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새해 기획 : 광복 1945 희망 2045]
세대간 ‘격정 토론’ 대한민국 어제·오늘·내일
세대간 ‘격정 토론’ 대한민국 어제·오늘·내일
‘삼포 세대’와 ‘아이엠에프(IMF) 세대’ ‘386 세대’ ‘긴급조치(긴조) 세대’에 속하는 네 사람을 한자리에 소환했다. 20대 초반부터 60대를 바라보는 나이대인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광복 70년의 대한민국의 현재와 미래를 살펴보자고 했다. 구현모(23), 남기환(42), 이원영(52), 김종채(57)씨가 이런 <한겨레>의 부름에 기꺼이 달려와줬다.
처음 ‘세대 간 격정토론’을 준비할 땐 세대간에 시원하게 싸움 한판을 붙여볼 심산이었다. <한겨레>가 실시한 특별 여론조사에서 세대간 인식 격차가 드러났는데 ‘민증’(주민등록증)을 저리 치우고 격하게 붙다 보면 그 격차를 줄일 방법도 보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한쪽의 비관이 압도적이었다. ‘망했다’ ‘환장하겠다’ ‘명치를 한 대 치고 싶다’ ‘피똥을 싼다’…. 막내 삼포세대 구현모씨의 입에서 거침없이 터져나오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시퍼렇게 날이 서 있었다. 격정토론이 아니라, 격정으로 떠는 삼포세대를 다른 세대들이 토닥토닥해줘야 할 것 같은 분위기가 돼버렸다.
토론은 지난달 22일 오후 서울 효창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됐으며,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이 사회를 맡았다.
삼포세대
“‘우리 땐 더 힘들었어’ 말하는
어른들 ‘아픔 배틀’ 보면 지겨워” IMF세대
“가족·직장 외엔 관심 없이
현실 안주하는 40대가 문제” 386세대
“집회엔 머리 허연 사람 대다수
젊은 사람들 그리 많지 않아” 긴조세대
‘50~60대 너무 원망하지 마라
아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한 것’ 한귀영(이하 사회) <한겨레>가 새해 설문조사를 하면서 광복 70년 동안 벌어진 역사적 사건 중 자신에게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사건이 뭐냐고 물었습니다. 여기 오신 분들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이원영(이하 이) 한국전쟁 아닌가요? 구현모(이하 구) 아이엠에프(IMF) 외환위기요. 남기환(이하 남) 개인적으로는, 5·18광주와 1987년 민주항쟁을 꼽고 싶어요. 중2 때 성당에서 5·18 광주 상황을 다룬 비디오를 본 게 충격이었거든요. 또 87년 당시 마산·창원에서는 노동자들의 시위가 엄청났죠. 수시로 거리에서 집회·시위가 일어나니까 중3인데도 절반 정도는 수업을 안 했고, 거리에서 늘 시위대를 만날 수 있었어요. 많은 걸 달리 보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됐지요. 김종채(이하 김) 79년, 대학 때 시위하다가 체포돼 감옥 가서 두달 살고 80년에 복학했어요. 80년대는 내내 광주의 연장선상에 있었어요. 처음엔 그저 독재 타도를 외쳤는데, 80년대 들어선 바로 옆에 있던 학우들이 죽어나가니까…. 이건 혁명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가 나왔어요. 