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 진보 진영의 국제 연대를 기치로 내건 정책 네트워크는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 등이 재직할 때 영향력을 발휘했으나 지금은 중심 인물이 없어 애를 먹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03년 7월 영국에서 열렸던 정상회의 모습.
폴리시네트워크 제공
창간 20돌 기념 연중기획, 다시 그리고 함께[4부]
진화하는 세계의 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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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경화 노동당’ 멀리하자 재정·인물난 이중고
“독립성 우선”…연구원들이 ‘프로젝트 세일즈’ 영국의 중도 진보적인 싱크탱크들을 둘러싼 환경이 따뜻하지만은 않다. 상당수 싱크탱크들이 재정 부족, 노동당과 관계 설정, 인물난 등으로 고민하는 모습이다. 어찌 보면 새로운 도전에 부닥쳤다고 볼 수 있다. 영국 싱크탱크들의 첫번째 고민은 재정이다. 기업이나 개인의 후원을 받지만 풍족하지 않다. 독일의 싱크탱크처럼 국가나 노동조합 같은 든든한 후원자가 있는 것도 아니다. 싱크탱크의 정책에 대한 수요가 많은 미국처럼 기업이나 후원자들의 기부가 밀려들어오지도 않는다. 어찌 보면 싱크탱크 운영 책임자들의 개인적인 재정 마련 능력에 의존하고 있는 편이다. 1986년 설립된 공공정책연구소(IPPR)는 한때 ‘사실상 노동당의 싱크탱크’라고 불릴 정도로 규모도 가장 크고 유명세를 탔지만 지금은 재정 사정이 여유롭지 못하다. 리사 하커 공공정책연구소 공동소장은 “솔직히 말해 31명의 연구자들에게 월급 주기도 힘들다”고 토로했다. “미국의 브루킹스연구소는 돈이 많다. 마음만 먹으면 원하는 수준의 연구자들을 채용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재원을 연구자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프로젝트를 제시하면 이 프로젝트를 원하는 회사나 개인으로부터 연구자금을 끌어온다.” 명성으로만 따지면, 공공정책연구소의 유명세는 2007년 10월 <전망 매거진>이 주는 ‘올해의 싱크탱크’ 상을 받을 정도로 여전하다. 실제 공공정책연구소가 내놓은 뉴딜 정책은 토니 블레어 노동당 정부가 1998년 채택해 적극적으로 실행하기도 했다. 뉴딜 정책은 훈련, 실업자 보조금, 실업자를 위한 자원봉사 등을 통해 실업을 줄이기 위한 프로그램이었다. 2001년에는 ‘아동 신탁기금’을 제안했고 2005년에 노동당 정부가 주요 정책으로 채택해 실행하기도 했다. 신생아가 태어나면 현금을 주는데, 특히 빈곤층 아동들에게는 더 많은 금액을 주기적으로 제공하는 정책이었다. 이 돈은 신탁기금에 투자돼 성인이 되면 상당한 종잣돈을 갖고 사회생활을 시작할 수 있다. 그러나 연구소 명성만큼 재정이 뒷받침을 해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데모스(Demos)의 경우에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알레산드라 부온피노 연구소장은 데모스 생존 전략의 첫번째로 재정 확보를 꼽았다. 18명의 연구인력을 두고 있는 데모스의 1년 예산은 180만파운드(약 36억원)에 이른다. 이 가운데 정부나 유럽연합 프로젝트를 수행해서 버는 수입이 10%이고, 사업가들이 먼저 프로젝트를 맡기는 게 20%이다. 나머지 70%는 ‘세일즈’, 다시 말해 연구자들이 아이디어를 만들어 후원자를 찾아다니며 자금을 구해와야 한다는 것이다. 부온피노 소장은 “개인 차원의 후원금은 아예 없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중도 진보 진영의 싱크탱크들이 겪고 있는 재정적 어려움의 배경에는 노동당과 관계 설정 문제가 깔려 있다. 1997년 블레어 정부가 출범할 때만 해도 싱크탱크들은 거의 ‘일심동체’였다. 부온피노 소장은 “블레어 전 총리는 초기엔 아주 진보적이었고 (우리도 거기에 동의했기 때문에) 당시 노동당으로부터 상당한 재정적 후원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블레어 정부가 우경화되면서, 싱크탱크들과 갈등을 겪기 시작했다. 부온피노 소장은 “블레어의 진보성이 떨어지면서, 명시적으로 다툼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보이지 않는 골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데모스 내부에선 노동당으로부터 독립성을 확보하고 싶어하는 분위기가 형성됐지만, 재정 확보라는 어려운 과제를 새로 떠안게 된 것이다. 정당을 제외하곤 싱크탱크들이 내놓은 정책을 소화해줄 만한 ‘시장’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부온피노 소장은 “부족한 운영자금은 재원을 다양화시켜 해결하려고 하고 있다”고 밝혔다. 공공정책연구소도 비공식적으로는 노동당 정책 입안자들과 잦은 만남을 갖지만, 노동당에 공식적인 정책 보고서를 제출하지도 않으며, 노동당의 정책을 무조건적으로 지지하지도 않는 쪽으로 돌아섰다. 하커 소장은 “정치 정당으로부터 계속 독립적으로 되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싱크탱크는 전문성을 유지하고 변화를 주시하려는 노력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물론 영파운데이션은 재정이 풍족한 편이라고 한다. 후원기업 목록을 보면, 브리티시텔레콤, 시스코 등 내로라하는 기업들이 들어 있다. 그러나 이것은 블레어 정부에서 정책실장을 지낸 제프 멀건의 정치적 영향력 때문이지, 독일처럼 제도적 뒷받침이나 미국과 같은 수요가 있기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인물난도 또하나의 고민이다. 1997년 런던에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블레어 전 영국 총리의 대담 이후, 중도진보 정부의 지도자들이 모여 만든 ‘진보 정상회담’(Progressive Governance Summit)의 실행기구인 ‘정책 네트워크’(Policy Network)가 단적인 사례다. 중도 진보 진영의 국제적 연대를 기치로 내건 정책 네트워크에는 각 국의 정치인, 앤서니 기든스 같은 전문가 그룹 등이 대거 참여하고 있지만 클린턴과 블레어의 퇴진 이후 중심 인물이 없어졌다. 정책 네트워크의 올라프 크램 소장은 “사실 우리한테는 엄청난 도전”이라며 “브라질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대통령, 오스트레일리아의 케빈 러드 총리 등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새 간판 얼굴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보수당에 맞서기 위해 1980년대부터 하나둘씩 출범한 영국의 중도 진보 진영 싱크탱크들은 재정·인물난과 노동당 집권기를 거치면서 새로운 분기점에 서 있다. 런던/이용인 기자 yyi@hani.co.kr
“연구주제 선정땐 4단계 엄격 심사 정치·소통감각 연구원 주요 덕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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