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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대법관 후보의 ‘의혹’ 시한폭탄 태백, 검찰 뭐해?

등록 2012-07-23 21:33수정 2012-07-24 15:19

(※클릭하면 이미지가 확대됩니다.)
[뉴스쏙] 한 대법관 후보의 고향, 폐광촌 흉흉한 사연
김병화 대법관 후보자는 지난 11일 열린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10여가지 의혹 및 결격 사유가 제기되며 ‘사상 최악의 대법관 후보’라는 오명을 얻었다. 제일저축은행 비리 수사를 무마하기 위해 브로커 노릇을 한 사채업자 박영헌(61)씨와의 부적절한 관계 등 도덕적 결함이 폭로된 것이다. 청문회 이후에도 의혹은 잦아들지 않고 있다. 김 후보자의 고향이자 각종 의혹의 진원지인 강원도 태백시를 현지 취재했다.

강원랜드에서 동쪽으로 20분쯤 달리자 비 온 뒤 구름이 휘감고 있는 산꼭대기에 오투리조트 콘도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골프장을 지나 로비에 내리자 여느 리조트처럼 직원들이 환한 미소로 손님을 맞았다. 그러나 기자의 질문 하나에 접수담당 직원의 미소는 사라졌다.

“월급은 제대로 받고 있나요?”

“5개월째 월급을 못 받고 있어요. 수당까지 치면 7~8개월 정도 제대로 못 받은 셈이에요.”

겉만 보면 오투리조트는 성업중이다. 424실의 콘도는 강원도 태백시에서 열리는 핸드볼대회, 추계대학축구연맹전, 전국중고등학교육상선수권대회로 8월 중순까지 만실이다. 고도가 높아 한여름에도 서늘한 골프장은 주말마다 예약이 꽉 찬다. 하지만 재정 상태는 파산 직전이다. 오투리조트를 운영하는 태백관광개발공사는 빚만 3517억원이다. 2044%에 이르는 부채비율은 전국 133개 지방 공기업 가운데 단연 1등이다.

오투리조트의 빚 3517억원 가운데 1460억원이 태백시가 채무보증을 선 빚이다. 개장 5년째 해마다 200억원이 넘는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오투리조트가 빚을 갚을 능력이 없기 때문에 태백시가 이를 고스란히 떠안을 가능성이 높다. 태백시 1년 예산 2450억원의 60%에 이르는 규모다. 태백시청 기획감사실 관계자는 “오투리조트 때문에 태백시 재정도 거덜날 지경”이라며 “일본의 파산한 폐광도시 유바리시처럼 되는 건 시간문제”라고 한탄했다.

강원경찰청 광역수사대는 2011년 4월 오투리조트 비리 사건 수사에 착수했다. 공무원과 시공업체 사이에 수많은 비리가 있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오투리조트 건설본부장 정아무개(53)씨의 횡령과 배임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도 들어왔다. 경찰은 정씨에 대한 구속수사 의견을 냈지만, 사건을 지휘한 춘천지검 영월지청은 정씨를 불구속 송치하라고 지시했다. 그 뒤로 오투리조트에 대한 수사는 사실상 중단됐다.

3517억 빚덩이 ‘오투리조트’
직원들 월급 끊긴지 5개월
태백시가 1460억 빚보증

공무원-시공사 비리설 꼬리
경찰쪽 구속수사 의견에도
검찰 “불구속 송치” 흐지부지

주민 원성에 신임시장이 특감
부실·도덕적 해이 100건 나와
검찰은 또 “배임 적용 쉽잖아”

박종기 전 시장에 이어 시장이 된 김연식 태백시장은 2011년 7월 14명의 인력을 투입해 오투리조트에 대한 특별감사를 시작했다. 파산지경에 이른 사업에 대해 처음으로 이뤄진 감사였다. <한겨레>는 지난 19일 이 특별감사 결과보고서 전문을 입수했다. 감사 결과, 정책 결정에서부터 운영·구매·영업에 이르기까지 총체적 부실과 도덕적 해이가 드러났다. 사업비는 최초 1713억원에서 수차례 설계변경 과정을 거쳐 4403억원까지 늘어났다. 회원권 4862개를 팔아 2565억원을 마련하고 이 자금으로 늘어난 사업비를 충당한다는 거창한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실제 판매액은 목표액의 6분의 1에 불과한 450억원에 그쳤다. 임원들의 도덕적 해이도 상당했다. 임원들이 공짜로 오투리조트를 이용한 금액만 3억5000만원이나 됐다. 브라운관 텔레비전 424대를 구매했다가 다시 1억9700만원을 들여 엘시디(LCD) 텔레비전을 구매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빚어졌다. 태백시청에서 만난 한 공무원은 “사업비를 증액한 근거는 회원권을 모두 분양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뿐이었다”며 “제때 감사를 하거나 수사기관이 수사를 했다면 지금처럼 부실이 심해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태백시는 지난 1월 춘천지검에 감사 결과 보고서를 제출하며 수사를 의뢰했다. 하지만 6개월에 걸친 검찰 수사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검찰은 지난 9일 박종기 전 태백시장과 오투리조트 시공사 회장 등 6명을 구속기소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6명 모두 개인 비리 혐의였다. 특히 박 전 시장은 부하 공무원의 승진 대가로 뇌물을 받고 업무추진비를 횡령한 혐의로만 기소됐을 뿐 오투리조트 사업과 관련해서는 아무런 잘못도 드러나지 않았다. 오투리조트 수사가 부실했다는 비난에 대해 춘천지검 관계자는 “개인 비리는 명확하지만, 사업을 방만하게 한 것을 처벌하려면 업무상 배임죄를 적용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역 민심은 부글부글 끓고 있다. 지난 19일 하일호 태백희망네트워크 대표는 태백시청 2층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태백시가 시민을 위해 써야 할 4400억원을 엉뚱한 곳에 썼다”며 “태백시의 자체 감사 결과를 보면 온통 부실 덩어리인데, 검찰의 수사 결과는 박 전 시장 등 책임자들에게 면죄부만 준 꼴”이라고 주장했다.

