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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경제위기 속 억압정치…‘파시즘 임박’ 경고

등록 2009-07-16 14:56

경찰기구의 전면화와 극우 폭력세력의 준동 등 ‘파시즘적 경향’이라 부를 만한 징후들이 출현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4월 서울 동교동 김대중 도서관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국민행동본부 회원들(위)과 지난 1월 용산 철거 현장에서 강제연행되는 철거민(아래).   자료사진. 일러스트 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경찰기구의 전면화와 극우 폭력세력의 준동 등 ‘파시즘적 경향’이라 부를 만한 징후들이 출현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4월 서울 동교동 김대중 도서관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국민행동본부 회원들(위)과 지난 1월 용산 철거 현장에서 강제연행되는 철거민(아래). 자료사진. 일러스트 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진보세력 내부 반성 없는 ‘파시즘 기우’ 비판적 시각도




학계 ‘파시즘’ 논쟁 확산

파시즘의 본질을 누구보다 정확히 간파한 인물은 이탈리아의 마르크스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1891~1937)였다. 그는 파시즘을 “사라져가는 옛것을 대체할 새로운 것의 출현이 지체되는 위기 국면에 등장하는, 다양한 병적 징후들” 가운데 하나로 규정했다. 경제적 차원에 주목하든 대중심리적 요인을 강조하든, 파시즘의 등장 배경을 사회경제적 위기와 연결짓는 대부분의 파시즘론이 그람시에 근거를 두고 있는 셈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확산되는 파시즘 담론 역시 마찬가지다. 담론의 발화자들은 이른바 ‘엠비(MB) 악법’과 경찰·검찰 등 억압적 국가기구가 전면으로 부상한 현상 자체보다, 이런 정치적 퇴행이 전지구적 경제위기를 배경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세계적 수준의 경제위기로 국가간·자본간 경쟁이 격화되면서 경쟁에 장애가 되는 정치의 영역은 축소·억압되고, 기술관료 시스템과 치안(공안)이 빈 공간을 메우고 있다”(이광일 성공회대 교수)는 것이다.

물론 억압적 정치구조의 전면화를 경제위기와 연결짓는 학자들 모두가 파시즘 담론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일례로 신진욱 중앙대 교수는 이명박 정부를 1980년대 영국의 대처 정부나 9·11 테러 이후 미국 부시 정부와 유사한 ‘신자유주의적 치안국가’ 이상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이들이 파시즘의 도래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 사회에는 파시즘에 전형적인 ‘아래로부터의 대중동원’ 기반이 취약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파시즘의 가능성을 경고하는 학자들은 이런 관점이 ‘파시즘에 관한 신화’에 강박된 것으로 본다. 파시즘이 대중운동을 배경으로 집권했다는 통설은 “파시스트 집권 뒤 가공된 측면이 강하다”는 얘기다.

이광일 교수는 “이탈리아와 독일 역시 정치·경제·사회적 위기에 처한 보수·자유주의 세력이 좌파에 대응하기 위해 파시즘과 협조하면서 그들을 정치적 대리인으로 선택한 경우”라고 강조한다. 박영균 서울시립대 교수도 대중운동을 강조하는 견해가 “특정한 역사적 사례를 ‘이념형’으로 간주함으로써 파시즘을 서구적 현상에 국한시키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파시즘 담론의 발화자들 역시 지금의 한국 사회를 ‘파시즘 체제’로 규정하진 않는다는 점이다. 특정 체제를 파시즘으로 규정하려면 “극단적 위기 상황에서 표출되는 대중의 공포와 열망을 우익의 헤게모니 아래 결집시키고, 이를 통해 대중을 절대화된 권력 아래 전체주의적으로 통합하는 움직임”(조희연 성공회대 교수)이 나타나야 하는데, 한국 사회는 이런 극단적 상황까지 치달았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이 강조하는 것은 ‘징후’로서 드러나고 있는 ‘파시즘적 경향’이다. 박영균 교수는 이것을 대중심리 안에 잠복해 있다가 적절한 조건이 마련되면 급속히 성장하는 ‘파쇼적인 것들’로 규정한다. 이 파쇼적인 것들의 실체는 사회경제적 위기 등으로 대중들이 생존의 극한에 내몰린 경우 표출하는 파괴 충동이다. 이런 충동은 국가의 공공성이 상실되고 더는 제도정치에 기대할 것이 없다고 인식되는 순간 기존의 체제와 제도를 파괴하는 카리스마적 권력에 대한 요구로 분출되는데, 박 교수는 최근 한국 사회에서 자주 벌어지는 무차별적 대중을 향한 증오 범죄나 청년층에서 나타나는 공격적 민족주의를 대중심리 속에서 작동하는 파쇼적인 것들의 증상으로 간주한다.


이런 현실 진단은 “심화되는 파쇼화 경향에 맞서 급진민주주의 세력과 사회주의 세력이 견고한 연대를 형성해야 한다”(이광일 교수)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일종의 ‘21세기형 반파쇼인민전선’의 구축이다.

하지만 ‘좌절감에서 비롯되는 파괴충동’을 굳이 파시즘이란 극단 용어로 표현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학자마다 의견이 다르다.

박상훈 후마니타스 주간은 “파괴적 심리경향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과, 그것이 반동적 정치체제의 등장으로 이어질 것이라 진단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말한다. 자칫 소박한 심리학적 환원론에 빠져들 수 있다는 것이다.

‘파시즘적 경향’이 존재한다는 문제의식엔 동의하면서도 담론이 갖는 부정적 효과를 경계하는 학자도 있다.

신진욱 교수는 “지금 어떤 위협이 닥쳐온 것은 맞지만 그 위협은 ‘들개’ 정도의 위협이다. 이 상황에서 “늑대다”라고 외치면 정작 늑대가 나타났을 때 대처할 방법이 막막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최악의 상황에 대비한 경계는 늦춰선 안 되지만 위협의 크기를 과장함으로써 대중의 무감각을 키워서도 안 된다는 얘기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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