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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카드사 ‘약탈적 대출’ 고객이 소송 나섰다

등록 2011-05-24 21:34수정 2011-05-27 11:32

양창근씨가 ‘약탈적 대출’에 빠져든 과정
양창근씨가 ‘약탈적 대출’에 빠져든 과정
연20~30% 고금리 숨기고
‘최소금액결제’ 대출 영업
리볼빙제도 고객 피해 커
택시기사 양창근씨 부부
“서민 수렁 빠뜨리는 대출”
[약탈적 대출 사회를 고발한다]
상. 피해자 소송에 나서다

대한민국이 ‘빚의 수렁’에서 신음하고 있다. 개인 금융부채는 1000조원에 육박하고, 중산층 가정까지 대출 원리금 상환 부담에 허리가 휠 지경이다. 그럼에도 ‘간편하고 손쉬운 대출’을 내세운 금융회사의 마케팅은 갈수록 도를 더하고 있다. 고객의 상환 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이뤄지는 ‘약탈적 대출’의 유혹에 넘어간 서민들의 피해 사례도 줄을 잇고 있다. 이에 <한겨레>는 <참여연대>·<에듀머니>와 함께 금융회사의 약탈적 대출 행태를 고발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기획을 3차례에 걸쳐 싣는다.

“어디서부터 잘못됐지?” 서울 은평구에 사는 택시기사 양창근(40)씨는 지난달 작정하고 앉아 신용카드 이용대금 명세서를 꼼꼼히 들여다봤다. 언제부턴가 아무리 아껴 써도 신용카드 이용대금 청구서에 찍힌 숫자는 노상 300만원을 훌쩍 넘었다. 택시기사 근무일을 전부 채우는 ‘만근’을 해도 한 달 200만원 남짓인 벌이로 감당이 되지 않았다. 청구서에는 카드론, 최소금액결제 서비스 등의 용어가 어지러웠다.

양씨는 재무설계회사 ‘에듀머니’에서 재무상담을 받고 나서야 자신이 2년 동안 이용해온 ㄱ카드사의 ‘최소금액결제 서비스’가 연 20~30%대 고금리 대출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매달 신용카드 결제금액의 5~10%만 갚고 나머지는 빚으로 돌리는 ‘리볼빙 서비스’에 신용카드사들은 회전결제·자유결제·페이플랜·최소금액결제 등의 ‘매력적인 이름’을 갖다 붙였다. 양씨는 “최소금액결제 서비스가 우량 고객에 대한 카드사의 서비스인 줄로만 알았다”며 “그동안 빚이 쌓였다니 배신감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2004년 결혼한 양씨는 경리직 출신인 아내(34)에게 돈 관리를 모두 맡겼다. 양씨 자신은 돈 문제에 관해서만큼은 “할 말이 없었다”고 했다. 그는 유흥업소 종업원으로 일하던 2003년 빚보증을 잘못 서 큰 빚을 떠안게 됐다. 급한 대로 신용카드 6개를 발급받아 현금서비스로 돌려막기를 시작했다. 현금서비스를 자주 이용하자 신용카드사는 현금서비스 한도액을 높여줬고 양씨는 점점 빚의 수렁에 빠졌다. 그는 1년여를 버티다 신용불량자가 됐다. 신용불량자의 청혼을 받아주며 아내는 “열심히 아끼며 살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둘이 함께 살기 위해 반지하 방을 구했는데 전세 보증금만 4천만원이었다. 아내 이름으로 전세자금 2천만원을 빌렸다. 2006년부터 양씨는 택시운전을 시작했다. 2007년 아이가 태어나자 기저귀값과 분유값이 무섭게 나갔다. 아이가 피부병을 앓아 지상의 햇볕 드는 집으로 이사를 가야 했다. 전세자금 3천만원을 추가로 대출받았다. 몸이라도 아파 출근을 못하면 택시기사 월급은 반토막이다. 생활비 때문에 현금서비스, 카드론 등 손쉽게 빌릴 수 있는 대출을 이용했다. 모두 연 20%대의 비싼 이자를 내야 했다.

신용카드 대금 결제에 허덕이던 2009년 양씨의 아내는 카드사를 방문해 상담을 받았다. 상담원은 “신용카드 대금 상환에 도움을 주는 서비스가 있다”며 “신용카드 결제 방식을 최소금액결제로 설정하면 매달 청구대금의 10%만 납부하면 된다”고 안내했다. “신용등급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고 한도 축소도 없으니 안심하라”며 “회사에서 우량 고객들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라는 말에 양씨의 아내는 “정말 고맙다”고 인사까지 한 뒤 서비스에 가입했다. 이제 아내의 신용등급은 제1금융권 대출이 사실상 불가능한 7등급까지 떨어졌다. 이렇게 신용카드사의 리볼빙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 사람이 270만명에 달한다.


금융감독원 집계를 보면, 리볼빙 서비스를 통한 현금대출은 2007년 말 3조500억원에서 2008년 말 4조9900억원, 2009년 말 5조700억원, 2010년 상반기 5조1800억원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신용카드 이용대금 청구서만 봐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신용카드사의 ‘약탈 수법’도 있다. 신용카드사는 양씨의 은행 계좌에 돈이 충분하지 않을 경우 고금리의 현금서비스와 카드론 대금은 놔두고 별도의 이자가 없는 신용카드 결제금액을 우선 빼내갔다. 고금리 대출을 갚지 못하니 빚은 더욱 불어났다.

그래서 양씨 부부는 신용카드사를 상대로 부당이득금 반환 소송을 결심했다. “빚을 진 것이 자랑스러운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열심히 살려고 발버둥치는 서민들에게 금융사의 이런 교활한 대출 영업은 벗어날 수 없는 수렁입니다.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는 믿음으로 소송에 나섭니다.” 양씨 부부는 25일 서울중앙지법에 소장을 제출할 예정이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약탈적 대출이란? 금융회사들이 대출 상환 능력이 없는 고객에게 무차별적으로 자금을 빌려주는 행태를 뜻한다. 금융회사는 고객이 빚을 갚지 못할 경우 비싼 연체료를 부과하거나 담보물을 압류하는 방식으로 상환에 나선다. 미국은 법률로 약탈적 대출을 규제하고 있다.

※ 참여연대와 에듀머니는 양창근씨를 시작으로 금융회사의 약탈적 대출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소송을 적극 지원할 예정이다. 소송에 참여하려면 금융소비자협회가 만든 온라인 커뮤니티(cafe.daum.net/recredit)에서 신청하거나 전화(02-786-7793)로 문의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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