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25일, 현장검증을 하기 위해 서울 광진구 구의동 집 앞에 도착한 지군이 경찰들과 함께 차에서 내리고 있다.(왼쪽) 현장검증이 끝난 뒤 창문을 통해 들여다본 지군의 방 입구에는 교육방송에서 들은 공부법을 정리한 종이가 붙어 있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토요판] ‘엄마 살해뒤 방치’ 지아무개군의 검찰기록
엄마 빈자리를 여자친구로… “행복 깨기 싫어 자수 안했다”
엄마 빈자리를 여자친구로… “행복 깨기 싫어 자수 안했다”
‘학대와 패륜.’ 존속살해를 바라보는 불편함은 이 두 단어에 갇혀 있습니다. 핏줄로 꽁꽁 묶인 관계는 의존적입니다. 동시에 사랑한 만큼 배신감도 클 수밖에 없는 적대적 관계가 사건에 녹아 있습니다. 존속살해의 시작과 끝에는 ‘엄마, 아빠’라는 세상에서 가장 편안해야 할 존재가 있었습니다. 당신은 어떤 엄마, 아빠입니까? 자녀에 의해 부모가 살해당하는 극단적 형태의 가정폭력, 결국 우리 가정과 사회의 숙제입니다.
주검 옆에서 삶을 놓아버렸다
술과 게임에 빠져들었고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면서도
어머니와 찍은 사진들은
거실에서 치우지 않았다 치료감호소에서 검사한 지군의 지능지수는 131로 ‘최우수’ 수준(K-WAIS 기준)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교내 경시대회에서 여러 차례 상을 타고, 학교 밖에서도 한국과학창의력 경시대회 최우수상을 받았다. 중학교 때는 전 과목에서 ‘수’를 받으면서 전교 1등을 세 번 했고, 제일 못한 때가 전교 4등이었다. 고2 때는 텝스(TEPS) 영어능력 검정 시험에서 가장 높은 1+ 등급(900점 이상)을 받고 국제영어대회(IET 주관)에서 서울지역 은상을 받았다. 학원을 다닌 적은 없었다. 고2 학교생활기록부에는 “영자신문을 제작하는 데 뛰어난 열의와 자질을 보였다. 부반장으로서 리더십을 가지고 부원들을 이끎”이라고 적혀 있었다. 지군의 꿈은 고1 때는 외교관, 2, 3학년 때는 교수였다. 검찰기록에 따르면, 지군은 어머니가 만든 틀 속에 갇혀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어머니는 지군을 감시하기 위해 어려서부터 지군이 자신의 방이 아닌 거실에서 공부하도록 시켰다고 한다. 지군은 중학생 때부터 매일 새벽 1~2시까지 공부했다. 어머니는 지군이 부족한 과목을 공부하라며 독서, 영어 공부, 피아노 연주를 금지하기도 했다고 한다. 어머니 박씨의 친구 오아무개(49)씨는 “한번은 지군이 학교 끝나고 친구들하고 농구를 했는데, (이 사실을 모른) 박씨가 아들이 평소에 오는 시간보다 늦는다며 학교에 전화하고 울고불고했다”고 말했다. 친구들은 지군 엄마가 살아 있을 때는 지군 집에 놀러가지 않았다고 한다. 어머니 박씨는 지군을 어린 시절부터 체벌한 것으로 보인다. 지군이 7살 때 어머니에게 맞아 종아리와 엉덩이가 멍든 것을 보고 지군의 아버지가 아내를 나무라자, 아내는 “간섭하지 마”라며 받아친 일이 있었다. 지군은 초등학교 때도 체벌을 받았고, 아버지가 집을 나간 중2 이후로 어머니의 기대는 더 커져 체벌이 심해졌다. 고2 때는 지군의 컴퓨터에 음란 동영상이 있는 것을 어머니가 보고 학교에 가서 교사와 학생들이 보는데도 지군의 뺨을 때렸다고 한다. 이웃집에 사는 한 남성은 “6년 전부터 지군 옆집에 살았는데 엄마가 툭하면 애를 잡는 게 말도 못했다. 내가 빌라 앞마당에서 담배 피우고 있으면 그 집 엄마가 소리치는 게 다 들렸다”며 혀를 찼다. 지군은 “욕설 섞인 어머니의 잔소리를 30분 동안 들으면 살기가 싫어졌다”며 “평생 누가 날 소중하게 대해주는 걸 느껴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2009년 체벌 중 홍두깨로 어머니 때린 적도
어머니의 체벌을 견디다 못한 지군이 어머니께 반항한 적도 있었다. 지군이 고1인 2009년에 체벌을 받던 중 홍두깨로 어머니를 때렸다. 어머니는 머리를 꿰매고, 금이 간 오른쪽 팔꿈치에 철심을 박는 수술을 받았다. 지군은 “어머니에게 오랜 시간 혼나다가 벗어나고 싶어서 그랬다”며 “어머니를 때리면 기절하실 줄 알았다”고 말했다.