사회 현모씨는 아이엠에프를 겪지도 않은 세대 아닌가요? 구 학교 가면 교수님들이 그러세요. ‘옛날에 너희 선배들은 학과 사무실에 놓여 있는 취업 원서 갖고 가서 대충 쓰면 (다 취업)됐다’고. 그런데 지금은 아니잖아요. 지금 우리가 궁극적으로 겪고 있는 경제위기가 그때부터 발원된 게 아닌가 싶어서 아이엠에프라고 말했어요. 아, 그런데 솔직히 말씀드리면요, 선배님들께서 아이엠에프를 꼽으면 ‘이명박 대통령 당선’을 꼽으려고 했어요. 엠비는 저한테 ‘리틀 박정희?’ 그런 느낌이었거든요. 4대강, 토건 등 70년대 산업화 시대의 향수를 불러일으켜 당선됐고, 우리 사회의 멘탈리티(정신 상태)가 아주 맛이 간 게 그때부터인 것 같아요. 옛날로 돌아간 거죠. 이 개인적으로 살면서 가장 힘든 영향을 줬던 사건은 아이엠에프였어요. 그때 제가 잠깐 대중음악 공연 사업을 하고 있었거든요.(한숨) 정말 미치는 줄 알았죠. (연말연시를 겨냥해) 이현우나 조규찬 같은 가수들의 전국 투어 콘서트를 미리 잡아뒀거든요. 그러고 나서 11월 아이엠에프 발표가 났잖아요. 12월 초부터 (공연 예약) 환불이 들어오는데 미치겠더라고요. 계약해놓은 걸 안 할 수도 없고…. 결국 사업을 접었죠. 그때 (은행이 금리를 올리면서) 돈 있는 사람들은 술집에서 ‘이대로’라고 외치며 건배했다는 거 아녜요. 사회 아이엠에프가 40~50대에게 큰 영향을 미쳤을 것 같은데, 실제 여론조사 결과를 보니 20~30대보다 그걸 꼽은 사람이 의외로 많지 않더군요. 이 아이엠에프는 지금보다 17년 전 얘기잖아요. 40~50대들이 그동안 이미 변한 상황에 적응해서 그런 게 아닐까요? 오히려 아이엠에프 때 아직 사회에 진출하지 않았던 세대들이 청년실업 등 희망이 사라진 사회를 물려받았잖아요. 그러다 보니 그 세대들이 오히려 그걸 더 크게 생각하는 게 아닐까요? 사회 그럼 자신이 속한 세대는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는지 얘기해볼까요? 김 (긴조세대는) 위에 끼고 아래에 치인 세대죠. (정치적으로) 위로는 사형수까지 된 쟁쟁한 양반들이 있는 민청학련 세대, 아래로는 학생회를 기반으로 (탄탄한 조직력을 갖춘) 386세대 사이에 끼어서, 우리는 전부 이름 없는 무명용사로 살았죠. 게다가 저는 베이비부머에 속합니다. 전쟁 이후에 태어나 인구가 늘어난 시기에 태어났으니 또 힘들고…. 이 저는 81학번이에요. 소위 386세대라 불리는 세대가 우리부터 시작된 거죠. 민주화세대인 동시에 아이엠에프 위기가 오기 전 산업화의 마지막 수혜를 받은 세대인 것 같아요. 남 제 세대(IMF세대)는 빨리 포기하고 빨리 길들여지는 데 익숙한 세대 같아요. 제가 대학 졸업반 때 아이엠에프 위기가 닥쳤거든요.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더라도 일단 취업 먼저 하고 보자 했죠. 5~6년 직장생활 하다 보니 연봉제가 생기고, 또 계약직이란 새로운 신분이 생겨나더군요. (상황이 악화되는 걸 보면서) 지금의 상황에 안주하는 게 자연스러운 세대가 된 거죠. 증권사에 다니는 제 친구 중 하나는 부장 다는 게 정말 싫다고 했어요. 빨리 나가라는 의미니까. 구 저희 세대(삼포세대)는 한마디로 그냥 망한 세대예요. 예전엔 출세하려면 ‘고시 보면 된다’ ‘대기업 가면 된다’고 했어요. 지금은 고시 대신 ‘○○스쿨’ 체제로 바뀌었잖아요. 이게 비용이 덜 든다고 했지만, 제가 보기엔 비용이 더 들어요. 옛날엔 소 팔아서 자식 대학 보냈다고 하지만, 하우스푸어인 우리 부모님 세대는 자신들의 노후를 뽑아서 우릴 대학에 보내고 있어요. 