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대선 만인보 국토종단 민심기행
② 구로디지털단지: 꿈 잃은 여성노동자들
② 구로디지털단지: 꿈 잃은 여성노동자들
30년간 구로에서 일한 네 명의 여성노동자들
구로공단은 우리나라 산업화의 역사다. 꿈을 찾아 지방에서 상경한 소녀들의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바탕으로 우리나라는 눈부신 성장을 이뤘다. 그러나 성장의 열매는 여공을 비롯한 노동자들에게 돌아오지 못했다. 산업화를 일군 기업들은 땅값과 임금이 오르자 해외나 지방으로 떠났다. 공장이 뿔뿔이 흩어지면서 산업화 역군이었던 젊은 여공들의 진로도 갈렸다.
구로공단의 일자리는 30여년이 지난 지금 그 이름이 디지털로 바뀌었을 뿐 달라진 것은 없다. 청춘을 바쳐 열심히 일했으나 언제나 제자리인 삶. 자녀들에게 희망을 줄 수 없는 삶인 그들에겐 올 대선도 아무런 희망을 주지 못한다. 지난 30여년 동안 구로공단 에서 일해온 여성 노동자 4명의 삶과 목소리를 전한다.
△ 고영희(가명·52)
늦은 밤 쪽방촌 골목길을 밝히는 노란 가로등이 켜져있었다. 그 아래 삼삼오오 앉은 아주머니들은 공장에서 막 나온 가발에 끼인 비닐조각을 핀셋으로 집어내고 있었다. 38년 전 전남 영암에서 버스를 타고 도착한 열네살 소녀 영희(지금은 52살)가 처음 본 구로공단의 밤풍경이었다. 드라마 ‘청실홍실’에서 본 앞마당 있는 부잣집 모습을 꿈꾸며 상경했던 소녀에게 서울의 첫인상은 실망스러웠다.
영희는 독일군복을 만드는 봉제공장에 ‘시다’로 취직했다. 하루 12시간 서서 다림질하고 나면 발이 퉁퉁 부어 신발을 신을 수가 없었다. 집에 돌아갈 땐 신발을 손에 들고 맨발로 밤길을 걸었다. 철야가 있는 날에는 소녀의 키보다 큰 군복 속에 들어가 잠을 자곤 했다. 그렇게 한달에 8만원을 벌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1965년 수출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구로구 일대 60만평에 조성한 수출산업공업단지는 80년대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자 민주화·노동운동의 산실이 됐다. 영희가 일하는 공장에도 대학생 언니오빠들이 있었다. 형편이 어려워 중학교에 진학 못한 그녀는 후줄근한 차림의 대학생 오빠들을 따라다니며 배움에 대한 갈증을 풀었다. 84년 대우어패럴 노조파업을 시작으로 이 일대 공장 연대 파업이 일자 시다들은 공장 밖으로 나와 “사장님 강아지는 그랜저 타고 병원 가는데, 나는 아스피린 먹고 철야한다”는 노래를 부르며 펑펑 울었다.
이 무렵 국제 유가 파동 등으로 수출이 침체되면서 구로공단도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다. 그 사이 결혼해 아이를 낳은 고씨는 공장을 그만두고 집에서 미싱을 들여놓고 부업을 했다.
여공 시절 대학생 오빠들에게 받은 수업을 잊지 못하는 고씨는 남을 도우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늘 품고 있었다. 검정고시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고씨는 현재 야당 국회의원의 지역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다. “큰 일은 큰 인물이 하고, 저는 동네 어려운 이웃이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주면서 살고 싶어요. 어떤 분이 대통령 하더라도 노동자·서민 정책 제대로 세우는 사람이면 맨발 벗고 돕고 싶어요.” 고씨의 꿈을 함께 할 대통령은 나올 수 있을까.
△ 김순자(가명·55)
고영희씨의 친한 언니인 김순자씨는 전남 무안에서 14살에 상경했다. 공장에서 일하는 언니들을 상대로 튀김을 팔다가 니트 제조 공장에 시다로 들어갔다. 쉬는 날 없이 매일 밤 10시까지 일했다. 바늘에 손가락이 찔리고 두꺼운 쇠로 된 바늘대에 손이 찍혀도 아프다는 소리를 삼키며 일했다. “그땐 뭘 몰랐죠. 다시 돌아가라면 절대로 못 갈 것 같아요. 시대가 그랬잖아요. 안 하면 굶어야 되고, 할 일도 없고.”
