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국민적 의혹이 제기된 중대한 사건 수사다.” ‘성완종 리스트’ 특별수사팀 관계자가 입버릇처럼 되풀이한 말이다.
검찰은 보통 공여자가 숨진 뇌물·정치자금 사건은 수사하지 않는다. 이른바 ‘돈질’을 한 사람의 직접 증언 없이 기소해 유죄를 받아내기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검찰은 돈을 건넸다는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숨진 직후 ‘리스트’의 존재를 확인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실제로 ‘국민적 의혹’이 워낙 컸기 때문인데, 이는 국민의 알권리 충족이 이번 수사의 중요 목표 가운데 하나였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 80여일간 진행된 수사 과정에서 국민의 알권리는 얼마나 존중됐을까? 지난달 8일 홍문종 의원을 소환하기 하루 전, 특별수사팀은 “리스트 인물 한명을 소환할 예정”이라면서도 대상이 누구인지는 끝내 밝히지 않았다. 김한길·이인제 의원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일부 언론에 두 사람의 실명이 이미 거론됐는데도 수사팀은 “정치인 두 명이 소환 대상”이라는 말만 반복했다. 두 사람이 출석을 거부한 뒤에야 수사팀은 실명을 공개했다. ‘안 나오니 이름을 깐다’는 것인데, 언론을 피의자 출석을 압박하는 도구 정도로 본 셈이다.
중요한 수사이고 거물급 피의자일수록 은밀히 수사해야 하는 고충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이목이 집중된 정치인이나 고위 공직자 소환은 공개해온 것이 그간 검찰의 관례였다. 게다가 법무부 훈령인 ‘인권보호를 위한 수사공보준칙’도 “사건 관계인이 공적 인물인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실명 공개”를 규정하면서 대표적인 ‘공적 인물’로 국회의원을 꼽고 있다. 하지만 국민적인 의혹 해소, 즉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시작했다는 이번 수사에서는 이런 관례나 원칙은 무시됐다.
물론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일반적 기준 대신 ‘비상한 수단’이 동원되기도 한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말도 있다. 하지만 내놓은 결론을 보니, 무엇을 위해 국민의 알권리가 희생됐는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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