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근술 이사장은 “어린이어깨동무는 인도적인 북한 어린이 지원뿐 아니라 남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평화교육을 실시해 지금까지 2만5천여명의 초중등생들이 평화교육을 받았다”며 “무기가 철거된 비무장지대에서 남북 청소년들이 함께 캠핑을 하며 평화와 통일을 다짐하는 날이 꼭 오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어린이어깨동무의 이런 이상과 활동은 한 초등학교 4학년 교과서에 실렸으며, 2008년 유엔경제사회이사회의 ‘협의적 지위’를 획득하기도 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한겨레가 만난 사람] 권근술 어린이어깨동무 이사장
한국 정부에 대해 인도적인 대북지원 재개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 6월 보수·진보를 초월해 종교계 지도자들이 대거 나선 데 이어, 56개 대북지원 민간단체들도 인도적 지원활동을 사실상 제한하고 있는 모든 조처의 철폐를 요구하고 나섰다. 최근에는 국제앰네스티가 의료 미비와 식량 부족으로 고통 받는 북한 주민들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한국 정부와 국제사회에 호소하기도 했다.
천안함 사태 이후 남북교류의 전면적 중단을 선언한 정부 방침에 따라 식량, 의료용품, 농업용품 등 모두 34억여원어치(7월 현재)의 대북지원물자가 인천항 창고에 묶여 있다. 이 가운데에는 ㈔어린이어깨동무가 모유 부족으로 고통 받는 영유아와 병원 치료를 받고 있는 어린이들을 지원하기 위한 콩우유 원료와 수액제 생산설비, 의약품 등 모두 6억원어치에 가까운 물자도 포함돼 있다. 냉전적 사고에 갇혀 인도주의적 이상마저 외면하는 사이에 북녘 주민들의 굶주림과 병든 아이들의 신음은 깊어가고, 그동안 힘들여 가꿔온 민간교류의 통로는 해외지원단체로 넘어갈 움직임마저 보이고 있다.
올해로 15년째 북한 어린이들을 위해 대북지원 사업을 펴온 어린이어깨동무 권근술(69) 이사장을 만나 인도적 대북지원 재개의 시급성과 역사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또한 어린이어깨동무와 함께 북한 어린이 치료와 북한 의료진 교육을 해온 서울대병원 쪽의 최용(현 인제대 해운대백병원 소아청소년과·전 서울대병원 소아진료부원장) 교수에게서 북한 어린이 의료 실태에 대해 들어보았다.
-천안함 사태 이후 인도적 대북지원사업 상황에 대해 설명해 주십시오.
“최근 한 종교단체의 밀가루 송출(95t, 3600만원 상당)이 허용된 것을 빼고는 대부분 올스톱 상태입니다. 우리 정부는 천안함 사태 이후에도 영유아 등 취약계층에 대한 순수 인도적 지원은 유지한다고 발표했지만 실제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전혀 딴판이었습니다. 사람도 물자도 북에 가지 못하니 그동안 우리가 세운 병원도, 콩우유(두유)공장도, 학용품공장도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요즘 같은 홍수에 짓다 만 병원은 혹시 무너지지나 않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무더위가 한창인 요즘엔 창고에 쌓여 있는 콩우유 원료가 상하지나 않을지 걱정입니다.”
-어린이어깨동무는 어떤 단체인가요?
“1996년 북한 어린이의 영양, 의료보건 지원과, 통일에 대비한 평화교육·문화활동을 위해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설립된 순수 비영리 민간단체입니다. 현재 7천여 비정기회원의 지원과 3천여명의 정기회원이 다달이 내는 후원금, 그리고 기업의 협찬과 정부의 기금 등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어린이어깨동무에는 남과 북의 어린이들이 다 같이 비슷한 키로 건강하게 자라, 열린 마음으로 어깨동무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하는 많은 시민들의 꿈과 정성이 담겨 있습니다. 지금은 서울대병원 의료진이 저희와 함께 일하고 있고, 그간의 활동이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릴 만큼 가장 신뢰받는 대북지원단체의 하나입니다. 북한에서도 평양 순안공항에서부터 어린이어깨동무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비교적 잘 알려져 있지요.”
