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정일 문학평론가·경희대 명예교수
‘노무현 이후’ 남겨진 과제
노무현의 유산은 무엇이고 그의 죽음이 우리 사회에 남긴 과제는 무엇인가. 나는 노무현이 대통령 되기 이전부터, 되고 나서, 그리고 퇴임 이후에도 시종일관 그의 삶과 행적을 이끈 커다란 질문을 하나 갖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어떤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가?”라는 질문이 그것이다. 이것은 한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추구해야 할 목표에 관한 질문이며 정신과 비전, 꿈과 가치에 관한 질문이다. 그 질문을 망각한 사회는 제아무리 잘살아도 길 잃은 사회, 제아무리 휘황해도 어두운 사회, 제아무리 똑똑해도 눈먼 맹목의 사회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질문을 오랫동안 잊고 살지 않았던가? 우리가 망각한 그 질문의 환기, 그의 죽음이 벼락 치듯 우리에게 일깨운 그 화두야말로 노무현이 남긴 가장 값진 유산이다. 그의 죽음 이후의 과제들을 생각해본다는 것은 우리 자신을 그 질문의 거울 앞에 세우는 일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우리는 어떤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가? 노무현의 죽음이 절절한 애도의 물결을 일으킨 것은 많은 사람들이 그를 여의고 나서야 그가 꿈꾸었던 세상, 그가 만들어보고자 했던 사회의 비전에 대한 그리움에 흠뻑 젖었기 때문이다. 큰 틀에서 노무현이 꿈꾸었던 세상은 소박하다면 소박하게도 사람들이 민주주의라 부르는 체제의 원칙과 가치를 존중하는 사회, 링컨의 표현을 빌리면 ‘민주주의의 명제에 봉헌된’ 사회이다. 그러나 그런 사회를 만드는 일은 결코 소박한 작업이 아니다. 그의 죽음을 보면서 우리는 그 작업이 우리에게 여전히 미완의 과제이며 그가 우리 모두에게, 집권세력과 국민과 사회에 남긴 숙제들 중에서도 가장 큰 숙제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과제의 수행을 위한 방법적 측면에서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정치, 경제, 사회의 모든 영역에 걸쳐 ‘민주주의 문화’의 토양을 일구어 나가는 일이다. 민주주의를 성숙시키는 일은 정치영역만의 작업이 아니다. 정치학자들은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이제 우리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되었으니” 어쩌고 하는 망발에 가까운 발언들을 쏟아낸 적이 있다. 민주주의는 정치영역으로만 실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정치를 포함해서 사회 모든 영역의 밑바닥에 깔려 있어야 하는 민주적 가치, 원칙, 태도, 의식, 정신상태- 곧 ‘시민문화’의 성숙을 요구한다. 그 문화의 토양 없이 민주사회는 요원하고 일시적으로 민주주의 같아 보이는 것도 쉽사리 엎어지거나 퇴행과 반전의 운명을 거듭할 수 있다. 민주주의는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긴 마라톤이다. 그것이 긴 마라톤인 이유는 민주주의의 문화를 키우고 뿌리내리게 하는 일이 단기간에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생전의 노무현은 ‘민주주의의 문화’라는 표현은 별로 사용하지 않았지만, 그가 시도했던 제도 개혁, 권력기관의 탈정치화, 인권과 시민 기본권의 존중, 약자 보호, 권력 분산, 지역주의 극복과 수직 서열주의 타파 같은 작업들의 기본 목표는 결국 민주주의의 문화를 키우는 데 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거듭 말하지만 그 문화를 뿌리내리게 하는 일은 정치권만의 과제가 아니다. 그것은 가정과 직장, 교육과 언론을 포함해서 사회 모든 영역에서 진행되어야 할 ‘사회 전체’의 과제이다. 우리 사회는 이 사실을 깊이 새겨야 한다. 시민교육 강화는 특히 중요하다. 민주주의를 하겠다는 이 나라에서 교육은 ‘시민’을 길러내고 있는가? ‘시민학’(Civics)을 기초과목으로 가르치는 대학이 있는가? 창조적 교육을 되뇌면서도 창조정신의 핵심이 비판적 사고라는 것을 지금의 우리 사회는 알고 있는가? 우리의 젊은 세대들은 “어떤 사회를 만들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그들의 평생 화두로 삼아야 하지 않겠는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