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림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노무현 이후’ 남겨진 과제
하나의 불꽃이 이토록 엄청난 힘으로 모든 기운을 빨아들인 적은 거의 없었다. 큰 죽음은 큰 각성을 통해 시대의 집합정신과 핵심과제를 표상한다. 현실에서의 죽음과 역사에서의 부활은 그렇게 만난다. 안중근, 김구, 김주열, 전태일, 박정희, 박종철처럼 노무현의 죽음은 시대의제를 떠안은 역사가 되었다. 무엇을 배워 이 비극을 죽음의 제의를 넘는 희망으로 전환시킬 것인가? 오랫동안 한국사회는 주기적 응집과 폭발을 통해 시련을 전진으로, 고통을 희망으로 역전시켜왔다. 대비극에서 대긍정으로의 승화를 말한다. 그것이야말로 노무현의 성취와 한계를 안고 넘는 시대적 소명일 것이다.
첫째, 전국을 덮은 추모 열기의 바른 해석과 수용이다. 그 열기는 노무현의 죽음에 대한 슬픔과 오열의 표현인 동시에 오늘의 급격한 민주주의 역전, 민생 위기, 한반도 평화 위협에 대한 저항과 소망을 함께 담고 있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는 추모 열기를 적극 수용, 소통 부재-기업 제일-강권 통치-대결주의 국정 운영을 수정할 지혜가 필요하다. 노무현 산화가 제공해줄 그 역전의 정치는 대통령·정부·국가 모두를 위해 좋은 선택이 된다. 그렇지 않고 맞선다면 촛불 때처럼 집권 2년차를 허송하고, 2010년 지방선거를 포함한 향후 정치 일정을 고려할 때 아무런 업적이 없이 임기를 마칠 위험이 크다. 두렵겠지만 불가피한 현실이다.
둘째, 소통과 대화를 통한 인간적 가치의 실현과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공적 공간인 언론과 정치의 이성 회복이 절실하다. 그곳은 지금 핵심 요체인 휴머니즘·공공성·배려·타협 대신 돈·권력·이념을 위한 언사와 쟁투만 난무한다. 필수 역할인 공공성 창출과 사회 책임은 고사하고 최소 합의와 인간적 품위조차 찾기 어렵다. 특히 상대를 공격하는 말들은 실제 현실보다 훨씬 이념적·극단적·허구적이다. 일례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 수준의 분배개선 주장조차 반시장·친북·좌파로 낙인된다. 정치와 언론이 자본·권력·허구이념의 도구 역할을 계속할 때 한국사회는 결국 인간 냄새가 사라진 냉혈사회가 될 것이다. 아니 이미 냉혈사회가 되었는지 모른다.
셋째, 권력구조 혁신이다. 필자는 오랫동안 검찰·감사원·국세청, 공정거래·금융감독 기구의 독립을 통한 감독부 신설과 이에 대한 의회 통제·시민 통제를 주장해왔다. 입법·사법·행정·감독부의 4권 분립을 말한다. 특히 검찰·감사원·국세청의 독립과 시민 통제는 화급하다. 검찰이 정치검찰로 존재하는 한 그들은 정권 교체 이후 곧 이명박 대통령을 포함한 현 정부 핵심들을 노릴 것이다. 검찰이 최소한의 중립성을 인정받으려면 현재 권력에 대한 수사 역시 노무현 수사처럼 철저하고, 또 형법 136조를 위반하면서까지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피의사실들을 공표해야 한다. 언론 역시 타자와 자기에 대한 알권리 및 명예훼손 기준의 형평성을 갖추어야 한다. 그러나 삼성, 노회찬, 장자연, 박연차 사건에서 드러난 끝없는 이중 기준에서 보듯 검찰과 언론의 양식과 준법의식은 기대 난망이다.
넷째, 진보개혁·민주담론이 갖는 최대강령주의의 문제이다. 자유-노동연합, 또는 시민-민중연합, 자유-사회(복지)연합을 포함한 진보개혁 진영의 정치연합은 여전히 한국 민주주의의 필수과제이다. 이명박 정부 1년은, 진보에서 보수로의 건국 이래 첫 평화적 정권 교체가 민주주의·인권·경제·사회·노동·문화·남북관계에서 보여준 급격한 역전을 증거한다. 그러나 김대중·노무현 정부 비판 시 많은 진보개혁·민주담론들은 이들과 한나라당을 ‘같은’ 신자유주의 노선으로 비판하였다. 게다가 노무현은 반대하나 더 신자유주의적인 한나라당 집권을 민주주의 후퇴가 아니라는 자기부정까지 나아갔다. 거꾸로 진보개혁 진영 내부의 정치연합 추구는 ‘큰’ 노선 차이로 간주하며 비판·반대하거나 계속 분열하였다. 특정요인 근본주의(예: 경제), 또는 개인 증오(예: 노무현)로 인해 전체를 보지 못한 결과는 지금 어떠한가? 보수정부의 정책과 현실을 목도하고도 같은 오류를 반복할 때 진보개혁 담론과 진영의 희망은 없으며,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 역시 어두울 것이다.
박명림/연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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