-어린이어깨동무가 주력해온 사업은 어떤 것인가요? “긴 눈으로 보면 어쩌면 통일 첫 세대가 될 북녘 어린이들이 정상적으로 자라야 민족 전체의 균형된 성장과 한반도의 평화로운 미래를 보장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사업의 출발점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북녘 땅에 어린이병원과 모자보건센터 등을 짓고, 서울대 어린이병원 의료진이 북한 어린이 환자들을 공동진료하고, 평양의학대학(옛 평양의전, 이하 평의대)병원 의료진에 대한 ‘전습교육’을 실시해 왔습니다.” 영유아 인도지원 유지한다지만 현실은 딴판
북 보낼 콩우유 원료·학용품 대부분 올스톱
“차라리 퍼주기 망령 떠돈 그 시절이 그리워” -그간의 활동이 일반에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은데요. “분단 이후 최초로 남쪽 민간인들이 북녘 땅에 세운 병원이 2004년의 평양어깨동무어린이병원입니다. 2008년 가을에는 220개 병상과 최신 의료장비를 갖춘 지하 1층, 지상 5층 규모의 평의대어깨동무소아병동을 건립했습니다. 이 병원 준공으로 평양에 거주하는 15살 미만 어린이의 절반가량이 진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고, 북한에서는 사실상 치료가 어려웠던 희귀질환이나 중증 어린이환자에게도 치료의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자찬 같습니다만, 분단시대의 남북 민간교류협력사에 길이 남을 기념비적 사건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면? “2004년의 평양어깨동무어린이병원에 이어 2006년에는 평양 외곽의 농촌 지역인 장교리에 작지만 아담한 인민병원을 지었습니다. 이 병원은 농촌지역 산모와 영유아를 위한, 우리 식으로 말하면 모자보건센터 같은 의료기관입니다. 이 병원 개원으로 의료 혜택을 받기 어려운 인근 3개 지역 4천여명의 어린이들이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북한 농촌지역 곳곳에 이런 모자보건센터를 더 많이 지을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천안함 사태로 중단 상태에 있지만, 2009년 완공을 목표로 했던 남포소아병원 입원병동도 건립중이었습니다. 통일부 위탁사업이기도 한 이 병원이 문을 열면 어깨동무는 4단계 북한 의료체계에서 최상급 의료기관인 평의대병원에서부터 평양어깨동무어린이병원-남포소아병원-장교리인민병원으로 이어지는 단계마다 병원 하나씩을 고루 갖추게 됩니다. 이런 자산은 북한의 의료 현실을 종합적으로 파악하고, 훗날 남북의 통합적인 의료체계를 구축하는 데 더없이 소중한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이밖에 북한에서 크게 부족한 수액제 공장을 짓고 있고, 매년 볼펜과 샤프펜슬 각 500만 자루를 생산할 수 있는 학용품공장을 세웠습니다. 특히 북한에서 ‘애기젖’이라고 부르는 콩우유 공장은 원산과 농촌지역 등 다섯 군데에서 하루 50t을 생산해 매일 약 2만5천명의 어린이들이 이 두유를 마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원료가 가지 못하고 있다니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굶주림 속에 태어나거나 자란 아이들은 성인이 된 뒤에도 비만증, 당뇨병, 정신질환 등에 걸릴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특히 최근의 연구는 어린이들의 두뇌 발달에 가장 중요한 시기가 생후 3년간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남북이 어울려 살기를 원한다면, 현재 북녘 어린이들이 겪고 있는 영양실조는 훗날 민족 전체의 의학적, 교육적, 정신적, 경제적 손실은 물론 민족 갈등이라는 큰 재앙을 몰고 오리라는 어두운 전망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008년 평의대 소아병동 건립 기념비적 사건
준공 행사때 청소년 대동…인적교류 ‘워밍업’
