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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단독] 안철수 지지 자살소동남
“나는 절대 새누리당 알바가 아닙니다”

등록 2012-11-30 17:01수정 2012-12-01 17:47

11월29일 오후 대전시 중구 은행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안철수 후보 지지자 김강희씨가 직접 만든 프레젠테이션 화면을 보며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있다.
11월29일 오후 대전시 중구 은행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안철수 후보 지지자 김강희씨가 직접 만든 프레젠테이션 화면을 보며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있다.
[토요판/뉴스분석 왜] 안철수 지지자 자살소동 김강희씨
대통령후보등록 마감일이던 지난 26일 안철수 전 대통령후보 캠프가 입주한 빌딩 옆 또다른 빌딩 옥상에서 자살소동이 벌어졌다. 안 전 후보의 지지자였던 한 남자가 자신의 목에 칼을 겨눈 채 안 전 후보로의 후보단일화를 촉구했다. 야권후보승리보다 국민과 하나되는 단일화가 우선이라는 말을 남긴 그의 자살시도는 다행히 실패했고, 경찰은 불구속기소의견으로 그를 검찰에 송치했다. 그를 만나봤다.

집회·시위 한번 해본 적 없고
정치에 무관심하던 휴학생
내게 안철수는 감동이었어요
그런데 정답이라고 생각했던
번호가 날아가버린 거예요

기자들 올 줄은 알았는데
중계방송까지는 생각 못했죠
‘내 자살소동이 야권 승리에
장애물이 안 되었으면…’
그래서 인터뷰에 응했어요

남색 점퍼를 입은 40대 남자 세 명의 목소리가 대합실을 가득 울렸다. 안철수 전 대통령 후보의 대통령 후보 사퇴결정을 두고 저마다 의견을 나누던 중이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잠시 엿듣다 역사 밖 광장으로 나왔다. 광장 앞 대로변에 박근혜·문재인 후보의 현수막이 나란히 펄럭였다.

29일 오후 3시 대전역 서부광장에서 김강희(26)씨를 만났다. 김씨는 26일 사퇴한 안 전 후보의 서울 종로구 공평동 진심캠프 옆 해송빌딩 옥상에서 흉기를 들고 투신자살소동을 벌인 주인공이다. 김씨와 함께 역 주변 카페로 이동하는 길, 자신은 인터넷 상에서 의혹을 제기하듯 절대 새누리당 알바(아르바이트생)가 아니라는 말부터 꺼냈다. 그리고 대전이 초행길이라는 기자에게 김씨가 대전천 위를 가르는 목척교에 대해 설명했다. 나즈막하게 깔리는 차분한 목소리였다. 자살소동 당시 티브이로 생중계된 화면 속 남자의 날선 모습과 사뭇 달랐다.

그날 문 후보는 대전에…서울 괜히 왔나
두 후보에게 보내는 27장의 성명서 준비

안철수 지지자 김씨의 지난 1주일은 다사다난했다. 안 전 후보가 후보직을 사퇴하겠다는 기자회견을 하던 지난 23일 금요일 저녁 8시 김씨는 대전의 한 외과병원에서 경비 일을 보고 있었다. 대전대학교 건축학과를 휴학 중인 그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비를 벌었다.

와이티엔(YTN) 뉴스에서 울먹이는 안 전 후보를 보고 김씨는 충격을 받았다. 밤샘 근무를 마치고 이튿날 아침 집에 돌아온 김씨는 오후부터 안철수·문재인 후보에게 보내는 성명서를 썼다. 민주당과 문재인 후보에게 보낼 21장과 안 전 후보에게 말할 6장 등 에이포(A4) 용지 27장 분량이었다. 방송 큐시트처럼 띄어읽기 편하게 작성했다. 후보들의 예상 대답도 “예”라고 적어뒀다.

