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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검사들 “권력의 시녀 되란 말” 격앙

등록 2013-09-13 19:50수정 2013-09-24 11:11

대검찰청 간부들이 13일 오후 사의 표명 뒤 아직 집무실에서 내려오지 않은 채동욱 검찰총장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대검찰청 간부들이 13일 오후 사의 표명 뒤 아직 집무실에서 내려오지 않은 채동욱 검찰총장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대검 간부 “이제 수사 어찌 하겠나. 유신시대가 온 것”
일부 검사들 “사표내고 싶다”…사무실서 거친 욕설도
“검찰한테 권력의 시녀가 되라는 말이다.”

채동욱(54) 검찰총장에 대한 황교안(56) 법무부 장관의 ‘감찰’ 지시와 채 총장의 사퇴 소식을 접한 검사들은 13일 격앙된 반응과 함께 분노와 허탈감을 쏟아냈다. 이날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에서 만난 검사들은 고개를 숙인 채 입술을 앙다물었고, 문이 닫힌 사무실에선 거친 욕설이 새어 나왔다. 몇몇 간부들은 눈물을 글썽였다. 일부 검사는 “장관도 명예를 지키려면 지금 사표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1시21분께 ‘법무부가 검찰총장을 감찰하겠다’는 내용의 보도가 나오자 외부에서 식사중이던 대검 간부들은 황급히 자리를 정리하고 청사로 돌아왔다. 법무부가 채 총장을 감찰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치자 대검이 ‘부당하다’며 거부했고, 이에 법무부가 일방적으로 언론에 알렸다는 얘기도 나온다. 총장은 감찰 사실을 보고받은 뒤 즉시 사퇴 의사를 밝혔다. 채 총장은 오후 2시30분 대변인을 통해 사퇴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힌 뒤 오후 3시께 마지막 간부회의를 열고 신변을 정리했다. 간부들은 모두 비장한 표정이었다고 한다.

일선 검사들은 ‘독립성이 생명인데, 이제 검찰은 죽었다’며 탄식했다. 대검의 한 간부는 “직무 독립이 검찰의 존재 근간이다. 오늘의 사태는 대놓고 검찰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행위가 아니냐.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간부도 “이제 무슨 수사를 할 수 있겠느냐. 할 사건이 많은데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이다. 검찰뿐 아니라 다른 모든 기관의 장에게 정권의 뜻을 거스르면 목을 치겠다는 확실한 사인을 준 것 아니냐. 이제 유신시대가 온 것”이라고 말했다.

한 부장검사는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을 강압에 의해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게 국헌문란이다. 이게 바로 국헌문란 행위”라고 토로했다. 한 검사장급 간부는 “채 총장을 쫓아낸 것은 검찰한테 권력의 시녀가 되라는 얘기”라고 반발했다.

많은 검사들은 ‘정치 검찰’ 논란을 빚었던 이명박 정권 때를 떠올리며 착잡한 심정을 드러냈다. 한 부장검사는 “좀 버티시지. 이렇게 나가면 앞으로 남은 기간 동안 우리가 어떻게 버티냐. 이렇게 나가버리면 검찰 조직은 만신창이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부장검사도 “사람을 내보낼 때는 명분이 있어야 한다. 정권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이렇게 수모를 주고 밀어내도 되느냐. 이명박 정부 땐 적어도 공적인 업무에서의 일을 시비 걸어 명분을 만들어 밀어냈다. 이 정권은 그때보다 더하다”고 말했다. 한 검사는 “도대체 무슨 일을 감찰하겠다는 것이냐. 이른바 혼외 아들 논란이 감찰 대상이나 되느냐. 이건 채 총장한테 물러나라고 확실한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라고 격한 반응을 보였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오후 6시께 검사들에게 ‘논란 조기 종식을 위해 진상조사를 지시했는데 총장이 사퇴해 안타깝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낸 것을 두고 일선 검사들은 “총장을 두번 죽이는 글”이라며 격분했다. ‘장관 동반사퇴’를 주장하는 목소리도 컸다. 한 검사는 “장관도 검사들에게 어느 정도 신망이 있다. 장관이 이런 일을 했다고 믿지 않는다. 명예를 지키려면 지금 옷을 벗어야 한다”고 말했다. 검찰 내부통신망인 ‘이프로스’에는 총장을 물러나게 한 이번 사태에 대해 분통을 터트리는 평검사들의 글들이 속속 올라오기도 했다. 일부 검사들은 “사표를 내겠다”며 격앙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격한 감정을 추슬러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한 대검 간부는 “일부 검사들 사이에서 사표 얘기도 나오지만, 검찰 조직을 위해 총장이 직까지 던졌다. 우리라도 조직을 안정화시켜야 한다”고 우려했다. 또다른 간부도 “‘조직의 동요를 막으라’는 게 총장의 뜻이다. 오늘만큼은 그 뜻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검찰 내부에서 신망을 받던 채 총장을 정권 차원에서 밀어냈고, 이에 대한 검사들의 반발도 커 검찰이 쉽게 안정을 찾기는 어려워 보인다는 관측이 많다.

김원철 김정필 기자 won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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