“DMZ서 남북 함께 캠핑할 날 꼭 올겁니다” -한때는 ‘퍼주기’ 논란으로 시끄러웠고 올해 들어서는 이런저런 제한조처가 잇따랐습니다. “지금은 퍼주기 망령이 떠돈 그 시절이 차라리 그립네요. 민간단체의 인도적 대북지원도 퍼주기에 포함되는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대북지원 전체에 대한 모욕입니다. 어린이어깨동무만 해도 2005년과 지난봄에 발간한 두 권의 ‘백서’에서 어린이병원을 지으면서 지원한 못 하나, 주사기 한 대까지 시시콜콜 밝혔고, 환자 진료 내역을 밝힌 ‘정형’도 꼬박꼬박 받아왔습니다. 병원 현관에도 후원자 수백명의 이름이 새겨진 동판이 걸려 있습니다. 이렇듯 민간단체들이 최선을 다하는 마당에, 이를테면 조림사업을 위해 묘목을 보내는 것은 되고, 사과나무 같은 과실수는 농업 지원이어서 안 된다거나, 병에 담긴 수액제는 괜찮지만 수액제 생산 시설은 안 된다는 따위의 정부 방침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미국 하버드대 정문 앞 광장 한편에 청동조각상이 있습니다. 앙상하게 야윈 젊은 부부가 역시 굶주려 축 늘어진 어린 남매를 하나씩 안고 한 손을 뻗어 서로의 손을 잡으려고 안간힘을 다하는 처절한 모습입니다. 아일랜드 메리 로빈슨 대통령이 기증한 이 동상에는 ‘풍요의 그늘에서 한 민족이 굶어 죽어가는 일이 다시는 없기를’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습니다. 1845년 감자 대기근으로 국민의 3분의 1이 죽거나 나라를 떠난 참상을 동상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당시 이 비극을 외면한 영국 정부의 무관심과 적대적 태도에 대한 원한과 분노의 메시지도 함께 담겨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북한 주민들이 굶주림과 병마에 신음하고 있는 휴전선 바로 너머에서 넘치는 쌀을 창고에 쌓아놓고 음식쓰레기로만 한 해 수천억원어치를 내다버리고 있습니다. 언젠가 그들과 더불어 살기를 원한다면 적어도 그들에게 원한과 증오는 심지 말아야 합니다.” -어린이어깨동무는 남북 청소년 교류사업도 추진하고 계시지요? “병원 준공 같은 행사에 100~200명이 단체방문할 때 어린이 회원들도 참가합니다. 분단 이래 어린이 방북은 처음이지만 아직은 매우 제한된 만남이어서 남북 어린이들의 평화로운 만남을 위한 워밍업을 하고 있는 셈이지요. 미국 메인주에 ‘평화의 씨앗’(Seeds of Peace)이라는 비정부기구가 운영하는 국제캠프에 들른 적이 있습니다. 매년 그곳에는 전쟁상태나 다름없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비롯해, 분쟁지역의 청소년 100~200명이 초청돼 함께 캠핑을 하며 뛰놀다가 저녁에는 무서울 정도로 격렬한 토론을 벌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평화의 씨앗’ 국제캠프의 목표가 미래를 이끌어갈 청소년들에게 그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힘을 합치면 평화를 이룩할 수 있다는 신념을 심어주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때 캠프 소장이 저에게 그랬습니다. ‘이 아름다운 호숫가에 남북의 청소년들이 손잡고 거니는 모습을 보고 싶다. 어린이어깨동무가 이 일을 도와줄 수 있겠는가?’라고요. 지금도 제 머리에는 그때의 물음이 떠나지 않는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끝으로 정부에 한말씀 해 주십시오. “민족사의 긴 눈으로 보면 남북관계는 기복이 있게 마련입니다. 이미 북한 땅에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는 민간의 인도적 대북지원은 잘 유지되고 활용되어야 합니다. 우리 정부도 멀리 내다보고 최소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정성을 다해 마련한 콩우유 원료와 의료 지원물자가 북녘의 아이들에게 제때에 전달될 수 있도록 결단을 내려주었으면 합니다. 잘못하면 오늘의 현실은 역사의 청문회에서 지난 10년, 20년 힘겹게 쌓아올린 공든 탑을 무너뜨린 어리석은 시간으로 기록될지 모릅니다.” 권 이사장은 서울대 정치학과를 나와 동아일보 언론자유수호투쟁(1975)으로 해직된 뒤 한겨레신문 창간에 나서 편집국장과 논설주간(1992~94), 사장과 회장(1995~99) 등을 두루 지냈다. 1996년부터 15년째 어린이어깨동무를 이끌어왔다. 인터뷰/이인우 기획위원 iwlee21@hani.co.kr