그런데 부모님이 들인 투자비용보다 (우리 세대가) 많은 걸 뽑을 수 있느냐 하면 그건 또 안 돼요. 남 저희 부모님 연배인 분들에게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이 ‘막노동을 해서라도 너희는 먹여살린다’는 말이었어요. 제가 2010년에 창업을 했는데, 재작년에 상황이 안 좋았거든요. 와이프에게 호기롭게 ‘걱정 마, 막노동이라도 해서 먹여살릴게’라는 말을 못 하겠더라고요. 지금처럼 애를 유치원에 보내고, 학원 보내고 하려면 그게 안 되겠더라고요. 핸드폰에 인터넷, 자동차, 집 대출까지…. 지금 주거·소비구조에서 막노동으론 어림도 없는 거죠. 구 최근에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빚 내서 집 사라고 했잖아요. 그런 소리 하는 분들은 일단 맞아야 해요. 정신 못 차리고 하는 얘기예요. 진짜로 계급장 떼고 명치를 한 대 치고 싶어요. (그런 소리 나오는데도) 어른들은 아무것도 안 해요. 그저 산업화 향수에 취해서 뭐든지 오케이, 오케이 하는 거죠. 그 사이에서 저희는 피똥을 싸는 거고요. 삼포세대
“큰 역사적 계기 없으면
사회 더 나빠질 것 같아” IMF세대
“탈 배는 늘었지만 노선은 줄어
앞으로 힘든 상황 계속될 듯” 386세대
“정치적 리더십이 문제지만
우리에겐 민주주의 경험 있다” 긴조세대
“자유주의 장점인 협치의 부재
갈등조정 체계 갖춘다면 희망”
사회 그럼 다른 세대에게 느끼는 감정을 한번 얘기해 볼까요?
구 솔직히 30~40대 분들에겐 화가 안 나요. 그분들도 같이 망해가는 세대라는 느낌이랄까.(웃음) 50대부터는 애증이 생겨요. 부모님 세대니까 그분들 고생한 거 잘 알아요. 그렇지만 제가 본 2014년의 대한민국은 딱 두가지예요. ‘레드 콤플렉스’와 ‘산업화에 대한 향수’로 물든 사회. 이런 분위기로 사회를 이끌어갈 수 있다는 건 그만큼 나이 드신 분들이 거기에 동조하고 계시기 때문이라고 봐요. 특히 제가 화가 나는 건 기득권을 가진 50대 이상이에요. 이분들은 집값 올리는 정책만 좋아하잖아요. 제가 느끼기엔 우리의 젊음을 팔아서 그분들 집값 올려드리고 있는 것만 같아요.
사회 어떻게 다른가요?
구 저희들끼린 ‘아픔 배틀, 고통 배틀 한다’고 해요. 누가 더 힘든지 내기하는 것 같은. ‘우리가 더 힘들었어’ ‘우리 땐 말야…’라는 그런 말들 하시는 거 들으면 솔직히 ‘그래서 어쩌라고’ 소리밖에 안 나와요. (그러다 보니) 60대 이상은 소통 포기!(손으로 엑스 표), 50대는 타협 가능! 50대 이상은 박근혜 정부에 실망해서 타협의 기미가 보이는 것 같아요.(일동 웃음) 저희 집 보면 그렇거든요. 부모님이 경상도 분이에요. (선거 때는) 전형적인 1번이었죠. 상당히 보수적이셨어요. 계속 1번을 찍었어요. 박근혜 대통령 된 이후에 말도 안 되는 삽질이 계속되는 걸 보시더니 상당히 실망을 많이 하신 거 같아요.
남 전 다른 세대보다 40대가 제일 문제인 것 같아요. 우리 세대는 너무 빨리 늙어버렸어요. 제가 군대 가기 전만 해도 북한 영화 상영 막겠다고 학교에 경찰이 들어오던 시절이었어요. 그걸 막겠다고 교문으로 나가본 경험이 있는 세대고,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했던 세대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지금은 전반적으로 나와 내 가족, 내가 다니는 직장 외에는 별 관심 없이 안주하고 있죠. 우리 땐 선배 세대들로부터 많은 챙김을 받았는데, 우리는 현모씨 세대를 챙기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에요.