남편과의 별거는 어머니 박씨가 지군에게 더 집착하는 계기가 됐다. 결혼 직후부터 성격 차이로 별거를 거듭하던 부부는 2006년부터 남편이 집을 나와 다른 여자와 동거하면서 완전히 갈라섰다. 지군은 “이때부터 아버지가 완전히 싫어졌다”고 말했다. 박씨는 남편이 다른 여자와 동거를 시작하자 지군에게 “네가 가장으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며 “네가 좋은 학교에 들어가야 날 버리고 나간 친가 쪽 사람들이 굽실거리고 들어오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사건 발생 두달 전인 지난해 1월부터는 협의이혼 과정을 밟기 시작했다.
어머니와 지군의 사이가 항상 나빴던 것은 아니다. 두 사람은 하루에 한두시간씩 대화를 나눴다. 어릴 때부터 겨울방학이면 매년 함께 강원도 강릉으로 여행을 떠났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강원도에 가지 못해 도시락을 싸서 집 근처에 있는 광진구 어린이대공원에 소풍을 가기도 했다. 이웃집 남성은 “두 사람이 잘 지낼 때는 손잡고 집을 나와서, 아들이 엄마를 자전거 뒤에 태우고 저녁 먹으러 가곤 했다”고 기억했다. 지군은 어머니가 죽은 뒤에도 거실에 놓인 어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을 담은 액자 5개를 치우지 않았다. 지군은 “어머니가 변덕이 심하고 완벽주의적이라 정이 안 갔지만, 절약해서 매일 고기반찬을 해주시는 등 생활력과 교육열은 존경스러웠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때는 성적이 중학교 때처럼 좋게 나오지 않았다. 수학이 1학년 때부터 2학년 때까지 70→83→62→48점으로 점점 떨어졌다. 수능 모의고사인 전국연합학력평가에선 전국 1만~3만등으로 어머니가 원하는 서울대에 갈 수준은 되지 못했다.
어머니의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이 나오자 지군은 고1 때부터 내신과 모의고사 성적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전 과목 100점에 전교 1등으로 내신성적표를 고쳤다. 수능 모의고사는 전국 2700→1200→700→500→250→62등으로 성적표를 위조했다. 전국 석차를 추정할 수 있는 백분위를 90.58%에서 99.58%로 고치는 식이었다.
어머니는 ‘전국 62등’ 성적표로도 만족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박씨는 “전국 1등도 할 수 있다”며 지군이 고2가 되어 입시가 코앞으로 다가오자, 지군이 더 공부에 전념하도록 매의 강도와 빈도를 높였다는 것이다. 체벌용 야구배트도 새로 구입했다. 한달 중 안 맞고 지나가는 날이 두세번밖에 안 될 정도였다고 했다. 지군은 “어머니가 한번 체벌하기 시작하면 7~8시간 동안 때리고, 잔소리하고, 다시 때렸다”고 말했다. 지군은 잠을 못 잔 상태로 엉덩이에서 나는 피를 지혈하기 위해 바지에 수건을 넣고 학교에 갈 때가 있었다. 친구 김아무개(19)군은 “지군과 함께 목욕탕에 갔다가 지군의 허벅지·엉덩이·등에 피멍이 든 것을 보고 놀랐다”며 “종아리가 피멍이 들고 부어 있어 정말 두꺼웠다”고 말했다. 지군이 견디다 못해 가위로 자신의 손목을 그은 적도 있었다. 지군은 “고등학교 입학한 뒤부터 엄마로 느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때 잠만 잤어도 그런 일은 없었을 것”
