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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반복되는 경제위기 근본적 대책 찾아야

등록 2016-01-07 22:09수정 2016-01-08 09:01

한국 경제의 위기를 경고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가 지금의 위기를 넘어서려면 진영 논리를 뛰어넘어 새로운 틀로 접근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4일 오전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서
새해 첫 출근을 하기 위한 직장인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한국 경제의 위기를 경고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가 지금의 위기를 넘어서려면 진영 논리를 뛰어넘어 새로운 틀로 접근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4일 오전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서 새해 첫 출근을 하기 위한 직장인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위기의 한국경제, 돌파구 찾아라
④ 패러다임 바꿔야 산다
“위기의 경보음을 듣고도 손 놓은 정부.”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속수무책으로 일관한 정부를 비판한 기사의 제목이다. 그로부터 20년이 흐른 2016년, 곳곳에서 또 위기의 경보음이 들린다. 그런데도 정부와 정치권 모두 속시원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은 외환위기 때와 닮은꼴이다. 모두 위기 타개를 위해서는 구조조정과 구조개혁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여전히 여-야, 보수-진보, 노-사로 조각조각 나뉘어 합의점을 못 찾고 있다.

정부여당이 최우선 과제로 꼽는 선제적 사업 재편을 위한 ‘기업활력 제고 특별법’(원샷법)과 노동시장 구조 개편을 위한 ‘노동개혁법’, 서비스산업에서 새 성장동력을 찾기 위한 ‘서비스산업 발전 기본법’의 처리는 연말을 넘긴 데 이어 연초에도 처리 전망이 불투명하다. 야당은 재벌 특혜와 고용 불안을 이유로 들어 반대하지만,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 삼성그룹의 한 사장은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2~3년 안에 외환위기 때보다 충격이 더 큰 대위기가 올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국 경제의 위기를 극복하려면 경제활성화와 재벌개혁 등 단순한 정책 제시 차원으로는 부족하다. 수많은 정책들이 나와도 꽉 막힌 하수구처럼 답답한 형국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풀려면 기존의 사고와 행동 방식을 버리고, 구태의연한 진영논리에서도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틀로 접근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전문가들이 많아지고 있다.

<한겨레>는 보수와 진보의 진영논리에 매몰되지 않고 개혁적이고 합리적인 해법을 찾기 위해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 김종석 새누리당 여의도연구원장,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 등 4명의 경제 전문가들을 만났다. 이들은 경제지표의 악화나 특정 정책의 실패보다는 위기 해결을 위한 합의나 의사결정을 제대로 이뤄내지 못하는 것을 최대 문제로 꼽으면서, 책임정치 구현을 위해 현행 대통령 5년 단임제를 중임제나 의원내각제로 전환하는 권력구조의 개편을 제안했다.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의 경제 공약을 만들며 ‘가정교사’로 불렸던 김광두 원장과, 대표적 재벌개혁론자인 김상조 소장은 지난해부터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진영논리를 깨고 변화와 개혁을 모색하는 ‘보수-진보 합동토론회’를 주도하고 있다. 여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을 책임지는 김종석 원장은 지난해부터 야당의 싱크탱크인 민주정책연구원과 공동세미나를 열어 정책의 공통분모를 찾고 있다. 윤증현 전 장관은 참여정부에서 금융감독원장을, 이명박 정부에서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낸 정통 경제관료다.

