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화장실을 청소할 때 경자씨는 투명인간으로 취급받기 일쑤다. 휴식 시간에도 그는 남들 눈에 띄지 않는 작고 밀폐된 공간에서 숨죽이며 지낸다. /한겨레 박승화 기자
무시, 나는 남성·여성 아닌 제3의 성이다
“새벽에 혼자 일하다 보면 우렁각시가 된 것 같다우.”
서울의 한 대학에서 9년째 청소 일을 하는 김경자(가명·62)씨가 멋쩍게 웃는다. 뭔가 엇박자다. 청소용 작업복에 장화를 신은 그의 모습은 각시와는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게다가 얼굴엔 주름이 깊이 팬 60대 여성이 아닌가! ‘투명인간’ 혹은 ‘유령’이라는 말을 내심 기대한 기자에겐 우렁각시란 표현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남들 눈에 띄지 않게 일한다는 의미에선 맥락이 닿아 있지만, ‘우렁각시’란 표현에는 청소 일에 대한 그만의 자긍심이 묻어났다.
대학 본관 건물 청소를 담당하는 김경자씨의 알람시계는 새벽 4시에 울린다. 나이를 먹으면 새벽잠이 없어진다고들 하지만, 그에겐 4시 기상이 여전히 고역이다. 출근 준비를 마치고 학교에 도착하면 5시가 된다. 퇴근 시간이 오후 3시인 걸 감안하더라도 이른 출근임이 분명하다. 도대체 해도 뜨기 전에 청소를 서둘러야 하는 이유는 뭘까.
“원래 정해진 출근 시간인가요?”
“딱히 그런 건 아니지만… 아침 8시가 되기 전에 사무실에 나오는 분들도 있으니까 서로 부딪히지 않으려면 일찍 끝내야지.”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경자씨가 직원들의 눈에 띄지 않게 청소를 재빨리 마쳐야 하는 상황이다. 사무실 직원들이 출근한 뒤에도 청소노동자들이 쓸고 닦는 일을 계속하는 걸 불편해한다고 했다.
“사람들이 대개 청소를 너무 하찮은 밑바닥 일로 여기잖우. 그러다 보니 자기네들 눈에 안 띄게 얼른 해놓고 사라지길 바라는 게 아닌가 싶어. 그런데 안 해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이게 결코 수월한 일이 아니거든. 아무리 열심히 해도 티 안 날 때가 많고. 그런 속사정도 몰라주고 조금만 지저분한 게 보이면 툭툭 무시하는 말투로 지적하는데…. 나이 먹어서 혼나면 분하고 눈물 난다고. 그러니 미리미리 알아서 해놓는 수밖에.”
처음 청소 일을 시작할 때 가장 난감했던 장소는 남자 화장실이었다. 화장실은 오전과 오후에 각각 한 번씩 청소를 해야 하는데다 수시로 청결을 점검하는 공간이다. 화장실 크기는 건물마다 다르다. 간혹 소변기가 열댓 개쯤 되는 곳을 청소하려면 아무리 빠르게 움직여도 30분은 족히 걸린다.
난감한 상황은 남자 화장실 청소도 여성 노동자들에게 맡겨지는 데서 발생한다. 건물 내 청소 용역 업무를 하는 대다수가 여성이기 때문이다. 청소노동자들이 밀대로 바닥을 닦는데도 남자들이 아무렇지 않게 지퍼를 내리는 것은 이미 공공연하게 알려진 ‘불편한 진실’이다. 청소노동자들이 ‘투명인간’ 취급을 받게 되는 대표적 상황이기도 하다.
경자씨는 기자에게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남자 화장실을 이용해본 적이 있느냐고 묻는다. “왜 가끔 그럴 때 있잖우. 여자 화장실 줄이 너무 길어서 급할 때 남자 화장실을 기웃거리게 될 때 말이야. 그럼 엄청 눈치 살피고 들어가잖아. 남자들 있나 없나 두리번거리고, 몰래 들어가서 볼일 보고 나오면서도 괜히 뒤통수가 따갑고. 처음에는 딱 그런 느낌이었어.” 청소하러 갔다가 누군가 들어오면 얼른 자리를 피했다. 그런 횟수가 많아질수록 직원들의 호출도 잦아졌다. 화장실을 수시로 점검하지 않으면 ‘왜 이렇게 더럽냐, 여기 좀 치우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이래선 안 되겠다 싶더라고. 그래서 그때부터 ‘여긴 내 일터다, 여기서 일을 해야 봉급을 탈 수 있다’고 되뇌이니까 부끄러움도 사라졌어.” 더 이상 남자 화장실은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는 공간이 아니었다. 청소하러 들어가면 가끔 소변보다가 자세를 고쳐잡는 사람들도 있지만 별다른 의식을 하지 않는 이들이 더 많았다. 그들에게 나이 지긋한 청소노동자들은 남성도 여성도 아닌 ‘제3의 성’일 뿐이었다. 경자씨도 그저 묵묵히 할 일을 하고 나오면 그만이었다. “볼일 보는 사람이나
청소하는 우리나 순간적으로 아무도 없는 텅빈 공간으로 인식하는 것 같다”고 그는 말했다.
