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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재벌개혁 좌우할 1순위는? “정치권 의지와 엄정한 법집행”

등록 2012-02-16 18:53수정 2012-02-16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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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재벌의 나라 ⑤ 경제력 집중, 어떻게 막나
경제학자들, 변화된 환경 맞춰 새로운 접근법 강조
“금리·환율·세금등 재벌에 유리한 거시정책 바꿔야”
공정거래법 전면 손질·사법부 엄정한 법집행 주문
경제학자들은 경제력 집중을 해소하려면 무엇보다도 정부와 정치권의 강력한 의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16일 <한겨레>가 재벌 문제를 연구해온 경제학자 10명을 대상으로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해소하기 위해 어떤 것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하느냐’고 질문한 결과 7명이 정치권의 재벌개혁 의지와 공정거래위원회·사법부의 엄정한 법 집행을 꼽았다. 이는 역대 정부가 집권 초기에 재벌개혁을 천명했다가 로비에 밀려 후퇴하거나 단기적인 경제 성과에 집착해 용두사미로 끝나는 일이 반복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최정표 건국대 교수(경제학)는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부 모두 재벌들의 로비와 저항에 물러섰다”며 “재벌개혁 없이는 한국 경제의 미래가 없는 만큼 사명감을 갖고 정책을 추진하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이들은 재벌 대기업 위주 거시경제정책의 변화,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제 폐지와 순환출자 금지 등 공정거래법의 전면 개정, 검찰과 법원의 엄정한 법 집행 등을 구체적인 방안으로 꼽았다. 재벌 관련 규제가 강화돼야 하지만 그것만으로 성공할 수 없고, 정부의 강력한 의지와 사법부의 예외 없는 단호한 법 적용이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재벌개혁 방법 모르는 게 아니다…하나라도 제대로 해라”

“과거식의 재벌정책으로는 성과를 내기 어렵다. 재벌 기업과 하청업체와의 거래, 재벌과 친인척 계열사와의 거래, 재벌의 새 영역 진출 등에 대한 규제를 하기 위해선 공정거래법을 전면적으로 재정비해야 한다.” 최정표 건국대 교수는 재벌의 경제력 집중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떤 것이 필요하냐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이렇게 대답했다. 김기원 방송대 교수는 “과거엔 정부가 재벌을 감시했으나 이제는 불가능하다”며 “금융과 산업을 분리시켜 금융이 일상적으로 재벌을 감시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벌 개혁을 위해서는 과거와 같은 방식의 단순한 정부 규제만으로는 성공하기 어렵고 변화된 환경에 맞는 새로운 경제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경제력 집중을 막고 재벌 개혁을 이뤄내려면 재벌 대기업에 유리하게 짜여 있는 거시경제 정책과 공정거래법 등 재벌 관련 법률을 전면적으로 바꿔야 할 뿐 아니라 정치권의 강력한 의지와 법원의 엄정한 판결이 수반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재벌 기업이 끊임없이 문어발처럼 사업을 확장하고, 총수 일가가 전횡을 하는 것이 재벌의 현주소다. 과거에 비해 많이 투명해졌다고 하지만 본질에서는 전혀 변한 게 없다. 장상환 경상대 교수는 “적은 지분을 가진 재벌 총수가 계열사의 순환출자 등을 통해 수십개의 계열사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계열사들이 무차별적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몸집을 불려가면서 경제력 집중의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물론 이런 방식의 경제력 집중은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의 파탄으로 귀결된다.

경제학자들은 경제력 집중을 해소하기 위해 무엇보다 먼저 재벌 대기업에 유리한 거시경제 정책이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수출 대기업 지원에 맞춰진 고환율 정책은 물론이고 대기업에 혜택이 집중되는 조세 관련 법률을 대폭 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삼성전자 등 몇몇 대기업의 법인세 실효세율은 중소기업보다 낮은 게 현실이다. 각종 조세감면 제도가 대기업에 유리하게 짜여 있기 때문이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는 “현 정부 들어 고환율, 저금리, 감세 등의 거시정책이 대부분 대기업에 혜택이 돌아가도록 운용됨으로써 재벌의 경제력 집중이 강화됐다”며 “이런 인위적 지원을 그만두고 거시정책을 중립적으로 돌려야 한다”고 말했다.

재벌들의 경영권이 2세에서 3세로 승계되는 과정에 들어서고, 제조업보다는 서비스업에서 사업 기회가 나타나는 등 새로운 상황 변화에 맞게 공정거래법을 전면 재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일감 몰아주기와 같은 새로운 편법 상속 행태의 등장과 재벌 기업이 중소 자영업자들이 몰려 있는 서비스업으로 진출하는 문제 등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도급 거래의 불공정성과 관련해서는 피해구제 수단 개선과 중소기업의 협상력 강화가 핵심적인 과제로 꼽혔다. 먼저 피해구제를 위해 징벌적 손해배상제 확대와 공정거래위원회 전속고발권제(공정거래법·하도급법 위반에 대한 형사 고발권을 공정위만 보유) 폐지가 지적됐다. 협상력 강화를 위해서는 원재료 가격 급등 때 납품단가 조정 협상권을 협동조합에 부여하는 등 협동조합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했다.

최정표 교수는 “일감 몰아주기, 재벌의 신규 사업 진입 등과 관련한 기준을 마련하고 이를 어길 경우 공정거래위 직권조사와 국세청 세무조사를 엄격히 시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일감 몰아주기는 경쟁 제한성에 대한 입증이 없더라도 지원 행위만 가지고도 규제할 수 있도록 관련 조항을 개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정부의 의지와 사법부의 태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쏟아졌다. 좋은 대책을 만들어줘도 정치권이 선거용으로 써먹고 난 뒤 용도폐기하고 재벌에 포획돼 제구실을 못한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사법부도 마찬가지다. 기소된 재벌 총수에게 실형을 선고하는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재벌 개혁이 이뤄질 수 없다는 게 경제학자들의 일치된 지적이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재벌 개혁은 우리가 방법을 몰라서 못하는 게 아니다. 예컨대, 비자금 수사, 금산분리, 일감 몰아주기 문제 가운데 하나만 제대로 하면 된다. 중요한 것은 메뉴를 만드는 게 아니라 메뉴 가운데 하나를 골라 요리를 제대로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동걸 한림대 객원교수(전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는 “재벌 총수가 범법행위를 한다든지 배임 등 치명적인 잘못을 하면 일정 기간 상장기업 이사를 하지 못하도록 영국처럼 ‘이사자격 제한법’을 둬야 한다”고 제안했다. 박현 기자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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