“원래 토요일에 (옥상에) 올라가려했는데 내가 봐도 논리가 완전하지 못했다. 이거로는 안 된다, 민폐다, 정말 새누리당 알바처럼 보일 것 같더라. 다음날 해봤는데 또 안 맞길래 보완해서 월요일에 서울로 올라갔다.” 일요일 밤샘 근무를 마친 김씨는 26일 월요일 오전 11시30분 케이티엑스(KTX) 열차를 타고 상경했다. 혹여 준비한 성명서를 다 읽기 전에 제압당할까봐 역 근처 가게에서 3000원짜리 횟집용 칼을 샀다. 다른 사람을 해칠 맘도 자신을 찌를 맘도 없었다.

계획은 허술했다. 하지만 김씨에게는 이 계획이 혹여 밖으로 새어나갈까 친구들과 부모님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진행시킬 만큼 진지하고 중요했다. 오후 1시 안 전 후보 진심캠프 근처에 도착한 김씨는 캠프가 있는 빌딩 옥상이 너무 높은 것을 확인하고, 2시쯤 “전망이 좋고, 사람 모이기 좋고, 말하기도 좋은” 바로 옆 6층빌딩 옥상에 올랐다. 5층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나자 6층에 숨어 성명서를 다듬었다. 정말 해야하나, 고민도 많이 했다. 옥상으로 올라가는 작은 구멍을 통해 힘들게 옥상에 설 수 있었다.

“생각보다 너무 추웠다. 칼바람이 불고 목이 쉬어서 (목소리가) 잘 안들리더라. 그렇게 목소리가 퍼져서 안 들릴 줄 몰랐다. 사람들도 잘 안 듣더라. 지금 인터넷보니까 내가 욕만 먹고 있더라. 나는 피해볼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누군가는 해야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자살을 하려던 김씨는 옥상에서도 한참을 주저했다. 그리고 안·문 두 후보를 데려오라고 외쳤다. 민주당을 향해 택시기사에게 돈을 나눠주는 택시법 말고 일자리를 만들고 통크게 안 전 후보에게 단일화를 양보하라고 요구했다. 또 박정희 전 대통령은 정치 경험이 없음에도 훌륭하게 경제를 일으켰고, 반대로 김영삼 전 대통령은 50년이나 정치를 했는데 경제를 말아먹었다며, 정치 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비판받은 안 전 후보를 옹호했다.

“일단 안 전 후보를 찾았는데, 지방에 있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나서 서울에 있을 문재인 후보를 불렀다. 그런데 그때 문 후보가 대전에 있더라. 그냥 대전에 있을 걸 싶었다. 두 후보가 안 올 것같아 모여든 기자들에게 내 전화번호를 불러줬다.”

이날 김씨의 자살소동을 종합편성채널 에서 생중계해 논란이 일었다. 기자들이 올 것은 알았지만 중계방송까지 한 것에 대해 그는 놀라워했다. 생중계는 김씨에게 또다른 고민을 안겨줬다. 약간 머리가 벗어진 김씨의 외모만 본 일부 언론이 26살 김씨를 ‘40대 남성’으로 명명한 것에 대해 김씨는 내심 마음이 상했다. 또 성명서 전문이 아닌 일부 주장만 자막으로 표시한 점도 불만이었다.

죽거나 살거나, 김씨는 두 가지 경우만 생각했다고 했다. 대통령 후보등록 마감시간인 오후 6시까지 후보들이 와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면 살고, 오지 않는다면 정말 뛰어내리려 했다는 것이다. 후보들 없이 성명서를 읽던 김씨를 구한 건 경찰이었다. 오후 3시45분 뒤에서 몰래 다가온 경찰에게 붙잡힌 그는 ‘흉기 소지 및 무단침입’ 혐의로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조사받았다. 집회·시위에 참여한 적 없고 싸움 한번 하지 않은 그에게 경찰서는 처음이었다. 이틀 동안 대선후보와 연관성이 있는지를 조사받았다. 27일 부모님과 함께 안산 집으로 갔다가 대전의 자취집으로 돌아갔다.

