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20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1차 규제개혁장관회의 및 민관합동규제개혁점검회의’에서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맨 왼쪽) 등 참석자들이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공공성 무너진 나라-② 규제완화의 본질
‘기업 이익은 곧 일자리 창출’
정부 성장론 설득력 잃어
돌아온 건 ‘위험사회’ 오명뿐
‘기업 이익은 곧 일자리 창출’
정부 성장론 설득력 잃어
돌아온 건 ‘위험사회’ 오명뿐
외촉법 개정안 통과때 간접고용 효과
산업부는 1천명, 총리는 1만4천명
‘규제완화→일자리 창출’ 근거없어 정부가 ‘일자리 창출’을 규제완화의 핵심 근거로 제시하고 있지만, 규제완화를 해주면 기업이 어느 정도의 일자리를 창출하는지에 대한 근거는 없다. 지난해 6월 산업통상자원부는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외국인투자촉진법(외촉법)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창출될 일자리 추정치를 직접고용 100명, 간접고용 1000명으로 제시했다. 외촉법 개정안은 외국인 투자자와 합작기업을 세울 경우엔 증손회사의 지분을 100% 소유하도록 한 지주회사법 규제를 적용하지 않는 것을 뼈대로 한 법안이다. 넉달 뒤인 지난해 10월 정홍원 국무총리는 대국민 담화를 통해 “외촉법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직접고용 200명, 간접고용 1만4000명 등 일자리가 크게 늘어난다”고 밝혔다. 같은 정부 안에서의 추정치인데도 10배 이상 차이가 난 것이다. 규제완화에 따른 일자리 추정이 얼마나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지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예다. 일자리 추정은 일반적으로 투자 예상 금액에다 한국은행이 내놓은 산업별 취업유발계수를 적용해 이뤄지는데, 어떤 계수를 가져오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크게 달라진다. 정부도 논란을 의식해 규제완화에 따른 일자리 창출 규모를 밝히길 꺼린다. 규제완화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정부의 무역투자진흥회의 회의 자료에는 투자확대 규모는 적시돼 있지만 고용증대 규모에 대한 언급은 없다. 기획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내부적으로는 고용 추정치를 가지고 있지만, 신뢰성이 떨어지고 논란을 부를 수 있기 때문에 대외적으로 발표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고용 효과는 불분명하지만 기업들이 얻는 혜택은 명확하다. 현오석 부총리의 발표 자료를 보면 ‘전국민 혜택’이라는 목표 뒤 이어진 세부 추진과제들은 모두 기업애로 해소에 맞춰져 있다. ‘기업애로 핵심규제’는 입지규제, 고용규제, 환경규제가 꼽혔다. 모두 완화됐을 경우 기업들은 비용을 아낄 수 있지만, 자칫 환경파괴 등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 하거나, 노동자들의 이익을 침해할 수 있는 규제들이다. 삼성전자의 갤럭시S5 규제완화 관련 문건은 “규제 개선 시 당사의 총 27조4000억원의 매출 확대가 예상된다”고 밝히고 있다. 외촉법 개정안의 수혜자는 에스케이종합화학, 에스케이루브리컨츠, 지에스칼텍스 등 3군데 대기업이다. 정부가 일자리 창출이라는 ‘어음’을 받고 규제완화라는 ‘현금’을 내주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 어음은 끝내 지급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방증이 많다.
‘기업 몰아주기 통한 성장’에
기업은 부자되고 국민은 가난
“규제완화 성장론, 설득력 잃어” ‘규제완화→투자촉진→일자리 창출, 경제성장→전국민 혜택’이라는 정책기조를 따른 것은 박근혜 정부가 처음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규제완화 정책이 본격적으로 추진된 것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이며, 이후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쳐 이명박 정부에서 더욱 노골화됐다. 한국은행 자료를 보면 1975~1997년 국민총소득 연평균 증가율은 8.9%, 가계소득의 연평균 증가율은 8.1%, 기업소득의 증가율은 8.2%였다. 하지만 규제완화 정책이 본격적으로 추진된 2000~2010년 국민총소득 증가율은 3.4%, 가계소득 증가율은 2.4%, 기업소득 증가율은 16.4%였다. 이 기간 동안 전체 경제의 성장률은 크게 낮아졌고, 가계소득은 여기에도 미치지 못한 반면, 기업소득은 급증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기업은 부자가 되고 일반 국민들은 가난해진 것이다. 박종규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이 지난달 펴낸 보고서를 보면, 2008년 1분기 이후 2013년 3분기까지 상용근로자들의 실질 평균임금은 정체 상태에 머물고 있다. 이는 경제개발이 시작된 이래 처음 있는 현상이다. 박종규 연구위원은 “지난 15년여 동안 경제활성화를 위해 대기업들이 투자와 고용 확대를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했던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원하는 규제완화를 해주려 노력했지만 투자 및 고용 확대의 성과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더구나 ‘기업애로 해소’에 맞춰진 규제개혁은 환경, 의료, 교육 등 그 자체로 공공성이 강한 분야까지 확산되고 있다. 현재 정부가 추진중인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해제 요건 완화, 학교 옆 호텔 허가, 대형병원 자법인 영리사업 허용 등이 그런 예다. 정부가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이런 정책들을 되풀이하는 것은 ‘기업에 의존한 성장률 높이기’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정완 성공회대 교수(경제학)는 “정부가 정말 투자증대와 일자리가 절실하다면, 기업이 쌓아놓은 돈을 세금으로 흡수해서 공공투자에 나설 수도 있다”며 “현 정부는 이런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기업도 저항을 하기 때문에 결국 남은 것은 기업들이 원하는 것을 들어줌으로써 투자 증진을 기대하는 방법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정책대학원 교수(경제학)의 평가는 좀더 냉정하다. 그는 “규제완화를 통한 성장론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 일본 등 다른 나라에서도 설득력을 잃은 지 오래됐다”며 “시장만능주의에 기반한 우리나라 재벌과 관료들의 ‘특권성장 동맹’을 위한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정말 정부가 ‘전국민’에게 혜택을 주기 원한다면 이제는 정책기조를 바꿔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박종규 연구위원은 “십수년이 지나도록 기대했던 성과가 나지 않는다면 그런 전략은 우리 경제와 맞지 않는다는 평가를 내리고 새로운 방법을 찾는 것이 맞다”며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성장을 통해 기업부문에서 가계부문으로 소득이 확산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종일 교수는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박근혜 정부는 이제라도 경제민주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며 “노동자들의 실질임금 인상과 복지 확대만이 진정한 경제활성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세종/김경락 기자 sp9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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