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대선 만인보 국토종단 민심기행
④ 도산 위기 몰린 횡성 한우농가들
④ 도산 위기 몰린 횡성 한우농가들
횡성 축산농 50가구 설문
92% “미래 암울 도산걱정”
시장개방이 가장 큰 타격
“수입 쇠고기 싸게 먹어 좋다고?
대통령이 장사꾼 논리로 말하면 되나”
“싼 이자로 돈 빌려줄테니
알아서 하라는 정책 말고
자생력 키우게 도와줬으면”
“대선 후보들에 바라는 것?
소 계속 키우게 해주길…” 강원도 횡성의 낮과 밤은 기온차가 크다. 낮밤의 온도 차이는 횡성 한우의 품질을 높인다. 따뜻한 낮에 활동하는 소의 근육에 밤 추위를 견디기 위해 쌓인 지방이 스며든다. 1등급 마블링이 생겨나는 것이다. 산자락에 푹 안긴 형상의 횡성 구릉 지대에는 풀밭도 많다. 섬강과 주천강의 발원지도 횡성에 있다. 물과 풀이 풍부한 횡성에는 조선시대부터 강원도에서 가장 큰 우시장이 섰다. 영서지방의 한가운데 있어 소도 사람도 한데 모이기 좋았다. 사람이 모이는 곳엔 정보가 넘쳤다. 막걸리 한잔에 소 사육의 비법이 오갔다. 횡성은 자연스레 한우의 고장이 됐다. 앞으로도 그 명성을 유지할지 어떨지 손영진(51)씨는 자신이 없다. 손씨를 비롯해 횡성에서 소농사를 짓는 이들에게 지난 몇 년은 폭풍과도 같았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이후 한우 값이 폭락했다. 국제 곡물가가 뛰면서 소에게 먹일 사료비 부담도 급증했다. 2010년에는 구제역 파동으로 생때같은 소를 땅에 파묻었다.
■ ‘고급한우를 비싸게 팔면 된다’는 논리의 허구성 한때 한우 17마리로 가득했던 손씨의 축사엔 이제 7마리만 남았다. 최근에도 손씨는 수송아지 두 마리를 경매시장에 내놓았다. 지난 12일 새벽 4시30분, 횡성군 용둔리 손씨의 축사에서 곧 팔려나갈 송아지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어미 품에 안겨 젖을 빨았다. 손씨는 축사 바닥에 떨어진 분뇨를 치웠다. 새벽 6시쯤 송아지를 실을 차가 올 것이다. 어스름이 걷히고 새벽안개가 하얀 몸을 드러낼 때까지 손씨는 말이 없었다. 송아지의 등을 손으로 쓰다듬기만 했다.
어미 곁에 붙어 떨어지지 않는 송아지를 트럭으로 옮기는 데 20분이 걸렸다. 고삐를 채우느라 한바탕 하고 차에 태우느라 또 한바탕 했다. 새벽부터 땀을 뺀 손씨는 방으로 돌아가 벽에 몸을 기댔다. “소 팔려고 하니 마음이 안 좋죠. 축사에 소가 가득 차 있는 거 볼 때는 ‘저거 다 팔면 얼마 벌겠구나’ 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손씨는 다시 침묵했다.
손씨는 7년 전부터 소 농사를 시작했다. 송아지 한마리에 300만원씩 쳐주던 때였다. “그때가 꼭지였어요.” 이후 사료값이 계속 올랐다. 2005년 25㎏짜리 한포에 6084원 하던 배합사료는 지난해 1만1335원까지 치솟았다.
제값을 받아 소를 팔려면 볏짚 등 풀사료만 먹일 순 없다. 옥수수·보리·콩을 섞어 열량이 높은 배합사료를 먹여야 하는데, 대부분 수입해온다. 그 가격은 계속 오르기만 했다. 강원도 횡성에 사는 손씨로선 다국적 거대기업이 장악한 국제 곡물시장이 돌아가는 이치를 알아낼 도리가 없었다. 비싼 배합사료를 그저 감내할 뿐이다.