분명 사람이 있는데 마치 보이지 않는 것처럼 취급받는 일이 비단 화장실에서만 일어나는 건 아니다. 건물 바깥에서 빗자루로 바닥을 쓸고 있을 때도 종종 겪는 일이다.
“학생들이 담배 피우다 꽁초를 바닥에 버리는 경우가 많아. 그걸 우리가 바로 옆에서 빗자루로 쓸고 있으면 좀 비켜주는 게 상식이잖아. 그런데 꼼짝 안 하고 그냥 서 있어. 그럴 땐 정말 속상하지.”
‘투명인간’으로 취급받지 않으려면 최소한의 ‘소통’이 필요하다는 쪽으로 생각이 미쳤다. 민망한 상황이 연출되기 일쑤인 화장실을 비롯해 청소하는 공간에서 경자씨는 사람들이 지나가면 “안녕하세요?” 하고 먼저 인사를 건넸다. 툭하면 막히는 남자 소변기에는 ‘껌과 휴지는 버리지 말아주세요’라는 문구를 붙여놨다.
“우리가 일할 때 ‘수고하십니다’라는 말 한마디만 해줘도 엄청나게 감동할 텐데, 그런 작은 배려를 받는 게 쉽지 않더라고. 그나마 인사를 먼저 하기 시작하니까 지금은 받아주는 사람들이 꽤 있어.(웃음)”
출근 시간이 너무 이르다 보니 아침밥은 건너뛰기 일쑤다. 오전 청소를 마무리하는 10시쯤 되면 땀으로 범벅이 돼 있는 경우가 많다. 휴식이 필요한 시간이란 뜻이다. 그는 매일 아침 건물 내 여자 화장실 한쪽에서 달달한 ‘모닝커피’ 한 잔을 즐긴다. 때론 점심 도시락도 그곳에서 해결한다. 왜 굳이 화장실일까.
“여기가 볼일 보는 데지, 뭘 먹는 데가 아니라는 건 우리도 잘 알지. 먹다 보면 볼일 보고 물 내리는 소리를 들어야 하고 방귀 뀌는 소리도 고스란히 들어야 하잖아. 처음에는 밥이 잘 안 넘어가더라고. 지금은 면역이 돼서 아무렇지 않게 먹지만!”
이유는 간단했다. 신축 건물이든 아니든, 대학 건물을 지을 때 청소노동자들을 위한 휴식 공간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건물 1층 계단 밑에 있는 비품 창고를 휴게실로 이용하는 게 전부였다. 두 평도 안 되는 작은 창고 안은 한여름이 아닌데도 벌써 후텁지근했다. 그나마 창문이 있고 공간이 넓은 편인 화장실 안에서의 휴식도 최대한 눈에 띄지 않도록 강요받는다. “여기서 음식을 먹으면 어떡하느냐”며 눈을 흘기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결국 경자씨는 변기 칸 옆에 비품을 쌓아두는 작은 공간을 그만의 휴게 공간으로 삼았다. 쓰레기통을 거꾸로 엎어놓고 스티로폼을 깔아서 간이 의자로 쓸 수 있게 만들었다. 한 평도 안 되는 작은 공간에는 미니 선풍기와 커피믹스, 옷걸이 등이 잘 정돈돼 있었다. 문을 닫으면 아무도 그를 발견하지 못한다. 휴식 시간에도 그는 영락없는 ‘투명인간’이었다.
지난해 동료들과 노동조합을 결성한 뒤로는 점차 노동여건이 나아지고 있다. 만 70살까지 고용을 보장받게 됐고 월 70만 원에 그치던 급여(실수령액 기준)도 110만 원 수준으로 올랐다. 지난 명절에는 난생처음 ‘떡값’도 손에 쥐어봤다. 행여라도 잘릴까봐 벙어리 냉가슴만 앓던 사이, 대등한 협상이 이루어져야 할 사용자와의 관계에서도 ‘투명인간’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고 그는 말했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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