-어린이어깨동무가 주력해온 사업은 어떤 것인가요? “긴 눈으로 보면 어쩌면 통일 첫 세대가 될 북녘 어린이들이 정상적으로 자라야 민족 전체의 균형된 성장과 한반도의 평화로운 미래를 보장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사업의 출발점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북녘 땅에 어린이병원과 모자보건센터 등을 짓고, 서울대 어린이병원 의료진이 북한 어린이 환자들을 공동진료하고, 평양의학대학(옛 평양의전, 이하 평의대)병원 의료진에 대한 ‘전습교육’을 실시해 왔습니다.” 영유아 인도지원 유지한다지만 현실은 딴판
북 보낼 콩우유 원료·학용품 대부분 올스톱
“차라리 퍼주기 망령 떠돈 그 시절이 그리워” -그간의 활동이 일반에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은데요. “분단 이후 최초로 남쪽 민간인들이 북녘 땅에 세운 병원이 2004년의 평양어깨동무어린이병원입니다. 2008년 가을에는 220개 병상과 최신 의료장비를 갖춘 지하 1층, 지상 5층 규모의 평의대어깨동무소아병동을 건립했습니다. 이 병원 준공으로 평양에 거주하는 15살 미만 어린이의 절반가량이 진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고, 북한에서는 사실상 치료가 어려웠던 희귀질환이나 중증 어린이환자에게도 치료의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자찬 같습니다만, 분단시대의 남북 민간교류협력사에 길이 남을 기념비적 사건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면? “2004년의 평양어깨동무어린이병원에 이어 2006년에는 평양 외곽의 농촌 지역인 장교리에 작지만 아담한 인민병원을 지었습니다. 이 병원은 농촌지역 산모와 영유아를 위한, 우리 식으로 말하면 모자보건센터 같은 의료기관입니다. 이 병원 개원으로 의료 혜택을 받기 어려운 인근 3개 지역 4천여명의 어린이들이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북한 농촌지역 곳곳에 이런 모자보건센터를 더 많이 지을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천안함 사태로 중단 상태에 있지만, 2009년 완공을 목표로 했던 남포소아병원 입원병동도 건립중이었습니다. 통일부 위탁사업이기도 한 이 병원이 문을 열면 어깨동무는 4단계 북한 의료체계에서 최상급 의료기관인 평의대병원에서부터 평양어깨동무어린이병원-남포소아병원-장교리인민병원으로 이어지는 단계마다 병원 하나씩을 고루 갖추게 됩니다. 이런 자산은 북한의 의료 현실을 종합적으로 파악하고, 훗날 남북의 통합적인 의료체계를 구축하는 데 더없이 소중한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이밖에 북한에서 크게 부족한 수액제 공장을 짓고 있고, 매년 볼펜과 샤프펜슬 각 500만 자루를 생산할 수 있는 학용품공장을 세웠습니다. 특히 북한에서 ‘애기젖’이라고 부르는 콩우유 공장은 원산과 농촌지역 등 다섯 군데에서 하루 50t을 생산해 매일 약 2만5천명의 어린이들이 이 두유를 마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원료가 가지 못하고 있다니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굶주림 속에 태어나거나 자란 아이들은 성인이 된 뒤에도 비만증, 당뇨병, 정신질환 등에 걸릴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특히 최근의 연구는 어린이들의 두뇌 발달에 가장 중요한 시기가 생후 3년간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남북이 어울려 살기를 원한다면, 현재 북녘 어린이들이 겪고 있는 영양실조는 훗날 민족 전체의 의학적, 교육적, 정신적, 경제적 손실은 물론 민족 갈등이라는 큰 재앙을 몰고 오리라는 어두운 전망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008년 평의대 소아병동 건립 기념비적 사건
준공 행사때 청소년 대동…인적교류 ‘워밍업’