이 제 세대(386세대)는 (잘못된 사회를 바꾸기 위해) 정치를 바꾸는 것에 제일 중요한 가치를 두고 젊은 시절을 보냈잖아요. 지금도 촛불집회 같은 델 가보면 ‘야, 우리가 젊음을 바쳐서 지킨 민주주의가 이렇게 된 거야’ 해서 나온 사람들이 꽤 많아요. 머리 허연 사람들이 대다수지, 사실 젊은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아요. 사실 저희 세대만 해도 취업 걱정이란 게 이해가 안 되는 세대죠. 그런데 우리 아래 세대들은 날이 가면 갈수록 먹고살기가 힘들어지는 것 같긴 해요.
사회 20대들이 살기 힘들다고 하면서 정작 과거 세대처럼 항거하지 않는 데 대해 답답하거나 아쉬움을 느끼지는 않으시나요?
이 사실 제 친구 중엔 ‘왜 요즘 젊은 애들은 이런 데(사회문제)에 관심을 안 갖는 거냐’고 비판하는 이도 있어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무조건 광장으로 나오라고 했던 건 예전 방식이죠. 그런데 무조건 ‘왜 광장에 안 나오냐’고 해서야 되나요. 그러면 젊은 세대들은 그들대로 ‘저 꼰대들은 왜 맨날 거리 나와서 저러지? 저런다고 뭐가 바뀌지?’ 할 거예요. 우리가 사회를 바꾸고 싶다면 사회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젊은 세대들을 설득하는 게 맞는 자세인 것 같아요.
김 아까 현모씨가 50~60대가 문제라고 해서 방어를 좀 하고 싶군요. 우리 아버지가 한 20년 전 돌아가셨는데 그땐 나도 좀 원망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이를테면) ‘하, 우리 아버지는 왜 나에게 수영을 안 가르쳐주고 물가에 가지도 말라고 하셨을까’ 하는 그런 마음인 거죠. 그래도 곰곰이 생각해보니 제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께서 천자문 책을 갖고 와서 익히라고 하셨던 게 떠오르더군요. 지금 생각해보니 그게 우리 아버지께서, 당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최대한을 주신 게 아니었나 싶어요. 우리도 우리가 아는 범위 내에서는 최선을 다했어요.
사회 그럼 지금 우리 사회가 처한 문제는 뭘까요?
남 현모씨 세대와 그 이후 세대에겐 너무나 미안한 얘기지만 지금의 힘든 상황은 계속될 것 같아요. 선배들이 계속 미안해져야겠구나 싶어요. 게다가 겉으로 보기엔 우리가 선택해 탈 배는 많아졌지만, 실제로는 운항 노선이 줄어든 사회가 된 것 같아요. 저는 교육이 (사회 변화를 위한) 대안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데, 요샌 교육이 제일 걱정이죠. 대학에서 신입생을 뽑는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갈수록 사회가 복잡다단해지면서 갈등이 다양해지는데, 이 갈등을 해결해나가는 방식이나 방향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안 된 게 제일 문제인 것 같아요. 결국 정치적 리더십의 문제라고 봐요.
김 동감이에요. 그 갈등을 조율하는 게 협치잖아요. 대화할 때 대화하고 결집할 때 결집하는 게 자유주의의 장점인데, 지금은 그런 협치의 부재가 아쉽죠.
구 옛날엔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있었잖아요. (경제가 전보다 성장했으니까) 지금쯤은 이무기도 잘살아야 하는데, 지금은 아예 개천이 하수도가 되고 시궁창이 된 상황 같아요. 개천은 무너지고 앞으로 용은 더 없어질 텐데, 이걸 막기 위해선 지금의 체제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잖아요. 그런데 세월호 참사에서 보이듯,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가 다 나왔는데도 (문제 제기를 하는 사람을) 전부 종북, 빨갱이로 몰고 가기만 하고 아무것도 안 했잖아요.