5~6명씩 소규모로 이뤄진 가내공업 공장에 다녔던 김순자씨는 고영희씨와는 반대로 구로공단에 불어닥친 노동운동의 바람에서 비켜나있었다. “저는 그냥 쳇바퀴 돌 듯 일만 했어요.” 순자씨는 40여년째 구로4동·3동·2동을 옮겨다니며 니트 공장을 계속 다니고 있다. 그 사이 경비 일을 하는 남편과 결혼했고 아들과 딸을 키워 대학에 보냈다. 지금도 아침 7시부터 저녁 5시까지 매일 10시간 주 6일을 일하고 한달에 150만원을 번다. “150원 벌 때와 달라진 하나도 없을까요.” 김씨는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순자씨에게 선거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투표한다고 바뀌는 것 같지 않아요. 관심있는 대선 후보도 없어요. 누구라도 그냥 지금 경제적 여건 나아지게 해주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 이영숙(가명·50)
구로공단에서 일어난 노동운동의 시작은 대우어패럴 노조 파업이었다. 84년, 36억원의 흑자를 내고도 생산직 월 평균 기본급이 7만원가량 될 정도로 노동환경이 열악했다. 사무직과의 차별대우도 극심했다. 노동자들은 그해 노조를 결성하고 파업을 벌였다. 철야노동을 밥먹듯 하며 한달에 100시간씩 일하는 걸 도저히 버텨내지 못했던 이영숙씨도 파업에 참여했다가 회사에서 쫓겨났다.
당시 섬유산업이 저물면서 대기업 중심이던 봉제공장은 영세업으로 몰락했다. 1개 업체 당 미싱사 5~6명 정도 있는 작은 사업장으로 바뀌었다. 배운 기술이 봉제밖에 없는 이영숙씨는 그 이후 줄곧 영세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다. 토요일까지 주당 50시간가량 일하고 한달에 120만원을 손에 쥔다. “어릴 때 내가 오십이 되면 그때도 이렇게 살지는 않겠지 생각했는데, 어느날 보니 그대로더라고요. 내가 노력 안 한 것도 아닌데, 왜 삶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건지. 이걸 개인의 탓으로 돌릴 수 있나요. 정치한다는 사람들은 제발 밑바닥 노동자들의 삶이 어떤지 직접 와서 겪어봤으면 좋겠어요.”
이씨가 현재 일하는 금천구 독산동 봉제공장엔 얼마 전 시다 일을 하던 78살 할머니가 건강이 나빠져 일을 그만 뒀다고 한다. “지하셋방에 혼자 사는 할머니였는데 이제 어떻게 생활하실지 걱정”이라고 이씨가 말했다.
△ 박영자(가명·51)
충남 부여 출생으로 20살에 대구의 섬유회사에 취업했던 박영자씨는 1년 뒤 수원의 타올 만드는 회사로 옮겼다. 섬유산업이 저물면서 박씨는 다른 공장을 돌아다녔다. 20대 후반엔 양천구 목동에 있는 롯데제과 포장공장에 다녔다. 영등포구 도림동으로 이사한 31살 때, 집 근처 팬시업체 ‘영아트’의 하청공장에서 일했다. 한달 80만원씩 받고 일했다. 외환위기 때도 버티던 회사는 2003년 폐업하고 중국으로 떠났다. 박씨는 9년 일하고 퇴직금 3년치 500만원을 받았다.
2003년 구로구의 기륭전자에 들어갔다. 정직원인 줄 알고 입사했으나 계약직이었다. 한달 60만원을 받고 내비게이션 기능 검사하는 일을 했다. 2년째 근무하던 중 조금 더 나은 환경에서 일해보고 싶은 마음에 노동자회에 가입했다가 2005년 해고당했다. “이번엔 정년퇴직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 박씨는 복직투쟁에 나섰다가, 생계 때문에 이듬해 금천구 가산동에 있는 전자부품 공장에 들어갔다. 그 회사는 3년 만에 경기도 시흥으로 공장을 옮겼다. 박씨는 또 다시 다른 공장을 찾아다녔다. 2010년 영등포구 문래동에 있는 엘지 휴대폰 배터리 조립공장에 갔다가, 냉장고 부품회사·티브이 리모컨 제작 회사 등을 전전했다. 항상 80~110만원 안팎의 월급을 받았다.
현재 광명시 하안동의 반찬통 공장에 다니고 있는 박씨는 “고용안전망이 없는 게 너무 힘들다”고 했다. “서민들 살기 더 힘들어졌다. 서민들 이해할 것 같고 일자리 문제 확보해주는 대통령이 나오면 좋겠다”고 박씨는 말했다. 박씨의 소원을 담은 후보가 나온다고 해도 박씨가 투표할 수 있을까. 지난 총선 땐 공장이 쉬어서 투표할 수 있었다. 월급제인 줄 알고 들어간 회사였는데, 알고보니 시급제여서 그날 일당이 깎였다. 박씨에 투표란 일당을 포기해야 하는 문제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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