지군은 주변에 도움을 구할 사람이 없었다. 지군은 “(어머니한테 심하게 체벌당한다는 이야기를) 선생님한테 했다가 어머니가 그 사실을 알면 더 혼날 것이기 때문에 이야기하지 않았고, 친구들한테 말해도 별다른 대책이 없었다”며 “아버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연락조차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군의 고2 담임교사는 검찰 조사에서 “지군이 맞고 다닌다는 느낌을 받았다거나 지군의 친구들로부터 그런 얘기를 들은 바가 없었다”고 말했다. 지군은 대학에 진학하면 어머니와 따로 살 생각에 하루하루 버텨나갔다.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아보면, 어머니 박씨는 평범한 성격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군의 아버지는 “내가 노점상을 할 때였는데, 아내가 다른 사람들이 무시하니 에쿠스를 사야 한다고 고집을 부려 샀다가 6개월 뒤에 1000만원 손해 보고 판 적이 있다”고 말했다. 박씨는 우울증으로 병원 치료를 받고, 수면제를 먹기도 한 것으로 보인다. 박씨는 10년 전 자신의 아버지와 싸운 다음 친정과 연락을 끊고 지내다, 2010년에 아버지와 동생을 한번 만난 뒤로 다시 왕래 없이 지냈다. 서울동부보호관찰소에선 지군과 가족 진술을 토대로 박씨가 “친척이나 이웃과 왕래가 없었고, 친구 2명과 가끔 왕래하는 정도로 인간관계가 협소해 대인기피적인 모습이 있었다”고 봤다. 지군은 “어머니가 누군가 자기를 아껴주길 원했는데 그런 게 충족이 안 되다 보니 상당히 변덕스러웠다”며 “‘왜 나한테는 신경 안 써주냐’고 하셔서, 신경써 드리면 ‘공부나 하지 왜 나한테 신경쓰냐’고 혼내셨다”고 말했다.
지군이 범행을 저지른 날도 지군은 어머니로부터 심한 학대를 받았다. 지군이 어머니를 살해하기 3일 전인 10일부터 지군의 어머니는 지군에게 “정신력을 길러라. 밥의 감사함을 알아야 한다”며 단식을 시켰다. 11일에도 공부하다 존다고 밤새 매를 맞았다. 12일 밤 11시부터 범행 당일 아침 8시까지 잠도 자지 못하고 지군은 5차례에 나눠 200대가량을 골프채로 엉덩이를 맞았다. 지군은 “잠을 못 자니 누가 건드리면 주먹이 나갈 것 같고, 짜증나고, 짐승처럼 됐다”며 “그때 잠만 잤어도 그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조사 결과 지군이 매 맞을 당시 입었던 바지의 엉덩이 부위에서 지군의 피가 검출됐다.
감정을 내보이긴 싫었지만
경찰에게 범행을 고백할 땐
눈물을 참지 못했다
“용서받지 못할 죄를 저질렀다”
혼자 속죄의 기도를 했다 지군은 어머니를 죽인 이유를 “다음날 학부모 총회에서 어머니가 성적표 위조한 것을 알게 되면 나를 때려서 죽일 것 같아서”라고 말했다. 하지만 검찰 조사 과정에서 학부모 총회는 22일로 살해한 날보다 9일 뒤에 열린 것으로 확인됐다. 담당 검사는 “성적표 위조가 발각당할 두려움보다는 어머니로부터 받는 통제와 체벌에 대한 분노감이 표출된 것”이라며 지군이 의지적으로 살인을 저질렀다는 점에 무게를 뒀다. 담당 변호사는 “지군이 살해를 결심할 당시 학부모 총회가 다음날 열린다는 걸로 알고 있었다는 점이 중요하다”며 “지군이 성적을 조작한 일로 상당한 심리적 압박을 받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어머니를 죽이고 난 뒤 지군은 살고자 하는 의지를 놓아버렸다. 잠이 들면 꿈에 엄마를 죽이는 순간이 반복 재생됐다. 어머니가 웃으면서 어린 시절의 지군에게 달려오다가 눈과 목에서 피를 흘리고 얼굴이 검게 변해서는 지군을 죽이려고 달려드는 악몽도 꿨다. 잘 때도 불을 다 켜놓고 잤다. 벗어놓은 옷과 이불과 쓰레기로 집은 발 디딜 틈도 없이 어질러져 있었다. 술과 담배도 시작했다. 소주 반병을 마시고 학교에 간 적도 있었다. “어머니의 사체를 처리할 생각은 못했느냐”고 묻는 검사의 질문에, 지군은 “그 일 있고부터는 삶의 의욕이 없어서 막장처럼 살았고, 시체 처리나 이런 거는 생각도 하기 싫었다”고 답했다. 안방에서 썩어 들어가는 어머니의 주검을 잊기 위해 영화와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 같은 온라인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에 빠져들었다. 