안철수가 되야 나라가 산다는 생각

안철수 후보의 사퇴를 비관하며 한 남자가 26일 오후 서울시 공평동 안철수 캠프 옆 빌딩 옥상에서 흉기를 든 채 투신자살을 하겠다며 소동을 벌이고 있다. 뉴스1
안철수 후보의 사퇴를 비관하며 한 남자가 26일 오후 서울시 공평동 안철수 캠프 옆 빌딩 옥상에서 흉기를 든 채 투신자살을 하겠다며 소동을 벌이고 있다. 뉴스1
그는 정치에 무관심하고 정치를 불신했던 평범한 20대 학생이었다. 경기도 안산에서 나고 자라 대전으로 대학을 왔다. 군대에 있던 2007년에 처음 대통령 선거를 해봤다. 경상도 출신이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을 좋아했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후보를 선택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도덕성이 높다기보다 일을 잘 할 것 같다”는 이유에서 민주당 정동영 후보를 찍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때도, 모교에 박근혜 후보가 방문한 지난해 11월에도 그다지 정치에 관심을 보인 적이 없다.

‘무당파’ 김씨를 정치로 이끈 동력은 안철수 후보였다. 내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는 욕심이 없어보였던 정치인을 그는 처음 봤다. 3월28일 안 전 후보가 “내가 사회의 발전 도구로 쓰인다면 정치도 감당할 수 있다”는 말에 감동을 받았다. 지난해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양보한 서울시장 선거 때부터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던 터였다.

“팬심 같은 거 없다. 안철수 개인을 좋아했다기보다 우리나라가 현재 위험한 상황이라 판단했고 그걸 안철수도 안다고 생각해서 이 사람을 도와야만 우리나라가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이라면 일을 잘 해낼 수 있어 보였다.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도 아니고, 정치인은 일을 잘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자신은 안 전 후보의 팬은 아니라면서도 그는 안 전 후보의 인품 정도면 누구의 마음도 같은 편으로 끌어낼 수 있다고 믿었다. ‘철수하라 낡은 정치’라는 이름으로 캠프 이름 공모에 참여했고, 단일화 방식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적은 글을 두어번 더 올렸다. 청춘콘서트는 가본 적 없고, 선물로 받은 책 <안철수의 생각>은 읽어봤다.

김씨의 또다른 정체성은 자칭 ‘등록금푸어’였다. 아버지가 1997년 외환위기 때 정리해고 대상자가 됐다. 보육시설을 운영하기 시작했지만 형편이 넉넉하진 않았다. 2005년 대학 입학부터 현재 5학년 1학기를 마친 지금까지 한 학기를 빼고 학자금 대출을 받았다. 두 번의 휴학동안 아파트 공사장 인부, 건물 경비 아르바이트를 했다. 지금은 같이 사는 동생과 함께 한달에 20일 병원 밤샘 경비를 해 버는 140만원으로 월세·생활비·용돈·학자금 대출상환에 쓴다.

빡빡한 생활이지만 “빚이야 벌어서 갚으면 된다”고 그는 말했다.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돈을 많이 벌어서 성공한다해서 좋지도 않고 실패한다해서 나쁠 것도 없지 않냐고 되물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연체된 학자금 대출 원리금을 갚으라는 전화라며 그가 멋쩍게 웃었다.

김씨는 이념보다 개인의 욕망, 그 중에서도 돈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과정보다 결과, 이념보다 실리다. 이는 국가주의·애국주의와 결합하기도 했다. 그래서 국민의 먹고 사는 문제를 관망하고 망국의 길을 걷게 된 조선왕조 지배층을 유신시대 박정희 전 대통령보다 더욱 미워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일행적과 5.16쿠데타, 유신개헌도 잘못이긴 하지만 “이해는 하고”, “항일운동해보려 만주군에 들어갔을 수도 있다”며 신뢰를 저버리지 않고 있다. 황우석 박사를 둘러싼 논란도 그에게는 아직 끝나지 않은 진실찾기다. 종북주의는 절대 용납할 수 없다.

