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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심리적 성장판 닫히기 전에 치료를”

등록 2012-03-09 20:43수정 2012-03-12 10:43

[토요판] 커버스토리
정혜신 박사가 보는 지군
‘비교적 밝은 표정’ ‘태연한 모습’ ‘여자친구 면회 요구’…

 어머니를 살해한 뒤 유치장에 들어간 지아무개(19)군의 모습을 전한 신문 기사에 등장한 문구들이다. 국립법무병원(치료감호소)도 “사건 일시경, 사물 변별능력 및 의사결정 능력을 손상시키는 정신병적 장애는 없었던 것으로 판단되며, 현재도 위와 동일하다”고 지군의 정신을 감정했다. 환청이나 환각 등의 정신 이상이 없는 상태에서 어머니를 살해했다는 의미다. 피도 눈물도 반성도 없는 ‘패륜아’의 전형처럼 비쳐지는 순간이다. 18살(사건 당시) 이 아이의 마음 속에선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과연 패륜아라는 ‘낙인’은 적절한 것일까. 지군의 정신감정서 등을 함께 살펴본 뒤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에게 들어봤다.

 정 박사는 “죽음의 공포를 느낄 정도의 만성적 학대를 받아온 지군은 엄마를 살해한 자신의 행위가 타인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일 뿐 아니라, 죄책감이나 두려움 등 정상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정서적 회로가 오랫동안 훼손되어 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과거 이은석씨가 부모를 살해한 뒤 혼란과 뉘우침, 두려움, 공포 등 ‘정서장애’ 양상을 드러낸 것과 달리, 지군에게선 ‘성격장애’ 가능성이 엿보인다는 것이다.

 성격장애? ‘성장판이 닫히지 않은 뼈’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다 자란 뼈가 외부적 충격을 견디다가 임계점에 달해 부러지는 것과 달리, 18살 무렵까지의 성장판이 닫히지 않은 뼈는 부러지는 대신 휘어지고, 결국은 뼈대 자체가 비틀어진 채 굳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성격장애는 우울, 불안등의 정서장애보다 더 심각한 정리병리로, 심리적 뼈대라 할 수 있는 성격 구조 자체가 병적으로 뒤틀린 정신적 질환이다.

 어머니를 살해하고 태연한 모습이었던 것도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이해가 될 수 있을 터다. 하지만 정 박사는 “이런 지군의 행동들은 사람들이 지군의 고통에 대해 정서적으로 공감하는 것을 방해하게 만들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도 “성격장애가 나타나게 된 맥락을 제거한 채 지군을 ‘파렴치한’으로만 손가락질하는 건 본질을 놓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군에게서 드물게나마 정상적인 정서적 표현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지군은 어머니를 살해한 뒤 아버지가 자신을 버릴까봐 ‘두려워’하거나, 죽은 어머니를 꿈속에서 반복적으로 보고 ‘고통스러워’ 하기도 했다. 정 박사는 “심리적 성장판이 완전히 닫혀버린, 이미 견고해진 성격장애는 아닐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대목”이라며 “더 비관적인 상황으로 발전되기 전에 치료적 개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군의 심리적 문제점을 정확히 규명하기 위해서는 “지군 부모의 문제를 깊고 자세하게 파악하는 게 우선”이라고 그는 말했다. “심리적 성장판이 닫히기 전 아이들에게 생기는 문제는 부모의 문제에 대한 2차적인 리액션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아이에게 문제의 1차적 원인이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지군은 어머니에게서 죽음의 위협을 느끼면서도 아버지에게 구조 요청을 하지 못하지 않았던가. 정 박사는 말했다. “지군을 단지 어머니를 살해한 악마같은 아이로 규정하고 단죄한다면 문제 해결은 지극히 단순해진다. 사람들의 공분도 풀릴지 모른다. 하지만 자신을 낳아준 부모를 살해하는 악의 뿌리가 한 인간의 심성 안에 어떤 과정들을 거치면서 자리잡게 되는지를 외면한다면 이같은 불행을 우리는 반복해서 접하게 될 것이다.”고 했다. 외면한다고 해서 ‘불편한 진실’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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