100만원짜리 모형 총을 3자루 사고, 모형 검을 수집했다. 어릴 때부터 좋아했지만 공부하라는 어머니의 요구에 제대로 해보지 못한 취미였다. 집에 혼자 있기가 두려워 친구들을 불러 라면을 끓여 먹고 게임을 했다. 지군의 집에서 한달에 두세번 같이 잤다는 한 친구는 “처음에 집에 갔을 때부터 조금 이상한 냄새가 나긴 했는데, ‘집 안이 워낙 더러워서 나는 냄새인가 보다’ 생각했다”고 말했다. 꿈은 ‘평범한 삶’… 어머니 유산 기부할 예정 지군은 고통의 근원이었던 공부를 주저 없이 포기했다. 내신 성적이 곤두박질쳤다. 1, 2학년 때 90점을 항상 넘었던 영어도 3학년 1학기 때는 48점으로 주저앉았다. 수학 점수는 28점, 한국지리는 18점이었다. 시험 기간에 학교를 가지 않은 날도 있었다. ‘태연히 수능을 보러 갔다’는 일부 보도와 달리, 지군은 수능시험도 보러 갈 생각이 없어 학교에서 수험표도 받아가지 않았다. 담임교사가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지군이 수험표를 받아가지 않았다고 알려줘, 아버지가 지군에게 전화해 화를 낸 뒤에야 지군은 수험표를 받아 수능을 쳤다. 수리영역 시간에는 잠을 자서 7등급이 나오고, 언어영역은 4등급이 나왔다. 지군이 어머니를 살해한 뒤 곧바로 자수하지 않은 이유는 여자친구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군은 1학년 때부터 좋아하던 같은 학교 동급생과 범행 이후인 6월부터 사귀기 시작했다.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어머니의 빈자리를 여자친구로 채웠다. 지군은 새벽 5시에 일어나 여자친구 집 앞에 가서 자전거에 태워 등교했고, 수업이 끝나면 밥을 사주고 자전거에 태워 집으로 데려다줬다. 지군 여자친구는 검찰 조사에서 “왜 성적이 떨어지는지, 왜 학교에 자주 빠지는지 지군에게 물어봤는데, 지군은 ‘삶에 미련이 없다. 너를 위해 죽을 수 있다’는 말을 해서 그러지 말라고 다독이곤 했다”고 말했다. 지군은 “여자친구가 없었다면 (살해 후 바로) 자수했을 것 같다. 같이 있는 행복한 시간이 꿈만 같고 깨고 싶지 않았다”며 울먹였다. 지군을 조사한 경찰과 치료감호소의 정신보건임상심리사는 “엄마 살해에 대한 죄책감은 결여되어 있었다”고 봤다. 하지만 경찰 조서에는 지군이 어머니를 죽이는 상황을 설명하는 부분의 중간에 “(이때 피의자는 눈물을 흘리며)”, “(피의자는 심하게 흐느끼며)”라는 경찰관의 묘사가 적혀 있다. 지군은 검찰 조사에서 “사람들 앞에서는 감정을 내보이고 싶지 않았다”며 “혼자 기도할 때는 (어머니 생각에) 감정이 격해지면서 제가 죄인이고 용서받지 못할 잘못을 저질렀으니 평생 속죄하며 다른 사람을 돕는 삶을 살게 해달라고 한다”고 말했다. 재판을 앞둔 현재 지군의 꿈은 ‘평범한 삶’이다. 지군은 보호관찰관에게 “여자친구와 결혼해서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평범한 회사원으로 살아가는 것이 꿈이다”라고 말했다. 지군의 아버지는 어머니가 남긴 유산의 일부를 기부할 예정이다. 어머니 박씨는 3억원의 유산을 남겼다. 지군의 아버지로부터 받은 집과 생활비다. 유산을 상속할 권리는 아버지 지씨에게 있다. 지씨는 “3억원을 다 기부할지 아니면 아들의 출소 후를 위해 절반은 남겨둘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술과 게임에 빠져들었고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면서도
어머니와 찍은 사진들은
