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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돈 중심사회 실패 확인…공공성 강화 모범사례 만들어야”

등록 2014-05-27 20:23수정 2014-05-28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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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성 무너진 나라]⑥ 진단과 대안-전문가 좌담

세월호 참사는 단순한 사고가 아닌 그동안 층층이 쌓였던 한국사회의 모순이 충격적인 방식으로 모습을 드러낸 사건이었다. 세월호 사태에서 많은 이들은 무분별한 규제완화, 사익과 결탁한 관료, 비정규직의 무차별적 확대, 자신의 기본적 책무마저 민영화하는 국가의 얼굴을 한 ‘한국호’를 보았다.

<한겨레>는 이를 우리 사회에서 공공성이 무너진 결과로 진단하고, 각자의 분야에서 공공성 문제에 천착해온 이병천 강원대 경제학과 교수,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고원 서울과학기술대 기초교육부 교수 등 4명의 전문가 대담을 통해 세월호 참사와 공공성 붕괴의 원인과 대안을 모색해보았다. 대담은 26일 오후 한겨레신문사 3층 회의실에서 이뤄졌다.

고원 서울과학기술대 기초교육학부 교수(맨 왼쪽부터), 이병천 강원대 경제학과 교수, 사회자,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오건호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이 27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좌담회를 열고 있다.  류우종 기자 <A href="mailto:wjryu@hani.co.kr">wjryu@hani.co.kr</A>
고원 서울과학기술대 기초교육학부 교수(맨 왼쪽부터), 이병천 강원대 경제학과 교수, 사회자,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오건호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이 27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좌담회를 열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사회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원인을 무엇이라고 보나?

이병천(이하 이) 대한민국이 ‘세월호’다. 압축성장을 하면서 돈이 사람을 수단화시켰다. 안전규제 완화가 직접적인 원인이지만, 모든 수준에서 공공성이 붕괴됐다고 볼 수 있다. 김영삼 정부 시절 규제완화와 민관유착이 아이엠에프(IMF·국제통화기금) 사태를 낳았다면, 이번 참사는 아이엠에프 사태의 재난형 버전이라고 할 만하다.

신광영(이하 신) 권력이 정당성을 인정받는 것은 공공성을 내세우면서 국민안전과 생명보호를 할 때다. 이번에 그런 역할을 못한 것이다. 상당부분 한국 사회 시스템이 붕괴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번 사고를 관통하는 한 가지는 규칙 없이, 수단과 방법 가리지 않고 부를 축적하고 경제만 성장하면 된다는 전도된 가치관이 모든 부분과 기관에 내재돼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무규칙’, ‘무규범’을 원인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오건호(이하 오) 우리가 사는 사회는 시장과 국가, 시민사회 영역으로 나뉜다. 시장은 생산을 담당하고, 국가는 조정과 규제, 시민사회는 일상생활 영위를 맡는다. 그런데 생산을 담당하는 곳에 돈의 탐욕이 만연돼 있고, 조정자·규제자 역할을 해야 할 국가는 무사안일과 타성에 젖어 있었다. 이 둘이 짝을 이뤄 시민 일상을 짓누르고 굉장히 큰 트라우마를 남긴 사건이다. 대한민국 전체에 이런 논리가 적용되고 있다.

고원(이하 고) 마키아벨리의 논법으로 진단하면, 한편에선 ‘국가의 배은망덕’이, 다른 한편으로 ‘시민적 덕성의 부패’가 있었다. 국가의 핵심 기능을 담당하는 엘리트와 지도자가 완전히 타락했고 무능하다. 위에서 아래까지 심각하게 사유화·사사화돼 있다. 많은 사람이 국가와 정부, 관료의 문제를 얘기하는데 나는 시민사회 문제도 짚고 싶다. 시민들이 자유의 정신보다는 권위에 대한 복종을 추구하는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높은 지지율 바탕에도 이런 요소가 있다. 직장에서도 정규직, 비정규직으로 갈라져 서로 무시하고, 질시한다. 시민사회가 갈가리 쪼개져 있다.

