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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사회적 합의로 아이들 행복 위한 수업방식·대입 틀 짜야”

등록 2015-04-09 20:07

[광복 1945, 희망 2045] 다시, 교육부터
교육갈등 접점 찾기 ⑦ 이명박 정부 교육장관 이주호 인터뷰
이명박 정부 시절 교육과학기술부 장차관 등을 지낸 이주호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가 지난달 31일 서울 중구 충무로 한반도선진화재단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면서 교육정책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이명박 정부 시절 교육과학기술부 장차관 등을 지낸 이주호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가 지난달 31일 서울 중구 충무로 한반도선진화재단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면서 교육정책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이주호(54) 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이명박 정부의 교육 설계자이자 집행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전 대통령의 교육 부분 대선 공약을 만들었고, 이 전 대통령 임기 내내 교육과학문화수석(2008년 2월~2008년 6월)과 교육과학기술부 차관(2009년 1월~2010년 8월), 장관(2010년 8월~2013년 3월)을 연거푸 역임했다. 이 전 장관은 보수 정부의 교육부 장관 중에서 진보 교육계로부터 가장 거세게 비판을 받은 장관이기도 하다. 장관 재임 당시 6명의 진보 교육감들과 전국단위학업성취도 평가, 체벌 금지, 무상급식 등 교육정책을 놓고 부닥쳤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2010년 11월 ‘엠비(MB) 교육정책 실패-교사 대학살 주범 이주호 장관 퇴진 전국교사대회’를 열기도 했다. 이 전 장관은 지난달 31일 서울 중구 퇴계로 한반도선진화재단 연구실에서 <한겨레> 기자를 만나 “교과부 장관 시절 하향식(톱다운) 교육정책 추진에 대해서는 많이 반성하고 있다”며 “아이들의 행복을 중심에 놓고 수업방식과 교육과정, 대입제도를 바꾸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때”라고 밝혔다.

자사고 등 다양한 학교형태로
수업방식 변화 의도했지만
하향식으로 추진한 것 반성

미 뉴텍 하이스쿨 ‘프로젝트 수업’
교사들에게 지도방식 연수 지원
학생들은 수업 주도적 진행
수업방식 개선 모델로 삼을만

진정한 교육 변화 이뤄지려면
중간·아래로부터의 호응 필요
사회적 합의기구서 방안 만들어
교육부에 제안하는 형태 됐으면

-장관 퇴임 이후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로 가신 뒤 언론 인터뷰를 거의 안 하셨습니다. 더구나 교과부 장관 시절에 비판 기사를 많이 썼던 <한겨레>와 인터뷰하실 거라곤 기대하지 않았는데요.

“교육에 대해 고민하는 분들은 국가교육위원회 같은 사회적 합의 기구에 대한 관심들이 다 있죠. 제가 말한 걸 있는 그대로 전해주신다면, <한겨레>의 ‘사회적 합의 기구’ 기획을 통해 꼭 하고 싶은 말들이 있었습니다. 저도 장관 할 때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나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등 보수·중도 성향 교육단체들과 많이 만나고, 학교 현장과의 대화도 차관 때부터 일주일에 한번씩 매주 했습니다. 하지만 전교조 분들하고는 너무 오랫동안 정책을 가지고 대립하다 보니 별로 못 만났어요. 사회적 합의 기구가 만들어지고 분위기가 조성되면 전교조든 교총이든 서로 합의하는 분위기가 되지 않을까요.”

-장관 재임 기간 중에 교육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율형사립고(자사고)를 너무 많이 늘려 놓으셨고, 결과적으로 일반고 상황이 열악해졌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자사고든 일반고든 정부가 다양한 학교 형태를 허용하고, 학교 단위에서 자율성이 높아지면 가장 중요한 것은 수업방식의 변화거든요. 주입식이나 선다형 평가에서 탈피해 프로젝트 수업 같은 수업의 변화를 통해서 학교 다양화의 취지가 살아날 수 있습니다. 자사고가 단순히 좋은 학생을 받아 명문대 진학률을 높이는 걸 목표로 하지 않고, 새로운 수업방식을 시도하는 자율학교로 가면 좋겠는데…. 아직 그런 부분이 충분히 살아나지 않았다고 봐요. 시간을 두고 바꿔나가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수업방식 같은 실험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자사고를 확대한 게 문제 아닐까요?

“최근에 좌든 우든 보수든 진보든 수업방식의 변화에 대해서 많이 얘기합니다. 선생님들이 ‘이명박 대통령의 창의 인성 교육이나 박근혜 정부의 꿈과 끼나 진보 교육감들의 혁신학교나 취지는 똑같은데 명칭만 다르다’고 말씀하세요. 수업방식을 바꾸라는 메시지는 똑같은데, 상대 쪽에서 하는 건 틀렸다고 한다는 거죠. 지금 최대 화두는 수업방식을 변화시키고, 평가방식을 바꾸는 것입니다. 그 부분은 진보나 보수나 역점을 둬 왔고, 이제는 그걸 해내야 합니다.”

-어떤 식으로 수업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미국에서는 1990년대 후반 샌프란시스코 내파밸리의 뉴텍 하이스쿨에서 프로젝트 중심 수업(Project Based Learning)을 처음 시작했는데, 전체 수업이 다 프로젝트로 이뤄져요. 프로젝트 수업의 핵심은 아이들이 직접 참여해서 뭘 만들어내도록 하는 거예요. 아이들이 수동적인 학습자가 아니에요. 누구와 프로젝트를 할 것인지부터 결과물 발표까지 주도적으로 해요. 지금은 뉴텍 하이스쿨이 170곳으로 늘어났는데, 제가 직접 가보고 정말 큰 충격을 받았어요. 한 반이 50명인데, 국어(영어) 선생님과 역사 선생님 두 분이 나란히 앉아서 컴퓨터 앞에서 수업을 해요. 아이들이 온라인으로 질문한 걸 바로바로 답해주는 거지요. 선생님이 주도하는 수업은 없고, 아이들은 테이블에 앉아서 자기들끼리 의논하고 질문하고 쓰고 그래요. 사립학교도 아니고 공립학교인데도 수업방식을 그렇게 바꿔놨어요. 우리 자사고들도 그렇게 발전하면 좋겠어요.”