거실에서 치우지 않았다 치료감호소에서 검사한 지군의 지능지수는 131로 ‘최우수’ 수준(K-WAIS 기준)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교내 경시대회에서 여러 차례 상을 타고, 학교 밖에서도 한국과학창의력 경시대회 최우수상을 받았다. 중학교 때는 전 과목에서 ‘수’를 받으면서 전교 1등을 세 번 했고, 제일 못한 때가 전교 4등이었다. 고2 때는 텝스(TEPS) 영어능력 검정 시험에서 가장 높은 1+ 등급(900점 이상)을 받고 국제영어대회(IET 주관)에서 서울지역 은상을 받았다. 학원을 다닌 적은 없었다. 고2 학교생활기록부에는 “영자신문을 제작하는 데 뛰어난 열의와 자질을 보였다. 부반장으로서 리더십을 가지고 부원들을 이끎”이라고 적혀 있었다. 지군의 꿈은 고1 때는 외교관, 2, 3학년 때는 교수였다. 검찰기록에 따르면, 지군은 어머니가 만든 틀 속에 갇혀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어머니는 지군을 감시하기 위해 어려서부터 지군이 자신의 방이 아닌 거실에서 공부하도록 시켰다고 한다. 지군은 중학생 때부터 매일 새벽 1~2시까지 공부했다. 어머니는 지군이 부족한 과목을 공부하라며 독서, 영어 공부, 피아노 연주를 금지하기도 했다고 한다. 어머니 박씨의 친구 오아무개(49)씨는 “한번은 지군이 학교 끝나고 친구들하고 농구를 했는데, (이 사실을 모른) 박씨가 아들이 평소에 오는 시간보다 늦는다며 학교에 전화하고 울고불고했다”고 말했다. 친구들은 지군 엄마가 살아 있을 때는 지군 집에 놀러가지 않았다고 한다. 어머니 박씨는 지군을 어린 시절부터 체벌한 것으로 보인다. 지군이 7살 때 어머니에게 맞아 종아리와 엉덩이가 멍든 것을 보고 지군의 아버지가 아내를 나무라자, 아내는 “간섭하지 마”라며 받아친 일이 있었다. 지군은 초등학교 때도 체벌을 받았고, 아버지가 집을 나간 중2 이후로 어머니의 기대는 더 커져 체벌이 심해졌다. 고2 때는 지군의 컴퓨터에 음란 동영상이 있는 것을 어머니가 보고 학교에 가서 교사와 학생들이 보는데도 지군의 뺨을 때렸다고 한다. 이웃집에 사는 한 남성은 “6년 전부터 지군 옆집에 살았는데 엄마가 툭하면 애를 잡는 게 말도 못했다. 내가 빌라 앞마당에서 담배 피우고 있으면 그 집 엄마가 소리치는 게 다 들렸다”며 혀를 찼다. 지군은 “욕설 섞인 어머니의 잔소리를 30분 동안 들으면 살기가 싫어졌다”며 “평생 누가 날 소중하게 대해주는 걸 느껴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현장검증이 끝난 다음 들여다본 지군의 집 거실은 옷과 쓰레기 등으로 어질러져 있었다. 지군은 어머니를 살해한 뒤 집을 거의 치우지 않고 지냈다. 경찰 관계자는 “지군을 검거할 당시부터 집안이 심하게 어질러져 있었고, 현장검증을 하면서 집안 상황을 거의 그대로 보존했다”고 말했다. 지군의 변호사는 “지군이 어머니를 살해한 후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경찰에게 범행을 고백할 땐
눈물을 참지 못했다
“용서받지 못할 죄를 저질렀다”
혼자 속죄의 기도를 했다 지군은 어머니를 죽인 이유를 “다음날 학부모 총회에서 어머니가 성적표 위조한 것을 알게 되면 나를 때려서 죽일 것 같아서”라고 말했다. 하지만 검찰 조사 과정에서 학부모 총회는 22일로 살해한 날보다 9일 뒤에 열린 것으로 확인됐다. 담당 검사는 “성적표 위조가 발각당할 두려움보다는 어머니로부터 받는 통제와 체벌에 대한 분노감이 표출된 것”이라며 지군이 의지적으로 살인을 저질렀다는 점에 무게를 뒀다. 담당 변호사는 “지군이 살해를 결심할 당시 학부모 총회가 다음날 열린다는 걸로 알고 있었다는 점이 중요하다”며 “지군이 성적을 조작한 일로 상당한 심리적 압박을 받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어머니를 죽이고 난 뒤 지군은 살고자 하는 의지를 놓아버렸다. 잠이 들면 꿈에 엄마를 죽이는 순간이 반복 재생됐다. 어머니가 웃으면서 어린 시절의 지군에게 달려오다가 눈과 목에서 피를 흘리고 얼굴이 검게 변해서는 지군을 죽이려고 달려드는 악몽도 꿨다. 잘 때도 불을 다 켜놓고 잤다. 벗어놓은 옷과 이불과 쓰레기로 집은 발 디딜 틈도 없이 어질러져 있었다. 술과 담배도 시작했다. 