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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연평도 포탄 얻어맞았을 때 대통령은 얼굴 한번 안 비쳤어”

등록 2012-09-13 20:30수정 2012-09-14 09:02

취로사업 잃을까 여당만 찍는 섬…이젠 평화를 꿈꾼다
“누구 때문에 포 얻어맞았는데, 얼굴 한번 안비쳐?”
주민 70%가 취로사업으로 생계 “여당이 집권해야 예산 는다” 여겨
“바다에서 고기 잡을수 있다면야…통일 시켜주는 대통령 뽑아야지”
대통령 선거가 100일도 채 남지 않았다. <한겨레>는 전국을 발로 뛰며 바닥 민심을 듣는다. 바다를 두고 북녘과 마주한 섬 연평도에서 출발해 서울, 경기도, 강원도,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제주도에 이르기까지 전국을 종단하며 삶의 현장과 애환을 직접 살펴보고, 대선 후보들에게 보내는 그들의 아우성을 지면과 인터넷에 담는다.

그 첫번째인 ‘연평도- 평화가 밥 먹여준다’편을 위해 지난 7월 중순부터 40여일 동안 사전 조사와 현지 취재를 진행했다. 주민 40여명을 직접 만나 심층 인터뷰했다. 각종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연평도의 정치·경제·사회 지표를 분석하는 한편, 각 분야 전문가들의 자문도 구했다. 인터넷 한겨레(hani.co.kr)에는 ‘연평도 주민 약전’을 따로 싣는다. ‘2012 대선 만인보- 국토종단 민심기행’은 주 1회 정도씩 연말까지 연재한다.

태풍이 다가오고 있었다. 날은 저무는데 바람이 세찼다. 태풍 ‘덴빈’이 북상중이던 8월30일 오후 박연수(89) 할아버지는 마당 평상에 나와 앉았다. 태풍보다 더 큰 걱정이 있었다.

“벌써 일이 끊겼어. 겨울을 나야 하는데.” 할아버지는 두달 보름 동안 아무 일도 못했다. 인천시 옹진군 연평면사무소가 섬 주민들에게 내주던 취로사업이 끊겼다. 바닷가에 버려진 게딱지나 쓰레기를 치우면 일당 3만7000원을 받을 수 있었다. 주민 1900여명 가운데 70%가 비린 쓰레기를 치워 생계에 보탠다고 면사무소 직원은 말했다.

포격 사건 이후 지원금이 늘어난 지난해엔 취로사업이 넘쳤다. 그 예산을 다 써버린 올해는 일이 떨어졌다. 할아버지는 늦여름 태풍을 보며 겨울을 넘길 고민에 빠졌다. 한 드럼에 30만원 하는 기름이 두 드럼은 있어야 겨울을 날 수 있다. 북한 땅에서 12㎞ 떨어진 연평도에 도시가스는 들어오지 않는다.

“여당을 찍어야 지원이 많이 나오지.” 어느 이웃의 넋두리에 큰 잘못이 없다고 할아버지는 생각한다. 지난 반세기 동안 할아버지는 정부 여당을 바라보며 살았다.

해마다 4월이면 황금빛 조기떼가 연평도 서북쪽 바다에 올라왔다. 한국전쟁 때 맨손으로 피난 온 할아버지는 봄날 조기를 잡아 여름·가을·겨울을 버텼다. 섬 주민 대부분이 그랬다.

고됐지만 살만했던 조기잡이 생활은 1960년대 말 파탄이 났다. 1968년 북한은 북방한계선 인근에서 조업하던 남쪽 어선 38척을 납치했다. 이듬해 한국 정부는 연평도 북쪽 어장의 조업을 금지했다. 할아버지는 선원 생활을 접었다.

정부는 병을 주고 약도 줬다. 조기잡이를 망쳐 놓은 정부는 새마을운동을 시작했다. 도로를 넓히고 집을 고쳤다. 어른은 지게를 지고 아이는 대야를 들고 흙과 쓰레기를 날랐다. 면사무소 직원이 네모난 카드에 도장을 찍어줬다. 할아버지는 아내와 9살 아들 몫까지 하루 세 개의 도장을 받았다. 그 도장으로 먹고 입을 것을 샀다.

