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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내 남편 죽음까지 이르게 한 사람
자기는 총겨눈 손 다쳐 아프다 해”

등록 2013-05-21 21:06수정 2013-05-22 11:52

12·12 쿠데타에 맞서다 숨진 김오랑 소령의 육군사관학교(25기) 1969년 졸업식 기념 가족사진. 김태랑씨 제공
12·12 쿠데타에 맞서다 숨진 김오랑 소령의 육군사관학교(25기) 1969년 졸업식 기념 가족사진. 김태랑씨 제공
전두환 재산을 찾아라 ② 너무 늦게 온 정의 김오랑에 대한 세개의 기억
아내 백영옥씨 미발표 자서전 단독입수
“박종규 중령, 대세 흐름 모르고
대들다가 변 당한거라 말해”

전두환 전 대통령은 김오랑 소령의 아내 백영옥씨의 삶도 찢어놨다. 신군부는 백씨에게 남편의 죽음을 숨겼다. 김 소령의 주검은 벽제화장터에서 태워졌다. 유골이 현충원에 정식으로 안장된 것은 두달여가 지난 1980년 2월28일이다.

백씨는 남편의 죽음 뒤 시신경 마비가 심해져 완전 실명했다. 백씨는 1983년 고향 부산으로 내려가 불교 복지기관 ‘자비원’에서 전화상담 봉사를 했다. 1987년 6월항쟁으로 민주화가 이뤄지자, 백씨는 남편의 명예를 바로잡기 위해 나섰다. 중령 진급과 무공훈장 추서를 받는 것이 목표였다.

국방부는 1990년 1월 김 소령의 중령 진급을 추서했다. 그뿐이었다. 백씨는 1990년 12월 당시 현직인 노태우 대통령, 전두환 전 대통령과 군사반란 장교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려 했다. 명확하지 않은 이유로 백씨는 소송을 포기했다. <한겨레>는 1990년 12월21일치 기사에서 “외압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백씨의 삶은 더 엉망이 됐다. 술로 버티다 삶을 내려놨다. 1991년 6월28일 새벽, 백씨는 자비원 건물 아래 주차장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실족사로 결론내렸다. <한겨레>는 ‘고 김오랑 중령 추모사업회’ 운영자 김준철씨로부터 백씨의 미발표 자서전을 단독 입수해 소개한다. 189쪽 분량의 백씨 자서전은 오는 7월 정식으로 발간된다. 자서전에는 백씨를 덮친 무력감과 배신감이 드러나 있다.

신군부는 군사반란이 벌어진 새벽 김 소령이 숨진 사실을 숨겼다. 백씨는 12월14일이 돼서야 동료 장교 부인의 언질을 듣고 처음 남편의 죽음을 추정하고 전화통에 매달렸다.

“할 수 없이 집으로 돌아온 나는 사령부 비서실로 전화를 걸었다. ‘김 소령님 계세요? 자택입니다.’ 비서실에서는 당번병이 전화를 받았다. ‘비서실장님(김오랑 소령)은 지금 사령관님 수행중입니다.’ 별수 없이 수화기를 놓고 아무런 일도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믿으려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얼마가 지나자 또다시 불길한 예감이 나를 엄습했고 나는 비서실로 다시 다이얼을 돌렸다. ‘실장님 계세요? 확실한 사실을 제게 말씀해 주세요.’ 이미 내 목소리는 울음이 뒤섞였고 애원에 가까운 말투였다. 당번병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머뭇거리다가 ‘저는 이 전화를 받을 수 없어요’ 하며 다른 당번병에게 수화기를 넘겨주는 듯했다. 난 또다시 다그쳐 물었다. ‘실장님 어디 계세요?’ ‘예, 사령관님과 수행중이신 것이 틀림없어요.’ 다른 당번병과 똑같은 대답이었다. 후에 안 사실이지만 그들이 내 전화를 받을 때에는 사령관실 내에 흩뿌려진 김 소령님의 피를 청소하고 있었다 한다. 자신들이 모시고 있던 상관의 피를 닦으며 그 부인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차마 받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자서전 발췌)

무력감보다 배신감이 더 힘들게 했다. 남편을 죽인 군사반란군은 친하게 지내던 박종규 중령이었다. 박 중령은 23기로 김 소령의 육사 선배였다. 12·12 직전 부부동반 식사도 했다. 믿기 힘든 현실이었다. 백씨는 남편의 죽음의 진실을 알기 위해 박 중령을 만나려 애썼다. 결국 그해 말 가까스로 박 중령을 만났지만 돌아온 것은 냉대였다.

“그(박 중령)는 애써 감각 없는 얼굴을 짓고 앉았다. 여느 때 같으면 ‘제수씨’ 하며 반갑게 웃었을 그 얼굴이. ‘며칠 전까지만 해도 충성을 외쳤던 당신의 상관(정병주 특전사령관)에게 장교인 당신이 군화발질과 총을 쏠 수 있습니까?’ ‘당신과 같은 장교이며 후배인 김 소령 가슴에 당신의 총탄을 박을 수가 있습니까?’ 단지 그 두 마디의 말을 했을 뿐인데도 나는 이미 흥분된 상태였다. 끝까지 침착하게 사실을 확인받자고 수없이 다짐했지만, 막상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얼굴을 한 박 중령의 얼굴을 보자 도저히 감정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박 중령은 나의 따지는 듯한 태도 때문인지 얼굴을 시뻘겋게 상기시키고 언성을 높여 대답하였다. 그의 말은 김 소령은 대세의 흐름을 모르고 반항했기 때문에 그 같은 변을 당한 것뿐이라는 것이다. ‘여자인 당신이 무엇을 알겠다고 나를 찾아다닙니까? 몹시 불쾌합니다.’ 그러면서 박 중령 자신도 ‘작전’ 때 엄지손가락을 다쳤다며 내 앞에 손가락을 들이밀었다. 엄지손가락이 너무 아프다는 표정도 지었다.

내 남편은 그가 쏜 총탄에 죽음까지 이르렀는데, 총을 겨눈 손가락 하나가 다친 게 아프다는 박 중령의 태도에 망연자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욱이 자신의 위치를 떠나지 않은 사람을 대세의 흐름을 모르고 대든 반항아라니, 나는 박 중령 같은 사람이 군복을 입고 여전히 사령관실을 활보할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박종규 중령은 2011년 12월 조용히 숨졌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단 한번도 김오랑 소령과 백씨의 죽음을 애도하지 않았다. 고나무 김선식 기자 dokko@hani.co.kr

※ 전두환 전 대통령이 내지 않은 추징금 1672억원이 올해 10월 추징 시효가 만료됩니다. <한겨레>가 전 전 대통령의 숨은 재산을 찾기 위해 독자 여러분께 ‘크라우드 소싱’(crowd sourcing)을 제안합니다. <한겨레>가 제공하는 ‘잊지 말자 전두환 사전 1.0’을 마음껏 내려받으실 수 있습니다.(http://c.hani.co.kr/facebook/2139505) 여기엔 전 전 대통령의 은닉 재산을 찾는 데 실마리가 될 정보들이 들어 있습니다. 독자와 시민들이 함께 정보를 분석하고, 추가 사실을 제보하며, 취재 방향에 의견을 주십시오. 그러면 다시<한겨레>가 탐사에 나서겠습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 재산찾기 협업’은 올해 10월까지 계속됩니다.

제보 연락처: 전자우편 dokko@hani.co.kr, 트위터 @dokko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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