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에 대한 체포영장을 집행하겠다며 9일 오후 경찰이 한 위원장이 머물고 있는 서울 종로구 조계사 관음전 앞에서 인간띠를 하며 경찰 진입을 막던 스님과 직원들을 끌어내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경찰이 13년 만에 벌이려던 조계사 진입작전이 조계종 총무원장인 자승 스님의 중재로 가까스로 멈췄다. 자승 스님은 체포영장이 발부된 한상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위원장의 거취와 관련해 “내일 정오까지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경찰이 한국 불교계의 총본산인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에 피신 중인 한 위원장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에 나선 9일 오후 5시,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인 자승 스님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내일 정오까지 한 위원장의 거취 문제를 해결할 테니 경찰과 민주노총은 모든 행동을 중단하고 조계종을 지켜봐 달라”고 호소했다. 자승 스님은 “한 위원장이 조계사에 몸을 피신한 뒤 (조계종은) 상생과 원칙을 갖고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며 “체포영장을 집행하는 것은 갈등을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갈등을 야기하는 것이다. 더 이상의 갈등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중재 이유를 밝혔다.
오전부터 작전을 준비 중이던 경찰은 조계종의 중재 제안을 받아들였다. 경찰청은 “금일 영장을 집행할 방침이었으나, 자승 총무원장님의 기자회견 내용을 감안해 일단 집행을 연기하겠다”며 “다만 회견문에 밝힌 바와 같이 내일 정오까지 한상균의 자진 출석 또는 신병인도 조처가 이행되지 않을 경우 당초 방침대로 엄정하게 영장을 집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경찰청은 “법질서 수호와 공권력 확립 차원의 매우 엄정한 사안으로 인식하고 있다”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이에 따라 경찰 투입 여부 및 한 위원장의 거취 문제는 10일 어떤 형태든 결론이 날 전망이다. 조계종 화쟁위원회 관계자는 “9일 밤 막판 협의를 통해, 가능한 한 10일 정오까지 평화로운 해결책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노총 쪽은 이날 밤 산별연맹위원장·지역본부장 등이 모여 비상중앙집행위원회를 열고 조계종의 중재 제안에 대한 수용 여부를 논의했다. 회의 직전 민주노총은 “고통스러운 고민의 시간이 될 것”이라며 정부의 노동개악 중단을 강하게 촉구하는 한편 조계사가 ‘경찰의 군홧발’에 짓밟혀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경찰은 이날 자승 스님의 기자회견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조계사 주변에 81개 경찰부대 6500여명을 동원해 한 위원장 검거 작전을 밀어붙일 예정이었다. 경찰이 한 위원장에게 자진출두 기한으로 제시한 오후 4시 무렵이 되자, 조계사 경내에 진입하는 경찰들을 불자들과 조계종 직원, 스님 등 200여명이 막아서면서 충돌이 벌어지기도 했다. 경찰은 오후 5시 무렵 한 위원장이 머물고 있는 관음전에 검거조 130여명을 투입하기 직전, 작전을 중단했다.
조계종의 중재 제안으로 2002년 발전노조 파업 이후 처음 벌어질 뻔한 경찰의 조계사 진입작전은 일단 유보됐다. 이날 밤 배치된 경찰병력은 1000여명 선으로 줄었지만, 조계사를 둘러싼 팽팽한 긴장감은 밤새 계속됐다.
김성환 방준호 기자, 이길우 선임기자 hwan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