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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의 ‘부러움’과 유승민의 ‘두려움’…보수 대결 성적표 관심

등록 2017-05-07 16:12수정 2017-05-07 17:07

김의겸의 우충좌돌
유승민의 두려움, 기존 질서 깨지는 데 대한 공포로 개혁
홍준표의 부러움, 돈과 권력이 있는 중심이 선망의 대상
대통령 뿐만 아니라 보수 재편 가늠할 ‘작은 선거’도 주목
대통령 선거 투표일이 코앞이다. 선거 운동 기간 수많은 말들이 흘러넘쳤다. 기자에게 가장 인상에 남는 말은 홍준표 후보의 ‘재벌이 부럽다’였다. 지난 4월25일 4차 대선후보 텔레비전 토론에서 홍 후보가 한 말이다.

“유승민 후보에게 묻겠다. 유 후보는 ‘금수저 출신’이고 저는 ‘무수저 출신’이다. 그런데 재벌을 왜 그리 증오하는지. 나는 이 사람들이 참 부럽다. 어떡하면 저렇게 잘 살 수 있을까. 나는 재벌이 부럽다.”

그 말을 들으며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대통령 후보가 저렇게 솔직해도 되나?”이고 또 하나는 “홍준표 후보의 보수주의 심리 밑바닥에는 ‘부러움’이 깔려있구나”는 짐작이다. 심리학자들은 대체적으로 보수주의의 근원을 ‘두려움’으로 본다. 지금의 사회가 가난이나 전쟁 같은 고통을 겪고 있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한 미래보다는 현재나 과거의 결과에 집착하게 된다는 것이다. 각종 심리학 실험 결과도 보수적 성향의 사람들이 변화의 기로에 설 때 두려움을 더 느끼며 기존 신념을 더 굳게 붙잡는 경향을 보여주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유승민 후보의 보수주의는 두려움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하지만 홍준표 후보는 두려움을 모르는 사람이다. 검사 시절 ‘6공의 황태자’ 박철언 전 의원 등 권력 실세들을 구속한 전력이 있고 ‘스트롱 맨’을 자처한다. 그래서 홍준표의 보수적 심리는 ‘부러움’이라는 또다른 렌즈를 통해 들여다볼 여지가 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통령후보가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헌정기념관 앞마당에서 당직자 가족들과 함께한 어린이날 행사에서 어린이들을 안은 채 이야기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통령후보가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헌정기념관 앞마당에서 당직자 가족들과 함께한 어린이날 행사에서 어린이들을 안은 채 이야기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두 사람은 어린 시절의 원초적 경험이 판이하게 다르다. 그 차이가 두려움과 부러움을 낳았는지도 모른다.

유승민에게 학창 시절은 모든 것이 완벽하게 작동하는 이상사회다. 아버지는 판사를 거쳐 국회의원을 했고 자신은 지역 인재들이 다 모이는 경북고를 다녔다. 1976년 대입 예비고사 전국 3등을 하고 서울대 경제학과에 진학했다. 당연히 모범생이었을 것으로 여겨지는데 그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엉뚱하게도 가출한 경험이 있다. 친구가 선생님에게 맞고 경남 양산 통도사로 숨어버리자 그를 찾아 떠났다. “사찰 아래 계곡에서 소주도 한잔 하고” 다음날 손 붙잡고 함께 돌아왔다. 의리에서 나온 행동일 것이다. 하지만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엘리트 집단을 보호하려는 노력도 깔려 있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기존의 조화로운 질서가 깨지는 건 그에게 두려움인 것이다.

반면 홍준표에게 어린 시절의 기억은 지우고 버려야 할 것이다. 낙동강변 하천부지에 집을 짓고 살아 여름철 장마 때면 집을 떠내려 보내기 일쑤고, 양식이 없어 꼬박 3일 동안 굶은 적도 있다. 홍준표의 “이대 계집애들 싫어한다. 꼴같잖은 게 대들어 패버리고 싶다”는 발언이 문제가 된 적이 있다. 그는 이에 대해 “첫 미팅에 나온 분이 이대 1학년이었어요. ‘어느 고등학교 나왔냐’고 물었는데 제가 나온 고등학교는 대구에서 삼류 고등학교에요. 그 고등학교 나온 걸 듣자마자 일어서서 나가 버렸어요. 그래서 그 뒤에 내가 대학 시절 미팅을 한 번도 안 나갔어요. 그때 상처 많이 받았죠”라고 해명했다. 홍준표가 상처를 받은 건 스스로도 자신의 모교를 부끄럽게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부러움과 열등감은 빛과 그림자의 관계다. 부러움이 강해질수록 열등감도 깊어진다. 그래서 그는 보리쌀 두 말을 들고 대구로, 1만4천원만 쥐고 서울로 공부하러 갔다. 어린 나이에도 ‘중심으로 나가야 산다’는 생존본능을 깨친 것이다. 그에게 부러움의 대상은 ‘중심’이다. 돈과 권력이 있는 곳이다.

