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2만1989명 ‘순직 인정’ 탄원서.
[뉴스 쏙] 21일 ‘순직 여부’ 선고 공판
‘생존자 죄책감’과 자살…순직일까 아닐까
‘생존자 죄책감’과 자살…순직일까 아닐까
“아마도 시신을 찾지 못하는 녀석들과 함께 저승에서도 선생님 할까?”(단원고 강아무개 교감의 유서)
세월호 참사 이틀 뒤인 지난해 4월18일 전남 진도군 진도체육관 뒤편 야산에서 경기 안산 단원고 강아무개(55) 교감이 숨진 채 발견됐다. 강 교감이 A4 용지 2장에 쓴 유서에는 구하지 못한 제자들에 대한 그리움이 담겨 있었다. 강 교감은 유서에 “교육청에서는 저 혼자에게 책임을 지워주세요. 누구에게도 책임을 넘기지 말고…”라고 적었다. 세월호 참사 1년이 지나도록 누구 하나 책임지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는 요즘 현실과 대조적이다.
수학여행 인솔책임자로
“모든 책임은 저에게…” 유서
세월호 참사 이틀 뒤 목매 정부 “위해-사망 직접 연관 없어”
순직 인정 않고 ‘공무상 사망’ 적용
유족 “명예 회복” 위해 소송 재판과정 교감 행적 드러나
“20여명 구하고 저혈당쇼크 실신”
변호인 “생존자 죄책감에 자살”
행정법원 ‘순직’ 인정할지 주목
강 교감은 단원고 2학년생 325명의 제주도 수학여행 인솔 책임자였다. 그가 단원고에 부임한 지 한 달이 좀 지난 때였다. 그가 부임하기 전에 모든 수학여행 일정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고 한다.
강 교감은 28년간의 교직 경력 내내 오전 7시면 학교로 출근해 오후 10시가 넘어 퇴근했다. 그에겐 학교가 삶의 전부였다고 한다.
강 교감의 아내 이아무개(52)씨는 남편이 구조됐다는 소식을 듣고 4월17일 진도로 내려갔다. 그날 오후 남편을 만났지만 “수습이 우선이다. 얼른 가라”는 남편의 말에 손 한번 잡아주지 못한 채 10여분 만에 발길을 돌렸다. 이씨는 다음날 오후 싸늘한 주검이 된 남편을 만났다. 교사임을 늘 자랑스러워했고 책임감이 유독 컸던 남편을 존경했다는 이씨에게 남은 것은 “남편이 참사를 빚은 단원고 수학여행 인솔 책임자”라는 싸늘한 시선뿐이었다.
남편의 유서를 읽고 또 읽은 이씨는 지난해 정부를 상대로 남편의 순직 인정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인사혁신처(당시 안전행정부)가 지난해 7월23일 이씨의 ‘순직유족급여 지급 청구’를 기각하자 8월25일 서울행정법원에 기각 결정 취소 소송을 낸 것이다.
인사혁신처가 꼽은 순직 인정 거부 사유는 강 교감이 입은 ‘위해(정신적·신체적 상처)’와 사망 원인 사이에 직접 연관이 없다는 것이다. 공무원연금법상 순직 공무원은 ‘생명 등의 위험을 무릅쓰고 사고의 수습 등 위험한 직무 수행을 하다 위해를 입고 이것이 직접 원인이 되어 사망한 공무원’이다. 인사혁신처는 강 교감은 이 조건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봤다. 자살이라는 죽음의 형태와 유서가 문제가 됐다. 반면 주검이 확인된 단원고 7명의 교사는 순직이 결정됐다. 구조 활동 중 위해로 숨진 사실이 인정됐다.
강 교감의 부인 이씨는 “할 수 있는 한 남편 명예를 회복하고 싶다”고 했다. 전국의 교사 2만1989명도 재판부에 강 교감의 순직 인정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냈다. 탄원서에서 교사들은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학생과 승객들을 탈출시키려고 목숨을 아끼지 않은 강 교감은 교육자적 소명을 다한, 시대가 바라는 스승이었음이 분명하다. 순직 여부는 죽음의 형태가 아닌 죽음에 이르게 한 실질적인 원인을 통해 결정되어야 한다”고 호소했다.
