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옥상공원에서 김호기 연세대 교수(가운데)의 사회로 안병직 시대정신 이사장(왼쪽)과 백낙청 <창작과 비평>편집인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종찬 선임기자 rhee@hani.co.kr
[한국사회 미래를 말하다] 1부 진보와 보수, 미래를 논하다
⑥ 특별대담: 진보가 보수에게, 보수가 진보에게
⑥ 특별대담: 진보가 보수에게, 보수가 진보에게
한국사회 미래를 말하다
천안함 의문제기 정당한 절차부터 거쳐야
전쟁 방지 위해서라도 심리전 하겠다는 것 백낙청
정부발표 신뢰 잃은 탓…사실규명이 먼저
틀린 사실 가지고 대결로 가는건 범죄행위 안 의문이 있다고 하면, 당연히 제기해야 한다. 그러나 의문은 어디까지나 의문일 뿐이지 의문스러운 점이 현실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우선 의문을 해결하려면 정당한 절차가 필요하다고 본다. 정부가 발표한 것이니까, 정부에 자료를 요청한다거나, 그것이 부실하다면 천안함에서 살아나온 장병들이 있고 합동조사단 참가 멤버들이 있다.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을 직접 접촉해서 객관적인 사실이 뭐냐고 알아봐야 한다. 백 맞다. 국회가 조사단 만들어서 생존자 면담도 해야 한다. 소위 민군조사단에 참여한 사람들이 누구냐, 그 명단 발표도 안 했다. 국회의원이 수차례 요구해도 아직 외국인 참가자가 어떤 사람들인지도 모르고 있다. 그리고 조사가 부실했다면 국회는 조사단 자체도 조사해야 한다. 감사원 감사가 부실했다면 감사원도 조사해야 한다. 안 백 선생 말대로 국회가 가장 적당하다고 본다. 백 다만 국회에서 한나라당이 다수당으로서 성의를 안 보이니까 문제다. 안 대응을 어떻게 할 것인가도 문제다. 현재로는 아마 정부에선 군사적 대응을 자제하는 것 같다.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군사적으로는 전쟁이 일어났을 때 어디가 더 상처를 받느냐, 이런 측면에서 굉장히 비대칭적이다. 첫째는 북한은 사회가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에 때릴 데가 별로 없다. 전쟁이 일어나면 남쪽이 받을 상처가 훨씬 더 클 것이다. 둘째는 북한을 때린다고 할 때, 그것은 김정일과 그 일당이지 북한의 동포들이 아니다. 어떻게 대응해야 하느냐, 이런 문제는 정부에서 유엔으로 가지고 가서 ‘북한을 고립하고 압박하겠다’는 것도 한가지 방법일 거고, 국내적으로는 휴전선에서 확성기를 설치한다거나, 라디오 방송을 하는 등 심리전 하겠다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나는 그런 대응도 하지 않으면 북한이 점점 더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백 아무래도 사실관계 차원이 기본이다. 그에 입각해서 걸맞은 대응책을 세워야 한다. 그런데 나는 정부 발표 내용에 대해 신뢰가 없기 때문에, 그게 사실이라는 근거로 취하고 있는 외교정책이나 휴전선에서의 심리전 계획 같은 것들이 참 어이가 없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발표의 진실성을 신뢰하는 안 교수께서 ‘전쟁은 안 된다’ 말씀하신 것에 대해 그야말로 합리적 보수의 태도로 높이 평가하고 싶다. 사실관계가 틀렸을 때, 틀린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대결의 길로 가는 것은 범죄적인 행위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어떤 경우건 만약에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면, 어느 선까지 우리가 북을 응징할 수 있는가는 굉장히 세심하게 검토할 대목이라고 본다. 가령 휴전선에서 심리전을 재개했을 때 확성기를 조준사격한다면, 또 우리 남쪽은 가만 있을 수 있는가. 그러다 보면 전쟁이 날 수 있다. 그래서 세심한 검토를 요구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 전제가 되는 사실관계가 더 명확히 규명되어야 한다. 백낙청|보수, 기형적 국가가 낳은 뒤틀린 현실 봐야 북한에 휘둘린 포용정책 vs 6·15 기본에서 새출발을 사회 6·15 10주년을 맞았다. 이에 대해서도 보수와 진보의 평가가 너무 다르다. 백 내가 ‘포용정책 2.0’을 말할 때는 6·15 공동선언이 대표하는 1.0 버전에 대한 기본적인 인정을 전제하고 있다. 동시에 1.0의 단순 복원이 아닌 2.0을 말하는 것은 햇볕정책이나 노무현 정부의 평화번영 정책의 문제점들에 대한 비판에도 상당부분 동의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6·15 선언이 잘못됐다고 비판하는 분들이 그보다 뭘 어떻게 더 잘했어야 하고 현실적으로 할 수 있었는지를 제시하고 비판해주면 좋겠다. 지금 6·15선언 자체를 부정하는 소위 보수주의자들을 보면, 대결시대에 대한 향수가 꽤 있는 것 같다. 실제로 그것은 한편으로는 6·15 시대의 혜택을 만끽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 전에 누렸던 과도한 특권을 회복했으면 하는 이중적 태도다. 