검찰의 수사 결과에 대한 불신은 김진만(57) 부시장과 브로커 박영헌(61)씨에 대한 의혹의 눈길로 이어진다. 김 부시장과 브로커 박씨는 김병화(57·전 인천지검장) 대법관 후보자의 가장 가까운 태백 인맥으로 꼽힌다. 김 부시장은 인구 5만에 불과한 태백시가 배출한 검사장인 김 후보자와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함께 다닌 친구 사이다. 태백시청 내부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태백에 있는 김 후보자의 산소를 김 부시장이 관리해주고, 김 후보자가 1년에 한두 차례 성묘를 올 때마다 만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 전직 시의원은 “2010년 김병화씨가 검사장이 됐을 때 시청 앞 도로에 커다란 축하 펼침막이 걸렸다”며 “김 부시장이 김병화 후보자와 친하다는 것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한 시청 공무원도 “김 부시장이 공석과 사석을 막론하고 김병화 후보자에 대한 얘기를 자주 해왔다”고 전했다.

전 경기청장에 돈건넨 이들
한명은 김병화 동창생 부시장
한명은 김병화 선배인 브로커

부시장은 ‘김병화와 무관’ 강변
“그분께 청탁한 적 없습니다
그런 얘기하면 전화 끊습니다”

주민들은 의혹의 눈길 여전
“산소까지 관리 해주는 친구가
검찰에 있는데 로비 안했겠나”

브로커 박씨는 김 후보자의 중학교 선배다. 박씨는 재경태백시민회를 만들어 회장을 맡았고, 김 후보자가 이 단체 감사를 맡았다. 둘은 한달에 한번씩 등산을 함께 했고, 2001년엔 서울 서초동의 고급아파트를 나란히 구입하기도 했다. 한 지역신문 기자는 “박씨가 태백에 오면 박종기 전 시장과 김 부시장이 나가서 맞이할 정도로 위세가 좋았다”며 “박씨가 김 후보자를 비롯해 정·재계 인사들과도 인맥이 넓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결국 박씨는 김 후보자의 위세를 등에 업고 제일저축은행 브로커 노릇을 하다 구속돼, 지난 20일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김 부시장과 박씨는 지난해 3월19일 박종기 당시 시장에 대한 강원경찰청 광역수사대의 수사가 잘 처리되도록 해달라는 부탁과 함께 이철규(55) 전 경기경찰청장에게 현금 1000만원을 건넸다. 로비가 통하지 않았는지, 경찰은 박 시장의 집과 사무실 등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신청하는 등 강도 높은 수사를 계속했다. 하지만 검찰은 두차례나 경찰의 압수수색영장 신청을 반려하면서 사건을 내사종결 처리했다. 이철규 전 청장을 통한 경찰 로비는 실패했지만, 검찰에 대한 로비는 성공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이는 이유다. 태백시청의 한 공무원은 “박 전 시장과 김 부시장이 이미 이철규 전 청장에게 1000만원을 건냈는데 검찰에는 로비를 안 했겠냐”며 “당시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것은 경찰보다는 검찰 탓이 컸다”고 주장했다. 당시 박 전 시장 관련 수사를 진행했던 경찰 관계자는 “압수수색영장을 신청하면 대개 2~3일 안에 결과를 경찰에 알려주는데, 당시에는 검찰이 20일이 넘도록 아무 결과도 알려주지 않아 이례적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지난 20일 점심께 태백시청 앞에서 만난 김 부시장은 이철규 전 청장에게 돈을 건넨 사실을 순순히 인정했다. 다만 “그건 선배(박종기 전 시장)가 전해달라고 해서 전달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직접 돈을 전달한 김 부시장은 내부 징계조차 받지 않았다. 이 전 청장을 만난 것처럼 김병화 후보자를 만나거나 통화한 적이 없냐는 물음에 김 부시장은 펄쩍 뛰었다.

“분명히 말씀드리는데요, 오투리조트나 그 어떤 건에 대해서도 그분에게 청탁한 적 없습니다. 몇 개월에 한번씩 통화는 하지만 일반적인 통화만 합니다. 그런 얘기 하면 ‘골 아픈 거 얘기하지 마라’ 하고 (김 후보자가) 전화를 끊습니다.”

윤형중 기자 hj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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