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겸의 우충좌돌 19] 과거가 있는 남자들 ③ 문무일
1994년 단순 추락사에 의문 품고 추적 끝에 잔혹한 살인사건 전모 밝혀
치밀한 수사기법 눈여겨 본 최환 당시 법무 국장에 의해 특수부 발탁
‘성완종 리스트’ 수사 고빗길…“원칙 지켜낼 것” “현실 타협할 것” 갈려
※홍준표, 우병우, 문무일. ‘성완종 리스트’ 수사로 얽혀있는 세 사람이다. 모두 검사 출신이거나 현직 검사지만 처지가 확연히 다르다. 홍준표 경남도지사(사시 24회)는 20년 넘게 쌓아올린 영광이 잿더미로 변할 위기에 놓여있다. 목숨을 건 방어에 나설 수밖에 없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사시 29회)은 제 발등을 찍은 ‘기획 사정’의 기안자로 지목받고 있다. 그래도 더이상 정권이 흔들리지 않도록 수사를 ‘조율’해야 하는 고역스러운 위치다. 문무일 검사장(사시 28회)은 망자의 유언을 집행해야 하는 운명을 떠안았다. 검찰을 살리기 위해 칼날은 멈칫거릴 수 없다.
세 남자에게는 모두 ‘과거’가 있다. 성완종 사건에서 이들이 맡은 배역은 묘하게도 과거의 역할과 겹친다. 그 ‘기시감’이 이들의 발목을 잡거나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서로 물고 물리는 관계지만, 과거를 극복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점이 세 사람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성완종 리스트’ 특별수사팀을 지휘하는 문무일 검사장도 ‘과거’가 있는 남자다. 홍준표 경남지사나 우병우 민정수석 만큼 유명세를 탄 건 아니지만, 검찰 안에서는 20년 전 문무일의 ‘무용담’이 전설처럼 내려오고 있다.
1994년 가을 문무일 검사는 전주지검 남원지청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작고 한적한 동네라 사건도 없었다. 저녁이면 남원 전체의 법조인 4명이 모여서 탕수육에 고량주를 시켜놓고 같이 어울려 놀곤 했다고 한다. 어느날 교통사고 한 건이 보고됐다. 승용차가 지리산 자락의 험한 산길을 오르다 계곡으로 굴러떨어져 운전자가 즉사했다는 내용이다. 워낙 산세가 가파른 곳이라 심심찮게 벌어지는 일이었다. 그냥 결재하고 넘기려다 의문이 들었다. ‘운전자의 거주지가 성남인데 왜 이 산골까지 왔을까’하는 아주 기초적인 것이었다. 그런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사체의 상태가 어떤지 자동차의 파손 정도는 어느 정도인지를 꼬치꼬치 캐물었다. 조용하기만 하던 시골 동네의 경찰들은 “세상 물정도 모르는 병아리 검사가 괜히 괴롭힌다”며 귀찮아 하는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경찰들 움직이는 게 시원치 않자 문 검사는 직접 사고 현장을 찾아가고 변사체의 부검까지 관여했다. 경찰들을 붙잡고 토론하고 분석한 끝에 추락사고를 위장한 살인 사건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본격적인 범인 검거에 나선다.
1994년 한 해를 떠들썩하게 했던 ‘지존파 사건’이다. 20대 7명으로 구성된 지존파는 돈많은 자들을 표적으로 삼아 5명을 살해하고 이 가운데 2명의 사체를 불에 태웠다. 전남 영광 불갑면에 위치한 시골 빈집을 개조해 비밀 통로와 사체 소각장을 갖춘 아지트를 만드는 등 범행은 대담하고 치밀했다. 심지어 사체의 인육을 먹거나 배신한 조직원까지 살해하는 등 잔혹함은 상상을 초월했다. 지존파는 납치됐던 한 여성이 필사적으로 탈출해 신고함으로써 검거됐지만 문무일 검사의 수사는 사건의 전모를 밝히는 데 크게 기여했다. 당시 그의 수사기법은 꼼꼼하고 철저해 검찰 수사 교본에 실려야 한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그리고 그 공로가 인정돼 문무일 검사는 서울지검 특수부로 발탁됐고, 이후 정통 특수부 검사로서의 기량을 발휘하게 된다.
20년이 넘게 흘렀다. 초짜 검사였던 문무일은 이제 대전지검장이라는 검찰 고위직에 올랐고 성완종 리스트 사건까지 맡게 됐다. 그의 수사 결과에 따라 검찰의 명예는 물론 정국의 풍향계가 요동칠 것이다. 하지만 성완종 사건은 쉽지 않은 사건이다. 일종의 ‘사체없는 살인사건’과 비슷하다. 돈을 줬다고 진술해줘야 하는 성완종 회장은 이제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직접적인 증언이 없으니 간접 증거와 주변 정황을 최대한 긁어모아 범죄를 재구성하는 수밖에는 없다. 여론조사를 해보니 국민의 84%는 “성완종 리스트 내용을 믿는다”고 한다. 하지만 법정에 제출해서 재판장이 효력을 인정해줄 만한 증거는 빈약하기만 하다. 그 아득한 간극을 메우는 게 검사 문무일의 임무다.
