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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평화 없이 개발 어렵고 인권 없인 평화도 어렵죠”

등록 2014-04-28 19:23수정 2014-04-28 20:43

오준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부의장. 사진 유엔대표부 제공
오준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부의장. 사진 유엔대표부 제공
[한겨레가 만난 사람] 오준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부의장

지난 14일 오후 미국 뉴욕 유엔본부 대형 회의실. 유엔에서 개발과 사회 문제를 책임지는 유엔경제사회이사회(ECOSOC·경사리)가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 등 다른 국제기구들과 고위급 회의를 열고 있었다. 주제는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한 자원 확보와 글로벌 협력이었다. 국제기구 고위급 100여명이 모인 이 회의의 주재자는 한국의 오준(59·사진) 유엔대사였다. 그는 유창한 영어로 회의를 이끌고 있었다.

2007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2012년 김용 세계은행 총재에 이어 국제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는 한국인으로 주목받는 오 대사는 일찍이 다자외교 전문가로 인정받았다. 서울대에서 불문학을 전공하고 런던정경대 비교정치학, 스탠퍼드대 국제정책학 석사를 거친 뒤 78년 외무고시 합격 이래 국제기구에서 다양한 경력을 쌓았다.

오 대사는 지난 1월 경사리 부의장에 선출된 데 이어 내년 7월에는 경사리 의장에 취임한다. 54개 회원국으로 구성된 경사리는 유엔 인력·재정의 70%가 투입되는 업무를 다루는 조직이다. 그는 새달에는 국제 평화와 안전을 책임지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순번제 의장으로도 한달간 활동하게 된다. 한국 외교관이 유엔의 평화와 개발을 책임지는 핵심적인 두 조직의 의장을 맡는 것은 그가 처음이다. 지난 14일 뉴욕의 한국 유엔대표부에서 그를 만났다.

-안보리 의장과 경사리 의장을 동시에 맡게 되는 소감은?

“제 능력이 뛰어나서라기보다는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에서 그만큼 성장했다는 의미로 본다. 우리 국력이 유엔에서 10~15위 정도 수준으로 지도적 반열에 진입했다. 마침 이런 시기에 유엔대사를 맡아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책임감이 무겁다.”

-경사리 부의장을 맡은 지 4개월째인데 주로 어떤 일을 하는가?

“전반적으로는 경제·사회 이슈를 다룬다. 2년 전 ‘리우+20’ 정상회의에서 기후변화 대처가 반영된 ‘지속가능한 발전’(SDG)이라는 목표를 세우자는 데 합의했다. 올해는 이를 구체화하는 논의를 주로 한다. 또 2000년부터 추진된 ‘유엔 밀레니엄개발 목표’(MDG)가 내년에 만료되는 만큼 2016년부터 적용될 새로운 개발 목표를 합의해야 한다. 이것이 ‘포스트-2015’인데 내년까지 합의해야 한다.”

-유엔 사무총장과 세계은행 총재 그리고 경사리 의장까지, 세 사람이 함께 만난 적은?

“아직은 없지만, 내년 의장으로 취임하면 함께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한국이 개발모델의 성공사례로 꼽히면서 한국 출신들이 국제개발을 이끌게 됐는데 구체적으로 한국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나?

“우리나라는 한 세대 만에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전환하고 있는 유일한 사례다. 그러나 우리의 경험이 반드시 다른 국가들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자만하기에 앞서 보편성을 연구하고 적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 정부 차원의 개발협력은 어떻게 평가하는가? 유엔이 제시하는 목표치에 턱없이 모자라는데.

“유엔이 제시한 공적개발원조(ODA) 수준은 국민총소득 대비 0.7%다. 그런데 실제 이 목표치를 달성한 나라는 손꼽을 정도다. 미국도 0.3%에 못 미친다. 우리는 내년까지 0.25% 달성한다는 목표인데 현재로선 쉽지 않은 것 같다.”

-우리는 개발원조의 절대량도 적지만 그것마저도 유상원조나 구속성 차관의 비율이 높다. 이것까지 고려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꼴찌라는 지적이 나온다.