반면 소값은 반토막이 됐다. 외국산 쇠고기에 저가 시장을 내주더라도, 고급 한우를 비싸게 팔면 된다는 정부의 논리를 손씨는 이해할 수 없다. “모든 소를 최상품으로 기를 수는 없어요.” 손씨는 말했다. 소 한마리를 30개월 동안 키우는 데 569만원 정도 들어간다. 이 소를 최고 등급에 팔면 58만원 정도가 남는다. 그 이하 등급은 모두 적자다. 2등급 판정을 받을 경우, 122만원이나 손해를 본다.
평균적으로 보아, 소 10마리 가운데 1마리 정도만 최고등급인 1++ 판정을 받는다. ‘한우 고급화’를 강조하는 정부 정책만 믿는 것은 축산농들에게 10% 확률의 도박이나 다름없다. 소 농사를 계속하려면, 최상품이 아닌 나머지 대부분의 소까지 적정 가격에 팔 수 있어야 한다.
■ “돈을 벌진 못해도 손해를 봐선 안 되는데” 지난 몇년 동안 아무리 궁리해도 수지타산이 나오지 않았다. 손씨는 파지를 줍고 고물을 모으는 고물상도 겸했다. 한달에 80만원을 번다. 남아 있는 소 7마리의 한달 사료비가 딱 80만원이다. 횡성 한우 농가 대부분이 손씨의 사정과 다르지 않다.
<한겨레>가 지난 7일부터 6일 동안 횡성군 축산농민 50명을 임의로 선정해 조사한 결과, 사육마릿수 50마리 미만인 소농은 32명, 50마리 이상 중·대농은 18명이었다. 소농 32명은 모두 소작을 짓거나 식당일을 하거나 품을 팔아 일당을 벌고 있었다. 소만 키워서는 생계를 유지할 수가 없고, 소를 키우기 위해서라도 다른 벌이가 필요한 것이다.
관련 통계를 보면, 횡성군 전체 한우·육우 사육농가 가운데 50마리 미만의 소를 키우는 소농의 비율이 2012년 9월 현재 85.1%다. 전국적으론 90.1%에 이른다. 국내 축산농 열 가운데 아홉이 손씨와 같은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는 셈이다.
이들은 그때그때 송아지를 내다팔지 않으면 사료비를 감당할 수가 없다. 빚만 쌓느니 소를 빨리 팔아버리는 게 낫다. 하지만 손씨만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들 소를 팔려고 하니까 소가 안 팔려요. 그러니 똥값에 팔게 되고. 돈을 벌진 못해도 손해를 봐선 안 되는데….”
마음 같아선 소 농사를 작파하고 싶지만 그 또한 쉽지 않다. 소 키우는 데 사료비만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축사를 짓는 데 평당 40만~50만원이 들어간다. 소 70마리 정도를 키우려면 150평 축사가 필요하다. 건축비용만 6000만원이 넘는다. 소의 분뇨를 치우는 트랙터도 필요한데, 보통 3000만원 정도 한다.
대부분의 축산농은 초기 투자에 필요한 목돈을 대출받는다. 손씨 역시 2억원의 빚을 떠안고 있다. 트랙터를 살 엄두는 못냈지만 축사는 꼭 필요했다. 재래식 축사 두동을 짓는 데 3000만원이 들었다. 지난 4월에는 트럭에 고물을 싣고 오다가 교통사고까지 났다. 돈이 없어 보험가입을 안 한 탓에 차 수리비만 3000만원 들었다. 거듭된 불운으로 빚은 더욱 불었다. 목돈이 나올 구석은 소 농사밖에 없다. 이 일을 접으면 빚을 갚을 길이 없다.