윤증현 전 기재부 장관
윤증현 전 기재부 장관

윤증현 전 기재부 장관
세계경제 복원된 곳은 미국이 유일
구조조정 필요한데 대응은 지지부진
이대로면 곧 외환위기보다 더 큰 위기

■ 정말 위기인가

경제 전문가들은 현 상황이 이미 위기이거나 곧 큰 위기에 직면할 것이라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김상조 소장은 “늘어나는 기업 부실과 가계 부채, 양극화가 갈수록 심화되는 노동시장 등 위기 징후는 이미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윤증현 전 장관은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처럼 시장·산업·직장 등에서 동반 도산과 실직의 위기가 엄습한 것은 아니지만, 정부가 특별한 조치 내지 정책 변경이 필요한 매우 어려운 시기임은 틀림없다. 이를 잘 넘기지 못하면 과거 같은 위기 상황으로 돌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광두 원장도 “모두 위기를 공감하는데 관료들이 대통령에게 제대로 보고하는지 모르겠다. 통계 수치를 속이면 대통령이 (위기 상황을) 잘 모를 수 있지만, 민생이 힘들다는 것은 모두가 동의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앞으로 닥쳐올 위기의 구체적인 양상은 어떨까? 김상조 소장은 “삼성그룹 사장의 전망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며 외환위기와 유사한 형태의 충격을 걱정했다. 반면 김종석 원장은 “한국 경제 위기의 본질은 서서히 죽어가는 난치병이다. 자기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마치 끓는 물 속의 개구리처럼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고 다른 전망을 내놨다. 김 원장은 이어 “일본이 ‘디플레이션 트랩’(저물가가 악순환되는 현상)에 빠져 10년 이상 제로 성장과 장기 불황을 겪은 것과 유사하다. 한국도 이대로 가면 2~3년 내 성장률이 0%대로 떨어지고, 10년 이상 장기 저성장과 복합불황의 덫에 갇혀 고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윤 전 장관은 외환위기형 위기와 일본형 장기불황이라는 두가지 가능성을 모두 열어놓았다.

김종석 여의도연구원장
김종석 여의도연구원장

김종석 여의도연구원장
우리사회 대타협 환상에 사로잡혀
타협 안된다고 마냥 표류할 수 없어
민주적 의사결정·책임정치가 대안

■ 패러다임 전환의 필요성

김상조 소장은 “문제를 모르는 것이 아니고 답을 못 찾는 것도 아닌데, 컨센서스를 모으고 실행할 수 있는 최종 의사결정을 못 하는 게 가장 큰 위기 징후다. 정부와 국회가 위기를 인식하고 해결하기 위한 정책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는 상황이 외환위기 직전과 매우 유사하다는 점에서 한국의 경제위기는 정치위기이다”라고 진단했다. 김종석 원장도 “의사결정 구조의 난맥상이 너무 심하다. 여야 모두 자기주장을 관철해서 현실을 자기 마음대로 만들어야겠다는 이념성이 너무 강하다. 심지어 자기 편이 먼저 한 말도 상대방이 하면 반대하는 것은 타협이 원칙인 민주정치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는 어떤 패러다임의 전환이 요구되는 것일까? 김종석 원장은 역설적으로 대타협의 환상에서 벗어날 것을 주문한다. “우리 사회가 대타협이라는 말에 너무 홀려 있다. 대타협은 아름답고 필요하지만, 타협이 안된다고 아무것도 결정을 못하는 나라는 표류할 수밖에 없다. 대타협을 위해 노력하되, 안될 경우에는 아무런 결정도 하지 않고 손을 놓고 있기보다, 다수결의 민주적 절차에 따라 의사결정을 하고, 주도 세력이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지는 ‘책임정치’를 구현해야 한다. 선거에서 국민들이 심판하면 된다.” 이에 대해 김광두 원장은 “다수당이 다수결에 의한 의사결정을 주장하기에 앞서 소수당에 대한 배려와 국민에 대한 충분한 설명 노력이 전제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
대통령 중임제든 내각제든
임기중 한 일로 평가받는 시스템 중요
원샷법 통과시키되 악용 막도록

■ 권력구조 개편 화두

김상조 소장은 ‘87년 체제’(1987년 대통령 직선제가 도입되면서 형성된 정치체제)의 극복 과제 중 하나로 ‘대통령 5년 단임제’를 꼽았다. “우리 사회를 정상화하는 데는 오랜 기간의 진화가 필요한데, 대통령의 5년 임기 중에는 완성하기 어렵다. 따라서 대통령이 임기 중에 성과를 내기 위해 조급해지고, 대화와 소통을 거부하고, 자기 뜻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다가 실패로 귀결되는 악순환이 지난 30년간 되풀이됐다. 대통령 중임제든, 의원내각제든 정치적 의사결정자의 시야를 길게 만들고, 임기 중에 한 일로 국민의 평가를 받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김 소장은 이어 “2017년 대선에 나설 후보들은 4월 총선이 끝난 뒤 권력구조 개편에 대한 공약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종석 원장과 윤증현 전 장관도 이에 뜻을 같이했다. 김 원장은 “잘하면 재집권이 가능하고, 못하면 임기 중간이라도 쫓겨나야 하는데 대통령 5년 단임제는 그것이 안된다”고 지적했다. 윤 전 장관은 “5년 단임제로는 대통령이 자신의 임기 중에 정책 결과를 볼 수 없고, 정책의 일관성도 유지하기 어렵다. 중임제로 바꾸거나 다당제를 전제로 내각제로 가야 한다”고 밝혔다.

