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오전 평화의 소녀상을 찾은 시민들이 소녀상의 무릎에 목도리를 덮어주고 있다.
28일 한국 정부가 한-일 외교회담 공동기자회견에서 주한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평화비) 이전·철거 문제에 대해 “관련 단체와의 협의 등을 통해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발표한 다음 날인 29일, 오전부터 서울 중학동 주한일본대사관 앞에 놓인 위안부 소녀상을 찾는 시민들의 발길이 줄을 이었다. 시민들은 하나같이 ‘철거 반대’를 외치면서, 만에 하나 소녀상이 철거될 경우에 대비해 이를 기억하고자 각자 준비해온 카메라에 소녀상을 꾹꾹 눌러 담았다. 이날 많은 방문객을 맞은 소녀상은 눈을 또렷하게 뜨고 무표정한 얼굴로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주한일본대사관을 응시했다.
체감온도가 영하 10도까지 내려간 이날 오전 10시40분께, 최신형 검은색 소니 카메라를 양손에 들고 엉거주춤한 모습으로 소녀상을 찍고 있는 김병춘(78)씨는 일제 식민지 치하 기억을 묻는 질문에 눈물을 글썽였다. 김씨는 “우리 누나들이 왕십리 인근에서 일본군이 다가오자 집 뒤로 숨는 걸 실제로 봤다. 치욕적인 기억으로 남아있다”며 “비오는 날이면 비를 맞고 있을 소녀상이 생각난다. 소녀상이 흘리는 눈물이 내 눈물 같아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그는 “할머니들이 원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 진정성 있는 사과일 뿐”이라고 말했다.
대학에서 정치학을 가르치는 이승원(46) 성균관대 겸임교수는 ‘오늘의 일’을 친구들에게 알리기 위해 소녀상을 찾았다. 이씨는 “어제 정부가 소녀상이 철거될 수도 있다는 취지의 발표를 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 나왔다. 사진을 찍어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유하려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반도의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정작 피해 당사자인 할머니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너무나 안타깝다”고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예술가들도 소녀상 철거 반대에 한 목소리를 냈다. 이날 오전 11시55분께 가수 이광석(43)씨는 준비해온 갈색 목도리를 소녀상의 맨발에 둘러 감은 뒤 김민기의 <아름다운 사람>을 열창했다. 20분 뒤 하아무개(9) 어린이도 직접 준비해온 연두색 목도리로 소녀상의 무릎을 덮어줬다. 추위에 떨고 있을 소녀상의 오른쪽 다리에 핫팩을 붙여주는가하면 이씨와 함께 빨간 목도리로 발목을 감싸기도 했다. 노래를 마친 이씨는 “할머님들이 요구하는 건 돈이 아니라 인간적 존엄이다”라며 철거에 끝까지 맞서 싸울 의지를 밝혔다. 글·사진 권승록 기자 rock@hani.co.kr
29일 오전 평화의 소녀상을 찾은 시민들이 소녀상의 무릎에 목도리를 덮어주고 있다.
29일 오전 가수 이광석(43)씨가 평화의 소녀상 이전·철거에 반대하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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