초기 투자 부담 때문에 국내 축산농 대부분은 따로 사람을 쓰지 않는다. 횡성에선 150마리 정도를 키우는 대농들도 혼자서 소 농사를 짓는다. 기껏해야 배우자나 자녀들이 일손을 거들 뿐이다.
■ “소 숫자 줄여가면서 버티는 거죠” 손씨가 아내와 함께 정성으로 길러낸 소는 이날 횡성군 조곡리 경매시장으로 나갔다. 경매시장에는 횡성 축산농가만 소를 사고팔 수 있다. “횡성의 좋은 소가 쉽게 빠져나가거나 다른 소랑 섞이지 않게 하기 위해 타 지역 사람들은 경매시장에서 소를 거래하지 못하게 한다”고 횡성군청 축산과 관계자는 말했다.
비릿한 쇠똥 냄새가 번지는 경매시장에선 50마리의 경계로 갈려지는 축산농의 두 집단이 서로 만난다. 소농은 50마리 미만의 소를 키운다. 이들은 커가는 송아지의 사료비를 감당할 수 없어 경매시장에 내놓는다. 50마리 이상을 키우는 중농이 그 송아지를 사간다.
암송아지를 임신시키려면 인공수정을 해야하는데 한번에 3만원이 들어간다. 단박에 임신하는 경우는 드물다. 암송아지가 새끼를 밸 때까지 수정비와 사료비는 계속 들어간다. 수송아지가 아닌 암송아지를 낳아도 문제다. 암송아지는 수송아지 가격의 3분의 1에 팔린다. 수소에 비해 암소는 발육이 늦어 경제성이 떨어진다. 씨암소를 두고 송아지를 직접 기르는 것은 100마리 이상 기르는 대농에게나 가능한 일이다.
그런 대농들을 손씨가 부러워하는 것은 아니다. 대농 역시 형편이 딱하긴 매한가지다. 정부가 쇠고기 시장을 개방하면서 내세운 것은 ‘규모의 경제’ 원리다. 소농 중심이 아닌 대농 중심으로 고급 한우를 기르면 국내는 물론 국제 경쟁력까지 갖출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원리는 강원도 횡성에서 통하지 않는다. 국내 축산농의 10~15% 정도를 차지하는 대농은 50마리 이상을 키우는 농가들이다. 미국·캐나다 등 한국에 쇠고기를 팔고 있는 나라의 축산농은 보통 1만마리 이상을 키운다. ‘규모의 경제’로 맞서기엔 역부족이다. 국내 대농들은 소농과 달리 서로 다른 월령대의 여러 마리 소를 꾸준히 판 돈으로 사료비를 ‘돌려막기’ 할 수 있는 정도의 맷집만 갖고 있다.
“소 숫자 줄여가면서 버티는 거죠. 앞으로 10년은 지나야 적자에서 흑자로 돌아설 것 같아요.” 한우 170마리를 키우는 정수환(가명·38)씨가 말했다. 10년이 지나야 흑자가 난다는 것은 소 키워 돈 버는 일이 까마득하다는 푸념이기도 했다.
그런 맷집조차 없는 소농인 손씨가 이날 내놓은 송아지 두 마리는 모두 팔렸다. “소가 좋아요. 잘 키웠네.” 손씨의 소를 산 이가 말했다. 잘 키운 송아지 두 마리 값으로 손씨는 386만원을 받았다. 남은 소 7마리를 다섯달 동안 먹일 수 있는 돈이다. 소를 내다팔아야 겨우 다른 소를 먹일 수 있는 악순환이 언제 끝날지 손씨는 가늠할 수 없다. 돈 이야기를 하는 손씨의 얼굴이 다시 어두워졌다. “소는 잊어버리고 이제 빨리 일을 해야죠.” 경매시장이 파하자 손씨는 고물상이 있는 용둔리로 돌아갔다.