사회 이번 참사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은 어느 정도라고 보나?

나는 이른바 ‘적폐론’을 경계해야 한다고 본다. 박 대통령의 책임을 확실하게 물어야 한다. 박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에서도 드러나지만, 세월호 사건을 보는 ‘권력의 담론’이 있다. 과거 적폐 때문이라는 것, ‘아랫것’들이 잘못했다는 것, 공공성 전반의 문제가 아니라 안전 문제라는 것이다. 세번째 부분을 <한겨레>가 ‘공공성 무너진 나라’ 기획을 통해 짚은 것을 높게 평가한다. 적폐를 물려받았다는 것은 맞는 말이지만, 각 시대는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것을 해결할 책임을 가지고 있다. 특히 박 대통령은 규제완화, 민영화 등 이명박 정부의 정책기조에서 변화하겠다는 약속을 내걸고 당선됐다. 그런데 당선된 뒤 이를 뒤집었다. 여기에 박근혜 정부의 결정적 과오가 존재하는 것이다.

대통령은 권력의 최상위에 있기 때문에 당연히 책임져야 한다. 하지만 그것만 갖고서 해결 안 되는 부분이 있다고 인정해야 한다. 한국 사회 시스템이 지난 40~50년 동안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내재된 문제들이 지금 많은 부분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그런 것을 해결할 주체나 가능성이 그리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지 않은 것 같다. 사회 시스템의 위기라고 부를 만큼 근본적 위기가 아닌가 싶다.

박 대통령은 할 말이 없다. 이명박 정부의 적폐에 대해서 수술하고 개선해야 하는데 전혀 안 했다. 오히려 경제활성화 명분으로 이명박 정부의 계승자로 자신을 위치지었다. 국정원 선거 개입 문제에 발목이 잡혀, 오로지 정권 보위에 모든 힘을 전력투구했다.

현 정부가 이번 사건의 책임이 크다는 것을 사람들도 이미 인식하고 있다. 다수 사람들이 현재 시스템이 큰 문제가 있다는 점에 공감하고 있다. 앞으로 이런 민심이 흘러갈 수 있는 경로를 잘 만들어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도덕적 문제와 함께, 또 한편엔 무능의 문제가 있다. 현대 관료제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세분화된 전문 능력이다. 교육, 복지, 국방 등 각 부분에서 국가기구가 각자 제 기능을 해서 하나의 근대국가를 만드는 것인데, 이번 사태로 국가가 정말 무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박근혜 정부와 박정희 정부는 또 다르다. 박정희 때 관료는 능력이 있었다. 박정희 정권은 관료와 재벌을 틀어쥐고 있었다. 이게 다 무너졌다. 이 정부는 ‘해경’(해양경찰)조차 장악 못하는 정권이다.

‘기업국가’라는 말도 있듯이, 점점 시장이 커지고 기업이 정치권력으로서 국가화되고 있다. 그 수행자가 바로 관(관료)이다. 시장의 확대에 따른 국가의 약화라는 측면에서, 현 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 무능한 정부일 수밖에 없다.

사회 공공성은 단순하면서도 포괄적인 개념이다. 공공성의 의미를 정의해주고, 그에 비춰 세월호 참사와 한국 사회를 평가해달라.

공공성이란 사적 이익이나 사적 이해관계가 아닌 다수, 전체의 이해나 이익에 도움이 되는 것을 말한다. 그것이 연대의식이나, 전체 유기적 사회 구성원이라는 인식에 기초해 무엇을 추구할 때 나타나는 것이 공공성이다.

