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노령층 빈곤율은 52.6%로 근로연령층 빈곤율(11.1%)의 4.7배에 이르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9개국 중 ‘꼴찌’ 수준이다. 사진은 한 노인이 폐지를 모아 고물상에 나르고 있는 모습.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극명하게 드러난 세대갈등의 여진이 정치 영역을 넘어 복지와 일자리 등 경제 영역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최근 있었던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상향 논란 등이 대표적이다.
경제 영역의 세대갈등의 경우 대체로 ‘젊은 세대가 손해 본다’는 인식에 기반을 두고 있다. 하지만 세대갈등의 원인이라고 생각되었던 ‘세대 간 불공평’이 한국의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무분별하게 생산되는 세대갈등 프레임이 오히려 전 세대가 공유하고 있는 사회경제적인 문제의 해결을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2년 대선때 표출된 세대갈등
복지·일자리 등 영역서 이어져
세대공생 연구팀, 0ECD 29개국 분석
‘젊은 세대가 손해본다’란 통념 엎어
노인 가처분소득, 근로연령층 54.7%
OECD 평균 74%…한국은 꼴찌
기초연금 외 더 많은 자원배분 필요
■ 통념1-노령층 자원 배분 과도해?…한국은 세계에서 세대 간 가장 ‘공평한’ 나라
지난 12일 한림대 고령사회연구소 세대공생 연구팀이 주최한 ‘한국 사회의 세대갈등과 세대공생’ 세미나에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9개국의 근로연령층과 노령층 간 자원 배분 현황을 비교분석한 결과가 발표됐다.
가처분소득을 기준으로 할 때 한국은 근로연령층 1인당 가처분소득 중 노령층 1인당 가처분소득이 차지하는 비율이 54.7%로 29개국 평균(74.2%)에 훨씬 못 미치는 ‘꼴찌’였다. 스웨덴(76.4%), 노르웨이(76.5%), 미국(72.9%), 핀란드(68.8%) 등이 평균 수준의 국가들로서 세대 간 자원배분의 적정성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프랑스(97.2%), 독일(86.3%)과 일본(85.4%) 등은 노령층에 평균 이상의 과도한 자원 배분이 이뤄지고 있는 나라들이다. 노령층 가처분소득이 근로연령층의 절반을 겨우 넘는 한국은 노령층에 대한 자원 배분이 근로연령층에 견줘 지나치게 낮은 게 문제로 지적됐다. ‘젊은 세대가 손해 본다’는 기존의 세대갈등 통념과는 상반된 결과인 셈이다.
노령층과 근로연령층의 절대적 빈곤 상태를 비교한 결과에서도 한국의 노령층은 가장 열악했다. 한국 노령층 빈곤율은 52.6%로 29개국 가운데 가장 높았으며, 근로연령층 빈곤율(11.1%)의 4.7배에 이르렀다. 한국 근로연령층 빈곤율은 11.1%로 평균(10.0%) 수준이지만, 노령층은 오이시디 29개국 평균(19.1%)보다 훨씬 높았다. 스웨덴, 덴마크, 프랑스, 독일 등 유럽 국가들 상당수는 근로연령층과 노령층 빈곤율이 모두 낮은 이상적인 조합을 보이고 있었다. 이러한 분석은 룩셈부르크 소득자료(2006)를 활용해 이뤄졌다.
