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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기고] 재벌의 힘 아무리 막강해도 폐기되지 않을 정책 도입을/김우찬

등록 2012-02-16 18:54

김우찬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김우찬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김우찬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정치권에서 여·야 할 것 없이 재벌개혁을 외치고 있다. 그동안 줄곧 재벌개혁과 각을 세웠던 여당이나 김대중 정부 초기 때 도입한 재벌개혁 정책들을 스스로 폐기했던 야당이나 모두 경제민주화를 강령에 포함시켰다. 분위기만으로는 조만간 대대적인 재벌개혁이 이루어질 것만 같다.

하지만 두 가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먼저, 정치인들의 진정성이 의심스럽다. 지금의 재벌개혁 논의는 다분히 4월 총선과 12월 대선을 의식한 측면이 있다. 선거 이후에도 과연 지금의 분위기가 유지될 수 있을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개혁입법이 이루어질지 의문이다.

둘째, 재벌의 힘이 여전히 막강하다는 것이다. 재벌개혁의 당위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았던 1999년 8월15일 김대중 대통령은 8·15 경축사를 통해 출자총액제한제도의 부활을 선언했다. 하지만 출자총액제한제도는 부활 9개월 만에 대폭 손질되었고, 줄곧 완화되다가 부활 8년째인 2009년 공식 폐기되었는데 그 이면에는 재벌의 막강한 로비와 여론몰이가 분명 있었다. 또, 반재벌 정서가 팽배한 요즘에도 재벌들은 그들이 원하는 것들을 모두 관철시키고 있다. 한화의 경우 총수의 배임·횡령 혐의로 주식거래가 정지될 판이었지만 증권선물거래소의 배려로 거래정지를 면할 수 있었다. 또 배임·횡령 혐의로 기소된 총수가 시가총액 13위의 하이닉스 이사에 선임될 때 국민연금은 중립이라는 모호한 태도를 취했다.

이런 난관에도 불구하고 이번 기회를 활용해서 의미 있는 재벌개혁을 이끌어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먼저, 과거에 실패한 정책에 집착하기보다는 새로운 정책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출자총액제한제도는 재벌개혁의 상징이다. 1987년 도입되어 가장 역사가 긴 재벌정책 수단이다. 하지만 지난 10년 동안의 역사가 말해주듯 출자총액제도는 실패한 정책이다. 출자한도를 너무 높이면 구속력이 없고, 너무 낮추면 대기업의 출자여력을 줄여 민영화와 산업 구조조정을 어렵게 하는 측면이 있다. 설사 이번에 새로 부활하더라도 비슷한 논의과정을 거쳐 각종 예외가 인정된 후 폐기될 가능성이 크다.

과거의 역사를 되풀이하기보다는 새로운 정책, 새로운 접근 방법에 관심을 보일 필요가 있다. 필자는 주주총회 활성화에 기대를 걸어 본다. 경제력 집중과 관련된 중요 사항들은 가급적 이사회 결의가 아닌 주주총회 결의사항으로 만들고 보다 많은 주주들이 주주총회에 참여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함으로써 재벌들을 견제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먼저 대규모 기업인수와 일감 몰아주기 등을 주주총회 안건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 그리고 구체적인 주주총회 안건을 주주총회 2주 전이 아닌 3~4주 전에 주주들에게 통지해야 한다. 또, 주주들의 편의를 위해 기업들에게 전자투표를 의무화하고 우리나라 최대 기관투자자인 국민연금의 주주권행사를 강화하고 의결권행사 내역을 사전에 공시하도록 해야 한다.

둘째, 발상의 전환도 필요하다. 즉, 경제력 집중 억제는 출자제한이 아니라 출자증대를 통해서도 달성 가능하다. 현재는 기업을 인수할 때 20~30%의 지분만 인수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100%의 지분인수를 강제하거나 세제상 유리하도록 만들자는 것이다. 부분매수 대신 전량매수가 일반화되면 다단계 출자가 억제되어 적은 자본금 출자만으로 여러 계열사를 지배하는 것이 어려워진다. 구체적으로는 자회사에 대한 지주회사의 지분하한 상향조정, 지분 80% 미만의 계열사로부터 받은 배당소득 과세, 더 나아가서는 영국식 의무공개매수제도(30% 이상의 지분을 인수하면 나머지 70%의 지분에 대해서도 동일 가격에 매수할 의무 발생)를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더 많은 출자를 요구하는 것이므로 투자를 저해한다는 비판으로부터도 자유롭다.

또 이런 정책들은 영국, 미국 등 선진국들이 이미 오래전에 도입하여 그 정당성과 유효성이 입증된 제도들이다. 따라서 재벌의 힘이 아무리 막강하더라도 도입 이후 폐기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김우찬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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