공공성의 대변자는 현대사회에선 국가였다. 국가는 특정한 지역이나 계급, 사회집단을 대변하는 게 아니라 전체 국민을 대변해야 한다. 국가뿐 아니라 구성원인 국민들도 공공성에 대한 인식이 돼 있어야 한다. 사회 구성원끼리 경쟁자로 인식하거나, 다른 사람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이 다수가 되면 공공성은 이뤄지기 힘들다. 지나치게 시장의 논리에 따르면 공공성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많은 선진국들이 공공성을 제도적으로 실현했다. 복지나 실업보험은 누구나 닥칠 위험을 공적인 방식으로 대응한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다 시장에 맡기고 있다. 노후는 사적 연금으로 해결한다. 수돗물이 오염되면 집집마다 정수기를 사서 해결한다. 사교육도 마찬가지다. 사적으로 해결하는 방식이 일상화됐다. 공적인 해결 방식이 돈이 더 적게 들고, 더 낫다는 경험이 있어야 한다. 그런 것을 한번 보여주면 많은 사람들이 공공성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할 것이다.

가장 많이 통용되는 의미는 공공복리일 것이다. 나는 이렇게 정리해보았다. 공공성은 민주 공화주의의 기본가치다. 공공성은 ‘같은 배를 타고 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하는 것이다. 같은 배를 탄다는 것은 공동체 구성원 모두에게 어떤 차별 없이 ‘몫’(stake)을 주는 것이다. 개별 구성원 모두 ‘스테이크 홀더’(이해관계자)다. 사회 구성원들이 모두 권리와 동시에 책임을 가지고 공동체 일과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 이게 바로 ‘능동적 공공성’이다.

두번째는 모든 구성원이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자원에 보편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방어적·보호적 공공성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데, 이것이 제대로 보장돼야 능동적 공공성으로 나아갈 수 있다.

한 사회 공동체가 존립하기 위해서는 거기에 필요한 공통의 규범이나 제도, 이걸 뒷받침하는 물질적 장치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상식적인 의미에서 공공성이다. 좀더 나아가면 자유주의적 공공성, 국가주의적 공공성, 공동체주의적 공공성 등 여러 차원, 여러 모델이 있을 수 있다.

사회주의권이 무너지고, 신자유주의 체제가 되면서 진보진영이 구체적인 체제로 대안을 제시하기가 어려워진 측면이 있다. 그래서 조금 막연하지만 우회적 담론으로 선택된 것이 공공성 개념이라고 본다. 구체적인 내용은 채워나가야 한다.

나는 공공성을 공동의 이해, 한마디로 ‘공존’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우리 사회에서 공존을 저해하는 구조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봐야 한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그것은 시장만능주의다. 사회가 지나치게 시장과 돈 중심이다. 현재 시장은 공존 가치와 반대로 가고 있고, 시장을 규제·조정해서 공존 메커니즘을 만들어야 할 국가는 그 역할을 못하고 있다. 시장을 규제할 룰(규칙)을 만들고, ‘탈시장’을 통해 새로운 공존방식, 비영리부문도 만들어가야 한다. 공공성 운동이 신뢰와 공존의 공동체로 대한민국을 새롭게 만드는 시대운동이 돼야 한다.

사회 현재 한국 사회에서 공공성의 확립을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는 무엇이라고 보나?

공공성은 국가 안에서 모든 시민들이 평등한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상태다. 현재 한국 사회는 그 권리가 굉장히 불균등하게 편파적으로 배분되고 있다. 비정규직이 차별받고 있고, 아르바이트 청소년들은 계약서도 쓰지 않고 일하고 있다. 특정한 사람들만 시민권을 향유하고 많은 다수의 사람이 배제된 사회에서는 구성원들이 자존감을 느낄 수 없다. 공동체에 대한 자부심과 헌신이 나올 수 없다. 모든 시민이 평등하게 권리를 배분받고 향유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국가 변화의 핵심이 돼야 한다.

박근혜 정부는 시장규제를 완화·철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지금은 이 방향을 바꾸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규제완화가 아닌 ‘공공성 조정의 복원’이 필요하다. 더 이상 시장국가로 가는 것을 중지시키고, 되돌려야 한다.

세월호 참사로 규제완화와 ‘돈 중심 사회’는 더 이상 안 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됐다. 정규직들이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내면화해온 측면도 있지만, 이번 참사로 정규직도 침몰하는 한국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자각이 생겼다. 이 씨앗을 잘 살려야 한다.

