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오후 서울 금천구 가산동에 위치한 근로여성임대아파트 앞으로 한 시민이 걸어가고 있다.
신소영 기자
2012 대선 만인보 국토종단 민심기행
② 구로디지털단지: 꿈 잃은 여성노동자들
② 구로디지털단지: 꿈 잃은 여성노동자들
“이 덕에 빚 갚았다”면서도
복지에 대한 믿음은 약해
최근 매각 방침 철회됐지만
여성 거주자들 불안감 커져 전기밥솥이 김을 뿜어내는 소리가 건넌방에서 들렸다. 사무직 20대 여성인 룸메이트는 자기 방에서 끼니를 해결한다. 박순영(가명·40)씨는 부엌에서 상을 차려 방으로 들고 왔다. “서로 말을 잘 섞지 않아요. 나이 차이가 많아서 그런가.” 박씨가 말했다. 방 2개가 있는 11평 아파트에서 봉제공장 비정규직 박씨는 사무직 룸메이트와 함께 산다. 같은 현관문을 쓰지만 서먹서먹하다. 룸메이트가 있든 없든 혼자 밥 먹고 혼자 텔레비전 보는 생활에 익숙하다. 서울 금천구 가산동의 근로여성임대아파트 단지 전체가 박씨의 11평 방을 닮았다. 5층짜리 건물 3동에 100가구가 사는 이곳에 200명의 저소득 여성 노동자들이 모여 산다. 근로여성임대아파트는 근로복지공단이 운영한다. 저소득 여성 노동자들을 위해 지어졌다. 1988년 서울·부천·대구·인천·부산 등에 한 곳씩 세워졌다. 88올림픽을 앞두고 빈민촌 정리사업을 대대적으로 벌이던 무렵이다. 지금도 독신 여성 가운데 저소득·생산직 노동자들이 주로 산다. 전용면적 11평짜리 아파트를 두 명이 쓴다. 큰방은 보증금 20만원에 월세 6만6000원, 작은방은 보증금 10만원에 월세 4만5000원이다. 독신인 박씨는 6년 전 아파트에 들어왔다. 그 전에는 친척집, 회사 기숙사, 고시원 등을 전전했다. 구로의 한 봉제공장에 취직한 그는 오전 9시부터 밤 10시까지 일한다. 토요일도 저녁 6시까지 일한다. 한달에 120만원을 번다. <한겨레>가 지난 8일부터 이틀 동안 이곳에 입주한 여성 노동자 20명의 노동조건을 조사해보니, 월평균 임금이 149만2000원, 주평균 근로시간은 50.2시간이었다. 월 200만원 이상 받는 여성 노동자가 2명 있었는데, 그 가운데 1명은 주 60시간씩 근무했다. 그래도 근로여성임대아파트 주민들은 운이 좋다. 집세 걱정을 덜 수 있다. 이지은(가명·36)씨는 부동산 시행사에서 사무직으로 일하다 회사가 망해 열달간 월급을 못 받았다. 카드대출로 생활비를 쓰다 1000만원의 빚을 졌다. 4년 전 이곳에 입주한 뒤, 월급 100만원을 받으며 개인회생절차를 밟아 지난 5월 모든 빚을 털었다. “여기 못 들어왔으면 매달 수십만원씩 방값 내느라 회생은 엄두도 못 내고 빚만 쌓였을 것 같다”고 이씨는 말했다. 그것이 ‘사회복지의 힘’이라는 것을 임대아파트에 사는 여성 노동자들은 체감하지 못한다. <한겨레> 설문조사에 응한 근로임대아파트 입주 여성 노동자 20명의 가장 큰 불만은 ‘낮은 임금’(40%)이었고, 그다음이 ‘일자리 불안’(35%)이었다. ‘낮은 복지’는 10%였다. 실직했을 때 재취업을 돕고, 급여가 낮아도 인간다운 생활이 가능하도록 돕는 ‘복지’에 대한 믿음이 강하지 않은 것이다. 한국산업단지공단이 지난해 12월 집계한 ‘구로·가산디지털단지 고용현황’을 보면, 단지 안에서만 14만2000여명의 노동자가 일한다. 그 가운데 3만9000여명이 여성이다. 여성의 일자리는 남성의 일자리보다 열악하다. 올해 초 금속노조 서울남부지역지회가 구로·가산디지털단지에서 일하는 노동자 3070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남성 노동자 가운데 ‘미숙련직’ 비율은 13.0%인 데 비해 여성 노동자의 ‘미숙련직’ 비중은 25.3%였다. 비정규직 비율도 남성(48.2%)보다 여성(54.5%)이 더 높다. 구로에서 일하는 저임 노동자 가운데서도 여성 노동자의 고용 불안정성이 더 높고, 그만큼 사회안전망의 도움이 더 절실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들을 위한 ‘최후의 안전망’이었던 근로임대아파트조차 안전하지 않다. 2004년 근로복지공단은 전국의 근로임대아파트를 매각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입주민 반발이 거세지자 올해 초 매각방침을 철회하긴 했지만, 저임 여성 노동자들은 언제 내몰릴지 모른다며 불안해한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 1회 연평도 ‘평화가 밥 먹여준다’ 편 [관련기사] ▷ 끝모를 단기직 쳇바퀴…“누가 대통령 되든 기대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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