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구제역 재앙’이 드러낸 치부
잔인한 매몰처분 성찰도 “축산정책 대전환 불가피”
잔인한 매몰처분 성찰도 “축산정책 대전환 불가피”
100만마리가 넘는 가축을 ‘생매장’하고도, 통제 불능의 구제역 사태가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전남에서는 조류인플루엔자가 본격적으로 확산되고 있으며, 전북에서는 예방 차원의 구제역 매몰처분이 이뤄지는 등 국가적 바이러스 재앙이 호남까지 덮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정부 안팎에서도 △방역시스템 △밀집사육 환경 △잔인한 매몰처분 방식 등에 대한 근본적 성찰 움직임이 일고 있다.
농림수산식품부는 7일 소와 돼지를 포함한 전체 매몰 가축이 107만5105마리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아직 구제역 청정지역인 전남의 영암 오리농장에서는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발생이 확산됐으며, 의심 신고도 영암 및 함평·나주·구례·장성에서 모두 8건이나 쏟아졌다. 충남 아산의 닭농장에서도 조류인플루엔자 의심 신고가 접수됐다. 잠시 잠잠하던 조류인플루엔자의 본격 확산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속수무책으로 가축 바이러스 재앙이 확산되고 있는 데 대해 우희종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는 “언제라도 질병의 창궐을 부를 수 있는 밀집형 공장식 가축 사육 방식을 재검토하고, 전염병에 대한 단계별 대응책이 새로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대대적 매몰처분에 따른 심각한 환경오염이 우려되고 있고, 지금은 매몰처분으로 바이러스 확산을 차단할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섰다”며 “더이상의 매몰 방식은 유효하지 않다”고 말했다.
농식품부 또한 축산정책의 줄기를 지금까지의 산업 진흥에서 방역과 환경, 동물복지 기준을 강화하는 쪽으로 방향 전환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신현관 축산정책과장은 “이제는 환경뿐 아니라 질병 관리 측면에서도 사육 두수를 규제하고 동물 복지를 강화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방역당국의 한 관계자는 “축산농가 단위의 방역체계가 후진적이었고, 전국적 확산에 대비한 방역당국의 단계적 매뉴얼과 이를 뒷받침하는 범정부 차원의 인력 및 장비 협력 체계에 구멍이 있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국가는 물론이고 농가 또한 질병을 막기 위한 방역 투자를 축산 경쟁력 유지의 필수 비용으로 감안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자에게 ‘수의사들의 생각’이라는 전자우편을 보내온 한 수의사는 “동물 방역과 위생 업무를 담당하는 수의 업무가 축산진흥 업무의 일부로 소홀히 취급되고 있고, 수의사들이 제대로 된 방역이나 질병예찰 업무를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며 수의(방역) 업무의 독립성이 보장되는 국립수의과학검역청의 신설을 촉구했다.
김현대 선임기자, 정대하 기자 koala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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