사회 이렇게 들으니 우리 사회에 희망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네요.
남 경제적으로 더 이상의 중흥은 없을 것 같아요. 더 나빠지지 않는 상태에서 유지되지 않을까요? 그런데 지금 과거 아이엠에프 때와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면 전과는 달리 다 죽는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대다수 사람들이 하우스푸어로 빚 폭탄까지 안고 있는 상황이니까요.
구 뭔가 큰 역사적 계기가 있지 않으면 이대로 현상 유지가 되거나 더 나빠질 것 같아요. 새로운 역사적 계기라면 북한과의 통일? 바라진 않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전쟁밖에 없을 것 같거든요.
이 우리나라가 대내외적으로 모든 면에서 위기 상황인 건 맞는 것 같아요. 그런데 예전에 외신에서 ‘대한민국이 민주주의를 한다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가 피는 것과 같다’고 했는데, 우린 (민주주의) 했잖아요. 우리나라를 보면 정말 어떻게 이렇게 짧은 시기에 남들보다 2~3배씩 압축적으로 여기까지 왔을까 싶어요. 앞으로도 그러지 말란 법은 없을 것 같아요. 희망은 분명히 있을 것 같아요.
김 저 역시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봐요. 우리 사회의 다양한 갈등을 잘 조정할 수 있는 체계를 선제적으로 갖춘다는 전제 아래서요.
사회 마지막으로 한마디씩 더 한다면….
김 요새 들어 ‘박정희 시대는 독재가 아닌 권위주의 시대였다’고 하는 말들이 나오는 모양이더군요. 제가 겪어본 바로는 그 시대는 정말 무서운 시대였어요. 분명히 독재였고요. 저와 제 동료들이 (긴급조치 9호는 위헌·무효지만 이에 따른 수사·재판까지 불법행위로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에 항의해) 지금 두달째 1인시위를 하고 있거든요. 그런 문제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좀 가져줬으면 좋겠어요.
구 어른들께 한마디 더 드릴게요. 우리는 촛불시위 나갈 때 취업준비 미뤄두는 정도지만, 어른들께선 (사회 변화를 위해) 목숨 걸고 그랬다는 걸 잘 알고, 존중해요. 그랬던 분들이었는데 지금은 간지(멋) 안 나게 바뀐 것 같아요. 조금만 더 대인배처럼 간지나게 행동해 주시면 안 될까요?
정리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사진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참가자들
삼포세대 구현모
취업난 등으로 연애와 결혼, 출산 세가지를 포기한 지금의 20대 1991년생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줄곧 서울에서 살았다. 2010년 대학에 입학해 지금은 3학년이다. 언론학을 전공하고 있으며, 20대 대안 미디어 ‘미스피츠’(MISFITS)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소위 ‘스카이’(SKY)라 불리는 명문대에 다니고 있는데도 취업 걱정이 여간 아니란다. 한달 전 그는 미스피츠 회원들과 함께 연세대와 고려대 앞에 ‘최경환 아저씨에게 보내는 협박편지’란 제목의 대자보를 붙이기도 했다. IMF세대 남기환