그때부터 연평도 사람들은 ‘취로사업’에 옭매였다. “박통(박정희 대통령)에게 은혜를 많이 입었지. 취로사업도 그때 시작했어. 시방도 그런 대통령 하나 있었으면 좋겠네.” 할아버지가 말했다.

가난한 섬사람들은 먹을 것을 주는 ‘여당 편’ 또는 ‘보수정당 편’이 됐다. 그들이 집권해야 취로사업 예산이 늘어날 것이라고 믿었다. 2002년 대선에서 연평도 주민 투표자의 50.9%가 이회창 신한국당 후보를 찍었다. 2007년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는 50.3%를 득표했다.

그 투표의 이면에는 공포의 정서가 있다. “마음놓고 고기 잡을 수만 있다면야, 쓰레기 치우는 일이 왜 필요하겠어?” 연평도에 포탄이 날아왔던 2010년 11월23일 할아버지는 바닷가에 취로사업을 나간 덕에 목숨을 건졌다. 주민들이 진짜 원하는 것은 여당도 야당도 아닌 평화다.

8월26~31일 주민 4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겨레> 설문조사 결과, 다음 정부의 대북정책이 ‘강경책’(32.5%)보다 ‘화해협력’(67.5%)으로 방향 잡아야 한다는 주민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통일시켜 주겠다는 대통령 있으면 뽑아줘야지. 근데 어느 사람이 통일시켜 줄지 아나?” 할아버지는 기자에게 물었다. 섬으로 향하는 태풍이 더 거세지고 있었다.

연평도/정환봉 허승 기자 bonge@hani.co.kr

“누구 때문에 포 얻어맞았는데, 얼굴 한번 안비쳐?”
[2012 대선 만인보-국토종단 민심기행] ① 연평도: 평화가 밥 먹여준다

인천시 옹진군 연평면에는 대연평도와 소연평도가 있다. 주민들은 주로 대연평도에 산다. 바닷가를 따라 걸어 세 시간이면 한바퀴를 도는 섬이다.

섬 남쪽 끝에는 작은 등대가 하나 있다. 연평도 조기잡이가 한창이던 1960년, 등대는 첫 불을 밝혀 야간 조업 어선을 안내했다. 1970년대 남북의 긴장이 높아져 야간 조업이 중단됐다. 등대는 제구실을 잃었다. 1987년 마지막 등대지기가 떠났다.

등대 옆 ‘조기 역사관’은 평화롭던 시절의 풍요를 추억한다. 흑백사진 속에서 만선을 이룬 연평도 어민들이 웃고 있다. 섬의 동쪽 끝에는 전망대가 있다. 한국전쟁 때 섬으로 건너온 실향민들이 고향을 그리는 곳이다.

분단으로 황금어장 산산조각
조기떼 사라지고 꽃게잡이도 외지인 차지
정부지원 없으면 일이 없어
“나만 노는 게 아니라 자식들도 다 놀아”
75살 할머니 얼굴엔 웃음기가 없다

“새마을 운동 시절엔 얼마나 흥이 났는지”
1900여명의 주민들은 추억 속 풍요로움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 사이에 산다. 등대와 전망대 사이 낮은 산자락에 마을이 안겨 있다. 마을을 이룬 여러 촌락 가운데는 ‘새마을리’도 있다. 풍요가 사라진 곳을 채워준 과거 정부의 자취다. 새마을운동 시절 집을 지어 올렸다 하여 ‘새마을리’로 부른다.

지난달 27일 낮 마을 정자 위에서 누룽지를 먹고 있던 강미자(가명·76) 할머니는 새마을운동 시절을 기억한다. “‘야, 일 나왔단다. 나가서 일하면 돈 준단다’ 하고 누가 말하면 마을 사람들 모두 나와서 일하는데, 얼마나 흥이 났는지.” 할머니는 그때부터 투표소에 가면 항상 여당인 1번만 찍었다.

원래 섬사람들은 정부가 아니라 바다를 보고 살았다. 해방 직전까지도 각지의 어선들이 조기를 잡으러 연평도 앞바다에 왔다. 조기를 잡아 돈을 벌고, 조기 사고파는 일을 거간해 돈을 벌고, 그렇게 돈 번 사람들에게 술과 음식을 팔아 돈을 벌었다. ‘연평도에선 개도 돈을 물고 다닌다’는 시절이었다.