그건 비합리적인 태도다. 6·15를 폐기하고 그 이전의 대결시대로 돌아간다면 한국 경제도 다시 불황으로, 민주주의와 자유의식도 상당부분 옛날로 되돌아갈 것이다. 지난 2년 반의 역사가 입증해주고 있다. 그런 면에서 6·15 선언과 햇볕정책, 참여정부 대북정책 이것을 무조건 복원해서 쓰자는 것이 아니고, 현실에 맞게 수정할 건 수정하되, 기본은 1.0에서 출발한 2.0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안 남북관계가 80년대까지는 체제 대결 관계였다. 90년을 전후로 하는 공산권의 붕괴로 이미 체제 대결은 세계사적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는 시대로 들어섰다. 그런 세계사적 흐름을 타고 있는 것이 6·15 공동선언이다. 6·15 공동선언은 이러한 세계사적 흐름을 받아들인 측면이 있다. 2000만 동포가 굶어죽고 있는데 대결정책만 써서 문제가 해결될 거냐, 당연히 포용정책을 써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햇볕정책이 희망했던 것은 북한의 개혁·개방이다. 이런 취지로 공동선언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오자마자 반대했다. ‘이것은 성공 못할 것이다.’ 왜? 이전에 내가 말한 대로 북한의 사정 때문이다. 경제적으로나 사상적으로 보나 도저히 북한이 개혁·개방할 수 있는 내부적 조건이 없다. 그래서 6·15 공동선언과 같은 무조건적 포용정책은, 비록 변화된 상황을 제대로 읽은 것이라고 하더라도 성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비핵·개방·3000’도 포용정책의 연장선상에 있다. 핵을 포기하고 개방을 받으면, 10년 내에 국민소득 3000달러 수준을 만들어주겠다는 조건적 포용정책이다. 백 주관적인 의도는 그럴 수 있지만, 너무 교양 없는 정책이다. 안 6·15는 절대적인 포용정책이지만, 비핵·개방·3000은 상대적, 조건부 포용정책이다. 물론 이전 진보정권도 조건과 요구 없이 퍼주기만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겠지만, 그러나 결과는 북쪽이 하자는 대로 끌려다닌 정책이었다고 본다. 백 절대적이냐 상대적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비핵화라는 특정 조건을 걸었느냐 아니냐의 차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도 비핵화를 추구하지 않은 게 아니다. 다만 비핵화는 본질상 북-미 관계에서 해결되어야 하고, 그 해결을 위해서 6자회담이란 걸 만들어서 진행하고 있으니까 거기서 해결할 일이지, 이걸 남북관계에다가 선결조건으로 거는 것은 현실성도 없고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이었다. 안 생각이 조금 다르다. 북이 핵을 가지고 있으면 미국에만 쓰겠는가. 그리고 미국은 세계적 헤게모니 국가다. 그 속에서 북-미 간의 대등한 관계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북한 역시 그런 객관적 현실 안에 놓여 있는데, 북이 미국과 ‘대등한 관계까지 가자’, 이것은 비현실적인 목표다. 그리고 북이 미국과 대등관계를 요구하는 것은 핵개발을 위한 핑계가 아닌가 한다. 북이 핵개발을 한다고 해서 미국과 대등한 국가가 될 수 있는가. 백낙청
‘비핵화’ 조건 앞세운 대북정책 비현실적
악화된 현실 덮어놓고 통합 말하는건 위선 안병직
북 특수성 탓 무조건적 포용정책 성공 못해
개발-민주화시대 주름 펼 정부기구 만들자 백 우리가 지금 고약한 현실에 고약하게 걸려 있는 게 사실이다. 이걸 가지고 고민을 해야 하는데, 이명박 정부도 그런 고민이 없고 6·15 폐기하면 뭔가 될 것처럼 얘기하는 소위 보수인사들도 그런 고민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6·15 공동선언 문건 자체는 ‘무조건 도와주면 개혁·개방할 것이다’라는 전제를 깔고 있지 않다. 그건 북의 자체 변화가 남북간의 점진적인 통합과정과 맞물려서 진행되는 상황을 지향하고 있다. 그게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한 데에는 남쪽 정부나 추진자들의 현실인식이 충분치 못했던 면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6·15 공동선언이 나온 바로 다음해 미국에서 조지 부시가 집권했다는 사실이다. 그 후 여러 곡절을 거치면서 지금의 고약한 상황까지 왔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이냐. 나는 역시 6·15 선언에서 설정했던 프레임, 다시 말해 남북간의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재통합 과정과 맞물린 남북 각기의 자체변화를 시도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안 묻고 싶은 게 있다. 