IMF 당시 20대 중후반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세대 1972년생이다. 마산에서 태어나 대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그곳에서 자랐다. 1991년 대학에 입학해 집회·시위에 열심히 참여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운동권 학생도 아니었다. ‘엑스세대’ 후배들과 함께 보낸 대중문화의 황금기에 대한 기억도 있다.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 뒤 4학년 때 아이엠에프가 터졌고, 졸업 뒤엔 취업이 아닌 대학원을 선택했다. 여행잡지사에서 근무하다 5년 전 독립해 편집디자인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386세대 이원영
1960년대에 태어나 80년대 대학에 다니면서 학생운동과 민주화 투쟁에 앞장선 세대 1962년생이다. 고3 여름, 갑작스레 본고사가 폐지되는 입시제도의 변화를 겪고 전두환이 대통령으로 취임하던 81년 대학에 입학했다. 전두환 대통령의 취임식 날 미팅을 했던 기억이 선명한데, 대학 시절을 떠올리면 최루탄 냄새가 먼저 떠오른다. 한때 대중음악 공연 사업 등을 했지만 아이엠에프 직격탄을 맞고 접었다. 지금은 뒤늦게 공부를 시작해 한 대학의 연구원으로 있다. 긴조세대 김종채
긴급조치 1호가 발동된 1974년부터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사망할 때까지 유신체제의 피해를 입은 세대 1957년생이다. 유신체제가 한창이던 1976년 대학에 입학했다. 4학년이던 1979년 동기들과 ‘학원민주선언’과 ‘경제시국선언’을 발표했다가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옥살이를 했다. 최근 긴급조치 9호는 위헌·무효지만 이에 따른 수사·재판까지 불법행위로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에 항의해 동료들과 1인시위를 하고 있다. 서울의 한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취업난 등으로 연애와 결혼, 출산 세가지를 포기한 지금의 20대 1991년생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줄곧 서울에서 살았다. 2010년 대학에 입학해 지금은 3학년이다. 언론학을 전공하고 있으며, 20대 대안 미디어 ‘미스피츠’(MISFITS)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소위 ‘스카이’(SKY)라 불리는 명문대에 다니고 있는데도 취업 걱정이 여간 아니란다. 한달 전 그는 미스피츠 회원들과 함께 연세대와 고려대 앞에 ‘최경환 아저씨에게 보내는 협박편지’란 제목의 대자보를 붙이기도 했다. IMF세대 남기환
IMF 당시 20대 중후반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세대 1972년생이다. 마산에서 태어나 대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그곳에서 자랐다. 1991년 대학에 입학해 집회·시위에 열심히 참여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운동권 학생도 아니었다. ‘엑스세대’ 후배들과 함께 보낸 대중문화의 황금기에 대한 기억도 있다.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 뒤 4학년 때 아이엠에프가 터졌고, 졸업 뒤엔 취업이 아닌 대학원을 선택했다. 여행잡지사에서 근무하다 5년 전 독립해 편집디자인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386세대 이원영
1960년대에 태어나 80년대 대학에 다니면서 학생운동과 민주화 투쟁에 앞장선 세대 1962년생이다. 고3 여름, 갑작스레 본고사가 폐지되는 입시제도의 변화를 겪고 전두환이 대통령으로 취임하던 81년 대학에 입학했다. 전두환 대통령의 취임식 날 미팅을 했던 기억이 선명한데, 대학 시절을 떠올리면 최루탄 냄새가 먼저 떠오른다. 한때 대중음악 공연 사업 등을 했지만 아이엠에프 직격탄을 맞고 접었다. 지금은 뒤늦게 공부를 시작해 한 대학의 연구원으로 있다. 긴조세대 김종채
