경사를 더 가파르게 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성장 한계 부딪힌 내수 제조업

라면·유가공·제과업체 등
3~5년전부터 매출 마이너스
수출보다 훨씬 이전 성장 멈춰

서비스업 주도 내수 성장?

부가가치 생산성 ‘제조업의 절반’
도소매업 비중이 62%로 높아
성장보다 ‘고용피난처’ 역할 그쳐

새해 내수 제조업 전망을 내놓은 주요 증권사들은 출하 둔화를 가장 큰 추세적인 특징으로 꼽았다. 출하지수는 생산 기업에서 물건이 얼마나 팔려 나가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통계청의 제조업 내수출하지수 현황을 보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8년간 관련 지수는 증가와 감소를 오가며 사실상 제자리걸음을 했다. 2012년 이후로는 증가율이 아예 마이너스를 기록하거나 1%에도 못 미친다.

실제 내수 제조업의 2010년 출하지수 기준을 100으로 잡았을 때 2014년은 102.9에 불과하며, 2015년 1~11월도 같은 수준으로 정체돼 있다. 수출 제조업의 출하지수는 2014년 114.7이어서, 내수에 견주면 최근에야 급격히 기우는 것에 가깝다. 수출 제조업의 몰락이 구조적이고 추세적이라는 진단이 나오면서 대안으로 내수 성장이 거론되지만, 내수 제조업의 성장판은 실상 더 일찍 닫힌 상태다.

케이디비(KDB)대우증권의 음식료 기업 담당인 백운목 애널리스트는 “출하 증가가 1% 밑으로 떨어지는 것은 2012년 이후 추세로 굳어져서 돌이키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며 “이는 경기 둔화 요인도 있지만 인구변화라는 구조적인 요인이 누적된 것으로 기업들이 전반적으로 성장 한계에 부딪쳤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이른바 ‘인구절벽’ 상황에서 내수 제조업은 성장의 맥을 되살리기가 쉽지 않다는 진단인 셈이다.

이는 주요 소비재 기업들에서 매출이 수년째 꺾이는 양태로 나타나고 있다. 라면과 스낵 1위 업체인 농심은 2011년 1조9707억원을 정점으로 매출이 수년째 뒷걸음질치고 있다. 유가공 1위 업체인 한국야쿠르트도 2013년 9925억원을 정점으로 역신장이 시작되어 2년 연속 매출 감소가 예상된다. 한국야쿠르트의 한대성 홍보팀장은 “주력 소비층이 될 유소년층 인구가 줄어드는 게 가장 큰 고민이다. 2014년 8월 이후 연구·개발 투자로 당 줄이기 캠페인에 나서는 등 제품에서 단맛을 줄여왔는데, 이는 고령화 추세에서 성인·실버층의 입맛을 맞추려는 지향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 제과업체 ‘빅3’에 들어가는 오리온의 윤현호 홍보부장은 “중국 사업과 달리 내수에서는 2013년부터 역성장을 시작해 2015년까지 3년 연속 매출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며, 연평균 4~5%씩 매출이 빠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역신장의 바퀴’는 올해 더 빠르게 구를 가능성이 크다. 하이투자증권의 박상현 이코노미스트는 “주요 기업들이 축소경영·비용절감에 집중하면서 인력 구조조정이 이어지는 터라 소비심리 개선은 쉽지 않다”며 “지난해 부동산 경기 부양, 추경, 자동차 개별소비세 인하,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 등의 정책 효과는 이미 소진됐으며, 추가 부양 정책 없이 민간 스스로 회복 동력을 찾기는 어려운 상태”라고 짚었다.

내수 제조업의 한계가 분명해진 상황에서 서비스업 주도 내수 성장론에 대한 얘기도 꾸준히 나온다. 하지만 우리 서비스산업의 부가가치 생산성은 극히 낮아서 제조업의 절반 수준이다. 또 서비스업 전체 매출 가운데 2014년 기준으로 도소매업이 62%로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고, 숙박·음식점업이 6.5%로 두번째를 차지한다. 이들 업종은 ‘인구절벽’과 ‘소비절벽’의 한계를 넘어서기 어려운데다 비생산적 공급과잉이 일어나는 분야다. 결국 우리 경제에서 서비스업은 성장 동력이라기보다는 ‘고용피난처’에 머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엘지(LG)경제연구원의 이근태 수석연구위원은 “노후와 일자리 불안으로 자영업이나 전통적 서비스업으로만 사람들이 몰리고 청년 창업조차 도소매 쪽으로 흘러가고 있어 서비스업의 질적 성장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장시간 노동과 인프라 부족으로 인해 여가·관광이 국내에서 충분히 소비되지 못하는 것도 한계”라고 짚었다.

정세라 기자 sera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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