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개발외교 비리’와 관련해 회삿돈 횡령 혐의 등으로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된 성완종(64) 전 경남기업 회장이 영장실질심사가 예정돼 있던 9일 억울하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성 전 회장은 하루 전 기자회견을 자청해 혐의를 강하게 부인하기도 했는데, 주요 피의자의 갑작스런 사망에 검찰은 당혹해하고 있다.
성 전 회장은 이날 새벽 5시께 ‘억울하다’ ‘어머니 묘소 옆에 묻어달라’는 등의 내용을 적은 유서를 남기고 서울 청담동 집을 나섰다. 오전 8시께 성 전 회장의 운전기사와 아들의 실종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방범순찰대 등 인원 1500여명과 헬리콥터 2대, 수색견 5마리를 동원해 성 전 회장의 휴대전화 신호가 잡힌 북한산 일대에서 대규모 수색 작업을 벌였다. 수색에는 인근 군부대도 동원됐다. 경찰은 자택 주변 방범용 카메라 영상을 통해, 성 전 회장이 새벽 5시11분께 청담동 집에서 나와 인근 호텔까지 걸어서 이동한 뒤 택시를 탄 사실을 확인했다. 휴대전화 위치추적 결과, 성 전 회장은 평창파출소~서울예술고~형제봉 능선~정토사 등 평창동 일대를 이동한 것으로 분석됐다. 7시간이 넘는 수색 끝에 경찰은 이날 오후 3시32분께 북한산 형제봉 매표소에서 300m가량 떨어진 장소에서 숨진 성 전 회장을 발견했다.
앞서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 임관혁)는 9500여억원을 분식회계해 자원개발 등의 명목으로 800여억원의 부당대출을 받고, 회삿돈 250여억원을 횡령한 혐의(자본시장법 위반,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의 사기·횡령)로 성 전 회장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지난 6일 검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은 성 전 회장은 이날 오전 10시30분 서울중앙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을 예정이었다.
검찰은 성 전 회장의 잠적 사실이 알려진 이날 오전 “경찰과 긴밀히 공조해 불행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성 전 회장이 숨진 채 발견되자 “검찰 수사 중에 불행한 일이 발생해 안타깝게 생각한다. 고인의 명복을 빌고 유족에게 조의를 표한다”고 전했다.
성 전 회장은 영장실질심사를 하루 앞둔 8일 서울 중구 전국은행연합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억울하다고 호소했다.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당사자가 직접 기자회견을 연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성 전 회장은 “(나는) 엠비(MB) 정부의 피해자”라며 “(박근혜) 대통령 당선을 도왔는데 내가 (전 정부 수사의) 표적이 됐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사리사욕을 챙기고 싶었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며 혐의를 대부분 부인했다.
충남 서산 출신인 성 전 회장은 초등학교 중퇴 학력으로 맨몸으로 사업을 시작해 도급 순위 26위의 경남기업 경영자가 된 입지전적 인물이다. 2000년대 들어 정치에 발을 들였고, 2012년 선진통일당(옛 자유선진당) 소속으로 제19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 새누리당으로 당적을 옮겼다. 지난해 6월 공직선거법 위반죄가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최근 경남기업의 부실로 경영에서 손을 뗐고, 법원은 8일 이 업체의 기업회생절차 개시를 결정했다.
주요 피의자의 사망으로 자원외교 등에 대해 전방위적인 수사를 벌여온 검찰은 암초를 만난 셈이 됐다. 검찰은 경남기업에서 이뤄진 각종 비리 의혹의 최종 책임자가 성 전 회장이라고 보고 수사를 진행해왔다. 또 이번주부터 한국광물자원공사가 마다가스카르 암바토비 니켈광산 개발 과정에서 투자금 171억원을 대납하는 등 경남기업에 특혜를 준 의혹을 본격적으로 수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성 전 회장이 숨지면서 경남기업을 고리로 자원개발 공기업으로 수사를 확대하려는 계획에 차질이 빚어지게 됐다.
정환봉 박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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