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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당신은 김진숙에 대한 책임이 있다

등록 2011-07-02 18:52수정 2011-07-02 19:03

힘내세요. 한진중공업 부산 영도조선소 제85호 크레인에서 158일째 농성중인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오른쪽 위 두 팔을 든 사람)이 12일 오전 자신을 응원하러 ‘희망버스’를 타고 전국 곳곳에서 모여든 1000여명의 시민·노동자들이 인간띠를 만들어 바람개비를 크레인에 붙이는 동안 손을 흔들어 답례의 인사를 하고 있다.  부산/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힘내세요. 한진중공업 부산 영도조선소 제85호 크레인에서 158일째 농성중인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오른쪽 위 두 팔을 든 사람)이 12일 오전 자신을 응원하러 ‘희망버스’를 타고 전국 곳곳에서 모여든 1000여명의 시민·노동자들이 인간띠를 만들어 바람개비를 크레인에 붙이는 동안 손을 흔들어 답례의 인사를 하고 있다. 부산/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릴레이 기고] 소금꽃 당신/이창근
2011년 6월 27일 아침부터 트위터에는 난리가 났다. 희망열차85호를 타고 부산까지 다녀온 여독이 풀리지 않은 채 사무실로 향하는 길이었다. 한진중공업의 채길용 지회장이 한진사장 이재용과 합의서에 서명 직후 손을 들고 만세를 부르는 사진 한 장이 트위터를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싸움이 173일째를 맞는 날,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는 노사합의서에 서명을 했다. 투쟁하는 동지들의 설득과 만류를 뿌리치고 해고자 가족들의 울부짖음을 애써 외면하면서 말이다. 김진숙의 절규에 귀를 꼭꼭 틀어막으면서 말이다. 그 날 이후 채 지회장은 공공의 적이 되어버렸다. 소위 ‘신상’도 바로 털렸다.

사진을 꼼꼼히 들여다보았다. 그의 모습은 얼어있었고 표정은 초췌해 보였다. 나는 그의 얼굴에서 엉뚱하게도 전쟁포로가 떠올랐다. 내 눈에는 채 지회장 머리 뒤로 총구가 보였다.

2011년 한국 사회에서 정리해고라는 놈의 실체는 무엇인가! 개인이 잘만 버티고 굳게 결단하면 무력화시킬 수 있는 만만한 놈이던가. 그렇지 않다. 폭력적 해고로 인한 고통의 쓰나미가 이미 한반도를 뒤덮고 있지 않은가. 한진 경영진이 특별히 악랄해서, 또는 노조 집행부가 너무나 이기적이어서 이런 일이 벌어졌던가.

지금 이 나라에서 정리해고는 이미 구조화되어 있다. 그런 상황에서 개인에게 비난의 화살을 쏘는 것으로 이어지는 해고를 막을 수 있는가. 아니, 한진 사태나마 조금이라도 해결할 수 있는가. 공공의 적에 대한 분노 외에는, 정녕 지금 해야 할 일은 없는가. 이 지점이 우리가 부여잡고 풀어야 할 과제가 아닌가.

이 사건 이후 숱한 전화를 받았다. 많은 사람들이 “지회장이 조합원과 김진숙을 배신했다”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한참 동안 같이 성토하다가 그들에게 물었다. “형, 그래도 희망버스 2차는 함께 갈 거지?” 수화기 너머 목소리가 갑자기 잦아든다. “음…. 그게….”

사람들은 한진이 이제 끝났다고 말한다. 이게 다 채 지회장 때문이라고, 그 꼴 보기 싫어서 희망버스2차는 타기도 싫다고, 이제 한진에는 희망도 보이지 않고 갑갑한 분노뿐이라고 말한다. 나 역시 그 말이 모두 틀렸다고 반박하기 어렵다. 한진을 보면서 느끼는 무력감과 분노를 왜 모르겠는가. 아찔한 난간에 스스로를 동여맨 동지들과 전기마저 차단된 채 크레인에 남은 김진숙을 보면서, 나도 앞이 보이지 않을때가 있다.


그러나 우리, 이제 솔직해지자. 채 지회장에게 모든 비난의 화살을 퍼붓는 것과 김진숙에게만 정리해고의 십자가를 지우는 것은 동전의 양면이다. 정말 그렇게 화가 치밀어 오른다면 가만히 있을 수 있는 일인가. 더욱더 한진으로 다시 모여야 할 일 아닌가. 모든 분노를 채 지회장에게 배출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 그것만으로 그친다면, 결국 김진숙에게 정리해고의 십자가를 지우는 일이다. 벼랑 끝에 내몰린 그 마음을 모른 척 하는 일이다. 나는 감히, 건방지게도, 그렇게 생각한다.

<타인의 고통>이라는 책을 읽었다. “연민은 변하기 쉬운 감정이다.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이런 감정은 곧 시들해지는 법이다”,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는 한,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런 고통을 가져온 원인에 연루되어 있지는 않다고 느끼는 것”이라는 글귀가 눈에 띄었다. 김진숙의 고통을 바라보면서, 나는 ‘연민’을 ‘고통을 주는 자에 대한 분노‘로 바꾸어 생각했다.

그러나 아직 정리해고 당하지 않은 우리의 일상은 김진숙의 고통과 깊숙이 연루되어 있다. 우리가 분노만 하고 있는 동안 정리해고는 그 다음 노동자에게 들이닥칠 것이다. 예수는 인류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를 지었다. 로마 군사의 형벌 때문이 아니었다.

책은 이렇게 이어진다. “우리의 특권이 (우리가 상상하고 싶어하지 않는 식으로, 가령 우리의 부가 타인의 궁핍을 수반하는 식으로)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 보는 것, 그래서 전쟁과 악랄한 정치에 둘러싸인 채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둔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과제이다.”

자, 이제 우리 정말 정리해고를 끝낼 방법을 만들어 가야한다. 김진숙이 우리에게 영감을 주고 희망버스가 희망의 근거를 만들고 있지 않은가. 김진숙의 85호크레인은 우리에게 묻는다. 언제까지 우리끼리 목청만 높일 것인가. 로마 군사만 욕할 것인가. 십자가를 나눠질 것인가. 폭우 속에서도 안락한 집에서 머물고 있는 우리는 지금 정직하게 대답할 의무가 있다.

이창근 민주노총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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