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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총수 중대 범죄에 법원은 으레 ‘집유’

등록 2012-02-12 19:44수정 2012-02-13 17:10

0.1% 재벌의 나라
①과도한 부의 집중
배임 이건희엔 “회사 발전에 상당히 기여”
횡령 정몽구엔 “경제적 파급효과 1위라서”
분식회계 최태원엔 “국가 경제 이바지 해서”
‘떡값’ 관리에 거대로펌의 ‘합법적 로비’ 산물
특별검사의 기소로 법정에 선 이건희(70) 삼성전자 회장은 2008년 10월 임직원들의 명의로 주식을 차명보유해 양도소득세를 내지 않고 증권거래법을 위반한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법원은 에버랜드 전환사채(CB)와 에스디에스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자녀들에게 헐값에 넘겨 회사에 손실을 끼쳤다는 이 회장의 배임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단했다.

그러나 2009년 5월 대법원은 항소심에서 무죄가 됐던 에스디에스 배임 부분을 유죄로 판단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징역형이 3년이 넘어가면 형법상 집행유예를 붙이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 회장의 파기환송심에서는 실형이 선고될 거라는 게 법조계의 ‘상식적인’ 관측이었다. 그러나 같은해 8월 서울고법은 파기환송 전 항소심 판결과 똑같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1+1=1’이 되는 희한한 판결이었다. 재판부는 파격적인 이 판결을 두고 “삼성에스디에스의 발전에 이 회장이 상당히 기여했다는 점을 인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900억원대의 회삿돈을 횡령하고 계열사에 2100억원대의 손실을 끼친 혐의로 기소된 정몽구(74) 현대자동차 회장은 2008년 6월 항소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저소득층을 위한 문화시설 건립과 환경보전 사업 △전경련 회원들을 상대로 한 준법경영 강연 등의 ‘이색 사회봉사명령’을 부과하면서 1심의 실형 선고를 집행유예로 낮췄다. 재판부는 “우리나라에서 현대차가 미치는 경제적 파급효과는 1위이며, 정 회장은 현대차의 상징 … 현대차가 경제에 미칠 영향이 꺼려진다”고 밝혔다.

수백억원의 회삿돈을 빼돌려 선물투자에 유용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은 최태원(52) 에스케이(SK) 회장은 지난달 불구속 기소됐다. 2003년 분식회계와 배임 혐의로 구속 기소됐던 최 회장은 2008년 8월 사면된 직후에 재범을 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이런 이유로 수사팀은 ‘정상참작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했지만, 검찰 수뇌부가 ‘동생인 최재원 수석부회장이 횡령 혐의로 구속 기소됐으니 최 회장은 선처하자’고 주장해 그의 기소 직전까지 검찰 내부에서 상당한 진통이 있었다.

법조계에서는 법원·검찰의 이런 비상식적인 판결·수사가 거대 로펌을 통한 교묘하고 은밀한 로비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거대 로펌이 법원·검찰 출신의 유능한 ‘전관’들을 해마다 직급별로 영입해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해놓고, 사건이 들어올 때마다 담당 판검사와 친밀한 변호사들을 투입해 ‘선처 작업’을 한다는 것이다.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로 드러난 ‘삼성 떡값’처럼 불법적이고 위험성 높은 ‘직접 관리’는 이미 옛날 방식이고, 거대 로펌을 이용한 ‘합법적인 로비’가 이뤄지고 있다는 얘기다.

판사를 지낸 한 중견 변호사는 “거대 로펌은 사건 수임 뒤 담당 판검사와 매우 친밀한 변호사를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 붙여놓는다. 판검사들은 퇴임 뒤 거대 로펌에 영입되기를 희망하거나 법조계에서 자신들의 평판이 저하되는 것을 두려워해 거대 로펌의 요구에 약한 모습을 보인다”며 “거대 로펌이 합법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법조계의 구조적인 문제를 손질해야 법원·검찰의 재벌 봐주기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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