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법무부 장관
원세훈 선거법 위반 기소로
정권의 눈엣가시로 찍혀
김기춘 등 공안통 귀환하면서
지난달부터 ‘채 총장 사퇴설’
검찰 “수사 중립·독립성 무너져
앞으로 5년이 더 문제” 비판
정권의 눈엣가시로 찍혀
김기춘 등 공안통 귀환하면서
지난달부터 ‘채 총장 사퇴설’
검찰 “수사 중립·독립성 무너져
앞으로 5년이 더 문제” 비판
채동욱(54) 검찰총장의 사퇴를 둘러싼 일련의 흐름을 보면 잘 짜인 ‘시나리오’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동안 풍문으로만 돌던 청와대의 채 총장 ‘찍어내기’는 청와대 민정수석실 공직기강팀의 사퇴 압박 정황이 확인되면서 서서히 ‘퍼즐’이 완성되는 모양새다. 청와대가 각본·감독·제작한 것으로 보이는 채 총장의 ‘혼외 아들’ 의혹 드라마는 결국 채 총장의 사퇴로 막을 내렸다. 이번 사태를 기점으로 검찰을 직접 ‘장악’하겠다는 청와대의 의도가 분명해지면서 향후 검찰 수사의 독립성·중립성이 훼손될 우려가 커졌다.
채 총장이 청와대의 눈밖에 난 배경의 중심에는 국가정보원의 대선 여론조작 및 정치개입 의혹 사건 수사가 자리잡고 있다. 채 총장은 지난 4월 검찰의 대표적인 특수·공안통 검사들로 특별수사팀을 꾸려 국정원에 대한 고강도 수사를 진행했다. 원세훈(62)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55) 전 서울지방경찰청장 등이 지난해 12월 대선에서 여권을 측면 지원했다는 의혹을 규명하는 수사인 탓에 사실로 드러날 경우 정권의 정당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조성된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검찰 수사 막바지 단계에서 황교안(56) 법무부 장관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황 장관의 지시는 사실상 청와대의 의중이 반영된 것과 다름없다. 그러나 채 총장은 지난 6월 선거법 위반 혐의 적용을 관철해, 원 전 원장과 김 전 청장 등을 기소하는 뚝심을 보였다.
청와대로선 검찰의 기소 이후 국정원 개혁 문제가 정국 이슈로 떠올랐고 여야 대치 국면이 장기화하면서 채 총장이 더욱 ‘눈엣가시’가 됐을 법하다. 채 총장 ‘찍어내기’ 작업은 지난달 초 검찰 출신의 ‘올드 보이’들이 청와대에 ‘귀환’하면서 본격 담금질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허태열 비서실장과 곽상도 민정수석을 각각 김기춘 비서실장, 홍경식 민정수석으로 전격 교체했다. 김 비서실장은 21년 전에 법무장관을 지냈고, 홍 민정수석은 채 총장보다 사법연수원 6기수 선배다. 황 장관은 채 총장보다 한 기수 선배다. 검찰 관계자는 당시 인사를 놓고 “채 총장이 전방위로 포위된 느낌이다. 검찰이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조선일보>의 ‘혼외 아들’ 의혹 보도에 법무부가 감찰 카드로 맞장구친 것도 잘 짜인 시나리오에 따라 이뤄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검찰 관계자는 “이 사건은 시나리오를 만들어 놓고 진행된 것이다. 일단 진실이 뭐든 언론이 사생활을 치사하게 건드리고 당사자가 해명하면 꼬투리를 잡아서 계속 상황을 키워서 썼다. 그러면 마지막에 우리(청와대)가 정리하겠다는 연출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다른 검찰 관계자는 “30~40년 전에 중앙정보부가 쓰는 수법과 뭐가 다른가. 마음에 안 드는 고위공직자 뒤를 캐서 진실이 무엇이든 사생활 문제를 폭로하고 그걸로 나가라는 꼴이다. 내보내고는 싶은데 마땅한 명분이 없으니까 <조선일보>를 동원해서 협박한 뒤 말을 안 듣자 솎아 낸 것과 같다”고 말했다.
검찰 안팎에선 실제 지난달 말부터 채 총장의 사퇴설이 청와대 주변 인사들을 통해 돌고 있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검찰 관계자는 “청와대 보고 라인에서 대통령에게 국정원 사건의 선거법 위반 혐의 적용이 안 된다는 내용의 단일 보고를 올렸다고 한다. 그런데 검찰이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를 하니까 항명으로 받아들인 것 같다. 이 때문에 청와대에서 신뢰를 잃는 등 피해를 본 청와대 인사가 이번 작업을 진행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검찰 관계자는 “청와대가 채동욱 총장을 자기들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 건 다 아는 사실이다. 최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참여 인사들이 저녁 모임을 가졌는데 핵심 인사였던 한 교수가 ‘추석 전에 채 총장을 날릴 거다’라는 언급을 했다고 들었다. 청와대 한 인사가 최근 같은 지역 출신의 검사들에게 전화해 ‘채 총장 조만간 사퇴하니 줄 서지 말라’고 경고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움직였다는 정황은 검사들 입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검찰의 한 간부는 “민정수석 쪽에서 최근 전화가 왔는데 ‘채 총장 오래 못 간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다른 검찰 간부는 “<조선일보> 보도 전에 민정수석실 관계자한테서 채 총장의 혼외 자식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던 적이 있다. 그 뒤 <조선일보> 보도를 보니 같은 내용이었다”고 말했다.
특정 사건과 관련해 정권의 ‘비위’를 거슬렀다는 이유로 청와대가 검찰총장의 옷을 벗긴 ‘나쁜’ 선례는 두고두고 검찰에 부담이 될 전망이다. 검찰의 독립성과 중립성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새로운 검찰총장이 누가 오든 청와대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검찰총장의 임기제(2년)는 이번 사태로 사실상 폐기된 것과 다름없는 꼴이 됐다. 검찰 관계자는 “문제는 앞으로 5년이다. 이렇게 치졸하고 비열한 방법으로 총장 임기제를 무너뜨리면 새 총장이 누가 오든 검찰은 독립적으로 수사를 할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김정필 기자 fermata@hani.co.kr
김기춘 비서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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