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동욱 검찰총장이 사퇴를 선언한 지난 13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을 나서며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수사 대상 아닌 한 알 길 없어
병원·학생부 통해 알아낸 듯
학생·부모 동의 없으면 불법
병원·학생부 통해 알아낸 듯
학생·부모 동의 없으면 불법
청와대가 채동욱(54) 검찰총장의 ‘혼외 아들 의혹’과 관련해 당사자들의 혈액형을 파악해 검찰을 압박(9월14일치 1면 단독기사 ‘채동욱 찍어내기 청와대 직접 압박’ 참조)한 과정에서 적법한 절차를 거쳤는지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 본인이 아니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민간인의 혈액형 등 개인정보를 국가기관을 동원해 들여다보고 이를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했다면 ‘민간인 사찰’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15일 수사기관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국가기관이 공무원 신분인 채 총장 외에 <조선일보>가 당사자로 지목한 임아무개(54)씨와 임씨 아들(11)의 혈액형 정보를 확인할 ‘정상적이며 적법한 경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수사 경험이 풍부한 서울지역 일선 경찰서의 한 형사과장은 “국가기관에서 민간인의 혈액형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특정 인물이 수사대상이 돼야만 학교나 병원을 통해 알아볼 수 있다”고 잘라 말했다. 다른 경찰서의 한 강력계장은 “범죄 피의자들이야 유전자 정보를 관리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민간인의 정보를 국가나 수사기관이 어떻게 알겠느냐”고 반문했다.
혈액형 정보 유출의 경로는 군대·병원·학교 등 몇 가지로 압축된다. 군대를 통한 유출의 경우 여성인 임씨와 미성년인 아들에게는 해당하지 않는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각급 병원이 주고받는 건강보험 관련 정보에는 진료와 처방 기록 등만 기재될 뿐 혈액형 기록은 없다. 다만 개별 병원이 보관하는 진료 기록에는 환자의 혈액형 기록이 남아있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입원 치료나 수술을 받았을 경우에만 해당된다. 피부과나 안과 등 간단한 시술 치료를 받은 경우에는 혈액형 검사를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임씨 아들의 혈액형은 해당 초등학교의 학교생활기록부를 통해 흘러 나갔을 가능성이 높지만, 이는 엄연한 불법이다. 현행 초·중등교육법은 범죄 수사나 상급 학교 진학, 학술 목적 등의 예외규정 외에는 “학교생활기록과 건강검사기록을 해당 학생과 학생의 부모 등 보호자의 동의 없이 제3자에게 제공하여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미성년자 역시 개인정보와 관련한 ‘자기결정권’을 갖는다. 지난 7월에 국가인권위원회는 “당사자의 동의없이 다른 기관이 학생기록부 등 개인정보를 수집·관리하는 것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권고한 바 있다.
박주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무차장은 “어떤 법조항에도 수사 등의 정당한 목적 없이 국가기관이 민간인의 혈액형과 같은 생체 정보를 파악하거나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할 수는 없게 돼 있다. 엄밀히 따지면 이는 민간인 불법사찰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송호균 정환봉 기자 ukno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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