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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횡성 축산농가 약전

등록 2012-10-21 21:51수정 2012-10-21 22:28

2012 대선 만인보 국토종단 민심기행
④ 도산 위기 몰린 횡성 한우농가들
강원도 횡성은 가장 유명한 한우 브랜드를 가진 곳이다. 하지만 횡성의 축산농가들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사료비 상승‥구제역의 여파라는 삼중고를 피하진 못했다. 한 축산농민은 “횡성이 이 정도면 다른 곳은 볼 것도 없다”고 말했다. 취재 중 만난 축산농민 중 절반 이상이 폐농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우농사를 접으면 축사를 짓고 사료비를 대느라 지은 빚을 갚을 목돈을 마련할 수 없다. 진퇴양난의 횡성 축산농민들은 탈출구를 필요로 했다. 그렇게 축산농민들은 ‘마음놓고 소를 키우게 해 줄 대통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김형태(가명ㆍ41)

아버지 때부터 20년 넘게 축산업을 해오고 있다. 부모님과 함께 50마리를 좀 넘게 키운다. 최근에는 1년에 3000만원 정도 적자를 보고 있다. “사료비 상승이랑 에프티에이가 제일 불안하죠.” 김씨는 축산업의 전망을 어둡게 봤다. 하지만 농민들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축산업 하는 사람들이 미래에 대한 준비를 소흘히 한 것 같아요. 에프티에이는 반대하지만 수입이 시작될 때를 보고 대비를 했어야 하는데 말이에요.”

김씨의 아버지는 박정희를, 김씨는 전두환을 가장 좋아한다. “아무래도 그땐 나라가 안정적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축산업에 가장 도움을 줬던 대통령으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꼽았다. 하지만 김씨는 노 전 대통령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김씨는 2012년 총선, 2010년 지방선거에서 야당을 찍었다. 2007년에는 이명박 대통령을 찍었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운영과 축산정책에는 낙제점을 줬다. 이번 대선에는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를 찍을 생각이다. “아무래도 박근혜가 괜찮죠.” 김씨는 한우농가의 사정을 잘 이해할 것 같은 후보는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라고 꼽으면서도 박 후보를 찍겠다고 했다.

△강현주(가명ㆍ66)

강씨에겐 고라니가 원수다. “다 그 놈의 고라니 때문이야. 고라니가 콩이며 팥이며 다 먹었어.” 강씨는 소를 키우면서 자신의 밭을 소작을 줬다. 보통 1년에 120만원은 도지로 받았다. 하지만 올해는 고라니 탓에 30만원 밖에 못 받았다. 120만원으로 허리디스크, 골다공증 약을 지어먹고 병원도 다니고 쌀도 샀던 강씨는 말끝마다 고라니에 대한 원망을 추임새처럼 덧붙였다. 강씨가 푼돈에 연연하는 것은 40년 넘게 해온 한우 농사도 망해가기 때문이다.

남의 집 머슴살이하던 남편에게 시집을 간 건 18살 때다. 땅 한 평 없어 화전을 부처먹고 살았다. 그 때부터 소를 키웠다. 한 때 30마리까지 키웠지만 이젠 키울 마음이 없다. “소 값 떨어지니까 먹여봐야 내 몸만 아프지.”

강씨는 지난해 4월 소 8마리를 팔았지만 마리당 100만원 정도 밖에 못 받았다. 이제 7마리가 남았다. 4마리는 곧 살이 붙으면 팔 계획이다. 나머지 3마리는 내년까지는 사료를 먹여야 제값을 받고 팔 수 있다.

“날 붙잡아 갈려 그래, 왜 그래?” 강 할머니는 이번 정부의 축산대책에 대한 평가를 묻자 크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속마음을 감추진 않았다. “사료비는 오르고 소 값은 떨어지니 못하는거지. 아주 못하는 거지.”

강 할머니는 이번 대선에선 자신이 좋아하는 박정희 전 대통령 같은 사람을 뽑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근혜가 아버지를 닮았으면 박근혜를 뽑아야지. 근데 모르지 뭐.”

△현수민(가명ㆍ35)

축산업 6년 차인 현씨는 60마리의 소를 키우고 있다. 농사도 짓고 있다. 밭 2만평에 옥수수와 호박을 기르고 논 1만5천평에 벼를 기른다. “보통 농가들은 100두 이상 안 되면 다 밑져요. 저는 그래도 젊으니까 소 싣는 차도 있고, 새벽에 일어나 다른 지역 우시장도 나가 항상 시세도 확인하고 그러니까 조금 남는 편이에요.”

