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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엄마 살해범’이란 말이 어울리지 않던 그 소년

등록 2012-03-09 20:21수정 2012-03-09 22:09

[토요판]
‘존속살인범’이라는 말의 섬뜩함은 검은 뿔테 안경을 낀 뽀얀 피부의 소년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았다. “식사는 맛있게 하셨어요?”라는 질문에 소년은 “여기 식사가 맛이 있을 수가 있나요?”라고 장난스럽게 되물었다. 소년이 아버지가 넣어준 영치금으로 빵을 10개 사서 방 친구인 소년범들과 나눠 먹고 자기도 방 친구가 ‘쏘는’ 빵을 같이 먹는다는 이야기에, 고등학교 교실 한켠 같은 감방 풍경이 그려졌다.

어머니 박아무개(52)씨를 죽여 8개월간 주검을 안방에 방치한 지아무개(19)군 사건은 지난해 11월 주요 일간지 1면과 방송에 보도돼 많은 사람에게 충격을 줬다. 지군은 오는 19, 20일 서울동부지방법원에서 열리는 국민참여재판의 피고석에 선다. 우연히도 어머니를 죽인 지난해 3월13일로부터 1년이 지난 시점에 열리는 재판이다. 재판을 기다리는 지군의 심정은 어떨까. 지난달 23일 서울 송파구 성동구치소에 수감된 지군을 지군의 아버지(53), 고모(47)와 함께 면회했다.

마이크를 통해 흘러오는 서로의 작은 목소리를 듣기 위해 가족은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바싹 붙어 앉았다. 고모의 안경이 유리창에 눌려 가족은 한바탕 웃었다. 고모는 지군에게는 기자를 ‘소송 관련해 도와주는 고모의 후배’라고 소개했다.

고모가 “네 여자친구가 너를 너무 사랑하는 거 보면 고모도 ‘하나님이 계시나 보다’ 생각은 좀 해”라고는 “그래도 아빠가 너한테 너무 하나님 믿으라고 강요하는 것 같아서 ‘애한테 생각할 시간을 줘’라면서 내가 맨날 뭐라고 해”라며 오빠의 흉을 본다. 지군은 “여기 생각할 시간은 많아요. 사람들 전부 다 하늘 쳐다보고 있어요. 저도 성경 읽다 보면 어려워서 아빠한테 물어볼 부분이 많으니까”라며 아버지 편을 든다. 고모가 “운동은 뭐 해?”라고 묻자 지군은 “운동은 안 해요. 운동은 좋아하는데, 땀나는 게 싫어서. 차가운 물이라 샤워하기가 싫어요”라고 핑계를 댄다.

가벼운 대화를 이어가다, 기자가 어머니 이야기를 꺼냈다. “어머니 생각은 해요?” 지군의 얼굴에서는 웃음기가 사라졌다. 지군은 고개를 숙였다. 길게 3초가 흘렀다. “반성하고 있습니다”라며 무겁게 입을 뗐다. 이어서 “재판 걱정은 안 돼요?”라고 묻자, 지군은 담담히 “이미 다 알려졌는데요. 감출 수 있는 일도 아니고”라고 말했다.

지군의 아버지는 아내의 유산을 얼마나 기부할지 아들의 뜻을 확실히 알고 싶었다. 지군은 전부 기부하길 원했다. “다 기부했으면 좋겠어. 어머니가 모아두신 재산인데 제가 쓰는 것 맞지 않은 것 같아요. 그리고 어머니가 ‘황금을 상자에 가득 채우는 것이 자식에게 경서 한 권을 가르치는 것만 못하다’는 말씀을 하셨거든요. 어머니는 저를 그렇게 키우셨어요.”

짧은 면회 시간 10분이 어느새 지나고, 지군의 목소리가 들려오던 마이크가 꺼졌다. 지군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면회실을 나온 아버지와 고모는 안경을 벗어 눈물을 훔쳤다. 목이 메었는지 구치소 정문을 나설 때까지 서로 말 한마디 없었다.

<한겨레>가 입수한 644쪽짜리 서울동부지검의 지군 사건 증거기록에는 지군의 진술만이 아니라 그동안 언론에 나오지 않았던 친구, 여자친구, 어머니의 친구 등 주변 인물들의 진술이 들어 있었다. 재판의 쟁점이 될 치료감호소의 정신보건임상심리사가 작성한 정신감정서도 실려 있었다. 이를 토대로 지군이 왜 이런 범행을 저질렀는지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들을 중심으로 재구성하고, 곧 열릴 재판의 쟁점은 무엇인지 짚어봤다.

글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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