소주 반병을 마시고 학교에 간 적도 있었다. “어머니의 사체를 처리할 생각은 못했느냐”고 묻는 검사의 질문에, 지군은 “그 일 있고부터는 삶의 의욕이 없어서 막장처럼 살았고, 시체 처리나 이런 거는 생각도 하기 싫었다”고 답했다. 안방에서 썩어 들어가는 어머니의 주검을 잊기 위해 영화와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 같은 온라인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에 빠져들었다. 100만원짜리 모형 총을 3자루 사고, 모형 검을 수집했다. 어릴 때부터 좋아했지만 공부하라는 어머니의 요구에 제대로 해보지 못한 취미였다. 집에 혼자 있기가 두려워 친구들을 불러 라면을 끓여 먹고 게임을 했다. 지군의 집에서 한달에 두세번 같이 잤다는 한 친구는 “처음에 집에 갔을 때부터 조금 이상한 냄새가 나긴 했는데, ‘집 안이 워낙 더러워서 나는 냄새인가 보다’ 생각했다”고 말했다. 꿈은 ‘평범한 삶’… 어머니 유산 기부할 예정 지군은 고통의 근원이었던 공부를 주저 없이 포기했다. 내신 성적이 곤두박질쳤다. 1, 2학년 때 90점을 항상 넘었던 영어도 3학년 1학기 때는 48점으로 주저앉았다. 수학 점수는 28점, 한국지리는 18점이었다. 시험 기간에 학교를 가지 않은 날도 있었다. ‘태연히 수능을 보러 갔다’는 일부 보도와 달리, 지군은 수능시험도 보러 갈 생각이 없어 학교에서 수험표도 받아가지 않았다. 담임교사가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지군이 수험표를 받아가지 않았다고 알려줘, 아버지가 지군에게 전화해 화를 낸 뒤에야 지군은 수험표를 받아 수능을 쳤다. 수리영역 시간에는 잠을 자서 7등급이 나오고, 언어영역은 4등급이 나왔다. 지군이 어머니를 살해한 뒤 곧바로 자수하지 않은 이유는 여자친구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군은 1학년 때부터 좋아하던 같은 학교 동급생과 범행 이후인 6월부터 사귀기 시작했다.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어머니의 빈자리를 여자친구로 채웠다. 지군은 새벽 5시에 일어나 여자친구 집 앞에 가서 자전거에 태워 등교했고, 수업이 끝나면 밥을 사주고 자전거에 태워 집으로 데려다줬다. 지군 여자친구는 검찰 조사에서 “왜 성적이 떨어지는지, 왜 학교에 자주 빠지는지 지군에게 물어봤는데, 지군은 ‘삶에 미련이 없다. 너를 위해 죽을 수 있다’는 말을 해서 그러지 말라고 다독이곤 했다”고 말했다. 지군은 “여자친구가 없었다면 (살해 후 바로) 자수했을 것 같다. 같이 있는 행복한 시간이 꿈만 같고 깨고 싶지 않았다”며 울먹였다. 지군을 조사한 경찰과 치료감호소의 정신보건임상심리사는 “엄마 살해에 대한 죄책감은 결여되어 있었다”고 봤다. 하지만 경찰 조서에는 지군이 어머니를 죽이는 상황을 설명하는 부분의 중간에 “(이때 피의자는 눈물을 흘리며)”, “(피의자는 심하게 흐느끼며)”라는 경찰관의 묘사가 적혀 있다. 지군은 검찰 조사에서 “사람들 앞에서는 감정을 내보이고 싶지 않았다”며 “혼자 기도할 때는 (어머니 생각에) 감정이 격해지면서 제가 죄인이고 용서받지 못할 잘못을 저질렀으니 평생 속죄하며 다른 사람을 돕는 삶을 살게 해달라고 한다”고 말했다. 재판을 앞둔 현재 지군의 꿈은 ‘평범한 삶’이다. 지군은 보호관찰관에게 “여자친구와 결혼해서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평범한 회사원으로 살아가는 것이 꿈이다”라고 말했다. 지군의 아버지는 어머니가 남긴 유산의 일부를 기부할 예정이다. 어머니 박씨는 3억원의 유산을 남겼다. 지군의 아버지로부터 받은 집과 생활비다. 유산을 상속할 권리는 아버지 지씨에게 있다. 지씨는 “3억원을 다 기부할지 아니면 아들의 출소 후를 위해 절반은 남겨둘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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