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고심 의미와 한계
뜨거운 논란을 빚었던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은 주 혐의인 내란의 ‘음모’는 무죄가 났음에도 내란의 ‘선동’에서 유죄가 인정돼 피고인들에게 중형이 확정되는 것으로 결말이 났다. 지난해 12월 헌법재판소의 해산 결정에 이어 이번 대법원 판결로 1년5개월간 계속된 통합진보당 관련 주요 사건이 모두 마무리됐다.
이번 판결은 대법원이 내란선동죄와 내란음모죄의 성립 요건 등을 구체적으로 밝힌 첫 판결이기도 하다. 1974년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과 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서 내란음모죄가 적용됐으나, 재심에서 모두 무죄가 선고돼 판례의 의미가 사라졌다.
형법 87조는 ‘국토를 참절하거나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폭동한 자’를 내란죄로 처벌하도록 한다. 또 90조는 ‘87조의 죄를 범할 목적으로 음모·선동한 자’를 3년 이상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내란음모와 내란선동은 법정형이 각각 징역 3년 이상이다. 이번 사건 기소 단계에서는 합정동 회합에서 각각 강연자와 사회자로 나선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과 김홍열 전 통합진보당 경기도당 위원장에게 두 혐의가 모두 적용됐고, 다른 5명에게는 내란음모 혐의만 적용됐다.
내란선동·음모죄 성립요건 등
구체적으로 밝힌 첫 판결 내란음모 엄격한 기준 제시했지만
형법상 ‘선동죄로도 중형’ 선례 대법원은 우선 내란선동에 대해 “그 내용이 내란에 이를 수 있을 정도의 폭력적인 행위를 선동하는 것”이어야 하고 “피선동자에게 내란 결의를 유발하거나 증대시킬 위험성이 인정돼야” 유죄 판단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김 두 사람이 “반미 대결전”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물질적·기술적 준비”를 하라고 선동해, 모임 참석자들이 통신·유류·철도·가스 등의 국가기간시설 파괴를 논의하게 만들었으므로 유죄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내란음모에 대해서는 좀 더 엄격한 기준을 제시했다. 대법원은 내란음모가 성립되려면 “공격의 대상과 목표가 설정돼 있고, 실행계획에 있어 주요 사항의 윤곽을 공통적으로 인식할 정도의 합의가 있어야” 하며, “실행행위로 나아간다는 확정적 의미”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대법원은 “단순히 내란에 관한 생각이나 이론을 논의한 것으로는 부족하다”고 밝혔다. 이 전 의원 등이 모임에서 각종 시설 파괴를 언급하기는 했지만, 일회성 토론에 불과한 수준이어서 내란음모죄로는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특히 재판장인 양승태 대법원장은 “막연하게 합의하거나 단순한 의견 교환까지 범죄 실행 합의로 보면 국민의 기본권인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거나 그 본질이 침해돼 죄형법정주의 원칙이 형해화할 우려가 있다”며 “음모죄의 성립 범위는 엄격하게 제한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대법원은 결국 ‘말뿐인 범죄’에 9년~2년의 중형을 선고했다는 점에서 한계가 뚜렷하다. 국가보안법의 찬양·고무죄가 더해지기는 했지만, 피고인들이 내란을 실행에 옮길 준비가 전무했는데도 처벌이 가해졌다. 국가보안법이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형법에 규정된 내란선동죄만으로도 고강도 처벌을 하겠다는 대법원의 입장을 분명히 한 판결이기도 하다. 이 전 의원의 변호인들은 “90분 강연한 것으로 9년의 중형을 확정받았다. 대법원 판결은 공안통치의 부활에 날개를 달아주게 되리라는 심각한 우려를 금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구체적으로 밝힌 첫 판결 내란음모 엄격한 기준 제시했지만
형법상 ‘선동죄로도 중형’ 선례 대법원은 우선 내란선동에 대해 “그 내용이 내란에 이를 수 있을 정도의 폭력적인 행위를 선동하는 것”이어야 하고 “피선동자에게 내란 결의를 유발하거나 증대시킬 위험성이 인정돼야” 유죄 판단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김 두 사람이 “반미 대결전”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물질적·기술적 준비”를 하라고 선동해, 모임 참석자들이 통신·유류·철도·가스 등의 국가기간시설 파괴를 논의하게 만들었으므로 유죄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내란음모에 대해서는 좀 더 엄격한 기준을 제시했다. 대법원은 내란음모가 성립되려면 “공격의 대상과 목표가 설정돼 있고, 실행계획에 있어 주요 사항의 윤곽을 공통적으로 인식할 정도의 합의가 있어야” 하며, “실행행위로 나아간다는 확정적 의미”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대법원은 “단순히 내란에 관한 생각이나 이론을 논의한 것으로는 부족하다”고 밝혔다. 이 전 의원 등이 모임에서 각종 시설 파괴를 언급하기는 했지만, 일회성 토론에 불과한 수준이어서 내란음모죄로는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특히 재판장인 양승태 대법원장은 “막연하게 합의하거나 단순한 의견 교환까지 범죄 실행 합의로 보면 국민의 기본권인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거나 그 본질이 침해돼 죄형법정주의 원칙이 형해화할 우려가 있다”며 “음모죄의 성립 범위는 엄격하게 제한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대법원은 결국 ‘말뿐인 범죄’에 9년~2년의 중형을 선고했다는 점에서 한계가 뚜렷하다. 국가보안법의 찬양·고무죄가 더해지기는 했지만, 피고인들이 내란을 실행에 옮길 준비가 전무했는데도 처벌이 가해졌다. 국가보안법이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형법에 규정된 내란선동죄만으로도 고강도 처벌을 하겠다는 대법원의 입장을 분명히 한 판결이기도 하다. 이 전 의원의 변호인들은 “90분 강연한 것으로 9년의 중형을 확정받았다. 대법원 판결은 공안통치의 부활에 날개를 달아주게 되리라는 심각한 우려를 금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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