남북 분단 이후, 연평도의 황금어장은 산산조각 났다. 한국전쟁 이후, 연평도 북서쪽 바다가 뭉텅이째 북한 영해로 귀속됐다. 섬사람들은 눈앞에 조기 떼를 두고도 잡지 못했다. 국지적 무력 충돌이 잦았던 박정희 정부 시절엔 조업 한계선이 남쪽으로 더 내려왔다. 이미 반토막 났던 어장은 다시 쪼그라들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 전까지 북쪽으로 올라와 조업하던 다른 지역 어선들도 연평도 앞바다를 피해갔다. 많은 어선들이 충청도나 전라도 앞바다에서 조기를 잡았다. 진달래가 필 무렵마다 북상하던 조기 떼는 연평도에 이르지도 못하고 자취를 감췄다. 직접 고기를 낚지 않더라도 ‘조기 파시’를 중심으로 돈을 벌었던 주민들까지 졸지에 일자리를 잃어버렸다.

“대통령이 오지도 않았어…”
연평도 포격 사건은 사람들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정부의 은혜’를 기대하는 마음과
외면당했다는 배신감 사이 주민들은 고민한다
“다시 또 포 맞으라고? 이번에는 여당 안 찍어”

“아무개가 섬에 왔다 갔어”
“여긴 벌어먹고 살 게 없어요. 정부 지원이나 받아야지.” 김태수(가명·66)씨가 검게 그을린 어깨를 들썩이며 말했다. 90년대 이후 꽃게잡이가 시작됐지만, 모아둔 돈이 없는 연평도 주민들에겐 남의 일이었다. 연평도 인근에서 꽃게를 잡는 어선의 80%가 외지에서 왔고, 그 배를 타고 일하는 사람들 역시 외지인이 대부분이라고 옹진군 수협 관계자는 전했다.

과거와 달리 꽃게를 사고파는 ‘파시’가 섬 근처에서 열리지도 않는다. 꽃게가 많이 잡혀도 섬사람들은 날품에만 의존한다. “꽃게 잡아오면 그물에서 떼내는 일을 해요. 시간당 1만원씩 받죠.”

가난은 세대를 넘어 전승됐다. “나만 노는 게 아니라 자식들도 다 놀아.” 집 앞에서 고추를 말리던 이숙희(가명·75) 할머니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없었다. “나라가 취로사업이라도 만들어주지 않으면 일이 없어. 섬이라서 어디 다른 데 나가서 일할 수도 없고.”

가난에 익숙해진 연평도 사람들은 ‘정당’과 ‘은혜’라는 말을 즐겨 썼다. “우리는 줄곧 ‘정당’만 찍어. 다른 건 필요 없어. 정당이 계속 집권해야 취로사업도 안정적이잖아.” 평생 날품을 팔아온 김태수씨가 말하는 ‘정당’은 공화당, 민자당, 신한국당, 한나라당 등으로 이어지는 보수정당이다. 섬사람들의 언어 속에서 민주당 등은 아예 정당이 아니었다.

연평도 사람들에게 ‘은혜’는 그런 보수 정당이 여당 시절 베푼 취로사업 등을 지칭한다. “얼마 전에 박근혜가 와서 무너진 집을 새로 지어줬어. ‘아버지 사업인데 와서 보니까 (안타까워) 도와줘야겠다’고 했다네. 그런 은혜는 잊지 말아야지.” 길가에 앉아 있던 정순심(가명·80) 할머니가 말했다.

주택개량 사업은 지난 1월 박 후보의 연평도 방문 전부터 계획된 일이었다. 그러나 ‘박정희가 지어준 집, 박근혜가 고쳐줬다’는 소문이 쫙 퍼졌다. 새마을운동 이후 뜸해진 ‘은혜’를 또다시 기다리는 주민들의 간절함이 그 소문에 깃들어 있다.

