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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한마디했을 뿐인데 ‘왈칵’…
김여진, 김진숙과 통화하다 눈물

등록 2011-11-02 15:29수정 2011-11-06 14:02

고공농성 300일 맞아 서울 한진중공업 본사 앞길서 ‘희망 라디오’ 진행
나지막한 스피커 “너무 혹독하게 사계절을 보냈더니 좋아하는 계절이 사라졌어요”

“잘…계세요?”

“잘…지냅니다”

 수화기 댄 스피커로 간신히 한마디 들었을 뿐인데 김여진씨는 눈물이 났다. 잘 지낸다는 말이 코끝을 맵게 한다. 김씨는 “마이크가 많이 울리네요” 하고 울음을 참았다. 혼자 왔어요? 네 식사 했냐구요? 서로 소리가 잘 안 들릴 만큼 통화 상태가 좋지 않다. 큰 방송사 스튜디오에서 준비하는 그런 전화 연결이 아니었다. 찬바람 부는 찻길 옆에 돗자리 펴고 옹기종기 모여 전화를 걸고 마이크를 귀에 직접 대야 하는 인터넷 생방송이지만 300일을 버텨내는 그를 보고 미안해하는 마음은 영도조선소까지 무람없이 전달된다.

 농성 300일째인 1일 밤. 희망버스기획단은 서울 용산구 갈월동 한진 중공업 본사 앞길에 희망 라디오 부스를 차리고 문화제를 열었다. 김진숙씨와 85호 타워 크레인을 기억하는 사람들 50여 명이 모였다. 기륭전자에서 6년의 비정규직 싸움을 했던 조합원들도 지하철 환풍구 위로 걸터앉아 부침개를 굽고, 홍합탕을 끓였다. <긴급경비> 안전판을 세운 전경 버스도 옆에 1대 서 있다. 이들 사이에 김여진씨가 얼굴을 보였다. 결혼 7년 만에 가진 첫 아기로 불러진 배를 담요로 덮은 채 그는 3일까지 이어지는 ‘희망 라디오’의 첫날 저녁 손님으로 부산 영도 85타워크레인 위의 김진숙씨와 통화를 했다.

 “너무 혹독하게 사계절을 보냈더니 저는 좋아하는 계절이 사라졌어요”  

좋아하는 계절이 뭔가요, 라는 사람들의 질문에 김진숙씨의 목소리가 스피커로 나지막하게 들려왔다. 35m 위에서 사계절을 보냈는데, 봄은 바다 안개가 심해서 따뜻함을 몰랐고, 여름은 너무 뜨거웠고 비도 많이 와서 휴가라는 환상이 사라졌으며 그나마 가을이 나았는데 올해는 겨울이 이르게 찾아와 이제 밤이 되면 쌀쌀해졌다고 한다. 고단했던 그의 300일이 계절에 드러나는 듯했다

 “내려오면 뭘 가장 하고 싶으세요” 묻자 “긴장을 풀고, 오래도록 늦잠을 자고 싶다”고 한다. 뜨거운 물에 몸을 푹 담궈 목욕하고 싶고, 뜨뜻한 찜질방에서 몸을 지지고 싶고, 매운 중국 요리도 먹고 싶다고 했다. 자취하면서 너무 질리게 먹었던 라면도 요즘에 부쩍 생각이 많이 난다고.


 ‘찜질방, 목욕탕, 낮잠, 라면...’

 그가 말하는 단어는 무겁지 않았는데, 김여진씨는 연신 소매로 눈물을 닦았다. 이미 하루 동안 숱한 전화를 받았을 김진숙씨는 걱정 많이 하지 마시라며 “제가 온실 속 화초처럼 자라지 않아서요. 험한 인생을 살아서 오히려 이런 환경에 잘 견딥니다”하고 웃었다.

 김여진씨는 통화를 마치고 모인 사람들에게 “저는 지치지 않으셨을까 염려했지만 내색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옆에서 끝까지 지켜보고 같이 웃어드리고 싶습니다”라고 말하며 자리를 떠났다.

 조소영 피디 azu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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