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전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원주로 숨어들어 1인출판사 ‘시골생활’을 운영하는 나무선씨. 집 뒤쪽에 있는 평상은 숲의 기운을 직접 받을 수 있어 그가 가장 즐겨찾는 곳이다.
[한겨레 창간 24돌 특집] 탈출! 피로사회
노동과 재미 ‘시골공동체’
흙집 짓기 붐에 동호회 활발
7년 넘게 지역사회 밀착
간염·위궤양 지병 사라져
노동과 재미 ‘시골공동체’
흙집 짓기 붐에 동호회 활발
7년 넘게 지역사회 밀착
간염·위궤양 지병 사라져
강원도 홍천으로 가는 56번, 31번 국도변은 온통 신록이다. 원주시에 터 잡은 출판사 ‘시골생활’ 대표 나무선(51)씨는 사륜구동 지프를 몰고 연두에서 진초록까지 녹색 점으로 찍어낸 파스텔 풍경화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시골에서 책 만들기를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이런 호사를 누리겠습니까?”
나씨가 향한 곳은 <정감록>이 일곱 피난지로 꼽은 ‘삼둔·사가리’ 가운데 한 곳인 살둔이다. 행정명으로는 강원도 홍천군 내면 율전리. 내린천을 끼고 촛대봉, 개인산, 구룡덕봉에 둘러싸인 마을. 한국전쟁 때도 전쟁을 모르고 지냈다는 별천지다. 그곳에 사는 ‘기인’ 이대철씨를 만나 자신의 출판사에서 막 펴낸 책 <살둔 제로에너지하우스>를 전달할 참이다. 이씨는 오랜 연구와 실험 끝에 한겨울에도 별도의 난방 없이 창으로 들어오는 햇볕만으로 19도 안팎의 실내온도를 유지하는 단열주택(패시브하우스) 시공법을 개발해 2008년 이곳 살둔에 시범하우스를 짓고 눌러앉았다. 책은 이씨가 겪은 무수한 시행착오와 이를 통해 터득한 노하우를 집대성한 결과물이다.
“강원도 시골 곳곳에 이렇게 묵묵히 자기 길을 가는 분들이 있어요. 저의 역할은 이런 보석 같은 분들을 만나 그들이 이룩한 성과를 엮어 책으로 내는 것입니다. 저에게 일은 훌륭한 분들과의 만남이자, 저의 부족함을 채워가는 배움의 현장입니다.”
나무선씨가 원주에 내려오기로 결심한 것은 2005년 초. 출판이란 반복된 노동이 일상을 짓눌러 오면서 진정한 땀의 의미를 잊은 채 무의미한 쳇바퀴 생활을 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출판을 통한 사회 기여의 명분은 옅어지고, 다음 책을 위한 책 만들기가 되풀이됐다. 이게 아닌데… 하는 자각과 함께 서울을 벗어나기로 결단을 내렸다. 당시 인터넷이 보편화하면서 시골살이가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잡지 분야에서 혹독하게 단련해 출판편집이라면 자신 있었어요. 20대에 출판사를 차렸고 명상, 영어학습서, 청소년 관련 책을 내어 쏠쏠한 재미를 봤죠. 하지만 기획·편집과 경영을 겸한 게 화근이었어요. 일에 치이면서 그토록 매력적이던 편집도 흥미를 잃었습니다. 도솔출판사로 자리를 옮겨 경영을 털어내며 10년을 버텼어요. 원주로 내려오기 직전에는 누적된 피로로 인한 간염과 위궤양으로 만신창이가 된 상태였지요.”
그의 원주행은 당시 불어온 귀농바람의 한자락이었지만 ‘생활은 시골, 문화는 서울’ 방식의 어정쩡한 ‘반농-반출판’은 그의 꿈이 아니었다. 자신의 출판 행위를 지역에서의 삶과 일치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미국의 로이드 칸이 롤모델이었죠. 영성을 기반으로 한 저항세대 가운데 스티브 잡스처럼 도시로 간 사람과 달리 시골 공동체로 들어간 분입니다. 출판인이자 목수이면서 필자로서 책도 쓰는 일인삼역을 했지요.”
나씨는 우선 로이드 칸의 ‘셸터’ 시리즈 3부작인 <셸터>, <행복한 집구경>, <빌더> 번역본을 펴냈다. 이어 잡초들의 생존방식을 다룬 <풀들의 전략>, 시이오(CEO)를 그만두고 시골 삶을 사는 이의 이야기인 <새들아, 집 지어 줄게 놀러 오렴>, 흙과 일체된 삶을 추구하는 <일주일 만에 흙집 짓기>, 볏짚 뭉치로 집 짓는 방법을 알려주는 <스트로베일하우스> 등을 펴냈다.
모두 서울에서 강원도 산골로 숨어들어 홀로 때로는 함께 의식주 혁명의 지혜를 가다듬어 온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는 숨어 사는 사람들의 보석 같은 결과물을 꿰어 엮으면서 출판인의 자부심을 회복했다. 서울에서 마음으로만 바랐던 공동체적인 삶 가운데 일과 재미의 통합을 이뤄냈기 때문이다.
“재미라는 게 정서적인 부분이지만 통합적 성찰을 바탕으로 한 성취에서 피어나는 꽃이죠. 일과 놀이, 노동과 재미의 경계가 소멸되면 시간의 흐름을 잊게 됩니다. 명상을 통한 해탈이 개인 차원에 그친다면, 여럿이 함께 이룬다는 점에서 사회적 해탈이라고 할 수 있죠.”
그가 펴낸 책들은 이른바 베스트셀러와 거리가 멀다. 1만부가 넘게 팔린 것도 있지만 대개는 수천부가 나가면 성공작으로 친다. 하지만 단순한 노하우의 소개가 아니라 매뉴얼 성격이 강해 행동의 변화를 이끈다는 점에서 여타의 책들과 다르다.
<일주일 만에 흙집 짓기>는 이를 교재로 한 교육생이 3천명이 넘어 전국적인 흙집 짓기 붐을 일으켰다. <스트로베일하우스> 애독자가 만든 동호회는 회원이 3만명에 이르며 그 공법을 따른 집이 100여채에 이른다고 한다. 그가 최근 펴낸 <벽난로, 구들방을 데우다>, <태양이 만든 난로 햇빛온풍기>도 실제 성공적인 사례를 바탕으로 지지자들을 넓혀나가는 중이라고 한다.
7년 넘게 지역사회와 밀착된 책을 펴내면서 그는 피곤함을 잊었다. 일에 몰두할수록 피곤하지만 그 피곤은 몹시 달았고 다음날의 자양이 됐다. 그의 건강은 눈에 띄게 나아졌다. 2년 전 건강진단을 받아보니 오랫동안 그를 괴롭혔던 간염과 위궤양이 흔적 없이 사라졌다고 했다. 그는 얼마 전에는 제로에너지하우스의 원리를 채택한 단열주택을 스스로 지어 화석연료의 사용을 최소화한 집에서 살고 있다. 원주생활 초기에 지은 흙집은 끊임없이 찾아오는 길손들을 위한 게스트하우스가 됐다. 그는 새소리와 함께 일어나 텃밭을 돌보고, 낮 동안에는 지역 은사들의 생활 현장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지혜를 배우고 밤이면 그들을 부추겨 확보한 원고를 가다듬는다.
글·사진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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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생활 출판사 주소지이자 나무선 대표 가족이 거주하는 집. 작은 텃밭이 하나 딸렸고 앞다리 한쪽을 잃은 고양이도 함께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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