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 검거 실적 한자릿수 ‘미미’
“외국정보수집 방첩에 집중해야…
검·경 대공수사로 대체 가능”
“외국정보수집 방첩에 집중해야…
검·경 대공수사로 대체 가능”
“수사권을 부여해도 과거와 같은 공작정치나 인권침해를 용인할 정치·사회환경이 아니다. 국회 정보위원회와 검찰·법원 등에 의한 통제·감시가 강화됐다. 본연의 기능을 일탈하는 것은 전혀 불가능하다.”
1996년 12월 당시 신한국당(새누리당의 전신)은 ‘일탈은 불가능하다’는 논리를 제시하며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에 국가보안법의 고무·찬양·불고지죄에 대한 대공수사권을 ‘부활’시키는 법안을 날치기 통과시켰다. 1993년 12월 안기부 대공수사권 전면 폐지를 놓고 논란이 벌어지자, 일부만 폐지하기로 여야가 합의한 지 꼭 3년만이었다.
국가정보원이 가진 대공수사권 폐지는 국정원 개혁이 화두가 될 때마다 최우선 해결 과제였다. 이른바 국정원의 ‘셀프개혁안’ 제출을 앞두고 새누리당은 “대공수사권을 폐지하면 간첩은 누가 잡느냐”고 주장하며, 대공수사권 존치를 사실상의 당론으로 정했다.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의 내란음모 사건은 이러한 여당의 주장에 날개를 달아줬다.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은 10일 “북한과 연계된 간첩은 국내뿐만 아니라 중국 등 해외에 조직을 두고 접선이 이뤄진다. 게다가 북한 정보를 함께 다뤄야 한다. 이를 통일적으로 수행할 조직은 국정원밖에 없다”고 했다. 이런 논리는 1993년 안기부 대공수사권 폐지가 검토되던 시점에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안기부와 신한국당은 검찰·경찰이 갖지 못한 해외정보 수집 역량 등을 대공수사권 폐지 반대 논리로 제시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경찰이나 검찰의 기존 대공수사 기능을 강화해도 국정원 기능을 대체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국정원 해외정보 역시 외국 정보기관들처럼 ‘정보=보안=책임공유’ 체제를 통해 검경에 제공할 수 있다. 국정원 내부 조직을 잘 아는 한 인사는 “수사권에는 대공수사권 말고도 방첩수사도 있다. 방첩은 정보기관만이 할 수 있는 중요 파트이기 때문에 당연히 살려둬야 하지만 대공수사권은 굳이 국정원이 고집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외국의 스파이 활동 등을 관장하는 방첩기능에 정보기관 역량을 모아야지, 실적도 미미하고 대체할 조직도 있는 대공수사 기능에 목을 맬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수도권의 경찰 보안수사 담당자도 “대공수사 기능이 하나로 합쳐지면 그 역량도 더욱 강화된다. 경찰도 충분히 국정원이 하는 정도의 기능을 담당할 수 있다”고 했다.
국가보안법 전체 입건자 수(신규 사건 기준)는 이명박 정부 첫해인 2008년 46명을 기록한 데 이어 2009년에는 56명, 2010년 97명, 2011년 90명, 2012년 112명이었다. 대부분이 인터넷에 이적표현물을 게시한 혐의 등이다. 국정원이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대공수사권은 주로 간첩죄를 밝혀내는 데 집중된다. 문제는 현실 속의 간첩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점이다. 국정원과 검찰 자료를 보면, 지난 5년간 검거된 간첩은 모두 25명이다. 2008년에는 한명도 없다가 이듬해 2명이 검거됐다. 2010년에는 10명, 2011년 5명, 2012년 8명으로 한자릿수를 넘기도 버겁다.
간첩을 잡아낸 국정원 대공수사의 질도 떨어진다. 지난달 국정원의 강압 수사 논란이 일었던 ‘서울시 탈북 공무원 간첩사건’에서 1심 법원이 간첩 혐의에 대해 무죄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정보기관이 국내정보와 수사 기능까지 수행하는 예는 과거 소련의 국가보안위원회(KGB)나 동독의 슈타지 정도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남북분단이라는 특수상황이 정보·수사 통합론의 근거가 되기도 하지만, 우리처럼 분단 상황 아래 있었던 서독은 수사는 물론, 해외·국내정보 기능까지 따로 분리해 운용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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