“원조의 양과 함께 질도 중요하다. 무상원조나 비구속성 차관을 더 늘려야 한다는 게 오이시디의 지적이다. 우리도 노력하고 있고 꾸준히 늘리고 있다. 사실 우리가 오이시디 가입한 지는 오래됐지만 개발원조위원회(DAC)에는 2010년에 들어갔다. 수십년간 해온 다른 선진국에 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화제를 유엔 안보리 쪽으로 돌렸다. 오 대사는 한국의 대표적인 다자외교 전문가로 국제안보 분야에서도 많은 활약을 해왔다. 그는 2004년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 의장, 그리고 2006년 유엔 군축위원회(UNDC) 의장을 맡기도 했다.

유엔 안보리·경사리 의장 겸직 예정
한국, 최빈국서 선진국 된 유일 모델
우리의 경험 연구·적용 필요

개발원조 아직 OECD 꼴찌 수준
양뿐 아니라 질도 중요
무상원조나 비구속성 차관 늘려야

-새달 안보리 의장국으로서 어떤 일을 하려고 하는가?

“안보리 의장국은 국제사회의 주요 관심사를 선택해 한차례 정도 공개토의를 한다. 우리는 대량파괴무기가 국가가 아닌 테러조직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채택된 ‘안보리 결의 1540’ 의장국을 맡고 있다. 이 결의 통과 10돌을 맞아 효과적인 이행방안을 논의하고자 한다. 의장국으로서 더 중요한 임무는 돌발적인 사건에 대한 대응이다. 우크라이나와 시리아 문제 등 국지적 분쟁 상황이 중요한 안보리 의제로 대두될 수 있다.”

-지난달 북한의 노동미사일 발사에 대한 안보리의 대응은?

“의장 성명 같은 강도 높은 대처를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다 일단 중단된 상태다. 북한이 최근 추가 도발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지만, 안보리 이사국들은 그런 심각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도 같은 시각인가?

“그렇다.”

-안보리의 지속적이고 강한 제재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핵·미사일 능력을 계속 증강하고 있다. 제재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비판이 많다.

“제재 효과는 분명 있다고 생각한다. 청천강호 사건에서 보듯이, 북한이 무기를 은밀하게 운반하려고 했을 때, 많은 국가들이 북한으로 무기가 가서도 나와서도 안 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어서 차단되는 것이다. 과거에 북한은 무기 수출로 외화벌이 많이 했는데 그 길이 막히고 있다. 북한과의 금융거래도 더 신중하게 하게 된다. 제재 속에서도 핵실험, 미사일 발사를 하지 않았느냐는 것인데, 그동안 북한이 확보해 놓은 기술과 물자가 있을 테니 그런 행동을 완전히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점점 더 어려워진다고 볼 수 있다.”

-제재도 문제 해결의 한 수단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던데.

“안보리의 제재가 북한과의 대화를 막는다고 말할 수는 없다. 유엔의 제재는 어떤 대상을 처벌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분명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다. 만일 제재의 목적이 처벌이라면 일정 기간이 지나면 속죄가 되어 해제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안보리 제재는 목적 달성 때까지 계속된다. 북한이 대량파괴무기와 운반수단 개발을 포기한다면 제재도 해제될 것이다. 반대로 포기하지 않으면 제재를 해제할 수 없다.”

-6자회담이 장기간 공전되고 있다. 안보리에서 당사국에 대화를 촉구하는 노력도 해야 하지 않나?

“물론 유엔 결의에는 6자회담의 재개를 촉구하는 부분도 포함되어 있다. 이는 핵 문제나 미사일 문제의 해결 노력이 계속되어야 한다는 취지인 만큼, 대화가 당사국 사이에 이뤄져야 하는 것이지 유엔이 직접 관여하지는 않는다.”