“DMZ서 남북 함께 캠핑할 날 꼭 올겁니다” -한때는 ‘퍼주기’ 논란으로 시끄러웠고 올해 들어서는 이런저런 제한조처가 잇따랐습니다. “지금은 퍼주기 망령이 떠돈 그 시절이 차라리 그립네요. 민간단체의 인도적 대북지원도 퍼주기에 포함되는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대북지원 전체에 대한 모욕입니다. 어린이어깨동무만 해도 2005년과 지난봄에 발간한 두 권의 ‘백서’에서 어린이병원을 지으면서 지원한 못 하나, 주사기 한 대까지 시시콜콜 밝혔고, 환자 진료 내역을 밝힌 ‘정형’도 꼬박꼬박 받아왔습니다. 병원 현관에도 후원자 수백명의 이름이 새겨진 동판이 걸려 있습니다. 이렇듯 민간단체들이 최선을 다하는 마당에, 이를테면 조림사업을 위해 묘목을 보내는 것은 되고, 사과나무 같은 과실수는 농업 지원이어서 안 된다거나, 병에 담긴 수액제는 괜찮지만 수액제 생산 시설은 안 된다는 따위의 정부 방침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미국 하버드대 정문 앞 광장 한편에 청동조각상이 있습니다. 앙상하게 야윈 젊은 부부가 역시 굶주려 축 늘어진 어린 남매를 하나씩 안고 한 손을 뻗어 서로의 손을 잡으려고 안간힘을 다하는 처절한 모습입니다. 아일랜드 메리 로빈슨 대통령이 기증한 이 동상에는 ‘풍요의 그늘에서 한 민족이 굶어 죽어가는 일이 다시는 없기를’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습니다. 1845년 감자 대기근으로 국민의 3분의 1이 죽거나 나라를 떠난 참상을 동상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당시 이 비극을 외면한 영국 정부의 무관심과 적대적 태도에 대한 원한과 분노의 메시지도 함께 담겨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북한 주민들이 굶주림과 병마에 신음하고 있는 휴전선 바로 너머에서 넘치는 쌀을 창고에 쌓아놓고 음식쓰레기로만 한 해 수천억원어치를 내다버리고 있습니다. 언젠가 그들과 더불어 살기를 원한다면 적어도 그들에게 원한과 증오는 심지 말아야 합니다.” -어린이어깨동무는 남북 청소년 교류사업도 추진하고 계시지요? “병원 준공 같은 행사에 100~200명이 단체방문할 때 어린이 회원들도 참가합니다. 분단 이래 어린이 방북은 처음이지만 아직은 매우 제한된 만남이어서 남북 어린이들의 평화로운 만남을 위한 워밍업을 하고 있는 셈이지요. 미국 메인주에 ‘평화의 씨앗’(Seeds of Peace)이라는 비정부기구가 운영하는 국제캠프에 들른 적이 있습니다. 매년 그곳에는 전쟁상태나 다름없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비롯해, 분쟁지역의 청소년 100~200명이 초청돼 함께 캠핑을 하며 뛰놀다가 저녁에는 무서울 정도로 격렬한 토론을 벌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평화의 씨앗’ 국제캠프의 목표가 미래를 이끌어갈 청소년들에게 그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힘을 합치면 평화를 이룩할 수 있다는 신념을 심어주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때 캠프 소장이 저에게 그랬습니다. ‘이 아름다운 호숫가에 남북의 청소년들이 손잡고 거니는 모습을 보고 싶다. 어린이어깨동무가 이 일을 도와줄 수 있겠는가?’라고요. 지금도 제 머리에는 그때의 물음이 떠나지 않는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끝으로 정부에 한말씀 해 주십시오. “민족사의 긴 눈으로 보면 남북관계는 기복이 있게 마련입니다. 이미 북한 땅에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는 민간의 인도적 대북지원은 잘 유지되고 활용되어야 합니다. 우리 정부도 멀리 내다보고 최소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정성을 다해 마련한 콩우유 원료와 의료 지원물자가 북녘의 아이들에게 제때에 전달될 수 있도록 결단을 내려주었으면 합니다. 잘못하면 오늘의 현실은 역사의 청문회에서 지난 10년, 20년 힘겹게 쌓아올린 공든 탑을 무너뜨린 어리석은 시간으로 기록될지 모릅니다.” 권 이사장은 서울대 정치학과를 나와 동아일보 언론자유수호투쟁(1975)으로 해직된 뒤 한겨레신문 창간에 나서 편집국장과 논설주간(1992~94), 사장과 회장(1995~99) 등을 두루 지냈다. 1996년부터 15년째 어린이어깨동무를 이끌어왔다. 인터뷰/이인우 기획위원 iwl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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