정치인들로부터 버림받고 있다는 원망을 섞어 “아무개는 섬에 왔다 갔다”는 말을 주민들은 종종 했다. ‘높으신 분’들은 선착장이 아니라 하늘에서 왔다. 헬기를 타고 박근혜 후보가 왔고 김황식 국무총리가 왔다. 섬을 찾지 않은 정치인은 성토의 대상이었다. 2010년 11월 연평도 포격 사건이 성토의 발단이 됐다.

“구제역 났다고 현장에 갔던 대통령이 포탄 떨어진 연평도에는 오지도 않았어.” 포구에 대놓은 작은 낚싯배에 걸터앉아 김석태(가명·63)씨가 말했다. “누구 때문에 포 얻어맞았는데, 어떻게 얼굴 한번 안 비쳐?” 이명박 대통령의 대북 강경책이 포격을 불렀다고 믿는 김씨는 정부·여당에 대한 배신감을 토로했다. “포 한번 더 맞으면 오겠다는 건가?”

지난 8월30일 대연평도 부두 위를 주민들이 걷고 있다. 부두 돌난간에 연평도의 특산물인 꽃게가 그려져 있다. 연평도/허승 기자 <A href="mailto:raison@hani.co.kr">raison@hani.co.kr</A>
지난 8월30일 대연평도 부두 위를 주민들이 걷고 있다. 부두 돌난간에 연평도의 특산물인 꽃게가 그려져 있다. 연평도/허승 기자 raison@hani.co.kr

“북방한계선 인근에다
인공어초라도 만들면 중국배 신경 쓰지 않고
많이 잡을 수 있어
여기에 양식장까지 만들면 완전 황금어장 되는 거야”
연평도 어촌계장은 북쪽 바닷길이 풀리길 바랐다

“이제 여당 안 찍어. 다시 포 맞으라고?”
연평도 포격 사건은 섬사람들의 불안과 자존심을 건드렸다. “연평도가 평화로워진다는 보장만 있다면 박근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라도 찍을 수 있어. 연평도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다 그럴 거야.” 평생 ‘정당’만 찍어온 연평도 토박이 강산하(가명·66)씨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여당·보수 성향’으로 견고하게 뭉쳤던 연평도 주민들의 마음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은혜를 기대하는 마음과 정부로부터 외면당했다는 배신감 사이에서 고민하던 권철현(가명·47)씨는 “이제 마음을 굳혔다”고 말했다. “다시 또 포 맞으라고? 이번에는 여당 안 찍어.”

낡은 어선에 턱을 괴고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던 권씨는 목청을 높였다. “지금도 큰 소리만 나면 심장이 뛰는데 다시 포격을 맞으면 연평도에서 살 수가 없어.”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파도가 두어번 치는 사이 작고 낮게 가라앉았다. “그런데 말이야…. 기껏 1000표밖에 안 되는데 누가 우리한테 신경이나 쓰겠어?”

포격만 그친다면, 이 바다에서 싸움과 긴장만 멈춘다면, 다시 떳떳하게 돈을 벌 수 있을 거라고 강인구(53) 연평도 어촌계장은 생각한다. 강 계장은 섬 북쪽에 여전히 황금어장이 있다고 믿는다.

“북방한계선 인근에다 인공어초라도 만들면, 중국 배 신경쓰지 않고 많이 잡을 수 있어. 여기에 광어, 우럭, 해삼 양식장까지 만들면 완전히 황금어장이 되는 거야. 거길 못 가게 하잖아.” 인공어초를 바다에 투하해 고기 떼를 기다리고 양식장을 만들어 황금어장을 키우려면 평화가 필요하다. 연평도 앞바다에 포탄 따위 떨어질 염려가 사라지고, 조업하던 어선이 느닷없이 끌려갈 두려움이 사라진 다음에야 가능한 일이다.

강 계장은 선거 이야기엔 큰 관심이 없었다. 그는 오직 황금어장으로 향하는 섬 북쪽 바닷길이 풀리길 바랐다. 그 꿈을 실현시켜줄 대선 후보를 연평도 주민들은 찾고 있었다.

연평도/정환봉 허승 기자 bonge@hani.co.kr

[2012 대선 만인보-국토종단 민심기행] ① 연평도

▷ 보수색 짙은 연평도지만 주민 52% “대북강경책 잘못”
▷ 연평도 주민들에게 대통령 선거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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