-수업방식이 바뀌면 대입제도나 입시 위주 교육정책도 변화가 가능할까요?

“국민의 정부에서 추진한 수행평가가 노무현 정부 때 입학사정관제도로 이어졌어요. 그때 김진표 전 교육부총리가 임기 마치고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계셨는데, 입학사정관제 도입 예산을 국회의원이었던 제가 넣었어요. 여야가 같은 시각을 가지고 입학사정관제를 시범 실시했고요. 이명박 정부에서 본격적으로 추진한 거예요. 수행평가의 취지, 입학사정관제의 취지, 창의 인성 교육의 취지가 결국은 다 교실을 바꾸는 거잖아요. 하지만 위로부터의 상향식 변화에 한계를 많이 느끼고 있어요. 입학사정관제도 수업방식이 안 변하면 무너져요. 선생님들이 시험점수가 아닌 ‘제대로 된 평가’를 입학사정관한테 보내줘야 하는데 아직까지도 그런 게 너무 없어요. 아이들이 실제로 꿈을 키우고 체험도 하고 독서도 했을 때, 그게 제대로 된 수행평가 결과로 안 이어져요. 입학사정관제에 집중하고 자사고에 자율권도 줬지만, 이런 취지가 정말로 살아나려면 수업방식의 변화가 핵심이에요. 제가 학자로 돌아왔기 때문에, 제가 추진한 정책들에서 왜 부작용이 생겼는지 연구하고 있어요. 수업방식의 변화가 못 따라갔고, 하향식으로는 변화가 힘들어요.”

-장관 시절 추진했던 정책들 가운데 취지 자체는 좋은데, 우리 교육 현실과 동떨어져서 역효과가 난 경우가 많습니다. 자사고나 집중이수제 같은 것도 예가 될 수 있겠지요.

“말씀드린 것처럼 제가 하향식 정책 추진에 대해서 많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선생님들과 대화를 해보면 ‘우리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건 하는데, 장관이 시키면 싫다’고 하십니다. 충분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고, 선생님들의 변화를 지원하고 격려해주는 노력이 필요해요. ‘보텀업’(상향식)으로 한다고 그냥 학교에 자율만 주고 알아서 경쟁하라는 것도 문제가 있습니다. 중간에서부터의 개혁도 중요합니다. 미국 뉴텍 하이스쿨도, 빌 앤 멀린다 게이츠 재단의 기부로 운영되는 실리콘밸리의 벅(BUCK) 인스티튜트 같은 중간 단계의 지원이 있어서 가능했습니다. 교사들한테 프로젝트 중심 수업을 연수해주는 기관이에요. 뉴텍 하이스쿨 170개를 정부가 시켜서 만든 게 아니고, 학교 자율만으로도 안 돼요. 사회적으로 프로젝트 중심 수업으로 교육을 바꾸는 게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생기니까 가능한 거예요. 장관 시절 하향식 기획도 많이 했고 상향식 자율도 많이 드렸지만,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지지 못한 것이 마음 아프고 제가 부족했다고 느낍니다. 진정한 변화가 이뤄지려면 아래로부터, 중간에서의 호응이 중요하고, 제도를 바꿀 때 사회적 합의를 거쳐야 후퇴하거나 변질되지 않습니다.”

-아래로부터의 변화나 사회적 합의에 있어서 특히 간과해서는 안 될 부분이 있다면요?

“사회적 합의의 첫번째 초점은 ‘수업방식의 변화’에 맞추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지금 같은 수업은 학생, 교사, 학부모 모두 피해자예요. 새로운 변화를 많이 시도하게 하고, 그중에 성과가 있는 것들을 확산시키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아무런 변화 없이 말만 하는 합의는 공허해요. 변화가 없는 상태에서 앞으로 어떻게 하자고 하면 합의가 이뤄지기 힘들어요. 실제로 변화를 추진하는 그룹이 있고 그룹이 성과를 보여주면 그걸 통해 합의가 가능해요. 미국의 프로젝트 중심 수업도 한 곳에서 해봐서 잘되니까 170개 학교가 생긴 거잖아요.”

-국회의원 시절(2007년) 국가교육과정위원회 설립 법안을 발의하신 적이 있는데요?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어려워요. 법안이 통과되려면 교육부에서도 동의해야 하는데, 교육부의 기능 중 상당 부분을 합의 기구가 가져가는 거라 쉽지 않아요. 합의 기구에서 좋은 방안들을 교육부에 제안하는 형태로 가면 어떨까 싶습니다. 가령 사회적 합의를 통해서 대학입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여야 이견이 없어요. 대입을 얘기하려면 당연히 교육과정도 포함이 되죠. 홍콩이 최근에 주입식 교육과정을 완전히 바꿨어요. 케이케이 챈이라는 교육국장이 9년 전부터 교육과정과 대입을 준비했어요. 대통령 임기 5년제인 우리나라 정치 체제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죠. 한 정부, 한 장관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교육과정과 입시제도 등 장기적인 변화가 필요한 부분은 사회적 합의 기구에서 방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아이들을 중심에 놓고 생각해야 해요. 우리나라 아이들의 행복지수가 꼴찌입니다. 교육 문제부터 합의점을 찾아나가야 하는데, 이제 충분히 시기가 무르익었다고 생각해요.”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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