긴급조치 1호가 발동된 1974년부터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사망할 때까지 유신체제의 피해를 입은 세대 1957년생이다. 유신체제가 한창이던 1976년 대학에 입학했다. 4학년이던 1979년 동기들과 ‘학원민주선언’과 ‘경제시국선언’을 발표했다가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옥살이를 했다. 최근 긴급조치 9호는 위헌·무효지만 이에 따른 수사·재판까지 불법행위로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에 항의해 동료들과 1인시위를 하고 있다. 서울의 한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우리 땐 더 힘들었어’ 말하는
어른들 ‘아픔 배틀’ 보면 지겨워” IMF세대
“가족·직장 외엔 관심 없이
현실 안주하는 40대가 문제” 386세대
“집회엔 머리 허연 사람 대다수
젊은 사람들 그리 많지 않아” 긴조세대
‘50~60대 너무 원망하지 마라
아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한 것’ 한귀영(이하 사회) <한겨레>가 새해 설문조사를 하면서 광복 70년 동안 벌어진 역사적 사건 중 자신에게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사건이 뭐냐고 물었습니다. 여기 오신 분들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이원영(이하 이) 한국전쟁 아닌가요? 구현모(이하 구) 아이엠에프(IMF) 외환위기요. 남기환(이하 남) 개인적으로는, 5·18광주와 1987년 민주항쟁을 꼽고 싶어요. 중2 때 성당에서 5·18 광주 상황을 다룬 비디오를 본 게 충격이었거든요. 또 87년 당시 마산·창원에서는 노동자들의 시위가 엄청났죠. 수시로 거리에서 집회·시위가 일어나니까 중3인데도 절반 정도는 수업을 안 했고, 거리에서 늘 시위대를 만날 수 있었어요. 많은 걸 달리 보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됐지요. 김종채(이하 김) 79년, 대학 때 시위하다가 체포돼 감옥 가서 두달 살고 80년에 복학했어요. 80년대는 내내 광주의 연장선상에 있었어요. 처음엔 그저 독재 타도를 외쳤는데, 80년대 들어선 바로 옆에 있던 학우들이 죽어나가니까…. 이건 혁명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가 나왔어요. 사회 현모씨는 아이엠에프를 겪지도 않은 세대 아닌가요? 구 학교 가면 교수님들이 그러세요. ‘옛날에 너희 선배들은 학과 사무실에 놓여 있는 취업 원서 갖고 가서 대충 쓰면 (다 취업)됐다’고. 그런데 지금은 아니잖아요. 지금 우리가 궁극적으로 겪고 있는 경제위기가 그때부터 발원된 게 아닌가 싶어서 아이엠에프라고 말했어요. 아, 그런데 솔직히 말씀드리면요, 선배님들께서 아이엠에프를 꼽으면 ‘이명박 대통령 당선’을 꼽으려고 했어요. 엠비는 저한테 ‘리틀 박정희?’ 그런 느낌이었거든요. 4대강, 토건 등 70년대 산업화 시대의 향수를 불러일으켜 당선됐고, 우리 사회의 멘탈리티(정신 상태)가 아주 맛이 간 게 그때부터인 것 같아요. 옛날로 돌아간 거죠. 이 개인적으로 살면서 가장 힘든 영향을 줬던 사건은 아이엠에프였어요. 그때 제가 잠깐 대중음악 공연 사업을 하고 있었거든요.(한숨) 정말 미치는 줄 알았죠. (연말연시를 겨냥해) 이현우나 조규찬 같은 가수들의 전국 투어 콘서트를 미리 잡아뒀거든요. 그러고 나서 11월 아이엠에프 발표가 났잖아요. 12월 초부터 (공연 예약) 환불이 들어오는데 미치겠더라고요. 계약해놓은 걸 안 할 수도 없고…. 결국 사업을 접었죠. 그때 (은행이 금리를 올리면서) 돈 있는 사람들은 술집에서 ‘이대로’라고 외치며 건배했다는 거 아녜요. 사회 아이엠에프가 40~50대에게 큰 영향을 미쳤을 것 같은데, 실제 여론조사 결과를 보니 20~30대보다 그걸 꼽은 사람이 의외로 많지 않더군요. 