8개월간의 재판이 이어졌고 세월호 참사 전후 강 교감의 구체적인 행적이 하나둘 드러났다. 세월호에서 구조된 한 여성(23)은 “사고 당시 구명조끼도 입지 않은 채 강 교감이 저와 제 친구, 또 일반 승객 등을 차례로 끌어올려 주시는 바람에 탈출에 성공했다”고 말했다. 강 교감은 세월호 선내에서 20여명을 구조한 뒤 저혈당 쇼크로 의식을 잃었다. 이후 강 교감은 구조됐고 그렇게 ‘살아남은 자’가 됐다.
참사 당일 의식을 찾고 9시간 동안 경찰 조사를 받은 강 교감은 입원 치료를 권유하는 단원고 김아무개 교장에게 “나만 살아 돌아온 잘못이 크다. 유가족에게 사죄하고 수습을 해야 하니 못 가겠다”며 거절했다. 이후 강 교감은 제자들의 주검 수습 현장을 지켰다. 주변 사람들은 이때 강 교감이 공황증세를 보였다고 기억한다. 단원고 이아무개 부장교사는 “강 교감이 넋이 빠진 듯했다. 17일 밤 진도체육관에서 무릎을 꿇은 채 학부모들에게 사죄하는 10여명의 교사를 보면서 ‘내가 직접 사죄하겠다’는 것을 만류하자 그 뒤 사라졌다”고 말했다.
소송을 맡은 노생만 변호사는 “강 교감이 16일 오전 세월호에서 승객들을 구하다 의식을 잃고 구조된 이후 17일 밤 진도체육관 밖으로 나오기까지 38시간 동안은 충격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가 지속됐다. 무엇보다도 책임감이 강한 강 교감은 ‘생존자 죄책감’으로 극심한 자괴감을 느꼈다”고 주장했다. 강 교감이 세월호 참사로 ‘생존자 죄책감’이란 극심한 정신적 외상을 입었고 이것이 자살에 이르게 된 직접 원인이란 것이다. 고도의 위험을 무릅쓰고 벌인 구조 구난 과정 중 겪은 생존자 죄책감과 사망 사이에 직접 연관성이 있다는 게 변호인과 유가족 쪽의 주장이다.
인사혁신처는 강 교감의 순직은 인정하지 않았지만 ‘공무상 사망’은 인정했다. 유가족 등은 “강 교감의 업무와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는 물론 자살이 고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인정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인사혁신처는 “극히 예외적으로 업무와 사망의 상당한 인과관계를 인정한 것일 뿐 순직 요건의 대상은 여전히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공무상 사망은 출퇴근 중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경우도 포함될 만큼 폭넓게 적용되는 반면, 재해·재난 등의 구조 구난 현장 등에서 숨진 경우 순직 공무원으로 인정되면 ‘국가 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른 예우를 받는다. 강 교감 쪽이 낸 소송의 1심 선고는 오는 21일 서울행정법원에서 이뤄질 예정이다.
수원/ 글·사진 홍용덕 기자 ydhong@hani.co.kr
전문가 “구조 뒤 38시간…제대로 보호 못한 재난시스템이 문제” 죄책감·정신적 쇼크 상태에도
사고 현장 다시 투입, 방치…
심리적 붕괴로 이어졌을 것 단원고 강아무개 교감의 자살에 대해 전문가들은 어떻게 볼까? 서울행정법원의 ‘생존자 죄책감’ 관련 사실조회 문의에 회신한 국내 3개 의과대학 전문가들은 강 교감이 ‘생존자 죄책감’을 겪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세월호 참사 이후 정신적 쇼크 상태였던 강 교감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 ‘후진국형 재난관리체계’도 문제점으로 꼽았다. 재난 등을 겪은 뒤 발생하는 정신과적 질환인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는 사건 발생 1개월이 지난 뒤 진단이 내려진다. 반면 사건 발생 1개월 안에 나타나는 증세들은 ‘급성 스트레스 반응’(ASR)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둘 다 그 양상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급성 스트레스 반응’은 과도한 긴장과 절망감, 분노와 수치심, 죄책감 등의 정서 반응과 함께 자해나 자살 등의 위험 행동이 증가되는 양상으로 표출된다. 특히 사망자와 부상자가 있을 경우 생존자는 살아남은 것에 죄의식을 느끼는 ‘생존자 죄책감’을 갖게 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강 교감이 ‘생존자 죄책감’으로 급성 스트레스 반응을 겪었을 것으로 추정하면서도, 이것만으로 자살했을 것으로는 보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심신이 취약해진 강 교감의 경우 즉각 격리해 심리적 응급처치를 받아야 했지만, 4월16~17일 학생 주검 확인 등의 추가 트라우마 경험을 한 것이 심리적 붕괴로 이어졌을 것으로 봤다. 