유승민 바른정당 대통령 후보가 7일 오전 강릉 산불피해 이재민 대피소가 마련된 강원 강릉 성산면 성산초교를 찾아 주민들을 위로 격려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유승민 바른정당 대통령 후보가 7일 오전 강릉 산불피해 이재민 대피소가 마련된 강원 강릉 성산면 성산초교를 찾아 주민들을 위로 격려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유승민이 ‘개혁 보수’의 상징이 된 사건은 새누리당 원내대표로서 첫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이었다. “심각한 양극화 때문에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는 갈수록 내부로부터의 붕괴 위험이 커지고 있습니다.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국가안보를 지키는 것이 보수의 책무이듯이, 내부의 붕괴 위험으로부터 공동체를 지키는 것도 보수의 책무입니다.”

때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임기 중반기였던 2015년이다. ‘박근혜 시스템’이 무너져가는 징조가 여기저기 보이던 시점이다. 연설 곳곳에는 두려움이 배어 있다. 그의 대책은 수선이다. 낡은 옷을 버려버리기 보다는 헤진 곳을 깁고 떨어져나간 부분을 덧대는 것이다.

위기의 한 가운데 재벌이 놓여있음을 유승민은 잘 알고 있었다. 유승민은 텔레비전 토론회에서 “지난 20년간 재벌 대기업이 경영권 승계에 정신 팔려서 혁신을 안했다. 대기업이 97년에 경제위기를 맞고 정신 차리고 20년간 혁신했어야 하는데 (경제) 주도국 중에 나타나는 위기를 보면 혁신을 안 한 것이다. 재벌경영자인 총수도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홍준표 후보가 “삼성이 혁신 안 했으면 일본 소니나 샤프를 눌렀겠냐”고 반문하자 “저는 삼성이나 현대차도 20년간 혁신을 게을리 했다고 생각한다”고 분명히 밝혔다. 기존의 질서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재벌도 ‘개혁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반면 홍준표에게 재벌은 ‘선망의 대상’이다. 서민 대통령을 내세우지만 정책은 서민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재벌의 이익을 대변한다. 다섯 명의 대선 후보 중 네 명이 법인세 인상을 핵심 공약으로 삼는데 홍준표 후보만 유일하게 법인세 인하를 주장하고 있다. 재벌보다 더 재벌스러운 면모도 보인다. 만악의 근원으로 강성 귀족 노조를 들먹이며 집중 포화를 퍼붓고 있다. 곡쟁이가 상주보다 더 섧게 운다더니, 노조를 바라보는 눈길이 재벌보다 더 험악하다. 과거 홍준표는 “내가 보수적인 한나라당의 중진 의원이지만, 여전히 나를 버텨주는 힘은 가진 자, 힘있는 자에 대한 분노”라고 말한 적이 있다. 한때 그렇게 비친 적이 있었다. ‘국적법 개정’으로 이중국적 한국인을 향해 거침없이 저격을 가했다. ‘아파트 반값 정책’도 마찬가지였고,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등록금을 면제해주고 부유한 학생들에게 등록금을 더 내게 하는 법안을 국회에 제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홍준표는 너무도 쉽게 서민 행보를 내던져버렸다. 권력과 돈이 있는 사람들을 미워하고 그들을 징벌하려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그들이 되고 싶은 부러움의 변형에 불과했다는 게 입증되고 있다.

19대 대통령 선거 안에는 ‘작은 선거’가 같이 치러지고 있다. 대통령을 뽑는 선거지만 홍준표와 유승민 두 후보 가운데 선거 뒤 누가 보수의 주도권을 쥐느냐의 대결도 포함돼 있다. 유승민이 홍준표를 넘어서기는 쉽지 않겠지만 얼마나 유의미한 득표율을 올리느냐에 따라 선거 뒤 본격화될 보수의 재편에서 향방이 달라질 수 있다.

물론 과거에도 보수 혁신 운동은 있어왔다. 2000년대 초반 ‘한나라당 소장파’들이 시동을 걸었다. 하지만 그 결과물은 너무나 초라했다. 그저 한나라당, 새누리당의 강퍅한 이미지를 순화시키는 장식물에 그치고 말았다. 소장파들의 노력은 보수당의 거대한 소용돌이에 휘말려 포말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제 서로 갈라섰다. 보수의 미래를 놓고 두 후보가 정면승부를 벌이는 것이다. 개혁 보수냐 수구 보수냐의 대결이다.

돌이켜보면 새 대통령도 어떤 야당을 만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김대중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은 ‘야당 복’이 없었다. 우리 사회를 한 발짝이라도 진전시킬라치면 냉전 반공 이데올로기가 전면에 등장해 똑같은 갈등이 되풀이 됐다. 그래서는 아무리 정권교체를 해도 한계가 있다. 누가 1등을 하느냐 뿐만 아니라 ’선거 안의 선거’ 결과도 눈여겨 봐야 할 이유다.

김의겸 선임기자 kyu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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