의료, 교육, 안전, 공공서비스 등 여러 부문별 공공성 의제가 있다. 이런 의제별 공공성 운동이 더 강화될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규제완화를 막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 우리나라는 국가 차원에서 삼권분립이 완전히 깨져 있다. 민주주의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행정부, 사법부, 입법부의 견제와 균형도 안 이뤄지고 있다. 언론도 견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관피아(관료+마피아)가 저렇게 심각한지 국민들은 몰랐다. 제대로 된 견제를 하기 위해서는 정보의 독점을 깨야 한다. 국가기밀이 아닌 모든 정보를 다 공개해야 한다. 정책결정 과정과 입법 과정에 누가 참여했는지에 대한 정보가 100% 공개되는 개혁이 필요하다.

책임자를 확실히 징벌해야 한다. 현재 팽배해 있는 불신을 깨뜨리기 위해 가장 중요한 지렛대는 징벌을 확실히 하는 것이다. 대통령도 세월호 참사 조사 청문회에 응해야 한다. 공권력과 자본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제도적·징벌적 조처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책임규율을 세울 수 있다.

김상곤(전 경기도교육감)씨가 ‘무상버스’ 얘기했지만, 실패했다. 아직 공공성이 낯선 것이다. 우리는 공유의 경험이 취약하다. 성공 경험을 쌓아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규율을 세우는 것과 성공 경험을 만드는 것, 투트랙이 필요하다. 규제는 헌법적 권리이고, 무책임과 무능을 규율할 수 있는 원리이기도 하다. 규제에 대한 재인식과 재구성이 필요하다.

규제강화가 잘못되면 인허가 과정에서 부정부패가 촉발된다. 규제하는 기관이나 사람들을 누가 어떻게 감시하느냐가 중요하다. 그래서 정보 공개가 필요한 것이다. 규제가 제대로 되는지 안되는지 알 수 있게 투명성이 확보돼야 한다.

김상곤씨가 2010년 무상급식 의제를 내놓아, 1년 만에 보편복지 개념이 전국민적으로 확산됐다. 조그만 아이템이 보편복지라는 큰 담론으로 변했다. 공공성이라는 개념도 모범적인 사례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각 영역에서 공공성 강화를 추진하는 동시에, 어느 한곳에서 국민 손에 잡힐 수 있는 성공모델을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 대중교통이나 공공의료 같은 것에서 가능하다고 본다. 국가나 시장 영역 밖에서 새로운 공공성 실험을 할 수도 있다. 시민들이 각자 속한 지역이나 공동체에서 공유와 신뢰의 경험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 마을공동체 운동 등이 그 예가 될 수 있다.

사회 현실정치 문제, 각 개인이 실천할 수 있는 일 등을 포함해 마무리 발언을 해달라.

해방 이후 지금까지 한국 사회를 주도해온 국가주의, 성장주의 패러다임이 이제 임계점에 도달했다. 세월호 참사 이전부터 사람들 사이에서 인식과 가치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는데, 이번 참사는 그런 움직임이 분출하는 전기가 될 것이다. 개발이나 성장 다 실패했고, 허울 좋은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변화에 반응하는 정치세력이 형성돼야 한다.

각성된 풀뿌리 세력이 중요하다. 미래의 정치세력이 마을과 지역, 시민단체에서 커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시민단체 활동이나, 지역 자치 활동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 좋겠다. 공동체 경험이 공공성 경험이다.

비례대표 확대 등을 통해 새로운 정치세력의 정치권 진입 가능성을 넓혀야 한다. 정치권은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감동을 줄 수 있는 정치적 구호와 이슈를 개발하는 데 노력해야 한다.

정치권에서는 아직 희망이 안 보인다. 사회운동의 역할이 더 요구되고 있다. 문화영역도 중요하다. ‘천개의 바람이 되어’처럼 “기억하겠다”,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공감을 주는 노래를 만든다든지, 문예활동을 정치사회 영역과 연계하는 것도 해봄직하다.

사회 안선희 기자, 정리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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