생존자 죄책감은 관리자나 책임자처럼 집단 내에서 의무가 있는 사람들에게 더 많이 나타난다.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족과 동료, 이웃 등의 사회적 지지가 필요하다. 하지만 단원고 수학여행 인솔 책임자였던 강 교감은 세월호 참사 이후 이와는 정반대 상황에 놓였다. 전문가들은 “생존자 죄책감에 따른 정신적 쇼크 상태였던 강 교감이 다시 사고 현장에 투입돼 상황을 수습하도록 방치하는 매우 ‘후진국적인 조처’가 이뤄졌다”고 지적했다. 홍용덕 기자
“모든 책임은 저에게…” 유서
세월호 참사 이틀 뒤 목매 정부 “위해-사망 직접 연관 없어”
순직 인정 않고 ‘공무상 사망’ 적용
유족 “명예 회복” 위해 소송 재판과정 교감 행적 드러나
“20여명 구하고 저혈당쇼크 실신”
변호인 “생존자 죄책감에 자살”
행정법원 ‘순직’ 인정할지 주목
세월호 침몰 사고가 일어난 2014년 4월16일 오후 전남 진도 맹골수도에서 침몰한 세월호 주변을 조명탄으로 밝히면서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다. 진도/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생존자 죄책감(Survivor’s guilt)
대형 재난이나 전쟁, 테러, 가까운 사람의 자살 등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발생할 수 있는 정신적 상태다. 자신의 잘못이나 방조로 인해 이런 상황이 발생했다고 믿고, 이에 대한 심한 자책과 죄책감, 우울한 기분 등이 나타나는 상태를 일컫는다. ‘생존자 증후군’으로도 부르는데 증상이 나타나는 기간은 하루부터 30년까지 다양하다.
전문가 “구조 뒤 38시간…제대로 보호 못한 재난시스템이 문제” 죄책감·정신적 쇼크 상태에도
사고 현장 다시 투입, 방치…
심리적 붕괴로 이어졌을 것 단원고 강아무개 교감의 자살에 대해 전문가들은 어떻게 볼까? 서울행정법원의 ‘생존자 죄책감’ 관련 사실조회 문의에 회신한 국내 3개 의과대학 전문가들은 강 교감이 ‘생존자 죄책감’을 겪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세월호 참사 이후 정신적 쇼크 상태였던 강 교감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 ‘후진국형 재난관리체계’도 문제점으로 꼽았다. 재난 등을 겪은 뒤 발생하는 정신과적 질환인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는 사건 발생 1개월이 지난 뒤 진단이 내려진다. 반면 사건 발생 1개월 안에 나타나는 증세들은 ‘급성 스트레스 반응’(ASR)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둘 다 그 양상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급성 스트레스 반응’은 과도한 긴장과 절망감, 분노와 수치심, 죄책감 등의 정서 반응과 함께 자해나 자살 등의 위험 행동이 증가되는 양상으로 표출된다. 특히 사망자와 부상자가 있을 경우 생존자는 살아남은 것에 죄의식을 느끼는 ‘생존자 죄책감’을 갖게 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강 교감이 ‘생존자 죄책감’으로 급성 스트레스 반응을 겪었을 것으로 추정하면서도, 이것만으로 자살했을 것으로는 보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심신이 취약해진 강 교감의 경우 즉각 격리해 심리적 응급처치를 받아야 했지만, 4월16~17일 학생 주검 확인 등의 추가 트라우마 경험을 한 것이 심리적 붕괴로 이어졌을 것으로 봤다. 생존자 죄책감은 관리자나 책임자처럼 집단 내에서 의무가 있는 사람들에게 더 많이 나타난다.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족과 동료, 이웃 등의 사회적 지지가 필요하다. 하지만 단원고 수학여행 인솔 책임자였던 강 교감은 세월호 참사 이후 이와는 정반대 상황에 놓였다. 전문가들은 “생존자 죄책감에 따른 정신적 쇼크 상태였던 강 교감이 다시 사고 현장에 투입돼 상황을 수습하도록 방치하는 매우 ‘후진국적인 조처’가 이뤄졌다”고 지적했다. 홍용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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