■ “국가의 리더가 장사꾼 논리로 말하면 되겠어요?” 경매시장에서 만난 축산농 대부분은 시장 개방을 어쩔 수 없는 일로 여겼다. 다만 불가항력의 그 일에 대한 분노도 함께 드러냈다. 2010년 구제역 파동 때 50마리의 한우를 자신의 논에 묻었다는 강재동(가명·59)씨는 시장 개방 자체보다 그에 대한 대통령의 태도가 더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라들 사이에 힘의 논리에서 밀리니까 어쩔 수 없다 해도, 국가의 리더가 장사꾼 논리로 말하면 되겠어요? ‘미국 쇠고기 수입해서 시민들이 값싸고 좋은 고기 먹으면 되는 거 아니냐’고 했잖아요. 축산도 국가의 산업이라는 생각은 못하고, 남고 모자라는 이문만 따지는 대통령한테 뭘 더 기대하겠어요?”
횡성의 한우 농가들은 비관적인 예감에 사로 잡혀 있다. <한겨레>가 지난 7일부터 12일까지 횡성 축산농가 50가구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92%가 ‘미래가 어둡고 도산이 걱정된다’고 답했다. 공교롭게도 그 비율은 전체 축산농가 가운데 소농이 차지하는 비율과 비슷하다.
이 지경에 이른 이유를 묻자 응답자의 52%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정부의 개방정책 때문’이라고 답했다. ‘축산물 유통과정의 문제 때문’이라고 답한 이는 32%였다. 비난의 표적은 이명박 정부다. 같은 설문조사에서 이명박 정부의 축산정책에 대해 ‘잘하고 있다’고 응답한 가구는 한 가구도 없었다. ‘못하고 있다’는 응답은 24%였고, ‘아주 못하고 있다’는 응답은 과반을 훨씬 넘은 62%였다. 지지 정당과 상관없이 현 정부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압도적이었다.
횡성의 축산농들은 이번에 출마한 대선 후보들도 썩 내켜하지 않았다. 축산 대책을 제대로 내놓은 이가 없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실제로 <한겨레> 설문조사에서 절반이 넘는 56%는 ‘대선 후보 중에 축산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없어 보인다’고 답했다. 그나마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를 꼽은 농가가 24%,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12%, 안철수 무소속 후보는 6%에 불과했다.
축산농들은 대선 후보를 대신해 스스로 터득한 정책 방향을 들려줬다. “싼 이자로 돈 빌려줄 테니 알아서 하라는 정책 말고, 우리가 자생력을 키울 수 있게 도와주면 좋겠어요.” 강씨는 아직 어느 대선 후보도 말하지 않은 축산 정책에 대해 술술 말했다. “수입하는 사료를 우리가 직접 만들 수 있도록 연구해주고, 축협·농협 거치지 않고 직접 소비자한테 팔 수 있는 유통구조도 만들어주면 우리도 경쟁력을 키울 수 있잖아요.”
그런 궁리를 내놓지 않는 정치인들에게 현태수(가명·68)씨는 단단히 화가 나 있었다. “소 키우는 사람만 불쌍하지. 그 사정 생각해주는 대통령이 있었나?” 최근 현씨는 매달 10포씩 주던 사료를 7포로 줄였다. 사료값을 감당할 수 없었다. “소가 꺼칠하고 좀 마르더라고.” 현씨가 풀이 죽어 말했다.
대통령 후보들에 대한 현씨의 기대는 단순했다. “반질반질 털에 윤나게 잘 먹이면서 계속 소 키우게 해줬으면 좋겠어.” 그 간단한 소망을 이뤄줄 방법을 아직 어느 대선 후보도 모르고 있다고 횡성 주민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정환봉 박아름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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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오전 강원 횡성군 우천면 조곡리에서 열린 소 경매시장에 나온 한우를 횡성 축산농민들이 살펴보고 있다. 횡성에서는 매달 2일, 12일, 22일에 횡성 축산농민들만 참여할 수 있는 소 경매시장이 열린다.
횡성/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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