인권은 평화·개발과 함께 ‘유엔 헌장’에 규정된 3대 핵심 분야의 하나다. 오 대사는 특히 반 사무총장 임기 동안에 인권 분야에서 진전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장애인권리협약이 2008년 발효됐고, 유엔여성기구도 2010년 신설됐다. 오 대사는 오는 6월 열리는 장애인협약 당사국회의의 신임 의장에도 입후보했다. 이번이 아시아 지역에서 의장을 맡을 차례여서 29일 아시아 그룹에서 인준을 받으면 사실상 당선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북 미사일 강력 대처 논의하다 중단
유엔서 6자 재개 촉구 이상은 못해
북핵 포기만이 제재 풀 방법

반 총장, 장애인·여성 인권 신장 기여
총장 도우려 장애인협약 의장 입후보
‘반기문 유엔’ 한반도 평화 역할 할 것

-장애인권리협약 당사국회의 의장에 입후보한 것은 정부 차원의 관심 때문인가?

“우리 정부는 장애인협약을 만들 때부터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국내 장애인 관련 비정부기구들도 매우 적극적이다. 개인적으로도 이 문제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싱가포르 대사로 활동할 때 현지 장애인협회와 공동으로 자선 이벤트를 개최하는 등 장애인 지원 활동을 많이 했다. 오는 6월 당사국회의 때에도 국내 장애인 지원 음악단체인 뷰티풀 마인드의 축하공연도 준비하고 있다.”

오 대사는 2006년 당시 반기문 외교부 장관이 사무총장으로 출마했을 때 유엔대표부 차석대사를 맡고 있었다. 그래서 ‘반기문 총장 만들기’의 선봉에 있었고 외교부에선 ‘반기문 사단’의 대표적인 인물로 꼽힌다.

-반 총장 만들기에 성공했으니, 이젠 역사에 남을 만한 ‘반 총장 업적 만들기’에 나서야 하는 것 아닌가?

“이제 임기의 2년 반이 남았으니 업적을 남기는 데 중요한 시기다. 한국 대표부로서는 회원국의 관점에서 조언도 해드리고 사무총장실의 역점 분야가 유엔에서 논의될 때 선도적 구실을 하는 등 가능한 방법으로 최대한 지원하고 있다.”

-지금까지 반 총장의 업적이라면 어떤 게 대표적인가?

“분쟁 해결 분야에서 미얀마·시리아·우크라이나 등에서 많은 활약을 했고,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도 여지가 많다고 생각한다. 개발 분야에서는 기후변화 체제와 2015년 이후 개발목표 설정도 남은 임기 중에 결정될 것이다. 인권 분야에서는 역대 사무총장 중에 이미 가장 큰 활약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앞으로 남은 임기 동안 한층 보강할 수 있을 것이다.”

-반 총장이 한반도 평화에 기여할 여지가 많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한반도 문제는 우리의 정부 수립, 한국전쟁 시 유엔군 참전, 유엔총회의 한반도 의제, 북한 핵문제 등 유엔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 부트로스갈리 사무총장의 1993년 방북 이후, 한반도 문제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반 총장이니만큼 앞으로 더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우리 외교는 전통적으로 4강 중심이어서 다자외교로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다자외교 전문가로서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리의 국력 신장과 관계가 많은 문제다. 즉, 우리의 국력이 상대적으로 약했을 때는 외교도 우리의 직접적인 이해가 걸린 사안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지만, 국력이 커짐에 따라 국제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우리의 목소리를 내고 자리를 넓히고 있다. 그것이 바로 다자외교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국가이익이 국제사회가 추구하는 다자적 가치와 점점 더 일치하게 되는 것이다.”

-앞으로의 꿈은?

“30년 이상 외교관 생활을 하면서 세상의 많은 문제들은 자신과 다른 인종·문화·종교를 이해하고 존중하기보다는 불신하고 배척하기 때문에 생긴다는 소신을 얻었다. 퇴임하면 사회의 다양성이 존중되고 소수자가 보호받도록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일을 해보고 싶다.”

뉴욕 박현 특파원 hyun21@hani.co.kr

사진 유엔대표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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