1994년 연쇄납치 살인조직 지존파 일당의 범인 김현양.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검찰은 요즘 성완종 회장 측근들을 잇따라 구속하고 있다. 사건 초기부터 증거인멸범을 구속한다는 것은 수사가 제대로 풀리지 않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직접적인 증거가 없으니, 관련자들을 압박해서 실오라기 같은 단서라도 확보하려는 노력이다. 많은 노력과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게 수사경험이 있는 검사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런 상황에서 문무일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특히나 박근혜 대통령은 28일 성완종 사면과 관련해 “이 문제에 대해서도 제대로 진실을 밝히고 제도적으로 고쳐져야 한다”고 밝혀 사실상 검찰에 수사를 지시한 상태다. 대통령이 노골적으로 검찰 수사를 방해하는 꼴이다. 의견이 갈린다.
기대를 하는 사람들은 ‘원칙주의자 문무일’을 신뢰하는 편이다. 대학 동기이자 연수원 동기로서 오랫동안 그를 지켜본 한 변호사는 그의 면모를 이렇게 설명한다. “문무일은 젊은 시절부터 등산을 아주 좋아했다. 50대 중반의 나이에 아직도 몸이 탄탄한 건 그 덕이다. 그런데 혼자서 다닌다. 외롭지 않느냐고 물으니 ‘사람들하고 같이 어울려서 다니면 부탁이 들어오고 말이 많이 나와서 혼자 다니는 게 편하다’고 하더라. 어릴 때부터 죽 그런 모습이었다.” 삶 자체도 소박해 보인다. 주말이면 산을 타거나 가족들과 주말농장을 다니는 게 전부다. 지난 12일 김진태 검찰총장으로부터 ‘성완종 사건을 맡아달라’는 전화를 받을 때도 주말농장에서 한참 땀을 흘리고 있었다고 한다. 또 공부를 잘해 미국에 유학가 있는 딸한테 ‘검사 봉급으로는 도저히 안 되겠다’며 최근 유학 생활을 중단시키고 귀국을 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부정적으로 보는 견해도 많다. 문무일 검사가 조직의 논리를 벗어나는 ‘일탈’을 할 성격이 아니라는 점 때문이다. 특수부 검사 생활을 같이 해본 어느 변호사는 이렇게 말했다. “검찰 고위층이 문무일 검사장에게 사건을 맡겼다는 것은 그만큼 그가 조직 안에서 안정적이라는 평판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국정원 댓글 사건의 윤석렬 검사 같은 사람이라고 판단했다면 결코 문무일 검사장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수사를 할 때도 항상 현실적으로 가능한 길만 걸어가는 편이었다.” 다른 변호사는 “문무일 검사장이 광주일고 출신이니 ‘봐라, 호남출신에게 수사를 맡겼는데도 이것밖에 나오지 않는다’는 알리바이를 내세우기 위해 그를 특별수사팀장에 앉혔다”고 해석하기도 했다.
문무일 검사장
문무일이 어느 길을 걸을지는 좀 더 지켜본 뒤 결론을 내려도 늦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그와 관련된 인물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최환 변호사다. 그는 1994년 법무부 검찰국장으로 있을 때 지존파 사건에 대한 문무일 검사의 공로를 처음으로 알아봐준 사람이다. 그가 어린 검사의 치밀함과 세심함을 알아보고는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에게 중용을 강력하게 건의해 서울지검으로 데려온 것이다. 최 변호사는 요즘 일선에서 한발 물러나있지만 최근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와 오랜만에 주목을 받았다. 사실 그는 1987년 박종철 사건의 진실을 밝혀낸 주역이었으나 제대로 조명을 받지 못했다. 당시 그의 역할을 요약하면 이렇다.
박종철이 고문으로 죽은 1987년 1월14일 최환은 서울지검 공안부장이었다. 남영동 대공분실 형사들이 저녁 늦게 그를 찾아와 ‘박종철의 시신을 빨리 화장하고 종결처리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한다.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최환은 ‘고문’이 사인임을 직감하고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신병을 처리하라’고 지시하고는 퇴근을 해버렸다. 이때 검찰 고위 간부는 물론 청와대 안기부 등에서까지 압력 전화가 빗발쳤으나 최환 부장은 버텼다. 그리고 다음날 최환 부장은 부검을 결정함으로써 묻힐 뻔한 박종철의 억울한 죽음을 세상에 알리게 된다. 당시 안상수 검사는 그날(1월15일)의 당직검사로 최환 공안부장의 지시에 따라 부검을 집행한 검사였을 뿐이다. 아무리 좋게 봐줘도 조연에 불과했으나 생색은 혼자 다 낸 셈이다. 박종철 사건 때의 최환 검사는 지존파 사건 때의 문무일 검사나 성완종 사건을 맡은 현재 문무일 검사장과 묘하게 겹치는 느낌이 있다.
그 최환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어봤다. 그는 “문무일 검사가 그동안 중요한 사건을 맡아 잘 해결하고 검찰 안에서 위치가 올라가는 걸 보면서 항상 대견하게 여기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성완종 사건처럼 큰 일을 맡아 고심하는 후배 검사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는 않다”고 말을 아끼면서도 “최소한 성완종 메모지에 있는 8명에 대해서는 빈틈없이 수사를 해서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결과를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의겸 기자 kyumm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