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지법 16차 공판서 결정
“추측” “기사 의존” 등 사유로
국정원 수사보고서만 10여건
“부실보고서로 예단 유도” 비판
“추측” “기사 의존” 등 사유로
국정원 수사보고서만 10여건
“부실보고서로 예단 유도” 비판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등의 내란음모 사건 공판에서 국가정보원이 법원에 증거로 제출한 수사보고서 10여건이 ‘수사관의 추정’이나 ‘전해 들은 전문(傳聞) 증거’라는 등의 이유로 줄줄이 증거 채택이 보류됐다. 재판부가 검찰 쪽 증인 98명 중 절반 이상을 신문한 가운데 국정원 수사보고서들의 증거능력을 두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9일 수원지법 형사12부(재판장 김정운) 심리로 열린 16차 공판에서, 재판부는 ‘한동근(구속 기소·통합진보당 전 수원시위원장)씨의 집에서 압수한 외장하드 등을 복구해 북한 원전자료 문건 중 일부를 확인했다’는 국정원 수사관 박아무개씨의 수사보고서에 대해 증거 채택을 보류했다.
박씨는 “한씨가 아르오(RO·혁명조직)의 보안수칙에 따라 삭제한 것으로 안다”고 진술했다가, 재판부가 그 근거를 묻자 박씨는 “추측이다”라고 대답했다. 한씨 등의 변호인단은 “변호인과 피고인의 입회 없이 암호를 푼 것은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며 증거 채택을 보류했다.
재판부는 △김홍열(구속 기소·통합진보당 경기도당 위원장)씨의 피시 파일에 있던 내용대로 실험했더니 사제 폭탄이 실제 폭발했다는 국정원 수사보고서 △이른바 ‘5월 모임’에서 나온 기간통신시설인 혜화전화국 파괴 때 입을 피해에 대한 수사보고서 △김일성 주석의 비밀 교시 중 ‘결정적 시기’에 관한 월간 <북한> 자료 등은 동료한테서 전해 듣거나 잡지에 실린 것이어서 ‘전문증거’ 소지가 있다고 봤다.
이 의원이 국방부에서 국회 상임위 활동과 무관한 군 관련 자료를 수집해 활용하면서 내란 목적의 징후가 확인됐다는 수사보고서도 증거 채택이 보류됐다. 전시작전통제권 회수 등 6건은 대정부질의를 위해 총리실에서 받은 것이라는 점 등이 드러나면서였다.
이밖에 “증거로 채택되지 않은 녹취록 인용” “신문 기사나 인터넷에 의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전해 들음” “수사관의 개인적 추측” “입수 경위 불분명” 등이 증거 채택 보류 이유였다.
수원지법 관계자는 “검찰이 재판부에 낸 증거 목록은 500쪽으로 방대한 분량이다. 보류 결정이 곧 증거로 채택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지만, 증거가 확실하다면 재판부가 그렇게 했겠느냐”고 말했다.
검찰과 국정원이 확정되지 않은 사실을 수사보고서로 제출함으로써 재판부의 예단을 유도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1심에서 무죄 판결이 난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의 항소심에서 피고인을 대리한 김용민 변호사는 “부실 수사보고서도 재판부 판단에 영향을 줬다면 나중에 증거로 채택되지 않아도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둔 셈이다. 최근 국정원이 이런 방법을 많이 쓰는데, 이는 확정된 증거로만 유무죄를 판단하는 공판중심주의를 위협하는 처사”라고 말했다.
수원/홍용덕 기자 dh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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