■ 규제 개혁과 교육 개혁

김상조 소장은 ‘87년 체제’의 경제적 잔재인 ‘사전적 규제’ 방식을 ‘사후적 규제’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보수와 진보가 내세우는 경제 질서와 성장 모델은 모두 87년 경제 상황의 산물이다. 보수가 주장하는 ‘낙수효과’는 재벌의 성장을 전제로 한다. 재벌에 대한 사전적 규제가 필요하다는 진보의 주장 역시 마찬가지다. 당시는 재벌이 사전적 규제를 받아도, 계속 성장을 하며 과실을 만들 수 있었다.” 김 소장은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180도 바뀌었다고 지적한다. “재벌이 성장은커녕 생존도 불투명한 상황이 되면서 재벌의 낙수효과에 기초한 성장 모델은 유효성이 사라졌다. 또 재벌들에게 임금을 올리고(소득주도 성장론과 최저임금 인상론), 세금을 더 내라고 요구하는 정책(대기업 증세를 통한 사회복지 확대론)도 유효하지 않다. 경제개혁의 목표를 재벌개혁으로 한정하는 것은 진보의 덫이 되고 있다.” 김 소장은 일방적 규제 완화를 주장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와, 규제 강화만을 주장하는 참여연대 모두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똑같다고 비판했다. “사전적 규제는 재벌의 새로운 사업 기회를 막고, 새로운 기업의 성장도 가로막는다. 기업들 스스로 구조조정을 하고 사업 기회를 찾을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줘야 한다. 대신 사후적 규제를 통해 기업의 일탈행위를 엄격히 제재함으로써, 나쁜 짓을 하면 얻는 이익보다 잃게 되는 손실이 더 크다는 것을 분명히 깨닫도록 해야 한다.”

김 소장은 여야가 대립 중인 원샷법의 처리 방향을 예로 들었다. “원샷법은 선제적 구조조정을 위해 상법과 공정거래법의 규정을 일부 완화한 것이다. 재벌 승계에 악용되거나 소액주주 권한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그 때문에 법 통과가 안되거나, 아예 법 적용 대상에서 재벌은 모두 제외하자는 것은 올바른 대안이 아니다. 구조조정을 위해 원샷법을 통과시키되, 이를 악용하는 기업은 사후적으로 시장에서 엄하게 규율할 수 있는 ‘이중대표소송’(자회사의 이사들이 불법행위를 저지르면 모회사의 소액주주들이 대신 손해배상 책임을 묻는 제도)을 도입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
미·일 따라잡고 중 추격 벗어나려면
창조적 인력과 기술이 핵심
구조조정도 노동자 재교육 전제돼야

김광두 원장은 교육·재교육·재훈련을 포괄하는 교육개혁을 키워드로 제시했다. “우리가 앞서가는 미국과 일본을 빨리 쫓아가고, 뒤에 있는 중국의 추격에서 벗어나려면 사람과 기술이 중요한데, 기술도 사람이 있어야 개발과 습득이 가능하다는 측면에서 결국 핵심은 사람이다. 하지만 현행 교육과 훈련시스템은 창조성을 가진 인력을 제대로 양성하지 못하고 있다.” 김 원장은 이어 “기술 발전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노동자들에 대한 재교육과 재훈련은 노사 모두에 좋은 일이고, 구조조정을 할 때도 무조건 사람을 자르는 것이 아니라 재훈련과 재교육을 통해 전직을 도와준다면 구조조정에 대한 저항감이 줄고 노사 협조가 가능해진다. 교육개혁은 여야와 이해관계자 간 타협이 상대적으로 쉬울 뿐 아니라 내수 부양, 사회갈등 완화, 노사갈등 해소, 구조조정 촉진 등 1석5조의 효과가 있다”고 강조했다.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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