이 아이엠에프는 지금보다 17년 전 얘기잖아요. 40~50대들이 그동안 이미 변한 상황에 적응해서 그런 게 아닐까요? 오히려 아이엠에프 때 아직 사회에 진출하지 않았던 세대들이 청년실업 등 희망이 사라진 사회를 물려받았잖아요. 그러다 보니 그 세대들이 오히려 그걸 더 크게 생각하는 게 아닐까요? 사회 그럼 자신이 속한 세대는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는지 얘기해볼까요? 김 (긴조세대는) 위에 끼고 아래에 치인 세대죠. (정치적으로) 위로는 사형수까지 된 쟁쟁한 양반들이 있는 민청학련 세대, 아래로는 학생회를 기반으로 (탄탄한 조직력을 갖춘) 386세대 사이에 끼어서, 우리는 전부 이름 없는 무명용사로 살았죠. 게다가 저는 베이비부머에 속합니다. 전쟁 이후에 태어나 인구가 늘어난 시기에 태어났으니 또 힘들고…. 이 저는 81학번이에요. 소위 386세대라 불리는 세대가 우리부터 시작된 거죠. 민주화세대인 동시에 아이엠에프 위기가 오기 전 산업화의 마지막 수혜를 받은 세대인 것 같아요. 남 제 세대(IMF세대)는 빨리 포기하고 빨리 길들여지는 데 익숙한 세대 같아요. 제가 대학 졸업반 때 아이엠에프 위기가 닥쳤거든요.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더라도 일단 취업 먼저 하고 보자 했죠. 5~6년 직장생활 하다 보니 연봉제가 생기고, 또 계약직이란 새로운 신분이 생겨나더군요. (상황이 악화되는 걸 보면서) 지금의 상황에 안주하는 게 자연스러운 세대가 된 거죠. 증권사에 다니는 제 친구 중 하나는 부장 다는 게 정말 싫다고 했어요. 빨리 나가라는 의미니까. 구 저희 세대(삼포세대)는 한마디로 그냥 망한 세대예요. 예전엔 출세하려면 ‘고시 보면 된다’ ‘대기업 가면 된다’고 했어요. 지금은 고시 대신 ‘○○스쿨’ 체제로 바뀌었잖아요. 이게 비용이 덜 든다고 했지만, 제가 보기엔 비용이 더 들어요. 옛날엔 소 팔아서 자식 대학 보냈다고 하지만, 하우스푸어인 우리 부모님 세대는 자신들의 노후를 뽑아서 우릴 대학에 보내고 있어요. 그런데 부모님이 들인 투자비용보다 (우리 세대가) 많은 걸 뽑을 수 있느냐 하면 그건 또 안 돼요. 남 저희 부모님 연배인 분들에게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이 ‘막노동을 해서라도 너희는 먹여살린다’는 말이었어요. 제가 2010년에 창업을 했는데, 재작년에 상황이 안 좋았거든요. 와이프에게 호기롭게 ‘걱정 마, 막노동이라도 해서 먹여살릴게’라는 말을 못 하겠더라고요. 지금처럼 애를 유치원에 보내고, 학원 보내고 하려면 그게 안 되겠더라고요. 핸드폰에 인터넷, 자동차, 집 대출까지…. 지금 주거·소비구조에서 막노동으론 어림도 없는 거죠. 구 최근에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빚 내서 집 사라고 했잖아요. 그런 소리 하는 분들은 일단 맞아야 해요. 정신 못 차리고 하는 얘기예요. 진짜로 계급장 떼고 명치를 한 대 치고 싶어요. (그런 소리 나오는데도) 어른들은 아무것도 안 해요. 그저 산업화 향수에 취해서 뭐든지 오케이, 오케이 하는 거죠. 그 사이에서 저희는 피똥을 싸는 거고요. 삼포세대
“큰 역사적 계기 없으면
사회 더 나빠질 것 같아” IMF세대
“탈 배는 늘었지만 노선은 줄어
앞으로 힘든 상황 계속될 듯” 386세대
“정치적 리더십이 문제지만
우리에겐 민주주의 경험 있다” 긴조세대
“자유주의 장점인 협치의 부재
갈등조정 체계 갖춘다면 희망”
광복 70년인 2015년 새해를 며칠 앞둔 지난달 22일 오후 ‘긴급조치 세대’ ‘386 세대’ ‘아이엠에프(IMF) 세대’ ‘삼포 세대’ 등 각 세대를 대표해 모인 네 사람이 서울 효창동의 한 카페에서 자신들이 살아온 대한민국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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