남북연합을 한다고 할 때 남북간에 서로가 연합을 하자는 의사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남북연합을 할 수 있는 조건들을 남북간에 구축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내 생각에는 남쪽이 북쪽의 행동방식에 간섭하고, 북쪽이 남쪽의 행동방식에 어느 정도 간섭할 수 있는, 상호조건적인 것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북한이 남쪽이 이렇게 해라 할 때 무엇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백 서로의 체제 내부에 대해서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은 최소한 연방정부가 성립됐을 때 가능한 일이다. 연합기구라면 남북의 경계선을 어떻게 관리한다거나 남북간의 왕래 문제를 어느 선에서 조절한다거나, 경제협력을 어떻게 뒷받침한다거나 등 이런 큰 원칙을 합의하고 조절하는 정도일 것이다. 그런데 남북연합만 하더라도 우선 북-미 관계가 풀려야 한다. 그러려면 6자회담이 진전돼서, 완전한 비핵화까진 안 가더라도 비핵화를 해가는 로드맵이 나와야 한다. ‘한국적 20세기’ 이해하자 vs 민주화 이후도 같이 보길 사회 이른바 진보와 보수의 진영논리가 우리 사회에서 크게 영향을 떨친다. 왜 그런가? 또 이를 넘어서 합리적 진보와 합리적 보수가 토론할 수 있는 처방은 어떤 게 있을 수 있는가? 안 근본적으로는 한국이라는 국가 형성 과정의 특수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소통이 잘되려면, 보수건 진보건 이 한국이라는 현실로부터 출발하지 않을 수 없고, 한국의 현실로부터 출발하려면 대한민국이란 국가가 과거에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정확한 인식, 거기서부터 출발해야 그다음에 선진화든 뭐든 어떤 식으로 해나가야 할 것인지, 거기에 대해서 서로 동의를 하는 공통적인 기반이 나오지 않을까. 백 한국의 현실에서 출발하고 거기에 뿌리내린 사고를 해야 한다는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대한민국의 형성 과정이 기형적이었지만 87년 이후의 대한민국에 대해 긍지를 가질 만하다는 점도 동감이다. 그렇다고 해서 대한민국의 기형적인 탄생 과정과 초기의 참담한 현실이 말끔히 없어진 게 아니다. 단순히 과거의 상처로만 남아 있는 게 아니라 현재 한국 사회의 비정상적인 면, 기형적이고 뒤틀린 면으로 남아 있다. 이 양면을 다 보는 것이 원만한 현실인식이고, 양면을 보면서 서로 마주 앉아 어디까지가 비정상이고 기형적이며 어떤 것들이 자랑스러운가를 따지면 합리적인 토론이 가능하고 동의의 폭이 점점 넓어질 것이다. 안 한국이란 국가가 대단히 특수한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어떤 측면에서는 강렬한 빛의 측면이 있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엄청나게 주름살을 증폭시켜가며 형성되어온 국가란 점도 있다. 이 때문에 현재 표면적으로는 경제발전이다 민주화됐다고 해서, 그 주름살들이 펴졌느냐. 그렇지 않고 그걸 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신 것 같다. 실상 국민통합이 필요하다고 현 정부도 인식했기 때문에 사회통합위원회 등을 설치한 것 아니겠나. 지금은 그걸로는 좀 미흡한 것 같고. 오히려 정부기구로서 정식으로 여야가 합의를 해서, 구체적인 건 모르겠지만 하나의 중요한 기구를 만들어서 과거의 주름살을 어떻게 펼 것인가를 국가정책적으로 추진해보는 것이 어떨까 한다. 백 오늘날 대한민국이 기형적인 면이 있다는 원론적인 발언에는 쉽게들 동의하겠지만, 더 적나라하게 얘기할 경우 어떨지 모르겠다. 우리 사회의 기형적인 면이 2008년 새 정부 들어서서 아주 급속하게 확대되고 있다. 그런 현실에 대해서도 우리가 솔직하게 토론하고 적나라하게 얘기를 안 하면, 그건 적당히 좋은 얘기나 하면서 사회통합에 기여한 듯이 자기를 속이는 결과밖에 안 된다. 흔히 정권교체를 두 번 하고 나면 민주주의가 정착한다고 하는데, 그렇게 따지면 우리는 2008년 한나라당의 집권으로 민주주의가 본궤도에 올랐어야 한다. 하지만 그게 꼭 맞는 학설이냐는 문제를 떠나서, 우리나라에는 전혀 적용이 안 되고 있다. 왜 그럴까? 대한민국이 그동안 엄청나게 훌륭한 일들을 해냈지만, 아직까지 분단체제의 일부를 구성하는 매우 특이한 사회라는 사실을 떠나서는 설명이 안 되는 현상이다. 민주화를 완성할 정상적인 보수정권이 들어설 역사적 지형이 아닌 것이다. 사회 서로 충고를 전한다면? 안 보수건 진보건 간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의 특징이 뭔가, 이것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문제해결에 몰입하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될 수 있다. 백 좋은 말씀이다. 한국에는 제대로 된 진보주의자도 부족하고 정말 보수주의자로 인정할 만한 사람도 너무 적은 게 문제다. 정리 이창곤 최원형 기자 goni@hani.co.kr
| |
이슈천안함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