젊은 현씨는 한우농가가 적자를 내는 구조를 숨도 한 번 쉬지 않고 꾀었다. “퇴직하고 소만 보고 내려와서 한 스무마리 키운다고 해봐요. 한 마리 당 사료비만 1년에 최소 120만원이 들어요. 스무마리 다 합치면 1년에 2400만원이죠. 30개월 키운다고 치면 7000만원 가까이 드는 거에요. 딱 사료값만 그만큼이에요. 그럼 한 마리에 500만원은 받고 팔아야 본전인데, 사료비 대려고 한 마리 300만원에 밑지고 파는 거에요. 도저히 수지가 안 맞아요.” 현씨는 이명박 정부의 축산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 정부는 농가에 무슨 정책을 폈는지 도저히 모르겠어요.” 현씨의 소망을 큰 게 아니었다. 농사를 지어도 먹고 살 수 있는 농촌을 바랄 뿐이다. “농가도 일하면 벌어먹고는 살 수 있게 해줘야죠. 농가에 망가지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에요. 예전에는 논 6~7000평만 하면 먹고 살 수 있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쌀값은 떨어지고만 있잖아요. 1만평 농사짓던 사람은 2만평 지어야 살 수 있어요. 나이 먹고 새 기술 안 배우고 그런 사람은 술로 망가지기 일쑤에요.” 현씨는 정부가 농촌 인구가 준다고 말로만 걱정하는 대통령이 아니라 농촌에 사람이 살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대통령이라면 한 표를 기꺼이 내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숙자(가명ㆍ46)

이씨는 결혼을 하고 소 2마리를 키우기 시작했다. 새끼를 번식해 차츰차츰 늘렸다. 지금은 40마리 까지 불었다. 불어난 소는 이제 오히려 부담이 된다. “계산은 안 해봤지만 3000만원 정도는 적자에요.”

이씨는 구제역, 사료비, 에프티에이 모두 걱정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유통과정에 대한 불만이 가장 높다. “소값은 떨어지는데 고기값은 안 떨어지지 않나. 뭔가 문제가 있는 거죠.” 이씨는 2007년 대선 때부터 모두 야당에 투표를 했다. 하지만 박정희 대통령을 좋아했던 이씨는 이번엔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를 뽑을 예정이다. 이씨는 다음 대통령이 “사료비만이라도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용식(가명ㆍ60)

강씨는 처음엔 젖소를 키웠다. 그러다 1997년 아이엠에프(IMF) 사태가 터져 수지가 안 맞아 관뒀다. 그 다음에는 한우 30마리를 키웠다. 하지만 3년만에 한우 농사도 정리했다. 지금은 다른 사람의 축사를 관리하고 있다. “월급이 200만원인데, 차라리 월급 받고 일하는 게 편해.” 그래도 빚을 다 갚을 길은 잘 보이지 않는다. 강씨가 일하는 곳은 한우 220마리를 키우는 대농장이다. 농장주인은 서울에서 정육점도 하고, 강원도 원주에서 도축장도 한다. ‘규모의 경제’를 바탕으로 직접 유통을 하면서 한우값 폭락을 버틸 수 있는 것이다. “이제 열 마리씩 키우는 사람들은 소 못 먹여. 크게 하는 사람들만 해 먹고 소규모로 하는 사람들은 이제 큰일 나는 거지. 이번에 대통령 잘 뽑아야 돼. 이명박 정부 들어서고 큰일났어.”

강씨는 축산업의 미래도 없다고 봤다. “고기가 (외국에서) 계속 들어오니까. 축산업 전망은 없다고 봐야 해. 아마 이 고비가 한참 갈 거야. 지금 소 먹이는 사람치고 빚 안 진 사람이 없어. 정부에서 자금 빌려 축사 짓고 그런 사람들은 이제 빚 못 갚는 거지.”

강씨는 이번 대선을 정부 심판의 기회로 봤다. “민주당에서 대통령이 나와야 이 정부가 죗값을 치루게 하지.” 강씨는 특히 에프티에이가 한우농가를 수렁으로 밀어넣었다고 봤다. “미국하고 에프티에이하면서 소 하는 사람들이 아주 먹고 살기 힘들어졌지. 반대하는 데도 무조건 밀어붙여서.”

강씨는 한우농가의 사정을 제일 잘 이해할 것 같은 후보로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를 꼽았다. 이번 대선에선 문 후보를 찍을 생각이다.

△민숙자(가명, 56)

“소키우면 계속 적자지. 만날 사료비는 외상으로 하고 소 팔아서 또 갚고 그래.” 민씨는 소를 아무리 키워도 빚에서 벗어날 수 없다. 축사를 짓고 마이너스 통장 끌어 쓴 것을 합하면 빚만 6천만원이 넘는다. 정부에서 재래식 축사를 신식으로 바꾸라고 하면서 돈을 빌려줬다. 이 돈이 고스란히 빚으로 남은 것이다. 올해 초 늙은 어미소 한 마리를 팔고 100만원을 받았다. 새로 지은 축사는 멀쩡했지만 소 값은 멀쩡하지 않았다.

강씨는 선거 때마다 보수정당을 찍었다. 2007년에도 이명박 대통령을 뽑았다. 하지만 자신이 뽑은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박하다. “경제 살려주긴 개뿔 살려줘. 찍어주면 아무나 찍어도 똑같아.” 하지만 이번엔 이씨의 마음이 흔들린다. “아직 누굴 찍을진 결정 못 했어. 그런데 나온 사람들 중에서 소를 키워본 사람이 있어야지.”

민씨는 10년전 제값 받고 팔던 시절을 그리워하며 축산농가를 달래줄 대선 후보를 찾고 있었다.

정환봉 박아름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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