해당 연구를 주도한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2013년 오이시디 세대 간 정의 보고서는 한국을 세계에서 가장 공평한 나라로 꼽았다. 노령층에 과도한 자원 배분이 이뤄지고 있는 대다수 복지 선진국은 아동 빈곤율이 노인 빈곤율보다 훨씬 높다. 한국은 정반대다. 기초연금 도입으로 노령층이 혜택을 누리는 것 같지만 오이시디 국가들과 비교하면 한국은 오히려 노령층이 더 많은 자원 배분을 요구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집계 결과
1952년생 32.4%…1984년생 39.9%
노인, 가입기간 짧아 정상 수령 못해
세대 간 차이 뚜렷한 정치영역과 달리
노후·의료보장 등 사회정책 영역에선
세대 ‘갈등’ 보다 ‘연대’ 더 작용 연구도
■ 통념2-국민연금 무조건 젊은 세대가 손해?…52년생보다 84년생이 실질 소득대체율 더 높아
석 교수는 ‘세대 간 도둑질’이라는 자극적인 표현까지 나오는 등 세대갈등으로 비화한 최근의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상향 논란에 대해서도 ‘세대 간 공평하지 않다’는 일반적인 통념을 뒤집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석 교수가 국민연금연구원이 발표한 통계 등을 활용해 출생 연도별 공적연금(국민연금+기초연금) 소득대체율을 집계한 결과 1952년생(63살)의 공적연금 소득대체율은 32.48%로 1984년생(31살)의 39.90%보다 오히려 낮았다. 급여액 역시 1952년생(65만5159원)보다 1984년생(80만4699원)이 더 많았다. 소득대체율은 1988년 시행될 때 70%로 시작해 1997년 60%, 2008년 50%로 하향조정됐으며 2009년부터 해마다 0.5%씩 떨어져 2028년까지 40%로 낮아지도록 설계돼 있다.
시행된 지 28년밖에 안 되는 걸음마 수준의 제도 탓에 국민연금 초기 가입자들은 명목 소득대체율을 온전히 보장받을 수 있는 정상 가입기간 40년을 채우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소득대체율 70%를 적용받는 초기 가입자보다 50% 이하의 소득대체율을 적용받는 최근 가입자가 더 높은 실질 소득대체율을 보장받는 까닭은 이러한 가입기간의 차이 때문이다. 실제 1952년생의 국민연금 가입기간은 평균 15.5년으로 1984년생의 25.7년에 견줘 10년가량 짧은 것으로 조사됐다. 고액의 연금을 수령하는 복지 선진국의 노령층과 한국의 현 노령층의 처지가 전혀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석 교수는 “현재로서는 한국의 공적연금 제도가 불공평하다고 말할 수 없다. 역사가 짧은 한국의 공적연금 제도는 소득대체율 조정 등을 하지 않아도 가입기간이 급여 수준의 세대 간 불공평을 상쇄해주는 측면이 있다”고 강조했다.
■ 통념3-세대 간 인식 차이 크다?…사회경제적 고통과 불안은 전 세대가 공유
정치 영역과 달리 사회정책 영역에서는 세대갈등보다는 ‘세대연대’가 더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나오고 있다. 세대공생 연구팀의 일원인 성경륭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의 연구 결과를 보면, 2030세대와 5060세대의 차이가 뚜렷한 정치 영역(△이념 성향 △18대 대선 투표 선택 △박근혜 정부 평가)과 달리 정책 영역(△노후보장 △의료보장 △실업보장 △청년세대 부담 반대)에서는 연령에 따른 세대 간 차이가 확인되지 않았다. 오히려 4대 사회정책에 대해서는 전 세대에 걸쳐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2년 사회통합위원회의 ‘세대 간 소통 및 화합 방안 마련을 위한 조사 연구 보고서’에서도 전 연령대가 공통적으로 △등록금 △집값 △청년실업을 시급한 현안으로 꼽는 등 경제사회 현안에서 세대 간 인식 차가 크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난 바 있다. 이 보고서를 바탕으로 출판된 <세대갈등의 소용돌이>는 “각 세대는 불안한 경제적 상황에 대해 우려감을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기존의 세대갈등 담론이) 불평등한 노동·소득구조와 복지체제의 낙후성에서 비롯된 전 연령층의 불안의 핵심을 가리”고 “불안의 원인을 특정 세대의 잘잘못으로 치환”하는 것을 문제로 지적했다.
이 때문에 구호에 머물고 있는 세대통합을 넘어서 전 세대가 공유하고 있는 사회경제적 불안을 해소할 수 있는 세대정책을 개발하고 진짜 ‘세대정치’를 본격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경륭 교수는 “복지증세와 관련해 중노년 세대와 연관이 깊은 소득·재산·주식 관련 조세를 그대로 두고 역진적 성격이 강한 부가가치세를 올리면 청년세대들을 재정적으로 약탈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과세 단계나 재정지출 영역에서 세대영향평가 제도를 도입하는 등 세대 간 재정적 정의를 증진할 수 있는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진명선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
toran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