“지금은 국가 개념이 없고 먹고 살기 위한 내 개인의 이익만 중요한 시대다. 외국이 침범해서 돈 벌게 해준다면 나라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한다.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의 투자자-국가 소송제(ISD)조항을 봐라.”

박정희와 노무현 잘한 것만 골라쓰자

정치적 무관심과 극단적 정치 열정은 맞닿아있었다. 그는 자신의 정치적 관심 정도가 과거 20점이었다면 자살소동 이후 현재 50점까지 올랐다고 말했다. “직접 정치를 하지 않기 때문에 100점 만점을 줄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는 정치를 좋아하지도, 할 생각도 없다면서도 적성에는 맞는다고 생각한다. 그가 쓴 성명서 일부다. “박정희가 꿈꾸던 경제국가/노무현이 꿈꾸던 민주국가/이 모든 것을/이룰 수 있는/사람은/오직 안철수입니다” 그가 지지하던 대선후보는 사라졌지만 자살소동과 경찰조사, 이어진 언론의 관심 등으로 일생에서 가장 정치적인 날들을 보낸다. 조만간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좋은 점만 고른 중도주의 사상을 정리해 자신의 블로그에 올리겠다고 그는 말했다.

“삼성과 애플 둘다 둥근 모서리는 똑같이 쓴다. 좋은 것은 이념과 상관없이 가져다 써야한다. 박정희와 노무현의 잘한 것만 골라쓰면 된다.” 중도주의 사상을 채우고 다듬는 일이 김씨가 요즘 가장 공들여 하는 ‘공부’다. 공부한 사상은 무상으로 공유하고, 생활은 전공을 살려 사업을 해볼까 한다.

그럼 이젠 그는 누구를 찍을까. 그가 말했다. “답이라고 생각한 3번 보기가 날아갔다. (정권을) 바꾸긴 바꿔야하는데… 문재인을 그냥 찍어주고 싶지는 않다. 안철수 없는 문재인은 제2의 노무현이지만, 이미 단일후보로 문재인으로 저질러진 상황에서라면… 1번이냐, 2번이냐, 고민해야 하지 않겠어요?”

27일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한국갤럽의 조사를 보면 안 전 후보 지지자 876명 중 61%가 문재인, 14%가 박근혜, 24%가 부동층으로 표심이 이동한 것으로 나타났다. 굳이 따지자면 그는 안철수 현상으로 급히 끓었다가 식어버린 ‘부동층’이었다.

소통에 굶주린 맹수는 대화 상대를 만나 즐거워보였다. 인터뷰 시작부터 유치장에 갇혀 성명서 내용을 보완했다며 자신의 노트북을 꺼내 프리젠테이션을 하며 설명했다. 약 3시간30분 동안 이어진 대화가 끝나자 김씨 목소리에 자신감이 붙었다. 다양한 모습을 가진 청년이었다. 김씨는 오후 3시30분 이후에는 음료 외에는 먹지 않고, 밤에 눕지 않고 앉아서 자고, 자신만의 창의력을 잃지 않기 위해 ‘공부’할 때는 사람들은 되도록 만나지 않는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3년 전 에이(A)형간염을 앓고 심하게 아픈 이후 남방불교를 믿는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 응한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나의 자살소동이 새누리당의 공격에 이용돼 야권이 승리하는데 장애물이 되지 않았으면 하고, 다른 지지자들이 나처럼 극단적인 결정은 하지 말 것을 당부하기 위해서다. 또 내가 벌인 행동이 안철수 중심의 단일화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폭력적이었음을 반성한다.”

저녁 7시 대화를 마친 김씨는 택시를 잡아 석교동의 한 병원으로 떠났다. 대화를 나누면서 자신의 생각이 많이 정리됐다며 그가 만족하듯 웃었다. 사라지는 뒷모습이 가벼워보였다.

대전/글·사진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관련 영상] <한겨레캐스트 #4] 안철수, 독자적 정치세력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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