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리스트 파문
MB정권 겨낭 ‘부정부패와 전면전’
성완종 리스트로 현 정권 수사대상에
MB정권 겨낭 ‘부정부패와 전면전’
성완종 리스트로 현 정권 수사대상에
전 정권을 향해 야심차게 빼어든 칼이 부메랑이 되어 현 정권에 돌아온 모양새다.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야심차게 밀어붙인 ‘부패척결 사정 드라이브’가 시동을 건 지 한달도 채 안 돼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 집권 3년차 권력누수를 막고 전 정권과의 차별화를 통해 사회·경제적으로 ‘기강’을 잡겠다고 시작한 수사가 되레 현 정권 실력자들의 부패 추문으로 번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펼쳐지고 있는 사정 정국의 시작은 지난달 12일 이완구 총리가 내놓은 ‘부정부패와의 전면전’ 대국민 담화였다. 여러 의혹으로 어렵사리 총리가 된 지 얼마 안 돼 갑작스레 대국민 담화를 내놓자, 주변에서는 어리둥절해하는 이들이 많았다. 담화에서 ‘해외 자원개발과 관련한 배임과 부실 투자’, ‘일부 대기업의 비자금 조성·횡령’ 등 척결 대상 부패의 종류를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도 이례적이었다.
담화 이튿날인 13일 검찰은 기다렸다는 듯이 비자금 조성 의혹으로 포스코건설을, 18일에는 자원개발외교 비리 의혹으로 경남기업을 압수수색했다. 두 사건은 대검 중앙수사부 폐지 뒤 위상이 더욱 높아진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와 2부에서 진행했다.
포스코그룹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전 의원과 박영준 전 국무조정실장 등 전 정권 실세들과 연관돼 있다는 말들이 끊이지 않았던 곳이다. 해외 자원개발 또한 이 전 대통령 시절 정권 차원에서 공을 들였던 분야였다. 이런 탓에 검찰 수사는 ‘전 정권 길들이기’ 차원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박근혜 정부가 전 정권 사정에 나선 이유를 두고는 여러 해석이 나왔다. 이 전 대통령이 낸 회고록이 청와대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분석이 있다. 이 전 대통령은 1월29일 펴낸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에서 ‘박 대통령이 정운찬 전 총리를 견제하기 위해 세종시 수정안을 반대했다’고 밝혔다. 바로 다음날 청와대는 유감 표명을 하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평창동계올림픽 협찬, 임금 인상과 고용 증대 요청 등 정부가 연거푸 쏟아낸 주문에 대기업들이 심드렁한 반응을 보인 것도 정권으로서는 ‘기강 잡기’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요인이 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게다가 2월에는 ‘연말정산 대란’ 등을 거치며 박 대통령 지지율이 역대 최저 수준인 20~30%대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전 정권 사정은 지지율 반등을 노리는 역대 정부의 단골 메뉴이기도 했다.
하지만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9일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사정 드라이브에는 차질이 불가피하게 됐다. 여기에 성 전 회장이 숨지기 직전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들인 허태열·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거액의 금품을 줬다고 폭로하고, 자신의 웃옷 주머니에 주요 친박 계열 실력자 등 8명의 이름을 적은 메모를 남기면서 검찰은 매우 곤혹스런 처지에 놓이게 됐다. 엉뚱하게도 현 정권 주요 인사들을 수사해야 하는 상황으로 몰리는 처지가 됐기 때문이다. 검찰로서는 대통령을 비롯한 권력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지만, 국민적인 의혹이 이는 사안에 대해 모른 척하고 넘어갈 수도 없게 됐다.
검찰은 일단 기존 수사는 하던 대로 진행하되, 나오는 의혹은 찬찬히 봐보겠다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최윤수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는 “성 전 회장 메모의 필적 감정을 받는 동시에 수사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김진태 검찰총장은 10일 박성재 서울중앙지검장과 최 차장검사를 불러 “수사 과정에서 불행한 일이 발생한 것은 대단히 안타깝지만, 자원개발 비리 등 현재 진행중인 부정부패 수사를 한 점 흔들림 없이 의연하게 계속하여 실체적 진실을 제대로 밝히라”면서도 “메모지의 작성 경위 등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을 확인하고 관련 법리도 철저히 검토하여 그 결과를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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