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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사과는커녕 1원도 보상 못한다?
반년 만에 상해버린 ‘욕설 우유’의 ‘상생 협약’

등록 2014-01-05 17:32수정 2014-01-13 15:46

‘2013년 을들’ 지금 안녕하십니까
① ‘남양유업 욕설’ 공개 김웅배씨

2012년 대통령 선거 때 불붙은 경제민주화 요구는 지난해 ‘갑의 횡포’에 대한 잇단 고발로 터져나왔다. 지난해 5월 ‘남양유업 욕설’ 폭로는 ‘을’들의 가슴 깊이 쌓인 분노를 터뜨렸다. 어떤 편의점주는 억울함을 알리려고 스스로 목숨을 끊기까지 했다. ‘갑’들은 앞다퉈 나와 국민 앞에 고개 숙였고 계약서에서 ‘갑-을’은 사라졌다. 그로부터 7개월여 지난 지금, ‘을’들은 과연 안녕한 새해를 맞이하고 있을까? 지난해 <한겨레> 지면에서 피눈물을 흘렸던 ‘을’들을 다시 만나봤다.

‘남양유업 욕설 파문’ 폭로 김웅배씨 인터뷰
“보상도 사과도 포기…그저 잊고 싶은데 잊혀지지가 않아”

김웅배(53)씨
김웅배(53)씨

“배상도 사과도 포기했어요. 그저 잊고 싶은데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3일 <한겨레> 취재진을 만난 김웅배(53·사진)씨는 담배부터 찾아 물었다. 김씨는 지난해 5월 남양유업 영업사원이 대리점주였던 자신에게 퍼부은 욕설 음성파일을 공개했던 일을 다시 꺼내고 싶어하지 않았다.(<한겨레> 2013년 5월9일치 6면 “매번 욕…그날 하루만 그런 게 아니었다”)

당시 김씨의 폭로로 ‘갑의 횡포’가 사회적 이슈로 등장했고, 남양유업 불매운동이 불붙었다. 남양유업은 대표이사 등이 대국민 사과에 나섰고, 피해대리점협의회와 상생협약을 맺었다. ‘경제민주화’가 곧 이뤄지는 듯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반년여가 지난 지금까지 김씨는 사과는커녕 배상 한 푼 받지 못했다. 지난해 10월 회사와 대리점주 쪽이 함께 구성한 피해배상기구인 중재판정부에서 이달 22일 배상액수를 결정하게 되지만, 김씨는 “포기했다”. “남양유업 쪽에서 저에 대해서는 1원도 배상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제가 취급한 치즈는 우유와 달리 유통기한이 길고 대리점주 시절 판매장려금 7500만원을 지원했다는 이유라더군요.”

남양유업이 2007년부터 2013년 5월까지 거의 모든 대리점에 유통기한이 임박한 제품 등을 강제할당했다고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게 지난해 7월이었다. 발표를 보면, 남양유업의 밀어내기 물량은 전체 대리점 공급량의 20~35%에 이르렀다. 김씨는 합의가 성급했다는 생각이다. “설사 물량 밀어내기에 대한 배상이 이뤄진다 해도 (본사 직원 등에게 상납했다는) ‘떡값’이나 정신적 피해에 대한 배상은 없어요. 당시 섣부른 소송 취하 합의로 완전한 배상이 어렵게 된 거죠.”

지난 5월9일 김웅 대표이사 등 남양유업 임직원들이 물량 밀어내기 등 강압적 영업활동에 대한 사과의 뜻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다. 김봉규 기자
지난 5월9일 김웅 대표이사 등 남양유업 임직원들이 물량 밀어내기 등 강압적 영업활동에 대한 사과의 뜻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다. 김봉규 기자

상처는 더욱 커졌다. 김씨의 대학 졸업반 아들은, 아버지가 당한 ‘욕설 음성파일’을 접하고 충격에 빠져 밤마다 이갈이 증상이 생겼다. 치료용구를 끼고서야 잠자리에 드는 아들에게 김씨는 말 한마디 못했다. 그의 마음에도 상흔이 깊다. “전국민 앞에서 병신 된 거죠. 동창회 나가서 얼굴을 들 수가 없었습니다. 동창들이 ‘아들뻘 영업사원에게 욕을 듣고 한마디도 못했냐’고 하더군요.” 그는 “지우고 싶은 기억을 지워주는 기술이 있다면 욕설 들은 당시 기억을 지우고 싶다”고 했다. 그는 그래도 음성파일 공개를 후회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밀어내기로 신용불량자가 된 대리점주들의 모습이 너무 짠했으니까요.”

김씨는 유제품 개인영업을 하고 있지만 한달에 100만원 벌기도 힘겹다. 영업장 월세와 차량 유지비를 대기도 빠듯하다. 대학생인 두 아들의 등록금도 내야 하고, 2008년 금융위기 때 집을 지어 떠안은 부채의 이자도 다달이 150여만원이 나간다. 김씨는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까지 유제품 영업을 하고 오후 2시부터 밤 10시까지는 건물관리인으로 일하며 생계를 꾸린다.

그의 바람은 그리 큰 게 아니었다. “우리 식구들 아껴 사느라 겨울에 난방 한번 제대로 못했습니다. 집에서도 외투 껴입고 양말 신고 있어요. 배상이 제대로 이뤄지면 이번 겨울은 따뜻하게 보내고 싶었는데….” 그는 “다 잊고 아들들 졸업하면 더 절약해서 빚 원금 갚아 나가야겠다는 생각뿐”이라고 말했다.

남양유업과 대리점협의회는 여전히 배상안을 협의중이지만, 분위기는 6개월 전과 사뭇 다르다. 피해 대리점주들은 배상에 대한 언급 자체를 꺼렸다. 한 대리점주는 “협의중인 내용이 언론에 나올 경우 남양유업이 이걸 구실로 협의를 깰까봐 두렵다. 정당한 배상 요구에 대해 경제신문 등 보수언론들은 ‘돈을 밝힌다’고 비난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협의도 진통을 겪고 있다. 그는 “대리점주들은 공정위 조사 등을 바탕으로 밀어내기 물량을 전체 공급량의 23%로 보고 있지만 남양유업 쪽은 1% 미만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공정위 조사조차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일그러진 대리점주의 표정에, 지난해 남양유업 경영진이 고개 숙이던 모습이 겹쳐졌다.

김효진 기자 jul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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