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성 무너진 나라] ⑤ 비정규직에 맡겨진 안전
전체 노동자 46%가 비정규직
임금은 정규직의 절반도 안돼
공공기관도 5년간 2만5천명 늘려
서비스·안전 등 질적 문제 생겨
전체 노동자 46%가 비정규직
임금은 정규직의 절반도 안돼
공공기관도 5년간 2만5천명 늘려
서비스·안전 등 질적 문제 생겨
‘세월호 참사’ 뒤 선장을 비롯한 세월호 선원 상당수가 기간제 계약직 노동자였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 비정규직 남용 실태를 다시 한번 드러냈다. 특히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의 책임의식, 윤리의식 마비에 대한 비판과 함께, 한편에선 “과연 우리의 안전과 생명을 맡긴 이들에게, 사회는 제대로 된 권한을 주고, 대우를 해주었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이 고개를 들었다. 한국 사회에 만연한 비정규직 고용 행태를 바로잡지 않는 한, ‘위험국가’를 벗어나기 힘들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의 전체 고용에서 비정규직이 차지하는 비중은 심각하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높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이 지난해 8월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를 보면, 전체 노동자 1824만여명 가운데 비정규직(기간제, 시간제, 파견·용역, 특수고용, 영세사업장 임시직 노동자를 포함)이 차지하는 비율은 46.1%(837만명)에 이른다. 그나마 노무현 정부 말기이던 2007년 3월 55.8%로 정점을 찍고 줄어든 수치가 이렇다.
한국 경제 절반을 떠받치는 이들의 삶은 매우 열악하다. 김 위원의 분석 결과 이들의 임금은 정규직 노동자의 49.7% 수준이다. 지난달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13년 고용 형태별 근로실태 조사 결과’를 보면 일일노동자의 국민연금 가입률은 9.5%로 1년 전에 비해 5.0%포인트 더 떨어졌고, 파견노동자의 국민연금·건강보험·산재보험 가입률도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조 가입률은 전해보다 0.3%포인트 떨어져 1.4%에 그쳤다.
기업들은 비정규직 관련 법들의 각종 규제를 피하기 위해, 민법의 적용을 받는 도급제도 등 간접고용을 활용해 사실상의 비정규직을 늘리고 있다. 현대자동차 등 자동차 완성업체는 물론이고 삼성전자서비스, 에스케이(SK)브로드밴드, 엘지(LG)유플러스 등 전자통신 서비스업체에 이르기까지 불법파견 논란이 끊이지 않는 까닭이다. 노동계는 최근 케이티가 8000여명을 희망퇴직시킨 까닭도 값싼 간접고용 노동자로 대체해 이들 경쟁업체와 맞서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하고 있다.
비정규직은 정규직보다 인건비가 적게 드는데다, 기업이 필요할 때는 언제든지 ‘정리’가 가능한 고용형태다. 이 과정에서 기업은 ‘노동력의 유연성’을 확보했지만, 노동자들은 ‘삶의 안정성’을 잃어버렸다. 10대 대기업의 70개 상장 계열사가 444조원이 넘는 사내 유보금을 금고에 쌓는 동안, 전체 노동자 열명 중 두 사람(21.3%)은 한달 소득이 120만원에도 못 미치는 저임금 계층으로 전락했다. 법정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11.4%에 이른다. 윤애림 방송통신대 교수(법학)는 “현재 비정규직 문제는 대기업은 하청업체를, 하청업체는 노동자를 착취하는 구조라고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공공의 안전을 책임지고, 좋은 일자리의 모범을 보여야 할 공공부문마저 비정규직 고용을 계속 늘리고 있는 것은 이런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한겨레>가 25일 정부의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인 ‘알리오’를 통해 295개 공공기관의 지난 2009~2013년 고용현황을 분석한 결과, 5년 동안 기간제 5584명을 비롯해, 고용 안정성은 확보했으나 임금 수준은 정규직의 절반에 불과한 무기계약직 9747명 등 모두 2만5081명의 비정규직이 증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같은 기간 정규직 증가분(1만5077명)을 훌쩍 넘어선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노동자가 저임금·불안정 노동에 내몰리는 상황은 우리 사회의 기본적인 공공성을 무너뜨리고 노동력의 질을 떨어뜨려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지적한다. 정이환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노동사회학)는 “기업이 이윤을 추구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사회적 의무가 있다. 사회는 기업이 노동자들에게 제대로 된 대우를 하라고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우리나라의 고용구조는 고용 불안정성, 임금 불평등, 비정규직 비율 등 여러 면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는 찾기 어려운 극단적인 유형”이라며 “이 때문에 기업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안전과 질 모두 문제가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제부터라도 고용구조의 틀을 새로 짜야 한다고 지적한다. 노동계는 상시지속적 업무에는 반드시 정규직을 쓰도록 하고 비정규직을 쓸 때는 그 사유를 엄격히 제한하는 방식으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1997년 말 외환위기 이후 17년 동안 폭주해온 ‘비정규직 기관차’에 제동을 걸자는 얘기다.
단기적으로는 오는 6·4 지방선거에서 좋은 일자리 확보를 공약으로 내세우는 후보에게 표를 던지는 전략적 선택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이번 선거에서 비정규직을 줄이고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낼 단체장을 뽑아 지역과 변방에서부터 중앙정부의 정책 변화를 압박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단체인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의 박점규 집행위원은 “핵심적인 안전과 생명을 다루는 업무를 비정규직에게 맡기면서도, 그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안전업무를 외주화한 지하철을 비롯해 우리는 매일 세월호를 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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